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 게시판

게시일시: 1999/06/03 오후 12:38
게시자: 돌베개
제목: 반갑다, 무타야!

지난번에는 수하이 바토르를 다룬 글을 썼는데 이번에는 너랑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사실, 처음 7권을 읽을 때 네가 나왔잖아, 그때는 별로 관
심을 기울이지 않았지. 야, 또 등장인물이 한 사람 새로 나오는구나, 하고
생각하고 그냥 가볍게 넘겼어.

하지만 딱 한마디는 머릿속에 남더구나. 네 오른팔인 `아골타`에게 "언제
까지 우리는 약해서 잃고, 당하고 살아야만 하느냐?"고 말하는 부분 말이
야. 비로소 나는 자세를 가다듬었지. `야, 이거 뭔가 있구나.`하고 말이
야.

아니나다를까, 절우부인 해조공녀가 가라한 아사 -그러니까 산마로- 랑
억지로 가시버시(신랑각시) 맺었을 때 해조가 눈물을 흘리면서 `무타!`하
고 네 이름을 부르데? -나도 잘 몰랐는데, 여자분들은 자기가 사랑하는 사
람의 이름을 위급하거나 슬플 때 부른다고 하더라. - 그리고 나서, 가라한
이 정신을 차리고 해조가 아라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소리 죽여서 꺽꺽거
릴 때, 나는 단순한 세력싸움 문제 때문에 네가 카르마키에게 종군하겠다
고 한 게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지.

해조가 아침이 되어서 활과 화살통을 태우려고 숲에 나갈 때, 옛일을 되
돌아보는 장면이 나오는데, 어려서 해조가 카르마키에게 부모님을 잃고 옛
벗인 에벤키 땅에서 살 때, 네가 울고 있는 해조에게 가서 말을 걸었지. `
너, 왜 울고 있니?` 하고 말이야.(아마도 그렇게 말했겠지) 그러니까 해조
는 자기를 놀리는 줄 알고 화를 냈겠지. `네가 무슨 상관이야?`하고. 그러
니까 너는 `화내지 마, 나도 엄마 생각하면 운다.` 하고 말하면서 달래 주
었지.

아마 네 엄마는 아내를 여럿 두었거나 바람기가 심했던 에벤키족 수장인
네 아버지한테서, 너를 낳은 엄마가 버림을 받고 쫓겨났던 모양이구나. 그
래서 어린 너는 외롭고 많이, 자주 울었겠지. 그러다가 도망쳐온 어린 해조
를 만났고, 엄마 아버지를 잃고 울고 있는 해조가 안쓰러워 보였겠지. 그래
서 말을 걸었고, 그때부터 똑같이 쓰라린, 똑같이 외로운 두 가슴은 서로
만났겠지.

더이상 외롭지 않았을거야. 이 세상에서 자기만 외로운 줄 알다가 똑같
은 마음을 만났으니까 말야. 좀더 자라니까 너는 해조에게 활을 만들어 주
었지.- 얘기를 들어보니까 너희 에벤키는 예로부터 활을 잘 만들고 돌을 갈
아서 날카로운 화살촉도 만든다며? 활쏘는 일은 아무르보다 잘 한다고 하더
라.- 해조가 용감해지라고, 좀더 꿋꿋해지라고 활을 만들어서 주면서 이렇
게 말했지. "손에 쥐고 있으면 용감해진다."

아마도 그때와 좀 더 지나서가 너와 해조의 가장 행복한 시절이었을 거
야. 그때는 상대방을 단순한 벗이 아니라 `남자`와 `여자`로 서로를 볼 나
이였으니까.(내가 너무 형이하학적으로 보나?) 그리고 너도 모르는 사이
에, 오랜동안 같이 지내다 보면서 해조에게 깊은 정이 들었고, 사랑하게 되
었지.

그러다가 마른 하늘에 날벼락이라고, 다른 사람도 아닌 해조에게서 이런
말을 들었지. `다시는 날 찾지마. 나는 가라한에게 시집가.` 라는.(아마
도) 그러니까 너는 화를 내면서 이렇게 외쳤지. `왜? 내가 무식하고 아무것
도 가진 게 없어서? 천한 에벤키 서출(서자)이라서? 거짓말, 거짓말이라고
말해! 해조야...!!" 그리고 참말이라고 말하고 무정하게 돌아서는 해조에
게 대고 너는 이렇게 말했지."널 증오할 거다...! 널 뺏아가는 아무르를 증
오할 거다!! 무타만큼 널 사랑하는 놈은 없다!" 하고 말이야.

그제서야 나는 네가 왜 카르마키의 용병이 되었는지 알겠더구나. 실제로
네가 카르마키를 도와 싸울 때에도, 너는 매몰차게 돌아섰던(속마음은 그
게 아닌) 해조의 뒷모습을 떠올리며 이렇게 생각했지. `가림홀... 바로 강
건너편인데도 아득한 끝처럼 멀다.` 고.

그래서 이렇게 다시 이어서 생각하지. `그 마녀-카라-가 물어볼 때 또 한
마디 대답할 걸 그랬군. 내가 미친 놈이라서 그렇다고.` 너는 헤어질 때 말
로는 "증오할 거다, 미워할 거다." 고 외치면서도 사실은 깊숙히 해조를 사
랑하고 있었던 거야. 그렇지?

그때 처음 읽을 때는 몰랐었는데 다시 생각해보니까 내 가슴을 콕콕 찌르
더라구. 나는 웬만해선 마음을 움직이지 않는 `돌같은 놈`(내가 왜 돌베개
겠냐?) 인데 말이야. 괜히 가슴이 쓰리고 악악거리고 싶더구나.네 편에 서
고 싶은 생각도 들고 말이야. 뭐랄까, 작품이 나아가면 나아갈수록 너라는
사람이 주 마음에 들더라고. 네 사람됨이 말이야.

거짓없이 사랑하고, 솔직하고, 용기있고, 남이 보면 질투할 정도로 인물
도 있고 말이야.(이거 사탕발림 아냐, 진짜야. 그렇죠, 여러분? 누가 대답
좀 해 주세요) 네가 "약한 자의 설움"을 이야기하면서 해조의 오빠인 아벌
한에게 "당신들은 위선자다! 궁할 땐 형제라고 하더니 이제 살 만해지니까
군림하려고 드는구나."라고 말할 때는, 우리나라의 처지 - 우리가 가난할때
는 형제국이라고 말하면서 도와주다가 우리가 좀 살만해 지니까 이리저리
트집을 잡으며 우리 앞에 `군림`하려 드는 미국이 우리를 지배하고, 바로
옆에는 중국이 `옛 종주권`을 주장하면서 우리를 누르려고 하는 - 가 생각
나서 네 편을 들어주고 싶더구나.

괜히 해조 오빠인 아벌한이 싫어졌지. 자기가 힘이 있다고, 똑같이 힘 있
고 잘 사는 집안에 시집보내서 자기도 이익을 얻으려는 심뽀가 뻔히 보여
서 말이야. 그 인간이 뻔뻔스럽게도 이렇게 말했다지? "진심으로 해조를 위
한다면 물러서라."라고. 뭐 진심으로 위한다면 물러서라? 그게 아니고 `너
같은 놈에게 시집보낼 수 없다.`는 소리겠지.

전 세계 가부장제 사회에서 오빠나 딸의 아버지(또는 남동생)이 품는 못
된 마음이잖아? 아마도 아벌한은 자라면서 일개 에벤키인 너와 자기 누이
가 가까워지고 서로 사랑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나봐. 그래서 `저따위 놈
에게 내 누이가 시집가나?`하는 마음을 품고 누이를 억지로 가라한과 혼인
시켰겠지.

6권을 보니까 아벌한이 해조가 가지고 있는 무타가 만들어준 활을 태워
없애버리라고 한 것도 이 때문이야. 틀림없어. 그래서 너는 반감을 품고 아
무르를 싫어하게 되었지. `힘센 나라라고, 힘센 집안이라고 이따위로 구느
냐? 그렇다면 나도 힘을 얻겠다. 힘을 키워서 다시는 나같은 에벤키가 나타
나지 않게 하겠다!`라는 생각을 품었겠지.

그래서 `카르마키가 좋아서가 아니라 살 만해지나까 다시 웃어른으로 군
림하려 드는 - 아벌한처럼 - 위선자인 아무르가 못마땅해서 어쩔 수 없이`
카르마키와 동맹을 맻고 아무르와 싸웠지. 잘 싸웠어. 나라도 싸웠을 거
야.

하지만 그렇다고 카르마키가 대안이나 구원은 아니었지. 공은 다 웅고르
라는 카르마키 장군 차지가 되고, 너는 죽어라 싸우면서도 제대로 댓가를
얻지 못하지. 웅고르를 비롯한 카르마키 군바리들의 텃세와 차별도 드세고
말이야. - 왠지 카투사라는 한국인만으로 이뤄진 미군부대에서 한국인 병사
들이 받는 차별대우와 미군들의 텃세가 생각나서 공감이 가더구나.-

그러면서도 너는 -카르마키와 아무르 같은 힘센 자들에게는 강하게 굴면
서도 - 스스로가 힘이 모자란다는 사실을 잘 알지. 그래서 너는 스스로 겪
은 아픔이 네 겨레가 힘이 없어서 겪는 아픔 - 아무르나 카르마키 같은 이
들에게 굽신거리고 ,바치고, 얻어맞으며, 사람 취급 받지 못하고 울면서 살
아야 하는 - 과 겹치면서 더 속이 쓰렸을 거야.

나는 꼭 힘없는 나라인 남한에서 태어나 굽신거리며 살아야 하는 `식민지
의 자식`인 내 모습을 보는 듯해서 마음이 아팠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네
가 어릴적부터 울면서 다짐한 "(엄마를 버린)아버지와 같은 용사는 되지 않
을 거다."라는 말을 귀기울여 들었고, 해조가 매몰차게(마음은 그게 아닌
데 강요로 어쩔 수 없이) 뒤돌아 갔을 때 "해조야!"하고 울부짖는 모습은
차마 못 보아 주겠더구나. 내 가슴이 찢어지는 기분이었어.

그리고 형제들과 싸우면서 "형제들의 피여, 나를 덮어라! 난 에벤키를 강
하게 만들 테다!"라고 울부짖을 때, 나는 네 편이었지. `그래, 당하지 말고
일어나! 네 겨레를 더 힘세게 만들어! 지지 마!`하고 너를 응원했지.

그러면서도 네가 삭검과 싸우면서도 "다시는 내 동족이 멸시당하게 하고
싶지는 않아! 나는..."하고 부르짓을 때, 살아 있는 한마리 늑대를 보는 기
분이었다.(오해는 하지 마. 그런 뜻이 아니야. 단지 때묻지 않은 깨끗한,
용기있는 싸울아비였다는 말이지) 너는 아마도 네 사랑하는 님을 `뺏아간`
힘센 자인 가라한 아사 - 산마로 - 가 `나쁘고 더러운 놈` 이어야 했을테
지.

그래서인지 가라한 아사보다는 네가 더 훌륭해 보이더라. 너를 지지하고
싶고 말이야. 그런데 막상 직접 싸워보니 가라한은 네가 생각했던 만큼(물
론 질투하는 마음이 섞여 있었겠지만) 더러운 사람이 아니었어. 그래서 너
는 쓸쓸히 돌아갔지. 웬지 그때만큼은 가라한이-산마로가 아니라- 싫더라.

9권에서 아쉽게 이야기가 끝나는데, 부디 네가 잘 되기를 바란다. 나는
네 편이야. 부디 사랑도 이루고 에벤키를 홀로 세울 수 있기 바란다. 너에
게는 아무래도 홀로서기가 필요해.(에벤키의!)

- 누구 무타를 말한 제 말에 반박하거나 덧붙이실 분 있나요? 그리고 기왕
이면 이 글을 E-메일로 김혜린 선생님에게 보내 주셨으면 합니다. (안되면
할 수 없죠. 제가 직접 보내야지)

-부디 무타와 에벤키가 꿋꿋한 자주독립국가를 세우길 빌며, 돌베개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