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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의 검]이 완결된 이후...
오늘까지, 12권을 모두 다섯번을 읽었다.
그냥 그냥 무심히 지나가던...
한 늙은 신하가 눈에 자꾸 띈다.
천신제때 원비의 위를 소서노의 속가 오래비 완경의 질녀에게 넘기라고 하기도 하고,
세간에 도는 풍문으로 인해, 피로에 찌든 아사에게 검무를 요청하기도 하는...
같은 인물일지도...어쩌면 다른 인물일지도 모르는
수염이 덥수룩하게 난 그 사람...
처음에는 간신처럼 보였다.
아사와 천궁 사이를 우짜든둥 찢어놓으려고 애쓰고,
그렇게 발기발기 찢겨진 사이에서 손에 콩고물이나 좀 묻혀볼까, 하며 노리는,
얄팍하고 걍팍한 인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마지막 완결편에서... 그는 달랐다.
이제 입을 다물기로 했느냐며 묻는 천궁에게,
'왕께서 옛날의 어린 왕자가 아님을 인정합니다'라고,
그리고,
'날으소서 왕의 그 뒷모습만 기억하며 가겠나이다'라고 답하는 그를 보면서 드는 생각은...
그 또한,
천궁의 양 날개 못지 않게 그를 왕으로서 키워낸...
그리고 [불의 검]이 부르는 활달한 야만의 노래를 만든 이일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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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해의 별]에서 유리핀은 이렇게 말했다.
'政은 正. 바르지 못하면 정치가 아니다'라고...
[불의 검]에서,
작품에 나오지 않는 어느 뒷그늘에서,
그 늙은 신하는 어릴적부터 천궁을 지켜보며...
그들을 키워내는 양날개들과
그들로 인해 갈등하는 천궁의 속내를 들여다보며 이렇게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政은 情으로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이다.
正과 情...
이는, 정치의 양날이다.
유리핀의 말처럼, 바르지 않으면 정치가 아닌 것은 분명하지만,
정이 없는 정치 또한 제대로 된 정치라 말할 수 있을까?
'정치'라는 검이,
그 두개의 양날을 어떻게 기기묘묘하게 사용하는가는,
사용하는 이가 어떻게 하는가에 따라 많이 달려있는 것이리라...
그러나...
분명, 그 양날의 경계가 뚜렷한 듯 보이는데도 불구하고,
정치라는, 부와 권력이라는 분명한 존재들 앞에서
그 두개의 양날을, 그 두가지 명제를 명쾌하게 나눠 행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이론상으로, 상식적으로는 그 가름이 정확한데도 불구하고...
情에 이끌려 正을 망치는 자를 우리는 이미 우리 역사에서, 그리고 최근의 정치에서 이미 많이 보아오지 않았던가.
正을 위해 情을 억누르고 무시하려다 오히려 상처입고 물러나게 되는 사람들은 또 얼마나 보아왔던가.
어쩌면...
그 늙은 신하는,
자신의 한마디 한마디가,
자신의 왕에게 어떻게 들릴지 뻔히 알면서도,
그 왕의 내부에서 끊임없이 흔들리고 있는 마음과 그 갈등들을 매듭짓기 위해,
그가 지닌 정치의 한계를 시험하기 위해,
그리고...
자신의 모국인 아무르에서
正과 情, 두 가지 양날을 모두 함께 포용하는,
그런 정치가 이뤄지길 간절히...그 누구보다도 간절히 바래고 또 바랬기에
때론 간사하게, 때론 모리배같은 그런 말을 서슴없이 내뱉었을런지도 모른다.
양날의 '정치'라는 검을 사용하여야 하는 천궁의 능력이
혀는 뱀이요 몸은 능구렁이요 속에는 늑대를 수백마리 키우고 있고 머리와 가슴에는 여우와 너구리를 수천마리 키우고 있는 자신은 물론이요,
왕이라는 자리가 지니고 있는 인간적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도록,
그 자리에 앉게 될 천궁을...
그는, 뱀혀와 비늘이 턱턱 벗겨져 허물이 오르는 능구렁이의 몸을 쉴새없이 비벼대며, 천궁을 다듬고 또 다듬었을런지도 모른다.
그 결과가 한 개인으로서의 자신에겐,
사직과 귀향의 결과를 가져올지, 정치적 숙청의 결과를 가져올지...
그 어떤 결과도 제대로 짐작하지 못하면서도,
자신을 향해 냉정하게 이제 입을 다물기로 했느냐며 묻는 왕에게,
'날으소서'라고 말할 수 있는 것...
그것만 봐도,
그 늙은 신하 또한 보통 인간의 경지에 있는 것은 아니리라고...
난 그렇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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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불의 검]에서 세개의 검을 발견했다.
가라한 아사가 쥐고 있는, 아라가 만든 첫번째 불의 검...
'아라'라는 검집 안에서 온몸에 묻어나는 피냄새와 쇳내를 지우고 이제는 따뜻하고 혼곤하게 잠드는 법을 배우게 된 '산마로'...바로 두번째 불의 검...
그리고...
오랜 세월, 소서노와 아사라는 양날개를 달고 성장하며,
뜨거운 가슴을 지닌 채 찬 바람을 마주 하고 설만큼 성장한 천궁이 쥐고 있는...
正과 情의 양날을 지닌 '정치'라는...
어쩌면, 이미, 그 늙은 신하의 피마저도 배양분으로 하여 자라났을지도 모르는... 또 하나의 불의 검...
지금까지 내가 발견한 [불의 검] 속의 불의 검은...이렇게 총 3개이다.
그러나...
이것만이 전부라고 장담하긴 힘들거 같다.
11권까지 보고 또 보고나서야 두개의 검을 발견하고...
완결편을 다섯번이나 읽고 나서야 또 하나의 검이 있다는 것을 알았는데...
'[불의 검]에 나오는 불의 검은 과연 몇 개?'라는 물음에 '세개', 라고 어찌 감히 자신있게 답할 수 있으려나...
앞으로 나는...
[불의 검]을 볼 때마다... 또 얼마나 많은 불의 검들을 새록 새록 발견하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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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의 검]은 소름끼치도록 무서운 작품이다.
귀신이나 소름끼치는 비명소리같은 클리셰에 휘청거리는 공포영화에서 말하는 촌스러운 의미에서의 무서움이 아니다.
수천년 전에 그 시대를 살아갔던 인간의 군상이라는 것이... 정치라는 것이...
완벽에 가깝게 구성하고 서술하고 묘사한 것에 대해,
작가 김혜린 선생님의 인고에 가까운 시간과 그 노력과 재능에 대한 찬탄이 흘러나오기 이전에,
21세기를 달려가고 있는 지금과 수천년전, 어쩌면 미개인, 야만인으로 보일지도 모르는 그네들의 군상과 정치와 비교해볼 때 별반 차이가 없다는 것을 다시금 일깨워준다는 점이...
마치...
인간이라는 존재의 유한성과 그 사회적 집단으로서의 가치와 그들이 행하는 정치적 역량의 한계를 절실하게 체험시켜주는 것 같아서...
그래서... [불의 검]이 갖고있는 그 힘이 난 많이 무섭고 두렵다.
리들리 스콧이 그린 미래의 시기가 20년도 채 남지 않았고...
왕가위가 그린 미래의 시기가 겨우 40년 정도밖에 남지 않았는데...
수천년전 과거를 살아간 인간들의 군상과 현재의 군상이 결코 다르지 않다는 것...
......할 말이 없다.
그저 아찔할 뿐이다...
그러나...
그 아찔함이 그저 단순무식과격한 두려움이나 아찔함 그 자체에 그치지않고,
작품 속 해피엔딩과 더불어,
현재에 대해,
그리고 현재의 인간 군상 중 하나인 나 자신에 대해서도
어떤 묘한 기대감과 두근거림을 갖게끔 만든다는 것...
그것은,
[불의 검] 속에 살아숨쉬는 아름다운 그 검들이...
그리고, '활달한 야만의 노래'라는 화두가 여전히 살아있음은 물론,
그 검들과 그 화두들이,
지금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핏 속에 또 하나의 유전자로 떠돌지도 모른다는...
그것들이 모두, 갓 잡아올린 생선들마냥 힘차게 펄떡거리며,
우리의 삶 속으로 활개치면서 나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끔 만드는...
'희망'이라는 이름이 가진 또 하나의 이름이요,
[불의 검]을 그리며 작가 김혜린선생님이 열망한 바로 그 자체일런지도 모른다는...
그런 생각을 감히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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