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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정말 오랜만입니다. 그동안 너무 바쁘고 피곤해서 글을 올릴 여유가 없었던지라, 여러분의 주옥(珠玉)같은 글들을 읽으면서 제 답답한 마음을 달래야 했지요. 이제부터는 될 수 있으면 글을 자주 올리려고 합니다.
하고 싶은 말들은 너무너무 많지만, 지금은 우선 두 가지만 전해드리도록 하지요.
1. 지난해 9월에 일어난 일입니다. 역사를 다루는 동아리('다음'넷의 인터넷 카페고, <역사스페셜>이라는 이름을 갖고 있어요)에서 알고 지내던 한 후배 (정XX)가 갑자기(!) 제게 전화를 하더군요. "좀 만날 수 있을까요?"라고 물어봅디다. 그래서 별 생각을 안 하고 "그래요."라고 대답했죠.
집에서는 제가 그 동아리에서 회원이자 운영자로 활동하는 것을 아주 싫어하기에(이건 나중에 따로 해명할 기회가 있을 겁니다), 집안 식구들 몰래 만나야 했습니다. 서울 한복판에서 만난 그 후배는 제게 "어디 가서 밥이나 먹자"고 했고, 전 영문도 모르고 그냥 따라갔죠. 처음에는 중국집에 가서 밥을 사 먹으려고 했는데, 세상에, 요리 값이 장난이 아니게 비싸더군요. 그래서 거기서 밥 먹는 건 포기하고 그냥 죽 파는 집에 갔습니다.
그 친구는 그 식당에 앉은 뒤에야 심각한 표정을 짓고 "이XX(제 본명입니다) 선배님, 저 유학가요."라고 말했어요. 그제야 '아하! 이 얘기를 하려고 나를 불렀구나!'라는 걸 깨달았답니다.
그래서 "어디로 가려고요?"라고 물어봤죠. 그랬더니 "러시아요."라는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유학을 떠나겠다는 말도 믿기 힘들었는데, 하필이면 러시아라니, 정말이지 황당하기 그지없었죠.
하지만 그건 본인의 선택이니 남인 제가 뭐라고 할 건 못 되어서, 그냥 "알았다."고만 말하고 더 이상은 묻지 않았습니다.
대신 걱정이 되어서 그에게 "거기 가면 백인 우월주의자인 스킨헤드(빡빡머리. 나치즘을 찬양하고 '모든 백인들의 단결'을 외치며, 백인이 아닌 사람들만 골라서 공격하는 극우파들)족이 많으니, 그놈들에게 당하지 않게 조심해요. 알았죠?"라고 말했죠. 그는 "네, 알겠습니다. 걱정해주셔서 고마워요. 저도 그런 이야기를 많이 들었어요."라고 대답했습니다.
문득 호기심이 생겨서 그에게 "그런데 러시아 말은 할 줄 알아요?"라고 물어보았고, 그는 저에게 간단한 러시아어 낱말 몇 개를 가르쳐주었죠. 저는 '이 정도면 걱정 안 해도 되겠네!'라고 생각하고 안심했습니다.
그가 죽을 다 비우고 자리에서 일어서려고 할 때, 저는 그에게서 2~3년 전에 빌려준 책 두 권(김태권 화백의 역사만화인『십자군 이야기 1 - 충격과 공포』/'참교육기획'이 엮은 책인『이상한 나라 日本』)을 가방에서 꺼내서 저한테 주더군요.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저는 그 두 책을 그에게 빌려준 지 오래라 깨끗하게 잊고 있었고, 그에게서 책을 되돌려 받을 거라고는 기대하지도 않았던지라 깜짝 놀랐습니다. 그는 제게 책을 돌려주면서 "이 두 책이 저에게 많은 도움을 주었어요. 빌려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라고 말했죠.
그와 헤어지고 집으로 돌아가면서 정말 만감이 교차하더군요. '저 녀석은 그래도 유학을 갈 정도로 자기 갈 길은 확실하게 정해놓고 있는데, 대학원에서 빌빌거리고 있는 나는 뭐지?'라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그래서 조금은 씁쓸했답니다(쓴웃음).
그는 지금쯤이면 모스크바에서 열심히 공부하고 있겠죠. 부디 신(神)께서 그를 지켜 주시기를 빌 뿐입니다.
2. 일곱 달 전에 이 게시판에 올린 글인「▩롯데월드 민속박물관에서 보낸 편지」에서 “포도대장 옷을 입고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게 지겹다”고 투덜거렸던 걸 기억하세요? 그랬던 제가 이제는 훨씬 나은 환경에서 일하고 있답니다.
이제는 1주일 내내 아르바이트를 하는 게 아니라 1주일에 두 번, 그러니까 토요일과 일요일에만 나와서 일하면 되고, 포도대장 옷을 입고 돌아다니는 게 아니라 자리에 앉아서 떡살(떡 반죽에 찍어 떡의 무늬를 만드는 옛날 도장)에 먹물을 묻혀 화선지에 찍는 일이나, 박물관이 소장한 가야/신라 토기를 바탕으로 인쇄한 그림을 내 주고 손님이 알아서 색칠하게 하는 일, 박물관을 처음부터 끝까지 안내하고 설명하는 일, 짐 나르는 일을 해요. 전보다는 스트레스를 훨씬 덜 받게 된 거죠.
이 일을 하다 보니 ‘어떻게 하면 어린이들에게 역사를 쉽고 재미있게 가르쳐 줄 수 있을까?’라는 문제를 보다 쉽게 풀 수 있게 되어 기쁩니다. 아이들에게 여러 번 설명을 하다 보면 '요령'이 생기거든요. 나중에 아이들에게 안겨줄 책(역사책)을 쓸 때에도 이 경험이 큰 도움이 되겠지요. 그렇게 생각하면서 '열심히, 부지런히' 일하고 있습니다.
이 일을 하면 나중에 박물관에 정식으로 취직할 때 '경력'을 인정받아서 많은 도움을 받기도 하죠. 그래서 이 일을 시작했고, 큰 후회는 안 해요. 나중에 취직하게 되면 이 사이트에 그 사실을 알릴게요.
― 집이라는 "유배지"에 갇혀 있으며, 목뼈가 뻐근하고, 툭하면 피곤하고, 눈이 메마른.....돌베개가 드림
*덧붙임(추신) : 풀어놓을 이야기보따리가 너무 많습니다. 그러나 서두르지 않고, 차근차근, 하나씩 하나씩 풀어놓을 것입니다.
*덧붙임 2 : 25일째(아니 한 달 째였던가?) 감기를 앓고 있습니다. 모두 "감기 조심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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