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 게시판

게시일시: 1999/06/21 오후 9:35
게시자: 돌베개
제목: 무타를 위한 변명 - `반갑다. 무타야! : 2`

이 글을 쓰기 전에 무척 망설였었다. 이미 무타를 한 번 다룬 글을 썼기 때
문이었다. 하지만 뭔가 빠졌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에 이번에 다시한번 글
을 쓴다. 부디 무타가 내 형편없는 글을 보고 화를 내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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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타를 위한 변명 - 나는 왜 그를 돕고 싶은가?

그는 `작은 나라`에서 태어났다. 그는 `오랑캐`로 태어났다.

그는 태어날 때부터 `약속의 땅`에서 쫓겨난다. 그를 낳은 어머니는 족장
인 쿠이친의 `정식 부인`이 아니다.

이 사실만으로도 그는 이미 권력이 차린 `밥상`에 앉을 자격이 없다. - 우
리나라 서자들이 어떻게 살았는지 아시죠? - 그는 그렇다고 `첩`이 낳은 자
식도 아니다. 차라리 `첩`(미안!)이 낳았다면 밥상 곁에서 가끔 밑바닥으
로 떨어지는 찌꺼기라도 받아먹을 수 있지만

무타는 그의 `아버지`인 "타락한 용사"(:무타의 말)이고 "이기적인 변덕쟁
이"(이 말도 무타가 한 말이다)인 쿠이친이 `장난감(!)` 삼아 데리고 놀다
가 재미가 없어지자 내다버린 "이름모를 여인"에게서 얻은 자식이기 때문이
다. 그는 `정당성`도 없고 `정통성`과 `떳떳함`도 없다.

단지 어머니가 `이름도 모르는 어디서 굴러먹었는지도 모르는 천한 것`이
기 때문에 그는 - 자기가 바라건 안 바라건 상관없이 억지로 - `천한 놈`,
자식이되 자식이 아닌 `더러운 천덕꾸러기`가 된다. `운명`이라는 이름의
멍에를 - 배다른 `형제`들과 그들의 어머니들이 억지로 씌운 - 쓰고 그는
견뎌야 한다. 왜? 그는 `힘`이 없으므로.

해조가 하는 말대로 "형제들 중에서 무시받고 살았던" 무타. 그래서 그는
처음부터 기득권을 바라지도 않고 얻을 수 있으리라 생각하지도 않는다.
`형제`들과 `가짜 어머니들`이 씌운 굴레에 허덕이고, 스스로에게 이런 멍
에를 안겨준 아버지 쿠이친을 비웃고 깎아내린다.

그가 `힘`을 지닌 이들을 싫어하고 비웃는 버릇은 아마 여기서 비롯됐으리
라. 자신이 잘못을 저지르지도 않았는데 걸핏하면 `더러운 서자, 없어져도
누구 하나 돌봐주지 않고 울어주지 않는 - 어머니가 없으므로 - 천덕꾸러
기` 라며 그를 욕하는 `어른`들.(아골타만 빼고!) 그리고 말리지도 않고 관
심을 기울여 주지 않는 `아버지`. 나중에 엄마를 버렸다는 사실을 알고 자
신에게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까닭을 `알았을` 때, 그는 화를 내고 더이상
아버지를 믿지 않는다.

그래서 그는 `힘`과 힘으로 자기같은 사람들을 찍어누르는 `웃어른`들을 아
주 싫어한다. 그래서 해조에게도 "나도 (버려진) 엄마 생각하면 운다."고
말하며 똑같이 외로운 가슴인 해조에게 마음을 연다. 그리고 해조에게 "나
는 아버지 같은 사람은 되지 않을 테다."며 자기는 절대 힘이 있다고 남을
찍어누르는 `웃어른`이 되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하지만 그는 행복하지 못하다. 그가 누렸던 조그마한 행복 - 해조와 나누었
던 사랑 - 은 또다른 `힘`인 가라한 아사(산마로가 아니라)에게 빼앗기고
만다. 물론 칼자루를 쥐고 있는 아벌한(해조의 오빠)이 무타를 못마땅하게
여겼기 때문이다. 그에게는 행복과 웃음을 얻을 수 있는, 그리고 누릴 수
있는 권리가 없다. 어릴 적, 형제들과 그들의 어머니들이 억지로 그에게 굴
레를 씌운 일처럼 이번에도 그에게 묻지 않고 단지 "더럽고 무식한", 그리
고 `가진 것 없는 서자놈`이라서 아벌한은 그에게서 행복을 빼앗아가 버린
다.

이번에도 아벌한은 직접 "너같은 더러운 놈은 안 된다!"고 하지 않는다. 다
만 "해조의 행복을 생각한다면 물러서라."고 넌저시(:우웩!) 말한다. 그는
여기서 세상을 둘러싸고 있는 `위선`이라는 울타리에 부딫힌다.

어릴 적 어쩔 수 없이 써야 했던 `더러운 서자, 근본도 모르는 애새끼`라
는 굴레보다 더 무서운, 너무나 높고 튼튼해서 부술 수 없는 울타리 - 그
는 태어날 때 `천한 피`라서 권력이 차려준 밥상에서 쫓겨난 것처럼 이번에
도 `에벤키 오랑캐, `아랫것`이고 그 주제에(!) 감히 아름다운 아무르의 양
갓집 아가씨를사랑한다고 해서` 사랑이라는 아름다운 땅에서 쫓겨난다.

살면서 그는 두 번 쫓겨난 셈이다. 모두 그의 `신분`과 힘이 없는 현실 때
문이다. 재미있게도 무타가 겪은 일은 모두 에벤키가 겪는 일과 딱 들어맞
는다. 무타가 힘이 없어서 천대받고 사랑을 잃었듯이, 에벤키도 힘이 없는
작은 민족이기 때문에 아무르와 카르마키 사이에서 시달린다. 무타가 말한
것처럼 "궁할 땐 형제라고 하더니 살 만해지니까 다시 군림하려고 하는" 뻔
뻔한 `웃어른` 인 "위선자" 아무르. 가라한이 해조를 (일부러 그러지는 않
았지만) 빼앗아 갔듯이, 아무르는 에벤키의 자유와 권리를 빼앗는다.

위선에 실망한 무타는 카르마키의 용병이 된다. 하지만 카르마키에도 그의
자리는 약속되어 있지 않다. 그들은 위험한 일에는 써먹으면서 대가를 제대
로 주지도 않는다. 그들(에벤키족)은 단지 총알받이이고 써먹고 내버리는
`소모품`일 뿐이다. 카르마키 장군 웅고르가 화족과 더러운 거래를 하고 부
하들을 굶겨 죽인다는 사실, 그리고 자기에게 무기를 몰래 팔아 먹는다는
사실을 미끼로 잡아 겨우 자기 자리 (은패대장)를 지키며 버티지만

그와 에벤키에게 돌아오는 말은 "천한 에벤키 천둥 벌거숭이"일 뿐이다. 그
는 아무르에게 버림받았듯이 카르마키에서도 버림받는다.

중심부에서 쫓겨나서 가장자리에 있는 이들은 오히려 떠받들어지며 자란
`권력의 아들들`보다 더 똑바로 세상을 깨닫는 법이다. 무타도 예외는 아니
다. 그를 싫어하는 아벌한도 "나이 갓 스물이지만, 문자속도 있고 용병술
도 뛰어난" 아이라고 인정한다. 그는 멋 모르고 덤벼드는 카르마키 장군 웅
고르보다 더 뛰어난 상황 판단으로 함정을 피한다. - 웅고르는 카르마키라
는 강대국의 장군, 그러니까 권력의 밥상에 앉은 `기득권자`다 -

또 자기의 `윗사람`인 웅고르가 저지른 더러운 짓거리를 물고 늘어져 권리
를 얻어낸다. 그러면서도 아골타에게 "우린 대륙의 약자"라고 솔직히 인정
한다. 청동칼이 작은 쇠칼에 부러지는 것처럼, 자기네 족속도 힘이 없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사실 그 사실을 잘 알고 있기에 자기같은 에벤키가 나오
지 않게 하고 싶어서 더 발버둥을(미안!) 쳤으리라. 그는 자기 동포를 너무
나 사랑하는 사람이다. : 어째 약소국들의 독립운동가나 지식인들을 닮았다

그는 거만하지도 멍청하지도 않다. 그는 스스로에게 "결국 내가 해온 짓은
아버지 - 자기 어머니를 버린 쿠이친 - 와 다를 게 없는 거지." 하고 말한
다. 그래도 나는 그가 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는 올바른 분노를 내뿜었
기 때문이다. 위선에 맞서서, 나름대로는 최선을 다했다.

가라한과 맞붙은 뒤 돌아오는 길에서 그는 "어른 남자"라고 자신이 질투하
던 가라한을 인정한다. 사실 그의 머릿속에는 사랑하는 사람을 앗아간
`힘`있는 사람인 가라한이 더럽고 뻔뻔한 놈이어야 했으리라. 하지만 직접
만나본 그는 그렇지 않았다. 그 때 무타의 모습이 너무나 쓸쓸해 보였다고
말하는 것은 나만의 착각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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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무타가 티베트나 위구르, 내몽골, 회족의 `민족지도자들`이 모택동에
게 결국 무릎을 꿇고 만 것처럼 나머지 이야기가 나아가는 것이 싫다. 안
된다. 다시는 백성들이 울고 살게 하지 않겠다고, 멸시받게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던 사나이 무타. `아름다운 청년`, 아름다운 독립군 무타. 그는 누구
에게도 무릎꿇지 않고 자기 길을 가야 한다. 꿋꿋이 홀로.

그래서 나는 그가 가라한에게도 굽히지 않고, 카르마키에게도 굽히지 않는
모습을, 끝내는 자주독립국가를 세우는 모습을 보고 싶다.

에벤키는 웬지 강대국들에게 시달리는 우리나라를 보는 듯하고, 무타는 약
소국들의 독립운동가나 지식인을 보는 듯하다. 또 무타가 카르마키 군대에
서 겪는 차별과 모욕은 미군 안에 있는 카투사(KATUSA)라는 한국군인들이
알게 모르게 겪는 모욕과 차별대우를 - 인종차별까지! - 떠올리게 한다.
아무르의 군림은 중국이나 미국이 우리나라에서 `웃어른`으로 군림하려 드
는 현실을 보는 듯해서 마음이 아팠다.

- 무타야. 미안하다. 그래도 나름대로 신경서써 썼으니까, 너무 욕하지는
말아주라.

* 어여쁘신 파라반 누님. 그리고 여러분. 이 글 어때요? 그리고 평소부
터 생각하셨던 무타는 어떤 사람이었는지 한번 게시판에 답장 때려 주세
요.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