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불의 검 애장판 4』를 읽다가, 우연히 눈에 띈 바탕글(지문)이 있어서 이곳에 소개한다.
산마로(가라한 아사)가 해조공녀와 혼인하기 위해 성 안에 들어갈 때, 그를 반갑게 맞이하는 사람들을 보며 속으로 이렇게 생각한다.
‘백성의 마음을 살필 때는 숨어있는 속표정을 보라.’
나는 예전에『불의 검』을 읽을 때는 이 생각에 별로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그냥 이야기를 이끌어갈 때 나오는 생각(바탕글)일 뿐이라고 여겨 지나쳤다.
그런데 얼마 전, 이 만화를 다시 읽다보니 이 생각(바탕글)이 눈에 확 들어왔다. ‘아니. 이건 내 생각을 그대로 나타낸 바탕글이잖아? 오늘날의 한국 현실에 딱 들어맞네!’라는 생각이 든 것이다.
윗사람들은 “백성”을 비롯한 아랫사람들이 어떤 “표정”을 짓는지를 알아채지 못하고, 그들이 불만과 분노와 슬픔과 절망을 담아 “속표정”을 짓고, 윗사람의 ‘칼날’을 피하려고 겉으로는 그 “속표정”이나 “마음”과 다른 표정을 짓는다는 것을 생각하지 않고, 그저 겉으로 드러난 것만 보고 ‘저것들은 나한테 만족하나 보네.’라고 생각하지 않던가? 이 나라의 윗사람들도 예외는 아니다. 산마로는 어릴 적부터 “들판”에서 “백성”들과 함께 지낸 적이 많기 때문에, 그런 이치를 깨닫고, 겉으로 드러난 환영 인사를 믿지 않았던 건 아닌지.
이 생각을 살펴보며 산마로가 싸움만 잘 하는 주인공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을 읽고 현실을 파악하는 능력이 있는 주인공이라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깨달았다. 한편으로는, ‘역시 김혜린 선생님은 대사 하나, 바탕글 하나도 허투루 넘기시는 법이 없어.’ 라고 생각했고. 나는『불의 검』이라는 명작을 알게 되어 기쁘고, 김혜린 선생님이라는 훌륭한 만화가를 알게 되어 기쁘다. “마음을 다해” 감탄과 찬사를 바친다.
- 엉망진창인 한국의 현실을 보며, ‘내가 누구를 위해 이야기를 만들어내야 하지?’라는 회의가 드는, 김혜린 화백의 애독자 돌베개가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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