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 게시판

끝이 보이지 않는 모래의 바다.
부우연 먼지 속에 지프 한 대가 달리고 있다.
나 홀로 타고가는 지프. 지프는 사막을 지르고 시간을 건넌다. 명과 청을 지나 원도 지나고 송도 지나간다. 목적지는 6C 경 사라진 대 제국 누란.

멀리 모래바람 속에 두 사람이 있다. 얼굴이 보이지는 않지만 행복해 보이는 모습.
다리가 없는 한 남자와 그 곁에 작은 여자. 아무도 없는 사막위에 오직 그 두사람만이 있었다.
잠시 후, 두 사람의 모습이 아득히 지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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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뜬다.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실크로드.

실크로드라는 이름을 처음 들었던 어릴 적 어느 날, 난 그 길이 비단처럼 아름다워 실크로드라 불린다고 생각했었다. 실크로드가 끝도 없는 사막길 이라는 것을 알게된 것은 꽤 머리가 자라 역사를 배우기 시작한 무렵이었다.
수많은 나라의 상인들이 진귀한 물건들을 싣고 오갔을 그 길. "실크로드" 라는 이름이 정말 제격이다..라고 느끼기 까지는 더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시간이 더 지나 난 "로프누르-잃어버린 호수" 라는 만화를 통해 실크로드에 대한 몰랐던 역사를 배웠다. 동서 무역의 중심이기도 했지만 이민족 침략읜 훌륭한 통로이기도 했던 실크로드. 그 길엔 상인들의 보물 행렬만이 이어졌던것은 아니었다. 누군가는 울며갔을 길, 누군가는 사랑하는 이와 헤어졌을 길. 웨이와 리타라 처럼 찢기고 아픈 가슴들이 걸었을 길을 떠올렸다. 내게 더 이상 그 길은 '실크로드' 가 아니었다.

다시 눈을 감아본다. 또 다시 펼쳐지는 모래의 바다.
눈 앞에 울며 가는 리타라가 있다.
대 제국에 짓밟힌 마른 풀 한 포기. 아무도 그 마른 풀을 위해 울어주진 않았다. 그 곁에 잘려나간 돌멩이 하나. 실크로드를 지나는 그 어떤 이도 마른풀과 깨진 돌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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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년 여름. 네덜란드로 향하던 비행기 안에서 난 처음으로 실제 사막을 보았다.
그 사막엔 내가 책과 TV에서 보아왔던 모래 언덕도, 작은 오아시스도 하나 없었다. 그저 바다처럼 끝없이 펼쳐진 모래평지. 아득한 고비사막..아무리 멀리 내다보아도 그저 모래 뿐. 그곳은 정말 "모래바다" 였다.

진귀한 물건들을 셀 수도 없이 가득 싣고 오가던 실크로드의 옛 상인들은 보물처럼 화려하지많은 않았을 것이다. 그 아득한 사막을 건너는 외로움. 먼지만이 뒹구는 끝없는 길에서 고향으로 돌아가리란 희망이 과연 있었을까?
모래태풍이라도 덮치는 날엔 얼마나 무섭고 두려웠을까?
"실크로드" 를 이루기 위해 얼마나 많은 고단한 인생들이 그 길을 밟았을까?

서글퍼 진다. 웨이와 리타라의 "둔황"은 정말 없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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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한 마음을 안고 다시 눈을 감는다.

다시 도착한 실크로드. 이 곳은 둔황.
그 곳엔 건강하게 두 다리로 서 있는 웨이가 있다. 그 옆에 리타라. 분 바르지 않은 해사한 얼굴로 웨이를 바라본다. 더 없이 행복해 보이는 두 사람.

멀리서 아득히 들려오는 라자즈.
달각달각 낙타의 발굽 소리가 가까워진다. 돌아보니 장터가 열렸다.
고향으로 떠날 채비를 하는 어느 상인이 방물점 앞에 섰다. 얼굴 가득 웃음을 담아 가족의 선물을 고르는 손길. 손 끝에서 행복이 떨어진다.
상상속 실크로드 마지막 방문.

그곳엔 눈물도 행복도 그리움도 기대감도 모두 있었다.
장터를 돌아나오는 내 발끝에 돌메잉 하나가 차인다. 마른 풀 곁으로 굴러간 돌.
밟혔던 그 마른풀이 다시 살아나고 있었다.

*라자즈 : 옛 아라비아 상인들이 사막을 건널 때 낙타 발자국에 맞춰 시를 읊었던 리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