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쓴이의 말 : 이것은 어디까지나『불의 검』을 읽은 사람의 추측일 뿐이니,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이실 필요는 없습니다[?])
2~3년 전, 한국에 이민해 살고 있는 외국인들 - 또는 한국 국적을 얻은 외국인이나, 한국인과 외국인 사이에서 태어나 한국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 - 의 이야기를 다룬 책을 읽다가, 눈이 번쩍 뜨이는 대목을 보았습니다. 그 뒤 ‘이 글을 린월드의 회원들에게 소개하고 싶어.’라고 생각하고, 글을 정리하겠다고 다짐했으나, 그동안 여러 가지 일로 바빠 그 다짐을 실천하지 못했죠. 이제 더 이상은 미룰 수 없다고 여겨 여기에 문제의 글을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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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용 시작)
단일민족(單一民族)을 사전에서 찾아보면 ‘단일한 인종으로 구성되어 있는 민족’ 또는 ‘한 나라의 주민이 단일한 인종으로 구성되어 있는 민족’이라는 뜻풀이가 나온다. 여기서 말하는 인종(人種)이라는 말은 황인종, 흑인종, 백인종과 같은 광범위한 구분을 일컫는 것이 아니라, 동일한 조상으로부터 갈래지어 나와 동일한 유전적 형질을 가진 종족이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앞서 민족이라는 단어를 정의할 때는 ‘핏줄’이라는 요소를 적용하지 않았음을 기억할 것이다. 그런데 단일민족을 설명하면서는 ‘단일한 인종’이라는 말로 ‘핏줄’이라는 요소를 강조하고 있다. 따라서 ‘민족’과 ‘단일민족’을 가름하는 가장 중요한 잣대는 ‘핏줄’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우리 한민족이 같은 조상을 가진 혈연공동체임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런데 한반도 내에서 발견된 선사시대의 여러 유적지에서는 우리의 이러한 믿음을 반박하는 고고학적 증거들이 여러 차례 발굴되었다. 이 뜻하지 않은 발견들은 우리 민족이 단일민족이라는 사실을 의심하지 않았던 학계의 학자들에게도 대단히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 선사시대 유적지의 이방인들
1962년 3월, 충북 제천 황석리의 고인돌 유적지에서 발굴 작업이 한창 진행중이었다. 이미 황석리에서 12기의 고인돌을 발굴한 발굴팀은 13번째 고인돌의 발굴 작업을 서두르고 있었다. 황석리 13호 고인돌은 상석 부분이 파괴된 채 흙에 파묻혀 있었다.
조심스럽게 발굴 작업을 진행하던 국립박물관 소속 여성 고고학자의 손 끝에 무언가가 걸렸다. 석관이었다. 석관은 시신을 안치하여 고인돌 아래에 매장하는 돌로 만든 관이다. 하지만 모든 고인돌에서 석관이 발견되는 것은 아니다. 오랜 세월이 지나는 동안 석관이 유실된 경우도 있지만, 아예 석관을 묻지 않고 고인돌을 올린 경우가 더욱 많다. 석관을 발견한 발굴팀은 기대감을 갖고 더욱 조심스러운 손길로 흙을 파헤쳤다. 오래지 않아 석관의 전체적인 형태가 드러났다. 놀랍게도 석관에서는 기골이 장대해 보이는 인골(황석리인)과 청동기시대의 유물이 출토되었다.
과거 일제는 한반도의 선사시대가 신석기에서 청동기를 거치지 않고 곧바로 철기시대로 이행되었다고 주장했다. 일제의 사학자들이 제기한 이 한반도 금석병용기설은 석기시대에서 청동기시대로 이행하지 못한 한반도에 중국 대륙에서 쇠와 구리를 사용하는 일단의 무리가 넘어옴으로써 한반도에서 청동기시대를 건너뛰고 철기시대가 시작되었다는 역사 왜곡으로, 조선의 문화적 후진성을 조장하여 일제의 강제 점유와 침탈을 정당화하려는 근거로 이용되었다. 황석리 13호 고인돌에서 출토된 돌검 등의 청동기 유물은 그러한 일제의 역사 왜곡을 반박하는 증거물이었기에, 이 고고학적 발견은 학계를 대단히 흥분시키는 사건이었다.
그런데 황석리 13호 고인돌에는 대한민국 역사학계를 발칵 뒤집어놓을 비밀이 한 가지 더 숨어 있었다. 그 수수께끼의 열쇠는 바로 석관에 안치되어 있던 인골이 쥐고 있었다.
탄소연대측정법으로 밝혀낸 인골의 매장 연대는 기원전(서기전 - 옮긴이) 410년경이었고, 인골의 주인공이 매장될 당시의 나이는 서른 살 전후로 추정되었다. 먼저 학자들을 놀라게 한 것은 인골의 신장이 대단히 크다는 사실이었다. 인골의 다리뼈를 분석해서 추정한 황석리인의 키는 174센티미터였다. 임진왜란 당시 조선 병사들의 평균 신장이 158센티미터였던 점을 감안하면 체격 조건이 상당히 뛰어났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황석리인은 - 옮긴이) 신장뿐만 아니라 두개골과 쇄골(목 바로 아래에 튀어나온, 가슴 윗부분에 있는 뼈 - 옮긴이), 상완골 모두 현대의 평균 한국인보다 더 컸다.
하지만 학계를 발칵 뒤집어 놓은 진짜 이유는 황석리인의 신장(身長. 몸[身]의 길이[長], 그러니까 키 - 옮긴이)이나 체격조건이 아니라 유골의 두개골을 조사한 뒤에 얻은 결과 때문이었다.
보통 사람의 두개골(頭蓋骨. 순 우리말로는 머리뼈 - 옮긴이)을 통해 인종을 분석할 때는 ‘두개지수(頭蓋指數)’라는 것을 이용하는데, 이 수치는 두개골의 앞뒤(이마 ~ 뒤통수) 길이와 좌우(귀 ~ 귀) 폭의 비율을 나타낸다. 다시 말해서, 두개골의 앞뒤 길이를 100으로 놓았을 때 두개골의 좌우 길이가 차지하는 비율이 두개지수이다. 두개지수의 수치가 낮을수록 얼굴의 좌우가 좁고 앞뒤가 넓은 형태를 취한다.
한국인의 평균 두개지수는 80 전후로 이마와 뒤통수가 좁고 얼굴이 펑퍼짐한 단두형에 속하고, 서양인(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서양 백인 - 옮긴이)은 두개지수가 70전후로 짱구 머리에 얼굴이 좁은 장두형에 속한다. 그런데 2400여년 전 한반도에 묻힌 황석리인의 두개지수는 66.3으로 유달리 머리의 좌우가 좁고 앞뒤가 튀어나온 짱구 형태를 취하고 있었다. 현재 북유럽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두개골 형태와 거의 흡사하다.
1962년 당시 황석리인을 조사했던 서울대학교 의대팀과 발굴팀은 이 당혹스러운 조사결과에 뚜렷한 결론을 내리지 못한 채 황석리인의 특징을 ‘초장두형’이라는 짧은 말로 정리했다.
강원도 정선 아우라지의 선사유적지에서도 이와 유사한 발견이 있었다. 2005년 7월, 강변에 위치한 고인돌 네 기 가운데 한 기에서 사람의 두개골과 대퇴부가 나왔는데, 서울대학교 해부학실에 의뢰해 얻은 분석결과 역시 대단히 충격적이었다.
유골의 연대는 기원전 8~7세기(서기전 700 ~ 600년. 그러니까 서기 2005년을 기준으로 삼을 경우 지금으로부터 2700 ~ 2600년 전 - 옮긴이) 황석리인보다 300 ~ 400년(실제로는 200 ~ 300년 - 옮긴이) 정도 앞섰고, 신장은 170센티미터였다. 그런데 DNA 염기서열을 조사한 서울대학교 해부학팀은 뜻밖에도 이 유골이 서양인의 것으로 추정된다는 결과를 전달해 왔다. 더 정확하게는 현대 영국인(앵글로 색슨족과 바이킹과, 노르만인이 섞여서 만들어진 잉글랜드 인인지, 아니면 켈트인인 웨일즈 인이나 스코틀랜드인인지가 확실하지 않다 - 옮긴이)의 DNA 염기서열과 거의 흡사하다는 것이었다.
유골 출토 당시 일본과 이스라엘 등 해외 기관에도 분석을 의뢰했지만, 지금까지도 (한국의 - 옮긴이) 학계는 황석리 유적지와 아우라지 유적지에서 발굴된 서양인 유골에 대한 공식적인 입장을 정리하지 못했다.
사실 우리의 조상이 서양인의 유전적 형질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기가 어렵고, 이 서양인의 유골이 선사시대(실제로는 청동기시대 - 옮긴이) 지배계층의 무덤인 고인돌에서 발견되었다는 사실도 당혹스럽다.
다만 학계는 황석리인과 아우라지에서 출토된 서양인 유골의 주인공이 우리 민족의 조상이라는 점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현대 한국인의 유전인자가 단 하나가 아니라, 갖가지 교류를 통해 여러 인종의 인자가 결합되었을 가능성을 부인하지는 않는다.
그런데 황석리와 아우라지에서 출토된 서양인 유골과 함께 우리를 당혹스럽게 만드는 또 한 가지 고고학적 발견이 있다. 1992년 11월, 경남 통영 남쪽 해상에 위치한 섬 연대도에서 기원전 4000년(서기 1992년을 기준으로 삼았을 경우, 지금으로부터 5992년 전 - 옮긴이)의 것으로 추정되는 패총(貝塚. 조개무지 - 옮긴이)에서 유골이 발견되었는데, 이 유골의 두개골은 놀랍게도 영락없이 동남아시아인(남방 몽골로이드인지, 폴리네시아 계인지, 말레이 계인지, 아니면 멜라네시아 계인지가 확실하지 않다 - 옮긴이)의 특징을 보이고 있었다.
이처럼 한반도의 선사유적지에서 속속 발견되는 이방인의 유골들은 우리에게 어떤 사실을 말해 주고 있는가?
(인용 끝)
- SBS스페셜 제작팀,『다른 게 나쁜 건 아니잖아요』, 48 ~ 54쪽
* 출처 :『다른 게 나쁜 건 아니잖아요』(SBS스페셜 제작팀 지음, 꿈결 펴냄, 서기 201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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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읽는 순간, 제 머릿속에는 저절로(!)『불의 검』이 떠올랐습니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단목다루 공자가 떠올랐죠. ‘혹시 단목다루 공자의 자식이나 후손이 아무르를 떠나, 나무바다를 뚫고 늑대의 땅으로 가서 새 나라를 세운 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게 무슨 소리냐고 물으시겠죠. 그래서 김혜린 선생님의 말씀을 인용하고, 거기에 제 추측을 덧붙이고자 합니다.
제가『불의 검 애장판』(이하『애장판』)이 나오기 전에 사서 읽은『불의 검』단행본에 실린 글의 내용에 따르면, 김혜린 선생님(이하 김 선생님)은『불의 검』의 “기본 연대”를 “기원전 700~800년”으로 “설정”하셨습니다. 그리고『애장판』4권에 실린 <불의 검 관련지도>에 따르면, 김 선생님은『불의 검』의 무대를 “북만주 일대”를 “기본 모형”으로 삼아 만드셨죠.
그 두 가지를 염두에 놓고 보니,『불의 검』에 나오는 땅들이 현실세계에서는 어디인지 짐작이 가더군요. 이렇게 말입니다. ↓
- 카르마키가 차지한 땅(아무르족이 원래 살던 곳) : 중국 흑룡강성
- 달라이노르 호수 : 바이칼호
- 대산맥지대 : 만주와 몽골을 가르는 대흥안령산맥과 소흥안령산맥
- 서편 대황야 : 몽골초원
- 하라무렌강 : 아무르강(흑룡강)
- 아무르족이 달아난 땅과 얼음의 땅 : 아무르강 동북쪽과 극동시베리아
- 세강자리 대 저습지 : 연해주 내륙
- 솔꽃 아리하 동남쪽에 있다는 바다 : 동해
- 나무바다 : 중국 길림성(또는 간도)
- 늑대의 땅 : (『애장판』6권에 나오는 마리한 천궁의 대사에 따르면 “나무바다가 가로막고 있는” 곳이고, “나무바다” 남쪽에 있으므로) 한반도
- 남쪽나라(화족령) : 중국 북부(하북성/산동성/하남성/섬서성)
- “빛의 머리 거인의 산” : 백두산
- 빛의 머리 거인의 산에 있다는 “하늘못” : 천지(天池)
그래도 이건 제 추측일 뿐이라, 이것만으로는 감상문을 쓰기가 어려웠는데,『다른 게 나쁜 건 아니잖아요』를 읽다가 우연히(!), 정말로 우연히 황석리인과 “강원도 정선 아우라지”의 “고인돌”에서 나온 “사람의 두개골”, 그러니까 “아우라지 유적지에서 발굴된 서양인 유골”(이하 ‘아우라지인’)의 이야기(제가 인용한 문제의 글에 실린 이야기 말입니다)를 읽으니, ‘야, 이건 정말 충격적이네! 전혀 예상하지 못했는데!’라는 생각이 들고, 저도 모르게 온갖 이야기가 생각났어요.
(이제부터는 이야기가 조금 복잡해지니, 머리에 쥐가 날 것을 각오하고 읽으시기 바랍니다) 먼저 황석리인 이야기부터 합시다. 이 사람은 서기전 410년에 서른 살의 나이로 죽어서 무덤에 묻혔습니다. 이 사람이 언제 태어났는지를 알려면, 서기 1년 이후와는 달리 죽은 해에서 나이를 빼는 게 아니라 오히려 그 반대로 죽은 해에 나이(만으로 센 나이)를 더해야 하죠(서기는 숫자가 많으면 많을수록 후대를 가리키는 달력이지만, 서기전은 서기 0년에서 거꾸로 세는 달력이기 때문에 숫자가 적으면 적을수록 후대를 가리키고, 숫자가 많으면 많을수록 전대[前代]를 가리킵니다. 예를 들어 서기전 50년에 일어난 일은 서기전 10년보다 40년 전에 일어난 일이라, 전자가 후자보다 훨씬 오래 전에 일어난 일입니다).
이 법칙에 따라서 계산하면
410 + 29(만 29세. 그러니까 서른 살) = 439
그러니까 서기전 439년에 황석리인이 태어났다는 계산이 나옵니다. 서기전의 햇수를 셀 때에는 서기로 센 햇수에 서기전으로 센 햇수를 더해야 구체적인 시기가 나오므로(한 예로, 서기전 500년은 서기 2015년 + 500년 = 2515년이므로, 지금으로부터 2515년 전입니다), 황석리인이 태어난 구체적인 시기는
2015 + 439 = 2454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2454년 전입니다. 2454년 전에 “북유럽에 살고 있는 백인들”과 비슷하게 생긴 사람이 태어나서, 2425년 전(서기전 410년) 황석리에서 죽어 무덤에 묻힌 거죠. 황석리인은 키가 크고 뼈도 오늘날의 한국인보다 크며, 두개지수는 “66.3”으로 한국인의 그것(80)과 서양 백인의 그것(70)보다 작으며, 그의 머리뼈는 오늘날 북유럽에 살고 있는 백인들의 머리뼈와 거의 똑같습니다.
이번에는 아우라지인을 볼까요? 그는 서기전 700년이나 서기전 600년(서기전 8 ~7세기),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2715년 전이나 2615년에 살다가 죽어서 아우라지에 묻혔습니다. 그의 키는 170센티미터고요, 그의 DNA는 오늘날의 영국 백인과 같지요.
이것이 신경 쓰이는 까닭은 김 선생님이『불의 검』의 “기본 연대”로 설정하신 “기원전 700~800년”(서기전 8 ~ 9세기)과 아우라지인이 살았던 시기가 겹치기 때문이고(아우라지인도 서기전 8세기에 살았죠), 황석리인과 아우라지인의 생김새가 “북유럽”과 “영국”에 사는 백인들과 똑같다는 연구결과는 - 이것도『애장판』이 나오기 전에 출판된『불의 검』단행본에 실린 글에서 읽은 것입니다만 - 김 선생님이 아무르는 “예맥”을 참고해서 만든 민족이고(그러니까 한국/조선 공화국[수도 평양]의 고대사에 나오는 예맥[濊貊]족 말입니다) 카르마키는 “터키계” 민족과 “스키타이계”를 참고해서 만든 민족이라고 하신 것과 일치하기 때문입니다.
역사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스키타이족은 유럽계 백인(코카서스 인종)이고, 이는 그들의 뼈와 그들이 남긴 공예품(예컨대 금은 세공품)으로 입증된다고 하더군요. 김 선생님은 그런 민족을 참고해서 카르마키 족을 만드셨고요(실제로『불의 검』을 보면 카르마키족은 백인처럼 생겼습니다). 그들과 비슷하게 생긴 사람들이, 카르마키가 별 관심을 안 두고, 아예 가지도 않았던(이는 『애장판』6권에 나오는 천궁의 말로 입증됩니다) 늑대의 땅에서 죽었다는 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아무르의 해방전쟁(수복전쟁이라고 부를 수도 있지요)이 아무르의 승리로 끝난 뒤, 카르마키를 이루던 씨족들이 “서쪽”으로 달아나거나 “기름진 평야지대(아무르가 있던 곳)”의 “서남쪽”(남쪽나라, 그러니까 화족의 땅과 가까운 곳)으로 갔다는 걸 생각하면 황석리인과 아우라지인이 카르마키의 잔당일 가능성은 없고(특히 황석리인은 - 서기전 700년대에 전쟁이 끝났다는 점을 감안하면 - 전쟁이 끝난 지 261년 뒤에 태어난 사람이라 더더욱 가능성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남는 가능성은 두 가지, 그러니까 아무르인과 카르마키인 사이에서 태어난 사람들의 후손이 전쟁이 끝난 지 260년이 흐른 뒤에 아무르를 떠나 늑대의 땅으로 내려갔거나, 아니면 아무르인과 카르마키인 사이에서 태어난 사람들이 전쟁이 끝난 지 2~30년 만에 아무르를 떠나 나무바다를 뚫고 늑대의 땅으로 갔다는 것뿐입니다. 황석리인은 전자고 아우라지인은 후자입니다.
이 가설대로라면 황석리인의 두개지수가 한국인(황인종)의 그것과 서양 백인의 그것과 다르면서도, 머리뼈 자체는 북유럽 백인의 것과 거의 똑같은 게 이해가 됩니다. 두 인종(북방 몽골로이드인 아무르인과 백인인 카르마키족)의 피가 섞였으니 두 인종 가운데 어느 하나를 완벽하게 닮지는 않았을 테고, 원래 황인종과 백인 사이에서는 겉보기에는 백인과 비슷한 아이가 태어날 가능성이 높으니 백인과 같은 머리뼈가 나오는 건 당연하지요.
이들의 사연이 어떤 것인지는 확신할 수 없습니다. 다만 네 가지 가능성 가운데 한 가지일 거라고 추측할 수는 있어요. 그 가능성이라는 것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아무르와 카르마키 사이에서 태어난 “이족 피가 섞인 것들”이 일단 아무르 밝이(푸른 용)부의 백성이 되어서 살다가, 단목다루의 자식 세대가 어른이 되었을 때(그러니까『불의 검』이 다루는 해방전쟁이 끝난 지 38년이 흐른 뒤), 가라한 아사(산마로)는 늙어서 죽고 그 뒤를 단목불루가 이어받는다.
아사(산마로)가 살아 있을 때에는 순수 아무르인인 밝이부의 백성들이 불만이 있어도 참았으나, 그가 죽고 새 가라한이 들어서자 노골적으로 분노하며 “오랑캐, 침략자, 전쟁범죄자의 피가 섞인 더러운 것들을 내버려 둘 순 없다. 우리는 그것들하고는 같은 하늘 아래서 살 수 없다. 모조리 죽이던지, 아니면 모조리 내쫓아 주시라!”라고 요구한다.
단목불루는 처음에는 백성들을 설득하려고 했으나, 나중에는 절망하고 지쳐서 - 아니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 단목다루를 비롯한 혼혈인들을 아무르에서 내쫓는 것을 허락한다. 그는 자신의 의붓형인 단목다루에게 밀사를 보내 아무르의 군사와 순혈인인 백성들의 창칼을 피해 나무바다를 뚫고 늑대의 땅으로 갈 수 있는 길이 그려진 지도를 주고, 늑대의 땅으로 달아나서 새 삶을 살라고 충고한다. 단목다루는 순혈 아무르인들에 대한 배신감과 분노를 억누르며 그 충고를 받아들인다.
단목다루와 단목다루의 자식(딸일 수도 있고, 아들일 수도 있다)이 이끄는 혼혈인들은 밝이부와 아무르의 다른 부(部)에서 온 순혈인들이 들고 일어나기 전에 아무르를 떠나 늑대의 땅으로 달아나고, 아무르의 추격군이 올 지도 모르므로 그들이 잘 모르는 땅(강원도)으로 가서 뿌리를 내린다. 그들은 아무르에서 하던 대로 고인돌(지석묘)을 세우고 살았고, 고을나라(고을만한 크기인 나라. 윤내현 전 단국대 교수님이 내세우신 개념)를 세우고 강원도에서 생을 마친 뒤 그곳에 묻혔다.
(→ 이상은 아우라지인을 보고 떠올린 가설이었습니다)
2. 1.과 기본적으로는 비슷하나, 자세히 보면 다른 가능성인데, 단목다루와 혼혈인들이 전쟁이 끝난 지 241년 동안 아무르의 백성으로 살다가, 아무르를 떠나 늑대의 땅으로 내려왔다는 이야기다. 가라한 단목불루가 죽을 때까지는 밝이부의 불만을 억누르고 그들이 혼혈인들과 함께 살도록 강요할 수 있었고, 북대궁(아무르의 왕부王部)도 혼혈인들에게 세금을 물리고 그들을 병사로 동원하고 요역에도 동원해야 했기 때문에, 못해도 공식적으로는(그리고 법적/제도적으로는) 순혈 아무르인들이 혼혈인들을 차별하거나 괴롭히거나 죽이거나 고문하거나 재산을 빼앗거나 폭력을 휘두르는 것을 엄격하게 금하고 혼혈인들에게 벼슬이나 재물이나 땅을 주는 등 유화책을 펼쳐 겉으로는 평화가 유지되었다.
그러나 전쟁을 기억하고 있던 아무르의 순혈인들은 계속해서 혼혈인들에게 폭력을 휘둘렀고(이 때 ‘복수’라는 명분을 내세웠다), 혼혈인들이 왕부의 말을 잘 듣고 복종하는 것을 보고 ‘왕의 개’라는 욕까지 하며 증오를 불태웠다.
혼혈인들은 자신들은 아무르의 백성이며, 이미 오랫동안 뿌리내렸기 때문에 갈 데도 없다고 말하며 왕과 가라한과 순혈인들의 자비를 애걸했으나, 단목불루가 죽은 뒤로는 가라한들이 혼혈인에게 냉담한 태도를 보였고, 왕부가 혼혈인들을 도와주는 것을 보고 순혈인들이 ‘적을 배불리 먹이는 짓이다.’ ‘왜 우리는 푸대접하고 저놈들은 잘 대해주느냐?’고 주장하며 분노를 더 불태웠기 때문에 혼혈인들은 가면 갈수록 입지가 좁아졌다.
그래서 240년 동안 순혈인들은 혼혈인에게 여러 번 폭력을 휘둘렀고, 때로는 폭동을 일으켜서 혼혈인을 죽이거나, 그들의 재산을 빼앗거나, 그들을 고문하거나, 납치해서 종으로 팔거나, 성범죄를 저지르거나, 그들의 집에 불을 지르기도 했다.
결국 더 이상 참을 수 없게 된 혼혈인들은 아무르를 떠나기로 마음먹었고, 이미 먼 서쪽으로 떠난 카르마키족을 따라가는 대신 아무르도, 카르마키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은 늑대의 땅으로 간다.
아무르군과 아무르의 순혈인들이 쫓아오지 못하도록, 나무바다에서 아주 멀리 떨어진 남쪽 땅으로 내려왔고, 그곳에 자리를 잡은 뒤 황석리인이 태어난다. 황석리인은 어버이로부터 자신의 동족이 남쪽으로 내려온 사연을 전해 듣고 자랐고, 어른이 된 뒤에는 혼혈인들을 이끌다가 비교적 이른 나이에 황석리에서 세상을 떠났다.
( → 이상은 황석리인을 보고 떠올린 가설이었습니다)
3. 1.도 2.도 아니라면, 단목다루와 혼혈인들이 아무르의 백성으로서(그리고 군사[軍士]로서), 나무바다를 뚫고 늑대의 땅으로 내려가 선주민을 무릎 꿇리고 새 땅을 ‘개척(사실은 점령)’해서 뿌리를 내린 뒤 그곳에서 세상을 떠났다고 가정할 수도 있다. 아사와 단목불루가 살아 있을 때는 강원도만 손에 넣었다가(아우라지인), 그로부터 261년이 흐른 뒤에는 아무르가 북쪽이나 서쪽의 땅을 잃어버린 대신 남쪽인 늑대의 땅을 침략/점령하고 영토를 ‘보충’한 건 아닌지(황석리인). 그렇다면 아우라지인과 황석리인은 아무르 점령군의 사령관일 수도 있다(고인돌이 지배계층의 무덤이라는 연구결과를 놓고 보면 그렇다는 이야기다).
4. 가라한 아사가 죽은 뒤, 단목다루와 혼혈인들이 아무르 순혈인들의 박해와 탄압을 피해 늑대의 땅으로 달아났고(아우라지인), 그들은 오랫동안 강원도에서 살다가 261년 뒤 북쪽에서 창칼을 들고 내려와 늑대의 땅을 점령한 아무르 군사가 단목다루의 후손들을 죽이려고 하자, 남쪽인 충청북도로 달아나 다시 뿌리를 내렸다(황석리인).
저는 이 가운데 세 번째 가능성이 맞기를 바랍니다만, 역사와 현실에 비추어 생각해본다면 불행하게도 첫 번째 가능성이나 두 번째 가능성이나 네 번째 가능성이 더 현실적이에요. 그나마 세 번째 가능성을 빼고 나면 단목다루에게 ‘덜 불행한 현실’은 첫 번째 가능성이고요. 정말이지 씁쓸하기 그지없습니다. 첫 번째 가능성과 두 번째 가능성은 오늘날의 한국사회에서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인지라 더욱 절망스럽군요(쓴웃음).
『불의 검』에서는 단목다루 공자가 가라한 아사(산마로)의 아들로 받아들여졌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고 아시아나 아프리카인의 피가 섞인 아이들이 한국의 ‘순혈’ 시민들에게 증오를 사고, 욕을 먹고, 매를 맞고, 괴롭힘을 당하니 이 일이 ‘지나간 옛날 일’ 같지가 않습니다.
새해를 맞아 답답한 마음을 추스르고 몇 자 적어 봤습니다.
-「광야」의 주인공인 김재우처럼 ‘미쳐나가보다, 미쳐가나보다!’라고 되뇌며 한숨을 쉬는 돌베개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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