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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나 소설, 영화속의 내가 좋아하는 인물들은 대개 상대방에게 한없는 신뢰와 사랑을 품고 있지만 결국은 짝사랑으로 끝나고 마는 사람들이다. 그들의 그러한 한결같은 사랑을 보면서 내가 그 상대방이라면, 받아들였을 것 같은데라는 생각을 하고는 하지만.주인공들은, 그 사랑의 대상인 상대방은 결국은 절대 받아들이지 않는다. 아니면 사랑의 주체인 그 인물 스스로의 자의든 타의든 결국은 사랑하는 사람과 멀어지게 된다. <테르미도르>의 쥴르가 그랬고, <올훼스의 창>의 레오니드가 그랬고, <불새의 늪>의 마누엘이 그랬고.......
<북해의 별>의 에드와르도 그런 사람 이었다.
솔직히 유리핀 멤피스, 정말 부족할 것 없이 멋진 사람이다. 좋은 집안 태생에 잘생긴 얼굴, 군인으로서의 뛰어난 업적, 훌륭한 인품,빼어난 웅변력,사랑하는 사람에게 진심의 마음을 고백할 수 있는 화술,뭐하나 빠질게 있겠는가.그야말로 완벽 영웅이다. 그러나 그를 연적으로 삼아야 했던 에드와르 브리가 대공도 뒤질 것은 없다. 그에게 부족한것을 고른다면 몸이 약하다는 것과 조용하고 내성적인 성격 정도,
하지만 에델을 사랑하는 마음은 두사람 다 똑같은데, 에델은 이미 유리핀을 사랑하고 있었던 것이다. 에델의 연인인 유리핀을 굴욕과 죽음으로 몰아넣은 에델의 오빠 에몬 라루는
훌륭한 인품과 부족하지 않은 지위의 브리가 대공을 에델과 엮어준다. 물론 에드와르로서도 더할 수 없이 좋은 혼처였지만, 에드와르의 머리속에는 그러한 권력적, 현실적인 야심대신 에델에 대한 사랑 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 헌신적인 사랑이 에드와르를 절망으로, 결국 죽음으로 몰아넣었다.
그는 아내와의 결혼 후 첫날밤도 기다리겠다는 말 한마디로 대신한다. 당신의 마음이 내게로 돌아오기를 기다리겠다. 남편이라는 지위로 당신을 강제로 범하거나 하지 않고 오로지 당신 스스로 당신의 마음을 내게로 돌려주기를 기다리겠다. 그는 자신이 사랑하는 여인의 인격을 존중했다.그의 사랑으로.
그러나 아무리 기다려도, 아무리 사랑한다 말해도 결코 마음을 돌리지 않는 망부석 같은 아내.그녀의 마음은 산자가 아닌 죽은 자에게만 열려있었다. 산 자도 아닌 죽은자, 산 자라면 결투라도, 아니면 설득이라도 해보겠지만 상대방은 이미 죽은 사람, 사라져버린 사람이다. 그로서는 불가항력의 존재인 것이다.
그는 점점 고통에 빠져간다. 그것은 헤어날 수 없는 절망의 나락이다. 어떻게 죽은 자와 대적할 수 있단말인가. 자신과 함께 있을때의 아내의 모습은 항상 우울하고 슬퍼보였는데,
조카딸에게 사랑하는 사람의 이야기를 하는 그녀의 모습은 너무나도 밝고 평안한,행복한 모습이었다. 자신과 동석할때는 결코 찾아 볼 수 없었던 모습.
그는 고통의 나날을 혼자서 참아보기도 하고, 그녀가 돌아올 거라는 일말의 희망도 가져보기도 하고 때로는 술로 이기려 하기도 한다. 형언할 수 없는 마음의 고뇌와 질투와 에델에 대한 자신의 사랑을 혼자 힘으로는 절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는 술에 취해 결국 잠자는 에델의 침실에 들어가 그녀를 범한다. 단순히 성적 욕망과 정복 심리에 의한 범죄적인 행위-강간이라고 차갑게 단정내리기에 그의 고뇌는 너무나도 깊었다. 곧 아침에 깨어난 후 그는 후회한다. 절망한다.자신과 아내사이에 더이상은 깰 수 없는 벽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에델도 그를 질책할 수 없었다. 그의 마음속의 가장 큰 상처는 바로 자신에 의해 생긴 것이기 때문에.
그 사건 후 그는 마음을 바꾼다. 그녀의 마음을 얻기를 아예 체념해 버렸다.단지 그의 곁에 있는 그녀를 바라만보는 것으로,단지 사랑했음에 행복한 것으로 만족하기로 한 것이다.
그의 결단은 두사람의 관계를 서서히 변화시켰다. 아내와 남편의 의무로 종속지워진 관계가 아닌, 어느 한쪽이 일방적으로 상대방의 사랑을 갈구하는 관계가 아닌,
정으로 맺어진, 시간으로 맺어진 친구로.
그러나, 외면적 관계를 그렇게 변화시키기 위해
그가 겪어야 했던 고통은 또한 얼마나 큰것이었을까.
손만 뼏으면 가까이에 있는 사람에 대한 사랑을 단념한다는 것이
얼마나 가슴아픈 일이었을까.
그러나 그는 포기했다.
그녀를 위해.
그리고 그 자신을 위해.
그리고 그는 죽음에 이른다.
그녀를 위해.
나라면, 내가 에델이라면 에드와르 정도의 사랑과 정성을 가진 남편이라면 절대 마음을 열지 않을 수 없었을 것 같다. 그사람을 자기 남편으로 인정하고, 아이도 낳고. 그렇게 둘이서 행복하게 살아나가는 방향을 찾았을 것이다. 물론 나중에 돌아온 유리핀에게는 미안하더라도. 나는 내가 에델의 입장에 있다면-만일 나를 정말로 사랑하고 내 곁에 있는 사람과, 내가 정말 사랑하고 그도 나를 사랑하지만 이미 찾을 수 없는 사람이라면 - 그 둘중 나는 전자를 택할 것 같다.
개인적으로 전에 바람기 테스트에서 나의 바람끼는 60%라는 것을 보았다.--; 오는사람 안막고 가는 사람 안 잡고. 사랑이 떠나가면 그 사랑에 계속 매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곧 다가온 새로운 사랑에 적응한다는 것. 내가 봐도 나는 그런 사람 같다.
과거에 계속 매달려 있는것. 어떻게 보면 지고지순할 수 도 있지만 현실속의 나를 사랑하는 사람은 그가 전혀 대적할 수 없는 '과거'때문에 한없이 상처받고 허물어지는 것이다.
나는 현실속에서 나를 사랑하는 사람을 받아들이고 싶다.수년의 세월동안,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모를 사람만을 눈먼 해바라기 처럼 기다리다가 정작 내 옆의, 나를 사랑하는 사람을 상처입히는 일은 하지 않고. 그사람이 상처받는 모습을,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차마 견딜 수 없기 때문에. 차라리 내가 허물어져버리는 한이 있더라도,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 내 눈앞에서 고뇌하는 모습을 나는 외면할 수 없다.
그만큼 나는 약한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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