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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테르미도르를 다시 꺼내 봤다. 사실 80년대야 난 초등학교도 입학하기 전이니 내가 김혜린 씨의 만화를 본건 뒷북치고도 엄청난 뒷북이지.
오늘 테르미도르를 보면서 느낀건, 김혜린이라는 작가가, 얼마나 변했는가.. 북해의 별에서는 소리높에 혁명을 외치고, 새 세상을 열어갈 것을 외치던 김혜린이 테르미도르에서는 왜 한발짝 물러났는가.. 그녀의 만화 속 인물들만큼 슬펐다.
엊그제 강의시간에 김남주에 대한 연구발표를 했다. 김남주의 시와 인생을 이야기하고, 자본가 타도의 혁명을, 압제자와 착취자를 물리치고 열어갈 민중의 새 세상을 열나게 외치는 나에게 교수가 묻더라 '넌 민중을 믿냐?'
물론 그자리에서야 믿는다고 큰소리 뻥뻥 쳤다. 루소의 일반의지론이니 뭐니 되는데로 가져다 붙여가면서 민중을 믿는다고, 우리의 투쟁이 민중의 행복을 위한 것이라면 결국 이루어 지고야 말 것이라고 빠각빠각 떠들었다.
북해의 별 에서 김혜린도 그랬다. 혁명으로 새 세상을, 좋은 세상을 열어가고야 만다고 이야기했다. 북해의 별을 보면 혁명가들은 모두 꿈에 가득 차 있고, 한점의 사리사욕 없이 민중을 위해 투쟁했다. 혁명의 적들이 혁명을 방해할 지언정 혁명의 동지들은 의심도 없고 망설임도 없이 자신의 길, 가장 좋은 길을 걸었다.
그리고 몇해 뒤, 테르미도르에서 혁명가들은 갈등하고, 주도권을 잡기 위해 진흙탕 싸움을 벌였다. 더이상 이상적인 혁명은 없었다. 혁명의 동지 사이에 모사꾼이 끼어들고 순수한 이상을 가진 청년은 고뇌한다. 선의로써 이루어진 행동이 최악의 결과를 낳는 것 쯤이야 너무 흔해 말 할 여지도 없고, 혁명의 불꽃에 타 죽고 시대의 수레바퀴에 깔리는건 민중이었다.
솔직히 말해 무서웠다. 내가 꿈꾸는 혁명인들 그것보다 나으랴? 교수가 그러더군 '세상을 아직 몰라 니가 민중을 믿는다고 한다. 세상 속에 나가서도 지금처럼 민중을 믿을 수 있다면 좋겠다.' 그래, 그사람 머리 속에 들어가보지 못했으니 단언은 못한다만 김혜린씨도 그랬나보다. 북해의 별로 데뷔하고 나서 테르미도르까지, 이 세상속을 알몸으로, 맨발로 밟아왔나 보다. 결국, 결국 그리고 나서 더이상 완벽한 혁명을 꿈 꾸지 못하게 된것인가?
이렇게 떠들어대니 글은 그럴듯 하다만, 사실 나 하는것도 없다. 언제나 어디서나 꿈꾸는건 혁명이고, 자본가와 독재잔재들, 사회의 부당한 기득권자들을 몰아낼 투쟁이지만 꿈 꿀 뿐인거다. 그래서 더 속이 탄다. 난 어쩌면 좋으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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