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 게시판

김혜린 [북해의 별]

너무 많은 세월이 흘려서 그 여자의 이름은 잊어버렸지만, 요즘 문득문득 김혜린의 만화 <북해의 별>에 나오는 어떤 여자가 생각나곤 하였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동네 만화방에 들러 알아본 결과 옛날에 읽었던 만화책들이 재판되어서 나와 있다는 반가운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가끔씩 내 가슴 속에 떠오르곤 하던 여자는 가슴 사무치도록 너무나 착하고 착한 한나였다.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한다고 해서 반드시 행복해지는 것은 아닌가보다. 사랑하는 남자 비요른과 결혼한 한나는 결코 행복하지 않았다. 너무나 참혹하고 슬픈 한나의 인생이었다. 음지에서 살고 있는 비요른은 양지에서 살고 있는 한나를 결코 행복하게 해 줄 수 없었다. 비요른은 나의 연약한 버들가지 자신의 어머니 아그네사의 이미지를 그래로 빼어닮은 한나를 사랑하였지만, 비요른은 자신의 참혹한 과거에 대한 증오의 감정이 너무나 강하여 사람을 사랑할 수 있는 감정과 사물을 아름답게 바라볼 수 있는 능력을 제대로 표현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증오의 감정이 무성한 비요론의 마음 속에서는 사랑의 감정이 제대로 자랄 수 없었던 것이다. 자신의 끔찍한 과거사에 매여살고 있는 냉소적인 남자가 어떻게 코스모스처럼 여리고 아름다운 한 여자를 행복하게 해줄 수 있겠는가.

비요른에 대한 한나의 애정이 너무나 깊고 깊어서, 그녀는 비요른 아닌 다른 남자와 결혼 하였더라도 결코 행복하지 않았을 것이다. 아마도 한나는 남은 한평생을 오로지 비요른을 그리워 하면서 그렇게 살았을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살 수 없는 것도 정말 고통스러울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한테 수없이 절망하면서도 함께 살아가는 것이 다행스러울까. 아니면 사랑하는 사람을 애타게 그리워 하면서 다른 착한 남자와 살아가는 것이 오히려 다행스러울까. 한나처럼 내성적인 여자는 아버지한테 사랑 받으면서 남편한테 사랑 받으면서 살아갈 수 있는 것이 가장 행복할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하였지만 서로의 사랑을 아기자기하게 정성껏 가꾸는 방법을 몰라서 사랑하는 사람으로 인하여 격렬한 마음의 상처를 입으면서 살아가는 한나의 인생의 너무나 슬프고 안타깝다. 자신의 가슴 속의 증오의 감정이 너무나 강렬하여 사랑하는 여인의 품 속에서 위로 받지 못하는 비요른의 인생 또한 너무나 슬프고 안타깝다. 비요른과 한나 이들은 사랑의 씨앗을 품고 있지만 사랑의 꽃을 활짝 피울 수 없는 너무나 슬픈 연인들이고, 정말 구제불능의 연인들이다. 비요른과 한나 이들은 서로 사랑하지만 사랑하는 님을 위하여 행복하게 해 줄 수 있는 사랑의 표현을 제대로 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서로 사랑하지만 항상 어긋나고 상대방의 마음을 다치게 하는 것이다. 비요른은 매력있고 멋진 남자이지만 성격적으로 문제가 좀 있다.

사랑의 완성은 결혼이라고 하였던가? 서로 사랑하는 한나와 비요론은 아주 순조롭게 결혼을 한다. 한나는 비요른을 사랑하였지만 그를 이해할 수 없었고, 비요른은 한나를 사랑하였지만 자기 자신에 대한 증오에 눈이 멀어 있었다. 그래서 서로 사랑하는 그들은 함께 살아가면서도 행복한 사랑의 꽃을 활짝 피울 수 없었던 것이다. 한나와 비요른은 그들의 사랑을 제대로 누릴 수 없었던 지난 시절들을 되돌아보면서 서글픈 회한의 감정으로 서럽고 안타까운 동반자살을 한다. 비요른에 대한 한나의 사랑은 정말 지극정성이다. 한나는 비요론의 불륜 현장을 목격하고 정신적인 쇼크를 받아서 정신이상자가 된다. 그런 와중에서도 사랑하는 비요론을 잊지못하여 비요론의 검은 머리카락을 찾아서 헤맨다. 제 3자의 눈으로 바라보기에는 한나의 사랑이 너무나 서글퍼 보이겠지만, 그녀는 비요론한테 사랑을 받아서 행복하였던 것이 아니라, 그녀는 비요론을 한없이 사랑하여서 한없이 행복하였던 것이리라. 비요론 곁에서 비요론을 바라보는 것 그것이 바로 한나의 최대 행복이었던 것이리라. 한나는 심성이 너무 착해서 그녀의 인생이 한없이 불행하였고, 한나는 사랑이 너무나 지극하여서 그녀의 인생은 한없이 불행하였던 것이리라.

멤피스와 에델처럼 너무나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을 하지 못하는 그런 가슴 아픈 연인들도 있다. 에델의 남편 브리가는 인격이 바른 사람이고 아내 에델을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이다. 에델은 정말 평범한 한 남자와 결혼을 하였지만 결코 행복하지 않았다. 에델의 연인 멤피스는 정말 너무나 파란만장한 인생을 살아가는 남자이다. 자신이 가슴 속에 다른 남자의 존재가 있다는 것에 대하여 에델도 너무 힘들고 브리가도 너무 힘들었으리라.  가슴 속에 사랑하는 사람을 묻어두고서, 사랑하는 사람을 너무나 그리워 하면서 다른 남자와 살아가는 일은 정말 너무 힘들고 고통스러울 것이리라.

옛날 독자들한테 그리고 요즘 독자들한테 한결같은 사랑을 받고 있는 김혜린의 <북해의 별>을 빌려오면서 끈질긴 생명성과 변치않은 지속성에 대하여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된다. 사람들은 누구든지 자신의 생명이, 자신의 사랑이, 자신의 행복이 영원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갖고 있을 것이다. 끈질긴 생명성과 변치않은 지속성을 갖고 있는 아주 사소한 것들은 결코 어렵지 않게 내 주변에서 찾아볼 수 있다.

<북해의 별>의 전반적인 이야기 흐름을 쭈욱 훝어보노라면, '역사'라는 관점에서 혹은 '사랑'이라는 관점에서 생각해 볼 수 있다. 나는 김혜린의 <북해의 별>을 '사랑'이라는 관점에서 생각해보려고 한다. 에델과 멤피스의 사랑 이야기보다 한나와 비요론의 사랑 이야기가 훨씬 더 강렬하게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두 연인들 에델과 멤피스, 한나와 비요른... 그들은 서로를 정말 눈물겨울 정도로 지극히 사랑한다. 에델과 멤피스는 수없이 거듭되는  이별 끝에, 에델은 위험에 빠진 멤피스를 구하려고 하반신 불구라는 불행을 겪지만, 멤피스의 한결같이 변함없는 사랑으로 남은 인생을 정말 행복하게 정말 평화롭게 살아간다.

아마도 작가 김혜린의 의도는 서로 사랑하지만 서로 결혼하지 못하여서 한없이 불행하였던 연인들과 서로 사랑하는 두 연인들이 화려하게 결혼 하였건만 그들이 자신들의 사랑을 알뜰하게 가꿀 줄 몰랐던 그래서 너무나 불행하였던 연인들의 이야기를 서로 견주어 가면서 그리고 싶었던 것인가보다. 그들은 서로 결혼하지 못하여서 한없이 슬펐고, 또 다른 이들은 서로 결혼하였건만 제대로 자신들의 사랑을 가꿀 줄을 몰라서 한없이 슬펐던 것이다. 김혜린의 만화 <북해의 별>에는 연인들의 사랑 이야기가 여러 가지 모습으로 나온다. 어쩌면 연인들의 사랑 이야기라고 한정짓는 것이 잘못일지도 모른다. 오히려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는 이야기라고나 해야 하는 것일까? 아주 오래 전에 <북해의 별>을 처음 읽었을 때 나는 주인공 멤피스를 너무 지나치게 영웅화 시키고 있다는 점에 대하여서 강한 거부감이 가졌었다. 지금 다시 한 번 <북해의 별>을 읽으면서 아름다운 사람을 아름다운 눈으로 바라볼 수 있는 주위 사람들의 모습들이 정말 아름답게 감동적으로 보여진다. 지크,데니 등등... 세상을 아름답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도 정말 아름답지만, 아름답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무심히 지나치지 않고 아름다운 마음의 눈으로 바라볼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들의 모습들 또한 정말 아름다운 모습이 아닐련지.(♠)

** 몇 년 전에 써놨던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