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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남자고, 할머니를 모시고 사는 집의 외아들이다. 남성-여성이라는 계급적 관계 속에서 상당히 큰 기득권을 가지고 사는 편에 속할것이다. 그런 내가 페미니즘에 대해 이야기하는것이 솔직히 어처구니 없는 일 일지도 모르지만 얼마전에 전혀 의외의 부분에서 카라에 대해 깊은 동감을 느끼는 계기가 있어 이런 감상도 아니고 논설도 아닌 괴이쩍은 글을 쓰게 되었다.
솔직히 말하면 카라는 굉장히 뒤틀린 페미니스트다. (분리주의에 비교해도 괜찮을까?) 성격적으로 뒤틀려있고 방법론적으로도 극단적이며 (요즈음의 일부 행동파 페미니스트들도 보여주는 아쉬움이지만) 마초적이기까지 하다. 그런 그녀에게 내가 큰 동감을 가지게 된 계기는 노동운동에 대한 한 우파논객의 논평과 그 아래 달린 리플들을 본 것이었다.
그럴싸한 단어와 끼워맞춘 논리로 발라붙인 그 논객씨가 떠들어대는 이야기는 결국 간단했다. 강성노조때문에 자본가들이 굶어죽는다. 이제는 노동자가 기득권이다. 그 아래 달린 덧글들은.. 그나마의 격식도 논리도 없이 마구잡이로 '빨갱이 노조새끼들' 을 씹어대고 있었다.(어느쪽이 더 볼꼴사나웠는지는 말 안할랜다.)
그 글을 읽고, 뭐 이런자식이 다 있나 하며 보고있던 불의 검 12권을 펼친 내 머리속에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아사군과 아라양의 그럭저럭 행복한 뒷이야기가 아니었다. 다름아닌 카라와, 우리 시대의 페미니스트들이었다. 대체 기득권을 빼앗길 위기에 처한 착취계급의 발악이란 얼마나 피해망상적인가? 그럭저럭 평등과 자유가 확산되어가는 이 시대에 그들 기득권계급의 목소리는 언제나 한결같다. 그들은 언제나 자신들이 오히려 더 많이 빼앗긴다고, 이제 기득권을 쥔 것은 자신들이 아니라 오히려 자신들에게 착취당하는 계급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자주 드나드는 토론 페이지가 하나 있다. 그곳에서 여성문제에 대한 토론이 나올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남녀간 차별문제, 특히 군대문제에 대해서 남자들이 보이는 반응은 꽤나 히스테릭하다. 그래.. 솔직히 나도 군대가야 하는 입장이고(공익이지만), 공무원임용 등에서 군 가산점 못받게 된 것, 진짜 억울하다. 하물며 출퇴근하는 공익이나 상근도 아닌 이년이상의 세월을 사회와 격리되어 보내야 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미칠듯이 억울할것이다.
다만 그렇다고 해서 이 시대에 남성이 여성보다 오히려 역차별받는다고 말하는건 좀 억지스럽지 않은가? 어떤 면에서 여성이 차별받느냐고? 상대를 모욕하기 위해 '너 여자지?' 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그놈들 자신이 더 잘아야 할 일 아닌가?
솔직히 말하면 이렇게 잘난 척 떠들고 있는 나 자신도 거의 집안일을 하지 않는다. 나이 드셔서 움직이기 불편한 할머니나 직장에 다니시는 어머니보다 내가 집안일을 하는쪽이 더 합리적이라는 것은 명백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집안일을 몽땅 떠넘겨 버리는 것, 그것이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여지는것이 사회적으로 만연한 성 차별때문이 아닌가?
불의 검 이라는 이야기속의 인물들을 보면 카라보다는 아라 쪽이 더 이상적이다. 물론, 남성 위주의 세계관 속에서 단지 남성의 충실한 조력자에 불과하지 않느냐, 기본적으로 남성이 유리하게 짜여진 세상을 개선하지는 못하고 그 속에서 좋은 자리를 차지한것에 불과하지 않으냐는 반론도 가능하겠지만, 카라처럼 테러리스트에 가까운 인물은 솔직히 말해 사회악이다. (테러리스트와 페미니스트라는 단어에서 특정 국회의원을 연상하시는 분이 많을텐데, 나 자신도 그 사람을 연상했지만 기본적으로 이 글은 그사람과 무관한 글이다.)
그러나, 카라같은 인물, 마초꼴통들의 표현을 빌려 '개패미' '패미꼴통'(내 입이 더러워지는건 같다. 젠장) 를 만드는것이 누구인가? 다름아닌 피해망상적인 마초수구들 자신이다. 요컨데 아라같은 인물이 등장하기 위해서는 아사라는 상대역이 필요했던 것이다. 조화와 화합이라는 것은 양쪽모두 준비되어 있어야 가능한 것인데, 기득권을 쥔 쪽이 오히려 자신들이 피해자라고 나자빠지면, 피착취당하는 비기득권 계급으로써는 강경해 질 수 밖에 없는것이 아닌가? 18세기 이래 자본가, 귀족, 남성들은 노동자, 평민, 여성들이 오히려 자신들을 수탈한다고, 이 시대의 진짜 기득권은 그들이라고 엄살을 부렸다. 아니, 그렇게 말하는 그들 자신은 정말 그렇다고 믿고 있었을 것이다. 그 근거랍시고 이것저것 주워섬기고들 있지만.. 사실 정말 착취당하는 계급이 '우리는 이런면에서 착취당한다' 라고 간단히 정리할 수 있다는 것도 어불성설이다. 얼마나 착취당하는 부분이 적으면 글 한편속에 몽땅 정리할 수 있을까?
사회적 부조리, 계급적 착취문제에 얽힌 갈등에 대해 생각할 때, 가끔 반쯤은 절망적으로 대체 폭력이외에 어떤 해결책이 있느냐고 자문하곤 한다.(구 동구권의 현실사회주의가 붕괴되었다는 것이 인간사회를 착취와 피착취의 계급갈등으로 보는 시각마저 무의미해졌음을 증명하는것은 아닐 것이다.) 나는 노동과 자본의 문제에서 그런 벽을 보았지만, 다른 많은 사람들은 남녀의 문제에서 그런 벽을 보는 모양이다. 대체 어째야 하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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