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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켜 보건대, 수하이는 내 스타일이 아니었다.
직모를 선호하는 내게 있어,
단발 스타일의 반곱슬, 수하이는 좀 버거웠고, ㅡ.ㅡ;;;;
약간은 유식한 사람을 이뻐하는 내게 있어,
자기 이름 석자 제대로 못쓸 것처럼 생긴 수하이는 좀 답답해 보였으며, ㅡ.ㅡ;;;
성폭행범은 인간 말종이라고 확신하는 내게 있어,
남의 여편네를 훔쳐 애까지 배게 한 수하이는 천하의 몹쓸 넘, 그 자체였다.
그래.
원래대로의 내 남자 버닝 기준에 따르자면,
나는 잘 생기고, 유식해 보이고, 직모의 장발을 휘날리는...
그러면서도 귀티가 나고, 성격이 유순한... ㅡ.ㅡ;;;
남궁 준광 같은 스타일의 인물 됨됨이를 최고로 쳤기에,
'불의 검'에서도 수하이가 아닌, 가라한을 사랑했어야 옳았다.
왜냐하면...
가라한은... 직모에, 허우대도 좋고, 뻐대 있는 가문에,
남의 씨를 밴 여자까지도 지고지순하게 사랑하는...
정말 보기 드문 로맨티스트이자, 싸나이 중의 싸나이였으니까..
그래서 처음에 수하이가 아라를 납치했을 때,
나는 대부분의 정상적인 인간들(?)과 마찬가지로 수하이를 저주했다.
"천하의 죽일 넘... ㅡ.ㅡ;;
느그 애미를 옆에서 보면서도, 그딴 짓 하구 싶드나? ㅡ.ㅡ**"
하지만...
산마로의 기억을 안고, 그에게로 돌아갈 날만을 기다리는 아라,
그녀가 산마로만을 위한 칼을 만들어 주기 위해 야장소로 들어갔을 때,
그런 그녀를 내치지 못하고 궁시렁대면서도 그녀를 지켜 주었던
수하이를 보았을 때,
난... 나도 모르게 이 인간 말종(?)에게 전염되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내 눈에 보인 수하이는... 가라한보다 더 여린 소년같았더랬다.
아라를 통해 어미를 돌아보았다 할지라도,
사랑하는 법이나 사랑받는 법에도 너무나 서툴렀다 할지라도,
무식하게 쥐고 패는 전근대적인 남편상의 한 모습을 그대로 보여줬다 할지라도,
나는 그가 불쌍했다.
왜냐하면... 적어도 내게 있어 그는...
어린 시절, 어이없이 가족을 박탈당해야 했으며,
그로 인해 제대로 사랑받는 법도, 사랑하는 법도 익히지 못한 채,
세상에 내동댕이쳐져서 어른의 탈을 쓰고 살아남아야 하는 흉내를 내야 했던,
'아이'였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나는 그가 아라를 통해 그의 모든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까지도
구원받기를 갈망했을 때,
한번쯤은 아라가 그를 돌아봐주길 바랬다.
그래. 나도 안다.
가라한이 얼마나 멋진 사람이고, 가라한과 아라의 사랑이 얼마나 애닯은지..
아라에게 있어 산마로는 사랑인 동시에 삶의 이유라는 것을...
그렇기 때문에 그를 사랑할 수밖에 없는 건,
어쩌면 그녀로서는 당연한 본능일 수밖에 없었다는 것을 나도 안다.
하지만 난 그래도 아라가 한번쯤은 수하이를 품어 주고,
조금이라도 그를 감싸안아주는... 그런 노력이라도 해 주었으면.. 하고 바랬다.
ㅠ.ㅠ
그렇기 때문에, 결국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아라와 산마로의 사랑을 응원하면서도,
그 뒤에서 필연적으로 버려질 수밖에 없었던 수하이를
더 가슴 아프게 쳐다보는 것이었더랬다.
버려졌던 아이...
사랑받지 못했던 아이...
철저하게 혼자였던 아이...
그 불쌍한 까만 눈의 아이, 수하이를 말이다.
그래서일까.
사랑을 통해 삶의 구원을 얻고자 했으나, 결국 그로부터 외면당한 그가,
서서히 자멸해 가는 것을 보는 것은 정말 마음이 좋지 않았더랬다.
적어도 콩알만큼이라도 행복해 하기를 바랬건만,
그에게 있어 세상은 마지막까지도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하지만 버겁기 짝이 없는 그 세상의 끝에서, 그가 보여준 마지막 모습 때문에
나는 수하이라는 이름을 평생 잊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다.
사랑받고 싶어했던,
그 사랑으로부터 삶의 구원을 기대했던,
그로부터 유년의 굴레에서 벗어나 한 '인간'으로서 서기를 갈망했던 존재가,
결국 자신의 의지와 바램에 따라 스스로의 삶과 죽음을,
그리고 그 이유와 변명을 결정하는 모습은
정말이지 작품 전체를 통틀어서 엄청난 감동을 주었으니 말이다.
어미에 대한 연민과 용서,
불운했던 유년에 대한 포용과 해방,
사랑이라는 감정을, 구원이라는 희망을 꿈꾸게 해준 여인에 대한 감사와 사랑,
이 모든 것을...
보답받지 못한 사랑을 위한, 혹은 그녀의 삶을 위한 자기 희생으로
그렇게 매듭지어 버린 그를...
어떻게 쉽게 잊을 수 있을까... ㅠ.ㅠ
그후 나는...
지독한 조연삘에 빠져서 그 그림자에 얽매인 채,
작품을 보는 것은 하고 싶지 않았기에
가급적이면 수하이를 돌이키지 않으려고 했다.
(보면 마음이 아프다 못해, 잘 먹고 잘 살고 있는 산마로-아라 커플에게
불이라도 지르고 싶은, 그런 욱!한 마음이 치밀어 올랐기 때문이었더랬다. ㅡ.ㅡ; )
그리고 이런 마인드 컨트롤(?) 덕분에..
난 무사히 작품을 끝까지 감상하고, 그로부터 감동을 받을 수 있었더랬다.
하지만... 가끔씩... 아주 가끔씩....
남겨진 사람들의 행복을 보면서 괜히 마음이 시큰해지는 나를 본다.
산마로와 아라는 그토록 사랑했던 서로의 님이 되어 해피 패밀리를 꾸렸고,
마리한은 나라를 되찾은 군주가 되었으며,
소서노는 백성들의 정신적 지주가 되었다.
비파녀는 마리한의 곁을 지키면서 그의 유일한 왕비로 남았고,
붉은 꽃 바리는 노래로서 모든 이들에게 자신을 기억시켰다.
하지만 수하이는.... 수하이는 누가 기억해 줄까....
아마 아라나 단목다루가 수하이를 애닲게 그리워할 것 같지는 않다.
산마로 또한 가끔씩은 수하이라는 인물을 떠올리긴 하겠지만,
그리워하지는 않을 것 같다.
그렇게 수하이라는 이름은 그네들의 기억 속에서 잊혀져갈 게 분명하다.
그렇지만.... 그렇기 때문에,
적어도 내게 있어 수하이는 절대 잊어버려서는 안되는,
꼭 기억해줘야 하는 사람으로 남아 버릴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해 보았다.
흠... 좀 이상한 의리 같기는 하지만,
적어도 나만큼은 그를 기억해 주고 싶었다고나 할까.
그러면서 이런 생각을 해 보았더랬다.
아마도 내가 수하이를 좋아하는 건...
살아가는 자들에게 있어,
결국 그는 잊혀질 수밖에 없는 존재이기 때문은 아닐런지...
그래, 잊혀질 수밖에 없기에 안타깝고, 그래서 그를 잊을 수 없다.
그리고 바로 이 점이야말로,
내가 한결같은 마음으로 그를 안타깝게 바라보고 사랑할 수밖에 없는
가장 큰 이유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수하이의 제사는 누가 지내주지?'
라는 말도 안되는 고민(?)에 괜히 우울해진 야훌라이... 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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