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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일시: 1999/04/04 오후 5:41
게시자: 김소원
제목: `북해의 별` -깊은 역사적 통찰과 살아있는 캐릭터...
'북해의 별' - 깊은 역사적 통찰과 살아있는 캐릭터
사랑하는 남녀가 있다. 아무것도 모르던 어린 나이에 서로 처음만났고,
오랜 시간이 흘러 사랑을 알게 된 그들은 이미 서로를 깊이 사랑하고 있었
고, 결혼을 약속한다. 하지만 그들의 사랑은 평탄하질 않다. 둘은 오랜 시
간의 시련 끝에 재회하고 행복하게 산다. 여기까진 너무나 평범하다. 아
니 평범하기 보단 영화에서든 소설에서든 사랑이야기에 있어서의 하나의 공
식 처럼 쓰이는 플롯이다. 하지만 여기에 두 사람이 왜 헤어지고, 어떻게
다시 만나며, 그들을 둘러싼 인물들의 또 다른 이야기의 전개가 덧붙여 짐
으로써 이 평범한 이야기는 생명감을 갖게 된다. 물론 이야기를 이끌어 가
는 작가의 역량에 따라 그 이야기는 뻔한 통속물이 될 수도 있고, 아주 특
별한 이야기로 탈바꿈 하기도 한다. 지금 이야기 하고자 하는 김혜린의
`북해의 별`이라면 후자에 속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북해의 별`은 그 때까지 등장했던 수 많은 순정만화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는 남녀간의 사랑과 타의에 의한 가슴아픈 이별과 재회등을 빠짐없이
보여주고 있다. 그렇지만 작품을 읽는 동안에 이러한 통속성을 발견하기
란 쉽지 않다. 그것은 우선 역사에 있어 혁명의 시기인 18세기의 유럽을
배경으로 보드니아란 가상 국가에서 일어나는 민중운동과 혁명을 소재로 삼
은 짜임새 있는 줄거리를 들 수 있다. 그리고 `북해의 별`에 등장하는 개성
강한 캐릭터 들이다. 역사를 배경으로한 서사극이란 특성상 많은 인물들이
등장 할 수밖에 없는 까닭도 있겠지만, 이러한 많은 등장 인물들을 하나 하
나 독특한 캐릭터로써 독립시켜 놓은 작가에 의해 한결 풍부한 이야깃 거리
가 제공되는 것이다.
역사적 사실들을 배경으로한 줄거리
작가는 역사적인 탄탄한 지식을 배경으로 작품의 줄거리를 써내려 갔
다. 유리핀이 민중운동에 투신하고, 국민의회를 설립하고, 의회 해산령에
반발한 시민들과 함께 혁명에 가담하고 외국의 군대에 맞서 시민군과 전투
에 참가하고, 그 승리를 발판으로 혁명의 성공의 기틀을 잡는등의 과정은
어찌 보면 프랑스 혁명과도 묘하게 닮아있다. 형제를 독살하고 왕위를 차
지한 무능한 왕과 바닥난 재정. 그리고 왕실을 둘러싼 주변국들의 알력싸
움.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기에 급급한 귀족 계층. 이러한 총체적 모순 속
에서 민중들은 자각해 가고 있었고, 이는 혁명으로 이어진다. 혁명의 과정
에서도 시민들의 요구에 어쩔 수 없이 설립된 국민의회는 결국 무력으로 해
산되고, 이는 혁명의 도화선이 되어 시민들을 하나로 뭉치게 한다.
이러한 보드니아의 혼란을 주변국에서 절대로 두고 보진 않는다. 왕후의
모국인 러시아와의 전쟁에서 시민군은 당당히 승리하고 하나가 되어 군가
를 부르며 수도로 진군한다. 실제의 역사책을 읽는 것 같은 착각이 들만큼
의 줄거리이다.
루이 14세때의 전제군주정 이래로 무리한 세금징수와 대외 원정등으로
이미 바닥나 가고 있던 혁명직전의 프랑스 왕실. 의회 활동 저지에 반발해
들고 일어난 시민들의 분노는 혁명으로 이어졌고, 프러시아와 오스트리아
의 연랍군에 대항한 프랑스 의용군들이 유럽 최강의 정예 부대에게 승리를
거둔 발미 전투…… 북해의 별을 읽는 중에 떠오른 것들이라면 무리일까?
주인공에게서 독립한 생명력 넘치는 캐릭터들
비요른, 화라, 무스타 하리, 마르키, 안제로와 잉카릿타, 오브낭, 한나,
메디시스... 일일이 나열하기가 벅찰만큼 다양한 등장 인물들은 `북해의
별`에서 빼 놓을 수 없는 요소다. 이들의 활약은 이야기를 더더욱 풍부하
게 만들어 낸다. 주변 인물사이엔 또 다른 이야기가 전개 되어가고 있는 것
이다.
우선 비요른. 유리핀의 유배에 한 몫했고, 끊임없이 유리핀을 위험
에 빠지게 하는데 작용을 하고 있는 인물 그러니까 흔히 말하는 악역이
다. 하지만 그의 악행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자신과 어머니를 버리고
출세의 길을 택한 아버지에게 복수가 그것인데, 그러한 나름의 정당성과 복
수의 수단으로 삼았던 한나에 대한 애증의 감정, 그리고 카니오를 향한 무
조건적인 애정. 이러한 점들이 비요른에게 입체감을 부여해 남다른 악
역으로 만들어 내는 것이다. 미워할 수만은 없는 악역 말이다.
그리고 무스타 하리. 이 작품에서 빼 놓을 수 없는 매력적인 캐릭터 이
다. 유리핀이 전형적인 미남에 곧은 심성의 소유자 라면 무스타 하리는 적
당히 세속적이고, 야성적인 매력도 함께 지니고 있으면서 유리핀에게 많은
도움을 주는 인물로 등장한다. 유리핀이 순정만화 주인공으로서의 전형적
인 캐릭터를 보여주고 있는 것에서 오는 지루함을 보충해 주는 인물
이라고 할까.
또 악셀화라의 아들인 오브낭과 그의 아내인 메디시스와 그들 두 사람이
서로 다른 형태로 표출해 내는 유리핀에 대한 애정 역시 작품의 감초 역할
을 톡톡히 해 내고 있으며 줄거리의 진행에 있어 필연적인 역할들을 수행
해 내고 있다.
이박에도 안제로와 잉카릿타 형제. 그리고 그들 형제의 아버지인 버그만과
의 관계라든가 제1왕자 에몬라루(퓨델 6세)와 제2왕자 아서보르티크(퓨델
보르티크 3세) 의 암투, 마르키와 안리타의 관계 역시 그냥 지나쳐 버릴
순 없는 이야기들을 풀어 내고 있다.
아쉬움이 있다면 이렇게 다양한 캐릭터들에 비해 오히려 유리핀과 에델라
이드는 평면적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에델라이드는 오직 한 남자만을 사랑
하고, 사랑하지도 않는 사람에게 결혼을 강요하는 오빠의 명령에 순종할 뿐
이다. 그리고 그녀가 작품속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의 일탈을 결심하고 길
을 떠나는 순간 유리핀과 재회하고 유리핀의 그림자 안으로 들어간다. 유
리핀은 처음부터 끝까지 변함없이 용감하고 당당하며 진한 인간애를 지니
고 있는 인물이다. 고문의 순간에 비명한마디 내지르는 법이 없고, 혁명
의 완성을 위해 스스로 올가미를 만들고 그 올가미 안으로 걸어들어가는 남
자. 비현실적일 만큼 너무나 완벽한 사람들이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이들
두 명의 주인공의 가슴아픈 사랑에 빠져들어 버린 나 인 것을...
물론 이 작품에 있어 단 하나의 오점도 없는 것은 아니다. 팀메니아에
서 서점용으로 출판된 1, 2 권에 해당하는 분량에는 아직 작가의 미숙함이
드러나 눈에 거슬리는 부분들이 있다. 뎃생의 어색함이나 구도 그리고, 유
리핀과 에델라이드를 미화하는 나래이션이 군더더기 처럼 느껴지긴 하지
만, 이런 구성상의 헛점들은 작품이 진행 될수록, 즉 작가의 실력이 향상됨
에 따라 점차 사라지고, 완결권쯤에 이르러서는 1권과는 비교할 수도 없이
향상된 뎃생력을 볼 수 있다. 사족을 붙이 자면 이런 부분들이 내가 김혜
린씨를 좋아하는 이유중의 하나이다. 작가의 노력이 작품속에 그대로 드러
나 보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비현실적으로 까지 보이는 유리핀의 영웅성이
나 에드와르의 에델라이드를 향한 사랑도 작품의 유연한 전개를 가로막기
도 한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생각하기에 데뷔작을 이렇게 까지 훌륭히 완
성해낸 작가는 없다고 단언한다. 이 작품이 출간된 때가 1983년임을 감안
하고, 당시 우리나라의 대부분의 순정만화들의 작품수준을 감안한다면, 북
해의 별은 결코 무시할 수 없는, 무시해선 안되는 `고전`이라 할 수 있겠
다. 한국 순정만화 역사에서 하나의 전환점을 마련한 작품이란건 결코 과
장이 아닌것이다.
사족...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김혜린님을 너무 좋아하고, 또 그녀의
첫 작품인 북해의 별을 너무나 좋아하기에 이렇게 주제 넘은 소리를 해 봤
읍니다.
-雪 莉(김혜린님의 캐릭터 중 가장 좋아하는 캐릭터라... 대화명 쯤으로
생각해 주세요) 올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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