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일본인이 바라본 '북해의 별' (2) 관련자료:없음 [1371]
보낸이:김성은 (clamp ) 1998-03-07 02:25 조회:364
안녕하세요...찌혀어니입니다..............
앞의 글에 이어지는 내용입니다.
그럼...
《 윤동주의 서시와 유리핀 》
감옥에서 비요른이 만신창이가 된 유리핀에게 다가온다.
"아직까지 자백서를 쓰지않았군요"
"난 쓸 말이 없어"
"반역을 했다는 자백을 거부하며 고문에 견뎌낸다고 해도 재판결과는 마찬
가지입니다"
"그렇겠지"
"후작! 당신은 죽는 것이 억울하지도 않습니까? 왜 삶을 저주하고 더러운
세상을 저주하고 한마디 발악이라도 해보지 않습니까? 왜 내 얼굴에 침을
뱉고 통곡하지 않습니까? 벌써 체념한 겁니까? 당신은 그 정도의 남자였습
니까?"
유리핀은 조용히 대답한다.
"확실히 지금 나는 조국에서 매장되고 있지. 그런, 나는 자신의 자유로운
의지로 살아온 인생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어.
...괴로울 때, 슬플 때, 어딘가로 도피하고 싶을 때, 인생은 즐거운 때보다
도 그런 경우가 많겠지. 하지만, 그런 순간에도 살아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야. 한번뿐인 인생이므로 더럽고 험악한 세계라고 해도 나는 자유롭고
당당하게 열심히 살아가려는 노력을 해 왔다.
이렇게 된 지금도, 선택을 잘못했다고는 생각치 않아.
물론, 미련은 남아있고, 분노도 고뇌도 가슴속에서 끓고 있어. 하지만 숨이
끊기는 최후의 순간까지 나는 부끄럼없이 당당하게 살고싶어.
이것만큼은 누구에게도 빼앗기지 않겠지, 나의 자유이므로"
(사실은 더욱 길다. 혼자서 장황하게 이야기한다. '남자는 말없이'라고는
결코 생각치 않는다. 작자도 말하고 있다. '이 작품은 말이 많다'고...그림
으로 설명되어 있지 않는지라 파악하느라 무척 고생했다)
죽는 순간까지 부끄럼없이 자유롭게라고 처형을 예상하고 있는 유리핀은 말
한다. 다른 무엇을 빼앗긴다고 해도 의지의 자유만은 빼앗을 수 없다고. 그
러나 북해의 별인 유리핀은 얼마만큼의 바람에 부딪치고 고통을 받게 될 것
인지...
여기까지 읽고나서 그제사 나는 알아차렸다.
이것은 윤동주의 '서시'가 아닌가!
윤동주란 1945년 2월 16일, 百道의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27세의 젊은 나이
로 옥사한 시인이다. 그는 교토의 同士社대학에서 영문학을 공부하던 중,
한글로 시를 쓰고 있다는 이유로 체포되어 후쿠오카로 보내진 것이다.
현재는 한국의 국민적 시인으로서 사랑받고 있다. 그리고, 그가 남긴 시 중
에서 가장 유명한 것이 23세때에 썼던 '서시'이다.
서 시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라는 것으로 유명하다.
'하늘' '이는 바람'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한다' '모든 죽어가는 것' '사
랑해야지'
'아름다운 단어들. 하지만 그다지 리얼리티가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프
란시스 잼의 '내가 죽는 날이 아름다운 날이길 기원한다'와 같은 약간 센티
멘탈한 시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 원시를 꼼꼼히 읽어보고 그것을 유리핀과 겹쳐보고나서 비
로소 나는 지금까지 완전히 잘못 파악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던 것
이다.
'푸른 하늘을 올려다본다'가 아니었다. 하늘(天)인 것이다.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럼이 없도록' 바라는 기원인 것이다. 그러고보면, 윤동주는 크리
스챤이었다.
그리고, '모든 살아가는 것들'이라고 하면 마치 꽃이나 나무, 생명이 있는
아름다운 모든 것이라는 남의 이야기의 이미지이지만, 실은 '모든 죽어가는
것들'이었던 것이다.
생명을, 살아가는 것이라고 파악할 것인지, 언젠가 죽을 것이라고 파악할
것인지에 따라 상당히 인상이 달라진다. 당돌하게 '주위의 생명을 소중하
게'라고 해봐야 일의 경중을 생각치 않는 안이한 생명주의같아서 아무래도
거북했던 것이다.
그러나, 최초의 행에서 '죽는 날까지'라고 한 이상, 3행째에서 '부끄럼없이
살아가고자 하는 것이 얼마나 고통을 동반하는가'를 노래한 이상, 6행째는
'죽어가는 것'이라고 파악하는 편이 시의 의미를 이해하기 쉽지 않을까?
더 자세히 말하자면 그 '모든 죽어가는 것들'은 주의의 다른 것들을 사랑하
는 이상으로 언젠가 끝나갈 자신의 인생을 '부끄럼없도록' 소중하게 하는
것이라고 파악해야 하는게 아닐까?(한글 초급인 주제에 대담한 발언)
잭 히긴즈의 '죽어가는 것에 대한 기원'(하야카와 문고)와 같은 의미로 파
악된다고 생각하는데. 영국군과 경찰과 IRA와 갱을 적으로 돌리고 더이상
어떤 선택을 해도 죽을 수밖에 없는 주인공 파론을 위한 기원이란 즉, 모든
인간을 위한 기원이라는 그 유명한 명작이다. 중세의 수도원에서 반복되는
'메멘트 모리(너의 죽음을 깨달아라)'이다(미스 치르가 아니라구...)
살아간다는 것은 실은 죽음에 다가가는 것이다라고. 그렇기 때문에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에 대해서 무신경해서는 안된다고 시인은 말하고 있는 것이
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에게 주어진 길을, 자신의 것으로 걸어가자'고...
그러므로, '오늘밤도 차가운 바람이 스쳐가지만, 별은 반짝이고 있는' 것이
다.
나는 지금까지 이 시를 소녀취향적인 혹은 고 달콤한, 센티멘탈한 시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한점 부끄럼없이라니, 어짜피 불가능하잖아. 오래 살면
살수록 수치도 늘어나는거라구', 수치를 산더미처럼 안고 있는 나로서는 지
금까지 너무나도 눈부신 시였던 것이다.
하지만, 실은 인생의 여러가지 장면들, 좋은 일도, 나쁜 일도, 괴로운 일
도, 모든 것을 전부 자신의 인생으로 받아들이고자 하는, 너무나도 남성적
인(앗, 성차별적인 발언!) 엄격한 시였던 것이다.
자칫하면, 좋은 일만 자신의 인생의 추억으로 삼아 기억하고, 나쁜 일은 다
른 사람의 탓·운이 나빴어·잊어버리자라고 생각해버리기 쉽상인데, 시인
은 도망치는 것을 용서하지 않는다.
윤동주 자신이 일본의 지배하에서는 출판이 금지된 모국어로 계속하여 시를
써왔던 시인이었다. 시집을 내지 못하는 시인. 그 괴로움은 얼마나 컸을
까...그리고 그 시 덕분에 그는 젊어서 옥사하게 된다.
스스로 그렇게 되리라 예감하고 있기라도 한듯한 시이다. 아니, 예감은 들
었으리라. 특별히 날카로운 감성을 지지고 있지 않더라도 일본의 지배와 전
황을 살펴보면, 일목요연했던 시대. 그렇기 때문에, '서시'와 같은 시를,
'별 헤는 밤'과 같은 시를 쓸 필요가 있었던 것이리라 생각된다.
나뭇잎 사이의, 부는지 안 부는지 알기 힘들 정도의 바람의 움직임, 그것에
도 마음은 아프다. 지배하는 측이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는 것에 그는 얼
마나 아픔을 느끼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안에서 살아나가는 것을, 시를
쓰는 것을 사랑하고 있었던 것인가...
그것은 김혜린도 마찬가지이다. '북해의 별'을 읽어가면서 1983년 당시의
한국은 이 정도의 내용조차 발표할 수 없었던 시대였던가라는 생각이 들었
다. 저 광주사건이 일어난 것이 1980년으로, 아직까지 민주화의 길은 멀고
도 험한 시대였을 것이다.
'북해의 별'의 작자의 머릿말을 읽을 수 있게 되어서야 납득할 수 있었다.
역시 발표당시는 많은 부분이 수정을 요구받거나, 혹은 삭제되어버렸던 것
이다. 그러므로, 이번 복각판을 낼 당시에는 가필수정하여, '무자비하게 삭
제되었던 상처를 복원하여' 완전판을 내었다는 것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당
초에는 전 10권으로 출판될 예정이었던 것이, 11권이 되어버린 모양이다.
윤동주의 아픔은 김혜린의 아픔이기도 했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야기
에 엄청날 정도의 박력이 넘쳐흐른다는 것도 납득할 수 있다(처참한 옥중
신도, 상황을 생각해보면 어떤 종류의 리얼리티가 느껴진다). 자신의 생각
을 그리지 못하고, 그려낸 것도 삭제되는 가운데 '북해의 별'과 같은 작품
을 탄생시킨 그녀의 강함. 그리고, 12년의 세월을 거쳐, 완전판을 낼 수 있
는 시대로 역사가 움직였다는 것에, 읽어나가면서 자세를 바로잡지 않을 수
없었다.
작년 2월 후쿠오카 형무소 자리에서 윤동주의 사후 50년 추도식이 거행되었
다. 그날의 신문기사를 보고 개최예정을 알게된 나는 '서시'가 尹建次 저
'그대들과 조선'(岩波 쥬니어 신서)에 일부 소개되어 있었으므로, 윤동주의
이름 정도는 알고 있었다는 점, 그리고 그런 유명인이 이 근처에서 옥사했
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는 것이 부끄러워서, 예정을 변경하여 찾아가 보
기로 했다.
한국에서 찾아온 위령단도 내일해 있었다. 早良구청의 북쪽에 위치한 형무
소 옆의 조그마한 공원이 회장이었다. 그 다음다음날이 기일로, 그날에는
同志社에서 심포지움이 예정되어 있다고 했다.
바닷바람이 부는 맑은 날씨, 일본인 참가자는 '후쿠오카·윤동주의 시를 읽
는 모임'의 멤버들을 제외하면, 당연히 그다지 많지 않았다. 그가 이 후쿠
오카에서 의사의 치료도 받지 못한채 홀로 최후를 맞이했다는 것을 생각하
면, 한국식 제사가 이루어지고 있는 동안, 나는 안타까움을 느낄뿐이었다.
하지만, 지금 그의 '서시'를 읽으면 약간 다른 생각이 든다. 그는 마지막
숨을 거두는 그 순간까지, 고고하게 자신에게 주어진 길로서, 인생을 사랑
하고 있었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파시즘 속에서. 생활의 구석구석까지를 제약당하고, 시인이 말을 사용하는
것까지 금지당하는 황민화정책 속에서도 인간은 이렇게 살아갈 수 있다고,
그것이야말로 누구도 더럽힐 수 없는 인간의 존엄이라는 진실을 가르쳐주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별은 차가운 바람보다도 높이, 저 하늘 높은 곳에 있는 것이다.
《 후 기 》
'悔谷君北海行錄'.
타이틀은 물론 '老松堂日本行錄'에서 빌려왔습니다(연습하고 계신 여러분,
수고하셨습니다).
悔谷君이라는 것은 예전, 조선사연구실에서 놀고 있을 무렵의 활동명으로
'은하영웅전설'의 금은요동 오스카 폰 로이엔탈을 뜻합니다. Oskar=劍(창이
라는 설도 있음). von=君. Reuen=後悔. Tall=谷. 조선시대의 왕족은 예를
들면 '광해군(칭호) 휘(이름)'라는 식으로 불리우고 있었으므로, 나는 悔谷
君劍. 절대 梅谷君(우메타니군)이라고 부르지 말아 주시길...하지만, 왠지
유리핀과는 대극을 이루는 이름인듯...
이 나이가 되어서 개인지 같은 것을 만들게 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
습니다. 톤을 사는 것도 상당히 창피했다는...
대학 3학년때까지는 이것저것 그리고 있었지만, 전혀 발전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펜을 놓아버렸습니다. 그리고 취직활동에 실패해, 연구자 인생을
목표로 삼고 있었는데...10년 이상의 공백을 두고 다시 그림을 그리게 되다
니, 인생이란 정말 알다가도 모를 일인듯...
그만큼 '북해의 별'을 사랑하게 되어버렸던 것이겠지요. 아마도, 주인공에
게 푸욱 빠져버린 경험이 그다지 없었기 때문에, 더욱 기뻤던 것이라 생각
됩니다. 내가 좋아하는 타입 '프라이드가 높지만 야심은 없고, 어딘가 어두
우면서, 홀로 외로이, 고통에 빠지거나 하지 않고, 자기보신본능이 약하며,
확실히 사명을 완수하는' 인물은 순정다감한 주인공을 부각시키기 위한 조
역밖에 되지 못한채, 최후에는 죽음을 맞이하지 않으면 안되는 경우가 많았
습니다. '갓챠맨(독수리 오형제)'의 G2호 죠라던가, 맥클린의 '최후의 국경
선'의 우라지밀 대령 등등. 인기는 그럭저럭 있는 편이지만, 이런 성격을
주인공에게 부여해버리면 스토리가 목적지를 향해 '돌격 앞으로'가 되어버
리는지라, 파란만장한 이야기가 되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듯...
하지만, '북해의 별'에는 호청년은 조나산 정도뿐. 나머지는 모두 '약간 거
만하고, 혼자라도 상관없지만, 일에는 빠지는 곳이 없고, 목적을 위해서라
면 인내할 줄도 알고, 각오도 되어 있다'는 사람들뿐. 그런데도 이야기가
성립하는 비밀은 어디에? 라는 것이 매력이겠죠.
하지만, 이런 것을 만들어서 창피거리를 더 늘린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군요. 하늘을 우러러보는 나.
지금까지 도와주신 분들, 대단히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리겠습니
다.
1996년 11월 8일
悔谷君 劍(카이코쿠군 켄)
|
◆ 여기는 김혜린의 작품세계 & 공식 팬클럽 홈페이지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