감상 게시판

게시일시: 2000/08/02 오전 1:52
게시자: 아라(지혀니)
제목: 얼마전 광야를 헤매었지요.

황량하기 그지 없고 매서운 바람 쌩쌩 몰아치는 그 곳이지만 우리네 인생길
에서 피해 갈 수도 없는 그 곳....

며칠 전에 김혜린님의 '광야'를 읽었습니다. 김혜린님의 모든 작품들이 그
렇듯 주인공들이 수난 받고 어려움 당하는 스토리 전개는 여타 작품과 비슷
(?)했으나 그리 오래지 않은 지난 시대에 매우 있었을 법한 일이기에 더욱
더 생생하게, 또 사무치게 다가오더군요.

이 작품을 읽고 난 후 대학 1학년때 밤을 새워 가며, 또 강의시간에까지 내
리 2주 이상을 읽어 제끼던 박경리씨의 '토지'가 생각나더군요. 비슷한 시
대배경뿐 아니라 짜임새 있고 여러 주인공의 주변을 따라 움직이는 스토리
전개와 큼직한 스케일 등 때문에 그랬겠죠.
하지만 만화란 장르의 특성상 주인공의 울분과 고뇌, 아픔이 이 소설보다
도 더욱 와 닿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주저없이 광야가 토지에 버금가는, 아니 이상가는 작품이 될
수 있으리라고 봅니다.(물론, 아직도 가야할 길은 멀지만요.)

그리고, 이 작품을 읽으면서 바로 우리의 할아버지 세대가 겪어야만 했던
그 참담한 경험들이 과연 이 세대에 얼마나 반영되고 반추되어졌는지, 또
이 세대는 그런 경험들에 대해서 어떤 태도를 보이는지 등을 생각해보았고
안타까운 마음이 들기도 했습니다. 아직도 그네들(일본)에 대해 심정적으
로 거부감이 남아 있으면서도 우리들은 모든 것을 다 잊은 양, 혹은 다 용
서한 양 행동하고 있는 것은 아닐런지요.

우리의 과거에 받은 상처를 빨리 아물게는 하되 다 나은 상처자국의 원인
에 대해서는 잊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지요.

그런 의미에서도 혜린님의 '광야'는 이제는 사유조차 잊어버린 그 상처자국
의 기원을 확실하게 인식시키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가 잊지 말아야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