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 게시판

게시일시: 1999/07/28 오전 9:37
게시자: 뭉실이
제목: [옮김] 북해의 별 vs 안젤리크

* 하이텔 순정만화사랑(SG49)에서 퍼온 글입니다.
사지마 아키코씨의 북해의 별 팬북 2권을 번역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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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은 (clamp )
북해의 별 VS 안젤리크 1999-07-27 22:28 307 line

안녕하세요...찌혀어니입니다.............
이글은 예전에 올린 적 있는 `북해의 별` 팬북, `悔谷君北海行錄`의 2
번째 책인 `悔谷君北海行錄 II`에 수록된 글입니다. 김혜린님의 `북해
의 별`과 키하라 토시에의 `안젤리크`에 대한 비교...라고 해야할까요?
사실, 이 두작품 다 본지가 너무 오래되서(둘 다 본지 10년이 더 됐군
요...벌써 세월이...^^;) 등장인물 이름 같은건 대충 발음 비슷한대로
써버렸습니다 ^^; 그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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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하라, 프레시의 필립!
키하라 토시에(木原敏江)
`안젤리크(アンジェリク)`와의 관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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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작, 그대는 운이 좋아,
저런 미인을 부인으로 삼고...

라는 노래를 흥얼거리며, 아군의 포격을 맞기 위해 마차를 달리던 후
작이 있었습니다.
A&S 고롱 원작의 프랑스 시대소설을 키하라 토시에가 70년대에 만화화
한 것이 `안젤리크`(문고판 아키다서점. 게임 `안젤리크(アンジェリ－
ク)`와는 히로인이 쓸데없이 인기가 좋다는 공통점을 제외하면 아무런
관계가 없습니다)
서두에 나오는 후작의 이름은 프레시의 필립. 안젤리크를 연적(戀敵)
에게 양보하고, 두사람을 미국으로 도망시켜준다는 `카사블랑카`의 보
가드와 같은 멋진 역이다.
`안젤리크`를 읽고 있노라면, 히로인은 연인과 도망쳐 해피 엔드, 필
립도 조역으로서는 멋들어지게 `폼잡고` 사라졌기 때문에 불평의 여지
는 없는데도....뭔가 개운치가 않다.
이 이야기는 왜 이렇게 뒷맛이 나쁜, 이라고 한다면 지나친 말이겠지
만, 여하튼 애처로운지 모르겠다.
`안젤리크`의 무대는 17세기 후반의 프랑스. 남프랑스의 백작 죠프레
와 약혼자 안젤리크는 왕제파(王弟派)의 음모를 알게되어 도리어 그들
일당에 의해 함정에 빠지게 된다. 백작은 반역자가 되어 화형에 처해
지고, 안젤리크는 파리의 뒷골목으로 도망친다. 그후, 백작의 무죄가
증명되어, 국왕 루이 14세는 그녀에게 백작가 재흥을 허락한다.
하지만, 안젤리크에게 마음이 끌린 국왕은 충신 필립을 그녀와 결혼시
킨다. 후에 필립쪽에서 자기 부인을 국왕의 애첩으로 헌상시키기 위해
서였다.
이때, 실은 처형직전에 구출되어 해적이 되어 있던 백작이 되돌아온
다. 왕권에 굴복하지 않는 백작과 국왕의 총애보다도 해적과의 도피행
을 선택하는 안젤리크에게 분노한 왕은 필립에게 두사람의 처리를 명
령한다. 왕에 대한 충성과 안젤리크에 대한 사랑의 갈림길에 선 필립
은 백작을 대신하여 죽음을 맞이하고, 두사람을 놓아준 것이다.

그런 이야기입니다(1000항이 넘는 장편의 설명으로는 약간 괴로운...)
`북해의 별`은 캐릭터적으로는 이 `안젤리크`의 환생같은 것이기도 하
다.

〓〓〓〓〓〓〓〓〓〓〓〓 ※ 참조 도표 ※ 〓〓〓〓〓〓〓〓〓〓〓〓

전세의 사람들 『안젤리크』 17세기
VS
후세의 사람들 『북해의 별』 18세기

◆ 필립(모토 :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고)
- 사촌을 사랑하는 후작 → 유리핀

◆ 안젤리크(모토 : 이것인가, 저것인가?)
- 금발에 녹색 눈동자의 히로인 → 아델
반역죄로 죽었다고 생각하던 연인은 살아서 해적이 되어 있었다.
하지만, 자기는 왕명으로 이미 다른 사람의 부인...
- `이것인가, 저것인가`라는 선택을 강요당한다. 양쪽 모두 손에
넣을 수 없다 → 비요른

◆ 죠플레(모토 : 이것도, 저것도)
- 뺨의 상처, 백작 → 비요른
- 검은 스트레이트 헤어, 검은 눈동자, 장신 → 하리
- 활력이 넘치는 매력, 장신, 왕에게 미움받아 반역죄를 뒤집어쓰
고 고문당하고...탈출후 해적이 된다 → 유리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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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안젤리크

우선 히로인 안젤리크는 금발에 녹색 눈동자로, 연인을 억울한 죄명으
로 잃어버리고, 왕명에 의해 다른 남자와 결혼하게 된다. 이건 `북해
의 별`에서는 아델.
하지만, 아델은 연인의 유지를 이어 홀로 조용히 살아가고자 하는 정
숙한 숙녀 타입. 안젤리크는 복수, 정의의 회복, 집안의 재흥을 위해
동분서주하는 열렬 타입...이라기보다 트러블 메이커.
백작 죠플레가 처형되고 자신도 왕제파(王弟派)에게 쫓기게되자, 그녀
는 파리의 뒷골목으로 도망친다. 그리고 의적 `어둠의 천사`가 되어,
귀족들에게 분배된 백작가의 재보를 되찾는다(남편이 해적이라면 부인
은 도적. 그야말로 천생연분 ^^;)
빈민가의 비참한 삶을 몸소 경험한 안젤리크는 `밑바닥에서 짓밟히는
것은 더이상 사양하겠어, 권력이 필요해`라고 필립의 반대를 물리치고
베르사이유에 들어간다. 거기서 왕의 눈에 들게 된거니까, 뭐 자업자
득이라고밖에 할말이 없다.
필립이나 국왕, 그외에도 수많은 남자들의 사랑을 한몸에 받고, 그들
에게 일순(?) 마음이 기울기도 하지만, 백작이 돌아오자마자 잔혹할
정도로 냉정하게 그들을 내버린채 떠난다.
정말이지 `자기 하고싶은대로 사는 여자`(하기노 안나(萩野アンナ).
문고판 제 1권 해설)인 것이다.
하지만, 안젤리크에게는 스토리 진행상, 하나를 손에 넣으면, 그때까
지 손에 넣었던 것을 버려야만 한다는 철칙이 있다. 고향을 버리고,
양친을 버리고, 도적 동료들이 살해당하고...최종적으로 가장 사랑하
는 백작을 손에 넣기 위해, 소중히 여겨오던 첫사랑인 사촌 필립의 목
숨이라는 커다란 대가를 치러야만 했던 것이다.
그녀의 수지결산은, 그야말로 본전치기.
`북해의 별`에서, 그런 안젤리크를 이어받고 있는 것은 아델보다도 오
히려 비요른쪽이다. 복수를 위해 살아오고, 최하층의 비참함을 겪고선
권력을 지향해 조금씩 기어올라간다. `어머니`라는 대의(大義)를 위해
서라면 감정을 억누르고, 죽이고싶지 않은 인물에게도 자객을 보낸다.
권력의 계단을 한걸음 올라갈때마다 소중한 것을 하나씩 버려야 했기
때문에 괴로움에 몸부림쳐야만 했다.
어쩌면 `북해의 별`의 진정한 히로인은 비요른일지도 모른다!? 아델이
너무나도 움직이지 않는 점을 봐도, 이러한 추측은 웃음으로 넘겨버릴
수만은 없는 사실인지도 모르겠다...(^^;)

2. 백작 죠플레

하지만, 백작 죠플레의 경우. 그는 대폭적인 흑자(黑子)다.
난천적이고 적극적. 왕의 앞에서도 자기 할말은 다하는데다, 처형직
전, 광장의 처형대에서 안젤리크를 위한 연가(戀歌)를 큰소리로 외치
기도 한다. 고문을 당해도 얼굴색 하나 바뀌지 않는데다, 쳐형직전에
는 `피곤하다, 빨리 끝내주게`라고 말할 정도로 솔직한 성격. 스트레
스가 쌓이기 힘든 성격이다.
확실히 멋진 남자다. 함께 살아도 피곤하지 않을테고...(나 정도 나이
가 되면, 이상형의 기준이 이렇게 변한다 ^^;). 하지만, 무언가 납득
가지 않는 점이 있다.
반역의 오명을 뒤집어썼다고 해도, 원래 `우리 집안이 부르봉 왕가보
다도 오래되었다`고 남프랑스의 프라이드를 마구 드러낸채, 국왕의 권
위를 인정하지 않는 잠재적 반역자인지라 전혀 아무런 감흥이 없다.
국왕의 경제력에 의존해서 살아가는 궁정귀족과 달리, 해외무역에 의
해 경제적인 자립도 이루고 있기 때문에 영지가 몰수되도 별로 곤란할
게 없다.
그리고, 방해가 되는 연적(필립)도 때맞쳐 사라져줬기 때문에, 안젤리
크만을 데리고 건강하게 프랑스를 떠나는 것이다.
그는 아무것도 잃은게 없다...
`안젤리크` 후반의 클라이막스는 국왕 루이 14세와 그 권위를 혐오하
는 백작의 대결이었다.
동화속의 이미지로밖에 서양을 알지못하는 우리들에게 있어 왕과 귀족
은 동류로 보일지 모르겠지만, 사실 이들 둘 사이의 균열은 깊고도 어
둡다.
중세란 즉, 왕이 귀족들에게 만만하게 보이던 시대를 의미한다. 그렇
기 때문에 예전 국어 교과서에 나오던 `리어왕`의 한 장면에서 버간디
공(블루고뉴공을 말하는 거겠죠, 이건)이 거절한 공주를 프랑스왕이
데려가는 이야기가 나온다. 공작보다도 왕쪽이 더 훌륭해보였기 때문
에 잘됐네라고 당시 국민학생이었던 우리들은 속편하게 말했지만, 사
실 코델리아 공주는 쓰레기를 뽑았다는 이야기다. 돈도 없는데다, 힘
도 없는 허우대만 멀쩡한 남자가 중세의 국왕이다.
이런 상황을 간신히 넘어서서, 시끄러운 귀족들로부터 영지와 돈과 군
사력을 빼앗아, `프랑스에 있는 물건이나 사람, 모든 것은 신이 인정
한 국왕인 나의 것`이라고 외친 루이 14세들의 `왕의 시대`를 절대왕
정이라고 부르는 듯 하다. 왕은 돈이 필요할 때에는 평민상인들에게서
돈을 걷었기 때문에 더 이상 귀족들의 안색을 살필 필요가 없어진 것
이다. 그대신, 돈많은 상인들에게는 큰소리를 칠 수 없게 되었고, 이
윽고 국왕의 시대는 끝을 보이게 된다...
하지만, 부르조아지가 원하던 자유와 평등은 `신분이 낮은 탓으로 빌
려준 돈을 떼먹히는 것은 참을 수 없다`라는 `돈을 버는 자유`가 그
근본에 있었고, 여기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는 것은 상당히 어려웠다.
`레미제라블`에 나오는 청년 마리유스군이 그 대표적 존재가 아닐까?
파리시민과 함께 정부군과 싸웠지만, 부상을 입고 목숨만 건진채 집으
로 돌아온 순간, 바리케이트 안에서 일어났던 일은 깨끗하게 잊어버린
다. 그후, 쟝 발쟝을 괴롭히기만 했으니...코제트도 정말이지 한심한
남자를 선택한게 아닐까...
그건 그렇고, 개인의 자유를 주장하는 무역가 죠플레는 전시대의 유물
인 귀족이라기보다 다음 세대를 짊어지게 될 부르조아지를 상징한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들의 행복밖에 생각하지 못하는 것이다. 자신들은
프랑스를 떠나버리면 루이 14세와 손을 끊을 수 있는지라, 남아있는
사람들의 일은 전혀 안중에도 없다.
`안젤리크`는 국왕과 귀족에 대한 경멸은 현저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평민-시골에서 그에 어울리는 삶을 살고있는 농민들은 별도로 치더라
도, 도시에 흘러들어온 토지도 재산도 가지지못한 주민들-에 대한 시
선이 따뜻한가 하면, 의외로 차갑기 그지없다. `파리의 마음씨좋은 동
료들`조차도 실제 스토리에 어떻게 공헌하느냐 하면, 안젤리크의 방해
만 하고 있을뿐이다. 그런 가운데, 죠플레의 이복동생 니콜라의 귀종
유리담(貴種流離譚:귀인의 자식이 그 혈통을 모른채 떠돌며 고생하는
이야기)이 펼져진다. `훌륭한 인간`이란 일정 이상의 신분이나 자산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부르조아지의 등장을 암시하는
시대성을 가지는 것이다.
따라서 죠플레는 그가 화형대에 올라섰을 때, 기뻐하며 구경하러 모여
들었던 우민(愚民)들 따위는 전혀 고려해줄 마음이 없는 것이다. 그리
고 `왕이 없는` 미국에서 `지배자`가 되는 올바른(?) 17세기인이었다.

3. 필립

그 백작의 연적(戀敵), 필립은 적자(赤子) 결산!
군략에 뛰어나고, 부상을 입거나 몸이 아파도 참을 줄 알고, `전장에
서는 이(이빨이 아니라 벌레 ^^;)랑도 동거동락할 수 있는` 육군원수
(이 시대에는 전쟁터가 아니더라도 `이`는 친구같은 존재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도 들지만?)
사촌인 안젤리크를 어린시절부터, 백작보다 훨씬 전부터 사랑하고 있
었는데...궁정귀족으로 키워져왔기 때문에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 엉망
인 `유리 세공의 인형`.
태도로는 그녀를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을 내보이지만, 막상 그녀와 마
주대하게 되면 본심을 `그녀에게 통하도록` 말할 수가 없다(`독자와
필립의 후견인 보포르공에게는 알 수 있게` 말하는데 말이지...)
안젤리크가 `백작 사후`에 울면서 필사적으로 살아가던 수년간, 감정
표현이 서툰 필립이 힘껏 돌봐주고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백작이 돌아
오자 그대로 버림받은 것이다.
게다가, 국왕의 명령에 따라 물한방울 흘러나오지 않을 완벽한 토벌계
획을 세운다. 그 한편으로 안젤리크를 도망시키기 위해 자기가 직접
그 덫에 걸린다. 왕에 대한 충성과 안젤리크에 대한 사랑의 갈림길에
서서 어느 한쪽을 선택하지 못하고, 양쪽을 그대로 가진채, 모든 것을
잃어버린다는 최악의 결과를 맞이한 것이다.
거기다, 설령 어느 한쪽을 선택했다고 해도 안젤리크는 역시 백작을
선택할테고, 루이 14세는 필립이 자기자신의 의지를 가지는 것을 허락
하지 않은채 사용하고 내다버릴뿐...어느쪽이라고 해도 보답받지 못하
는 것이 현실이다.
너무하다고 한다면, 사실 너무한 이야기다.
죠플레에 비해 너무나도 불공평한 이 계산이 `안젤리크`를 읽은 후에
느끼는 개운하지 못한 감정의 정체가 아닐까? 필립이 행복해지는 방
법, 적어도 수지타산이 맞게 되는 방법은 없는 것일까?
이런 생각은 작자인 키하라 토시에도 안고 있었던 모양으로, 필립은
그후, 20세기의 타카토 마리(鷹塔魔利)로 부활하지만(`마리와 신고(魔
利と信吾)`), 보포르공 자손의 응원도 허무하게 결과는 역시 `좋은 친
구로 지내요`였다. 마리는 죽지는 않았지만, 모래를 씹는듯한 수십년
의 여생을 보내게 되는 것이다.

4. 이것이 필립이 살아갈 길?

그렇다면, 만약 백작과 필립의 입장이 반대였다면, 필립에게 승산이
있었을까? 필립이 반역죄로 몰리고, 해적이 되어 있었다면?
`북해의 별`은 의외로 그런 점에서 캐릭터들을 만들기 시작했는지도
모른다. 필립의 패자부활전으로서의 `북해의 별`!
유리핀은 필립보다 긴장감이 없는 편이고, 언변도 뛰어나다. 하지만,
`우아한 외모를 가진 군인`이고 `금발에 녹색 눈동자의 사촌을 사랑하
는 후작`이라는 설정은 필립과 똑같다. 게다가 `음모를 알게되어 함정
에 빠지게 되고, 죽었는데도 불구하고 해적이 되어 되돌아온` 백작의
스토리를 덮어쓴 것이 `북해의 별`이 아닐까?
이름을 봐도 유리핀의 `유리`에 琉璃, 有理, 流離 등의 글자가 맞아떨
어진다는 것은 역시 `유리세공의 인형` 필립의 환생이라는 느낌이 드
는 것이다.
유리핀이 아프거나 춥더라도 참아내는 것은, 그가 필립이라고 한다면
당연한 이야기다.
집안을 자랑하지도 않고, 군무에만 열심이었던 필립이 어느날 갑자기
반역죄에 몰리게되면 그 정신적인 쇼크는 당연히 클 것이다. 과연, 그
대로 도망가서 해적이 되어 국가를 향해 활을 겨눌 수 있을 것인가?
유리핀은 탈옥할 때까지, 나프링가 해군기지를 빼앗기까지, 본격적인
전투개시까지, 도합 4년이라는 세월을 소비한다. 진정한 반역자가 된
다는 결심을 하지 못한채, `조국을 버리지 못하고` 우물쭈물 마음아파
하는 가운데, 오브난이 그런 틈을 파고들기도 한다.
왜 그렇게까지 망설이는 것일까 하고 생각해 봤지만, 유리핀이 필립이
었다고 한다면 수긍이 간다. `왕과 조국을 배반하는 것은 신에게 등을
돌리는 행위다`라고 교육받아온 필립형의 군인이 토벌하러 간 국가의
적인 해적측에 몸을 맡긴다는 것은 참을 수 없는 행위. 백작 죠플레는
해적이 된다는 사실에 조금도 망설이지 않았겠지만...
필립의 패인은 왕에 대한 종속을 존재기반으로 하는 군인이었기 때문
에 자유로운 의지를 가진 일개의 인간으로 왕과 대등하게 서지 못했다
는 점에 있었다. 필립은 그 절대왕정에서 빠져나오지 못한채, 여기서
도망치려면 세상 자체로부터 사라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유리핀은 국왕에 대한 끝없는 충성을 원하는 절대왕정에서 간신히 빠
져나오고 있다. 그것을 도운 것은 그의 `경험`이었다.
시종과 의사가 딸린 독방이었던 죠플레와 달리, 유리핀은 유형지에서
베른이나 인슈들과 함께 지내고, 그들의 체험을 자신의 경험으로 느끼
게 된다. 그것은 `베르사이유의 장미`의 오스칼이 로잘리와 베르나르
로부터 민중의 생활을 가르침받게 된 것과도 흡사하다.
단, 오스칼은 당초, 베르나르의 귀족에 대한 공격의 정당성을 인정하
면서도 `썩은 귀족사회라고 해도 그곳에 증오와 사랑이 뒤섞여있고,
역시 인간이 살아있다` `자식을 생각하는 부모의 마음에는 귀족도 평
민도 없다`고 귀족으로 태어난 인간의 변호를 하고 있다. 일종의 역전
의 발상이다. 문제는 그 속에 있는 인간의 선악이 아니라, 그 시스템
을 지속할 것인지, 아닌지 하는 것일텐데...
베른의 `귀족따위는 모두 죽어버려`라는 외침에 유리핀은 자기변호를
하지 않는다. 자기자신, 그리고 그에게 있어서 소중한 사람들-아델도,
죠나산도, 슈그-도, 왕족, 귀족이지만, `귀족 중에도 좋은 사람은 있
다`고는 입이 찢어져도 말하지 않는다.
유리핀은 `어린 너까지 이렇게 상처를 입었단 말인가`라고 베른이 처
한 입장에서 사회를 보고자 한다. 베른뿐만 아니라, 그가 만나고, 이
야기한 사람들이 가진 체험은 유리핀의 내면에 영향을 끼쳐나간다. 그
것에 의해 유리핀의 `세계를 보는 법`이 바뀌어가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탈옥하여 해적이 되어도, 친한 동료들과 아델만을 데
리고 신대륙을 향해 떠나버리면 그만이라는 결론을 내릴 수는 없는 것
이다.
밑바닥으로 떨어져버린 안젤리크나 비요른은 더러운 세상은 내버려두
고, 자신만 기어올라가고자 했다. 그리고 도적에서 후작부인까지 기어
올라간 안젤리크는 그것이 결국 국왕의 권력에 빌붙는 것밖에 되지 않
는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세상의 구조를 의심하지 않고, 그속에서 출
세한다는 것은 그 비뚤어진 구조를 강화시켜주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
는 사실을.
안젤리크는 그런 구조를 버리고 프랑스를 떠나게 된다. 하지만, 그런
그녀가 선택한 죠플레의 행동은 자신이 행사할 수 있는 권력을 원한
미국행이었다. 그것이 바다 저편에도 또 다른 권력 피라미드를 늘리는
것에 불과한 게 아닐까 하는 의문이 `안젤리크`의 결말에 뒤따르게 된
다.
그에 비해 어디까지나 왕과 귀족과 민중, 이라는 모순투성이의 세상의
구조 자체가 문제라고 느끼게 되는 유리핀은...그가 그 해결을 향해
나아간다고 한다면....
절대왕정도 부르조아 민주주의도 부정하는 `북해의 별` 유리핀이 선택
해야 할 길은?
`만국의 노동자들이여, 단결하라`일까? ^^; 하지만 100년은 빠른 이야
기다, `일어서라, 굶주린 자들아`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