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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린닷컴의 영문 소개 글을 쓰며,
나는, 김혜린 선생님의 단편집 [샤만의 바위]의 부제를 '세상에서 가장 슬픈 연인들을 위한 사랑의 송가(Love hymn for the saddest lovers in the world)'라고 옮겼었다.
선생님께서 붙이신 부제인 '사랑을 위한 송가집'을 무시한 처사는 결.코. 아니다.
단지...
아직, 김혜린 선생님의 작품이 영어권쪽으로는 널리 알려진 것이 아니지 않은가 하는 노파심에,
영어권의 그 누군가가 이 작품집의 영문 제목만 보아도 이 내용이 대충 어떤 내용인지 뭔지 알아줬으면 하는 개인적인 얄팍한 바램과,
[샤만의 바위]에 나오는 한 쌍의 연인 - 라이와 산꽃 리리-을 위해 자그마한 축복의 인사말을 건네주고 싶은 욕심... 그 두가지 때문이었다.
(**저의 자의적인 해석에 의해 붙여진 영문판 제목을 너그러이 봐주신 김혜린 선생님께, 그리고 누란님께, 이 자리를 빌어 감사를 드립니다. m(__)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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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만의 바위]가 "마인"에 연재되던 당시, 나는 산꽃 리리가 그렇게 답답할 수가 없었다.
부처님 가운데 토막도 아닌데, 맞는 것을 즐기는 SM 성향의 매저키스트도 아닌 거 같은데, 어떻게 저렇게 살 수 있을까, 대체 뭘 먹고 자라면 저렇게 될 수 있을까, 진짜 이런 사람이 있을까... 하는 것이 내 답답함의 근원이었다.
대충 보아, 라이와 맺어질 거 같은데,
하루라도 빨리 사고(!)쳐서 둘이 빨리 도망가라, 기왕이면 그 집에다 불이라도 확 싸질러버리고... 당시 작품을 보며 내가 내내 했던 생각이었다.
다행히도, 김혜린 선생님께선 내 바램을 들으셨던지,
그네들이 그 집에다 불을 확 싸질러버리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산꽃 리리와 라이의 행복한 엔딩을 보여주셨고,
나는 그들에게 던져질 '불륜'의 멍에가 그들에게 구속으로 작용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에 조금은 기뻤던 거 같다.
그당시만 해도 나는,
산꽃 리리가, 그저, [샤만의 바위]속에 나오는 산꽃 리리일 뿐이라고, 그럴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것이 나의 순진함을 넘어선 무지임을 깨닫게 된 것은 A의 덕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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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는 꽤나 건실하고 건장한 친구였다.
직장에서도 인정받고 있었고, 친구관계와 선후배 관계도 돈독할 뿐더러, 모든 사람에게 깍듯하게 예의를 지킬 줄 아는 그런 애였다.
그런 A에게서 A의 아버지와 어머니에 관해 듣게 된 것은, 정말이지 충격이었다.
A는, 자신의 어머니가 가진 것 하나없이 시집왔다는 이유로 시어머니(A의 할머니)에게 지금까지도 수많은 구박을 당하고 있다,
아버지 역시도 어머니가 못배웠다는 이유로, 가진 것 하나 없이 시집왔다는 이유로 무시하고 수시로 바람을 피워댐은 물론 이미 밖에서 본 여동생까지 있다,
지금도 어머니는 돈을 벌기 위해 밖에서 일을 하고 있다,
또, 아버지로부터 수시로 별별 이유를 다 들어가며 구타를 당함은 물론, 어머니가 동네에 사는 남자와 이야기만 해도 의심을 받고 폭언과 폭력행사를 그대로 다 받는다...
그런 이야기를 했다.
충격을 넘어 경악스럽기 그지없는 얘기였다.
어이가 없어 벙 쪄 있다가, 나는 A에게 물었다.
왜 아버지를 말리지 않았느냐, 왜 말리지 않느냐, 왜 어머니를 감싸주지 못하느냐... 하도 버벅대면서 물었던 터라 잘 기억은 안나지만, 대충 그런 요지로 물었던 것 같다.
A의 대답은, 나의 경악에 또 다른 경악을 던져주었다.
A는, 자기는 지금도 아버지가 무섭다고 했다.
어렸을 적, 어머니를 때리는 아버지를 말리다 자신도 맞은 이후, 아버지에 대한 공포감의 트라우마가 그 원인이었다.
지금은, 자신이 아버지보다 덩치도 더 크고, 손도 더 크고, 키도 더 크지만...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은 아버지가 무섭다고 했다.
그런 이야기를 하며, A는 참 착잡한 표정을 지었고,
A 앞에서 그 이야기를 들으며 나 역시도 어찌 말하고 어찌 행동할 바를 몰라 계속해서 줄담배만 피워댔다.
그로부터 몇 개월 후,
나는 A에게서 A의 부모님이 이혼하기로 결정하셨다는 얘기를 전해들었다.
물론, 어머니께서 원하신 것이 아닌, A의 아버지가 일방적으로 어머니에게 통보한 것이라 했다.
차라리 속이 후련하다는 A 못지 않게 나 역시도 안심이 되었고,
A에게, 어머니께 힘내시라고 전해드리라 당부했었다.
그러나 1개월 후, 나는 A의 부모님이 이혼하지 않으시기로 최종 결정을 했다는 얘기를 전해들었다.
물론, 앞으로는 잘 살아보겠다는 두 분의 다짐과 약속도 있었다는 약속도 함께 전해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너무 어이가 없어 A에게 화를 냈다.
지금 장난치냐, 근 삼십년간 어머니를 때려온 아버지가 그 한달간 바뀔 리가 없다, 아버지 마음은 충분히 바뀔 수 있다, 그렇지만 어머닌 뭐냐, 왜 어머니의 생각을 좀 더 독려하지 못했느냐, 어머니 입장에서 조금이라도 생각해봤느냐...
그런 이야기를 하며 난, 내 스스로 생각해도 오버라고 할만큼 길길이 뛰었다.
내 반응에 대해 떨어진 A의 말은 황당 그자체였다.
'엄마가, 자기도 혼자 살아야 하는게 너무 막막하고 무섭웠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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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저녁, 푸념삼아 언니에게 A와 A의 어머니 이야기를 했을 때,
언니는 담담하게 이야기했다.
나 역시도, 몇 십년간 남편에게 그렇게 맞고 지낸다면,
인간도, 여자도, 아내도, 어미도, 며느리도 아닌 그런 존재로 그렇게 지낸다면,
나 역시도 혼자 살아나가기가 너무 무섭고 막막할 것이라고.
약먹고 자살이라도 기도하지 않으면 다행일 것이라고.
아마,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샤만의 바위]속에 나오는 산꽃 리리가,
고대의 샤머니즘을 배경으로 한 어떤 작품 속 여자 주인공이 아닌,
내 주위에 살아숨쉬는 또 다른 여자로 보이기 시작한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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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만의 바위] 속 산꽃 리리는, 그래도 행복한 결말을 맞이했다.
비록, 죽음으로 위장되어 다시는 고향으로 되돌아가지 못할 운명이라 할지라도,
곁에 라이라는, 세상에서 둘 도 없이 그녀를 사랑해줄 남자가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현실은 그리 녹녹치가 않다.
이 세상에 산꽃 리리는 많지만,
그 많은 산꽃 리리에게 모두 라이가 있으란 법은 없다.
그러니까...
산꽃 리리는, 산꽃 리리 나름대로 세상을 살아나가는 법을 터득하고 조금은 더 용감해져야 한다.
자신의 무식과 무지에 겁내지 않는 법,
자신의 머리와 몸 위로 쏟아져내리는 폭포수같은 폭력에 굴하지 않는 법,
그리고 자신의 삶에 대해 좀 더 진지하게 생각하고,
어쩌면 지금의 자신을 보며 트라우마에 젖어들고 있을 A같은 자식들, 그때문에 앞으로 살면서 많은 상처를 입게될지도 모를 그네의 아들과 딸을 위해 지금 자신이 해야할 일이 무엇인가를 생각하고,
또 행동하는 것을 조금씩 배워가면서 말이다.
페미니즘을 부르짖고 싶은 생각은 없다.
세상 산꽃 리리 모두, 우짜든둥 라이같은 남자를 찾아 헤메던지 그런 남자를 잡아 아름다운 불륜이라도 저지르고 도망치라고 권유하고 싶은 생각 역시 추호도 없다.
그저, 나는,
세상의 모든 산꽃 리리가, 굳이 라이라는 존재가 없어도,
자기 스스로의 힘으로 세상을 즐겁고 아름답게 살아가고,
또 그렇게 아름답게 삶의 끝을 맞이할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세상에 살고 있는 모든 산꽃 리리들 모두 용기를 갖기를...
더불어 그네들의 앞길에 축복이 함께 하길 빌고싶다.
아주 간절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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