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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의 검]에 보면,
다시 아라를 찾은 수하이의 막사에서
수하이 부하들에게 폭행을 당하고 움츠려든 여인들의 대화가 이런 것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렇게 흘기지 말어. 아라녀도 우리랑 다를게 없네'
'아라녀보고 흘긴게 아니우. 세상흘긴거라우'
'하늘도 무심하시지 무엇을 보려고 이러고 있는건지'
... 한 여인이 그렇게 얘기하며 눈물을 쏟자,
세상흘긴거라고 하던 또 다른 한 여인이 눈물을 주르륵 쏟으며 대답했다.
'팔뚝 힘 좀 약한게 죄요? 난 살아남을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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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폭행...이라고 하기엔 좀 소소한,
그러나, 어쨌거나 맞은 것임에는 분명한,
그럼에도 불구하고 맞은 것보다 내가 패준게 더 많은 사건을 하나 겪었다.
사실, 뭐 그리 대단한 일은 아니다.
다만, 문제는 내 자존심과 아직까지 삭혀지지않는 내 분한 마음때문이다.
지난 주,
회사에서 열받았던 일이 한번에 모두 터져버렸다.
결국, 혼자 난리를 치다가, 다시 제풀에 지쳐 자리에서 머리를 쥐어뜯기를 한 두어시간...
빨리 집에 가서 잠이나 자자 싶어
역에 내린게 자정이 조금 넘어서였다.
집 대문이 보이니 고슴도치같이 올라섰던 신경들이 조금씩 가라앉았고,
빨리 집에 가서 샤워나 하고 자자...하는 심정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그런데 집 앞에 있는 가로등 아래에 누군가 서있는게보였다.
주택가인데다,
그 근처에서 심심치않게 야밤의 연애를 하는 사람들을 심심치않게 보아왔는지라,
뭐, 그런 사람 중의 한 명이려니...생각하고 말았다.
그런데, 그 사람이, 술에 취한 채 다급한 목소리로,
'어이, 거기, 거기!'하며 누구를 불러댔다.
누구를 부르나 싶어 돌아보니, 주위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부른 사람은 나였다.
혹 내가 아는 사람인가 싶어 쳐다봤지만,
그 남자의 몸에서 술냄새가 엄청나게 풍겼다는 것만 알 수 있을 뿐,
가로등 불빛을 넘어 그림자쪽에 서있는 사람이 내가 아는 누구인지 아닌지를 판별하기는 힘들었다.
내가 아는 사람인가 아닌가...
혹, 다쳐서 꼼짝도 못하고 있는데 도움을 요청하는건 아닌가...
술이 너무 취해서 몸을 가누기가 힘들어서 그러는건가...
갖가지 생각이 들어 이걸 어떻게 해야하나...잠시 고민하며 그냥 어정쩡하게 대문앞에 서있는데,
그 사람이 잽싸게 내 앞으로 다가왔다.
셔츠도 반쯤 풀어헤치고 바지도 풀어헤치고
모든 여중 여고앞에 한 명씩은 있음직한 바바리맨 변태의 자세 그대로 하고서.
모르는 사람이었다.
동네에서 역시, 한 번도 본 적 없는 사람이었다.
기가 차서 대문 앞에서 헛웃음이 나왔다.
(겉으로 보기엔 빌라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4층짜리 원룸 다세대 주택에 자리잡고 있는 우리 집은,
집 현관으로 들어서기까지,
대문과 건물 문과 집 현관문, 세개를 거쳐야 한다.
내가 서있던 곳은 대문앞이었다.)
이런 x같은... 입에서 욕이 튀어나오려는데,
그 인간, 술냄새 펑펑 풍겨가며 지껄여대기 시작했다.
내용이 하도 지x같았지만, 대충 요약을 하자면,
지가 술을 좀 마셨는데 여자가 필요하다 근데 너가 있네 너 나랑 같이 가자... 뭐 대충 이런 내용이었다.
하루 종일 시달리다 폭발한 것도 아직 다 안풀렸는데,
이따우 xx가 결국 하루의 쫑을 이렇게 내주는군...
어이가 없고 불쾌해지기 시작해서 그냥 피식 웃어버렸다.
근데, 그 피식 웃은게, 문제였었나보다.
그 웃음을 승낙으로 받아들인건지, 아니면 지를 우습게 봤다 싶어 맛 좀 보여줘야겠다 싶은 것이었는지, 대뜸 손을 덥썩 잡으려 했다.
당연히 순간적으로 뿌리쳤다.
그 와중에, 그 인간의 손이 철대문에 팅 부딪친 것이었다.
술취해서 눈에 뵈는 것도 없는 인간이,
지 손 아픈건 억울했었던지,
갑자기 육두문자를 나한테 퍼부어대며 주먹을 날렸다.
인간이 위기에 닥치면 빨라진다더니,
나 역시도, 한 손으로 대문 창살을 쥐고 몸을 뒤로 제껴 그 주먹을 피했다.
어 피해? 하는 소리와 동시에
이번에는 주먹을 내 다리쪽으로 맞추는 그 인간...
나 역시 거의 무의식적으로,
무릎을 들어 그 인간이 바바리맨 흉내를 내고있는 중심부를 정확하게 가격했다.
동시에, 그 인간의 주먹에 허벅지를 맞았다.
맞은 순간, '아 맞았다' 하는 생각과 동시에,
'이 새x가 어디서 술취해서 남의 홈그라운드 앞에서 주먹을 휘둘러?!
마침 나 오늘 기분도 안좋겠다 함 죽어봐라' 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쳐지나갔다. 아니, 지나갔던 것 같다.
한 손으로 창살을 쥐고 중심을 유지한채,
나한테 한 대 맞고서 정신못차리고 몸을 웅크리고 있는 그 인간을
계속해서 발로, 무릎으로,
상체쪽을 열심히 찍어주고 걷어차주고...뭐 그랬던 거 같다.
그 와중에, 그 인간이 휘두른 주먹에 허벅지를 한대인지 두대인지 맞았던 거 같다.
(그때, 정신이 하나도 없어서, 사실, 잘 기억은 안나지만....그랬던 거 같다. )
밤 10시만 넘어가면 조용해지는 주택가 한가운데에서,
장정 둘이서 철대문 앞에서 싸우는데 소리가 안날 리 없었다.
근처 집과 건물들에 하나씩 둘씩 불이 켜지고,
사람들이 웅성웅성하는 소리,
창문을 여는 소리, 문 열리는 소리, 계단을 내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지금까지의 그 기세등등함은 어디로 갔는지,
그 인간은 고개를 푹 숙이더니,
미안하단 말 한 마디 없이 길쪽으로 나갔다.
'어이 택시! c바 택시!'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난, 화도 나고 어이도 없고 기도 차서 잠시 동안 멍청하게 대문앞에 그대로 서있다가,
윗층에 사시는 분이 무슨 일이냐고 묻기에,
아무 일도 아니라고 대답해버리고는
집 안으로 들어서서 문을 잠그고,
또 잠시 멍청하게 앉아있다가,
커피를 한 두어잔 줄기차게 마시다가,
비맞은 중마냥 욕을 주절주절 읊어대다가,
그러다가 씻지도 않고 잠이 들어버렸다.
다음 날 아침, 눈을 뜨니, 몸 전체가 조금씩 욱씬거렸다.
운동 안한지 몇 년 된 상태에서, 갑자기 그렇게 긴장한 채 안쓰던 근육을 쓰니 그런가보다...하며 몸을 일으키려는데,
마치, 오랜 시간 등산하고 내려왔을 때의 근육의 땡김과
어딘가에 심하게 부딪치고 난 후에 닥치는 얼얼함이 합쳐진 듯한
허벅지의 강렬한 통증...
잠옷을 걷어보니,
주먹 자국도 또렷하게,
검은 색 멍이 허벅지에 들어있었다.
그걸 보면서,
지난 밤의 그 변태 xx를 아예 그 자리에서 죽여버리지 못한게 뼈에 사무치게 후회가 되었고,
비록, 맞은 것보다 때린게 더 많긴 했었어도,
어쨌거나, 내가 남자였다면 안당해도 될 일을 당했다, 단지 내가 여자이고
그 xx가 술취했다, 팔뚝 굵다, 남의 동네다, 이 세가지 믿고 설쳐댄 남자이기 때문에 당한 일이라는게,
너무 분해서, 입술에 피가 나도록 입술 껍질만 줄줄 뜯어댔다.
그로부터 근 일주일이 지난 지금,
멍은 얼추 다 나았고,
누르지 않는 이상 통증도 별로 없다.
그러나, 여전히 분한 마음은 여전하고,
그딴 변태 xx한테 맞았다는 사실로 인해 엄청나게 다쳐버린 자존심은,
만약에 내가 아니라 자그마한 내 언니였다면,
내 바로 윗층에, 아랫층에 사는 가냘프고 여리여리한 다른 아가씨였다면...하는 가정과 함께 쫙 끼쳐버리는 소름과 더불어,
아예 사람 구실 못하게 만들어버릴껄 하는 후회로 인해 전혀 복구가 안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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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지금 궁금하다.
만약에 내가 남자였다면,
지보다 더 덩치가 큰 사람이었다면,
지가 술에 안취하고 맨정신이었다면,
지가 살고있는 동네였다면,
그랬어도 과연 그런 행동들을 그 변태남이 취했을까? 내가 그런 일을 당했을까?
아주 뻔한 사실이고, 아주 뻔한 대답이지만,
난 아주 궁금하다.
그리고, 그 대답을, 그 인간으로부터 직접 듣고싶다.
그리고, 대답을 듣고 난 후에, 이렇게 얘기해주고 싶다.
니가 남자라는게,
니가 나보다 팔뚝 힘 좀 굵다는게,
니가 술 좀 취했다는게,
여기가 니네 홈그라운드 아니라는게,
니가 그런 식으로 행동해도 된다는 충분조건은 아니다...라고 말이다.
물론, 말만 곱게 해주기에는, 내 승질이 너무 드럽다.
아마, 멱살을 잡고, 손으로 열심히 머리를 쥐어박아가며 그렇게 얘기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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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를 보았다.
전처의 정신지체아인 어린 딸을 성폭행한 짐승만도 못한 넘이 무죄판결을 받았단다.
그 아이가 비록 지능은 좀 떨어지지만,
글도 알고, 낙태의 뜻도 알고있기때문에 강제적을 벌어진 일이라 보기엔 힘들다나 어쨌다나...
그렇다면, 13살짜리밖에 안되는 그 꼬맹이가,
지가 원해서 지 어무이의 남편되는 사람과 동침했다는 결론인데...
입에서 욕이 튀어나왔다.
대체, 울 나라 검사 판사 나으리 놈들은,
일의 앞뒤 상황 전혀 이해 못하고,
누가 피해자인지도 인식하지 못하는,
땡칠이 아이큐들인가?
웃기는 건, 뉴스 타이틀, 그 기사를 쓴 기자의 시각도 마찬가지였다.
'여성계가 발끈'이란다. 여성계가 발끈.
대체, 그게, 여성계만 발끈할 일인가?
제대로 된 상식을 갖추고 있는 사람이라면, 죄다들 발끈할 일 아닌가?
굳이 무슨 '~계' 이런 단어 쓰려면,
'대한민국 국민계'라고 써야함이 옳지 않은가?
성별을 떠나서, 약자가 무방비상태에서 당해버린 일이다.
그걸 왜 여성계의 일로만 국한시켜버리는 것인가?
나로선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 일 투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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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용천 폭발 사고를 보면서,
제일 마음 아팠던 것은, 속이 뒤집혔던 것은,
아프다고 소리칠 기운도 없이,
아무런 치료도 받지 못한채,
그저, 단지,
병원 침대에 방치되어 끙끙거리고 있는,
어린 아이들의 모습이었다.
북한 동포, 같은 민족...그런걸 떠올리기 이전에...
무방비상태로 그런 일을 당해버린...
아직 작고 여린 그 생명들이 너무 마음 아팠다.
육체적인 힘이 부족하다는 것이, 약하다는 것이 죄는 아닐터인데...
이 빌어먹을 세상은, 힘 꽤나 있다는 강자들은,
대체, 언제까지,
반격의 힘도 없고 반격의 의사도 없는 약한 사람에게
이런 식의 무차별적인 폭력을, 폭행을,
함부로 가하고 휘둘러댈 것인가.
대체 언제까지,
그런 행동들을 허용할 것인가
언제까지 상처입은 약자들을 그냥 조용히 보아넘길 것인가 묵인할 것인가 수수방관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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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뚝 힘 약한게 죄요? 난 살아갈꺼유...'
지금까지 [불의 검]을 보면서 무심코 스쳐지나갔던,
이름 하나 모르는 그 여인의 그 말이
오늘따라 뼈에 사무쳐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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