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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셔요.
무사파입니다.
그저께, 오랜만에 혜화동에 가서 추억에 잠긴데다...
오늘 어떤 분의 전화를 받고 잠시 당황한데다...
아래,
비요른님이 오메가님께 주신 거한 축하메시지에서,
마지막 부분 (동네 아주머니의 선을 권유하시는 부분...)을 보니...
잠시...
선을 봤던 일들이 생각이 나서 좀 적어볼까 합니다. (먼산... )
지금까지 선을 몇 번 봤습니다.
집안에서 주선한 적은 한 번도 없고...
죄다, 일때문에 알게 되고, 그러다 친하게 된 분들이 주선한 것입니다.
(저희 어머니는, '늬들 해보고싶은거 다 해보고 정 할거 없어져서 결혼이나 해볼까...하는 생각이 들면, 그때 결혼해라. 결혼은 늬들 맘대로!'를 주장하시는 분이지요. 제 위 언니 셋 중 미혼이 둘입니다. 각각 36세 70년 개띠 , 39세 67년 양띠 이지요...ㅋㅋ)
아무 생각 없이 밥 먹으러 나갔는데,
옆에, 제가 만나기로 한 그 분의 형님되시는 분, 동생되시는 분, 아들 되시는 분, 조카되시는 분, 직장 동료되시는 분들이 떡하니 앉아있을 때의 그 당혹스러움이란...
--;;;;
그거 그거... 안당해보면 모릅니다...ㅠ.ㅠ
지금 적는 것은...
제가 본 두번째 선으로...
제 인생에 열 손가락 안에 꼽히는...
어마무시하게 당황하고 황당해했던... 경험입니다. 으흐 --;;;;
******
그러니까, 때는 200x년... 이었습니다.
모 사에 계시는 p이사님께서 연락이 오셨어요.
밥이나 같이 먹자는...
말씀은 감사하지만, 요즘 일이 좀 바빠서 나중으로 좀 미루면 어떠냐고 말씀드렸더니,
그래도 밥은 먹을거 아니냐, 맛있는거 사줄테니 나와라! 하시더라구요.
제가 먹는거에 아주 많이 약합니다. 더더구나 맛있는거 사주신다는데...
잠시 고민하는 척 하다가 그럼 언제쯤...이라고 여쭤보니...
토요일 저녁 5시인지 6시인지...지금은 시간이 좀 가물가물합니다만...
암튼 그러시더군요.
(연락받은 날은, 목요일이었습니다.)
장소 어디로 하시겠냐고 물으시더니,
저희 집쪽에서 가까운,
혜화동 마로니에 공원 근처에 있는 로마의 휴일이라는 까페 겸 레스토랑... 으로 정하시더라구요.
하필 로마의 휴일이냐...며 난감해했지요.
왜냐...
제가 거기에서 첫번째 선을 봤거든요. --;;;;
나중에야 알게 된거지만,
그곳이 혜화동에서 소개팅장소, 내지는, 캐쥬얼한 중매 내지는 선보는 명소랍니다. --;;;;
다른 곳을 하고 싶었지만... 어쩌겠습니까...
나이도 저보다 한참이나 위이신... 제일 윗 숙부뻘 되시는 나이의 분께서,
일부러 저를 배려하여, 집 가까운 쪽으로 정하신 것을요...
알겠다고 말씀드리고 전화를 끊었지요.
그러나...그러나...
누가 알았겠습니까...
제가 그날부터 비상체제로 돌입하여 격주 주 5일 근무제로,
아무도 회사에 안나오는 그 주 토요일까지 회사에서 밤샘을 하게 될 줄은?! ㅠ.ㅠ
마음이야...
토요일 오전에 얼른 집에 가서,
화장은 둘째치고,
샤워라도 좀 얼른 하고 옷 갈아입고 나와야지...했건만,
오후 2시 즈음에야 연락이 되는 동료로 인하여...
별 수 없이 저까지 그 시간까지 계속 회사에서 붙박이로 버티며,
제가 할 부분만 먼저 죄다 해놓고 있었지요. --;;;
일 다 끝내놓으니 오후 4신가 5신가...
좀 늦을거같다는 전화를 드리고 회사를 나섰습니다.
혜화동이면 집에 가는 길 쪽이니, 들렀다가 밥 먹고 차 한잔 하고 집에 들어가면 되겠다...했습니다.
그 이사님이야, 제가 어떻게 살고 어떻게 일하는지 뻔히 다 아시는 분이신지라...
쬐끔 민망하긴 했어도...
뭐, 선수끼리 다 아는 처지에...하면서,
맘 푹 놓고 그냥 나갔습니다.
며칠 밤샘하여 눈은 뻘겋고 머리는 떡진데다,
세수는 고양이세수하고,
옷에는 담배냄새가 팍팍 풍기는 그대로...말이죠 --;;;
도착하여, 야외에 있는 좌석쪽을 휘휘 둘러보다,
안으로 들어가 좁은 통로를 이리 저리 둘러보니,
이사님이 계시더군요.
'어 여기야!'하면서 손을 드시는데,
그 분 옆에, 저와 비슷한 또래로 보이는, 키도 아주 큰 젊은 남자분이 양복을 쫙 빼입고 앉아계시다가 엉거주춤 일어나시더군요.
그때에도 몰랐습니다.
그냥, 뭐... 근처에서 일 보시다가,
저와 만나는 시간이 맞아떨어져서 같이 밥 먹으려고 하시나보다...그랬지요.
명함을 드리고 인사를 드리는데,
그 분, 자기는 명함 안가져왔다며 당황해하시는 겁니다.
속으로 이상하다 생각했지요.
일때문에 양복입고 다니는 냥반이 어찌 명함을 안챙기나...하고 말입니다.
근데, 그때, 이사님 왈,
'어. 내 조카야.'
아...
그때 알아채야만 했습니다. ㅠ.ㅠ
그러나...
저는 넘 둔한 편입니다. ㅠ.ㅠ
이전에 선 본 경험이 딱 한 번인데다,
그나마도, '나는 선보러 나가는거다'라고 인식하고 있던 것이었는지라...
그 이사님이, 왜, 굳이 토요일에 나를 만나자고 하신 것인지,
굳이 혜화동 소개팅의 명당인 로마의 휴일에 자리를 잡고, 조카를 데리고 나온 것인지에 대해,
아무런 감도 못잡고, 그저 '아 예 아 예...'...ㅠ.ㅠ
속으로만,
'일하는 사람이, 일때문에 양복을 입고나오면서, 어째 명함 한 장을 안챙기냐, 이상하네'하는 생각만 하고 말았지요.
맛있는거 사주신다고 하셔서 나온겁니다! 라고 하면서 메뉴를 펴서 제일 비싼 식사를 떡 하니 시키고,
그 조카분도 식사를 시키셨습니다.
그러자 이사님이 주문을 하시더군요...
근데, 당신 것은 오렌지 쥬스를 달랑 시키시는 겁니다.
식사 안하시냐고 여쭸더니,
급한 일이 있어 먼저 가야겠다고 하시더라구요.
잠시 후 쥬스 나오자마자,
그대로 들고 홀딱 원샷플레이...
천천히 이야기나누라며 계산서를 들고 일어서시는겁니다. --;;;;
정말이지...
그때도 몰랐습니다. ㅠ.ㅠ
다른 분들과 함께 모임을 해도 그런 일이 종종 있으시기에...
진짜로...정말로...회사에 바쁜 일이 있어서 가시는걸로 생각했답니다 ㅠ.ㅠ
이사님 가시고나자...
상황은 왠지 아주 아주 뻘쭈~~~~~~움한 분위기가 됐지요.
왜냐...
360도 서라운드 시스템으로 선보는 쌍쌍들의 이야기...
스프에서 메인까지 한 30분은 넘게 걸리게 나오고... (나중에 알고보니, 이 또한 이사님의 작전이었다는... ㅠ.ㅠ)
그 냥반은 넥타이에 넥타이핀까지 한데다 커프스까지 달고, 빳빳하게 다림질한 와이셔츠에 수트 차림...
저는 며칠동안 잠도 못자고 세수도 제대로 못한데다 대충 청 점퍼에 구겨진 바지입고 있는데다 너무 너무 피곤해서 거기에서 머리 박고 자고싶은 심정....
이사님 조카라는 것 외에, 이름꺼정 포함하여 아는 것은 아무 것도 없고...
게다가, 유일한 끈인 이사님은 쥬스 한 잔 홀라당 마시고는 표표히 날아가버리신...
흑... ㅠ.ㅠ
아주 아주 쌔~~~하고 뻘쭘한 분위기 그 자체...
상상이 가십니까? ㅠ.ㅠ
그래도, 식사나오면서,
서로, 그 뻘쭘한 분위기, 우짜든둥 상쇄시키고자,
서로 서로 말을 꺼내고 붙이고... 이름 물어보고 답하고...
뭐 그러기 시작했습니다.
다행히도 그 냥반도 마케팅쪽에서 일한다기에 공통관심사가 꽤 되더라구요.
홀라당 날라버린 이사님 씹기를 비롯하여 이런 저런 얘기를 계속 했습니다.
그러다, 한참 후에 여쭤보기 시작했습니다.
대화의 전말은 다음과 같습니다.
me : 회사가 이 근처신가 봐요.
그 냥반 : 아니오. 강남이에요.
me : 아. 그럼 댁이 이 근처신가 봐요.
그 냥반 : 아니오. 분당인데요.
me : (머리 속이 서서히 복잡해지기 시작...) 아 그럼 이 근처에 볼 일 있어서 오신건가봐요.
그 냥반 : 아니오. 그건 아닌데요.
me : (그제서야 눈치를 채기 시작)저어기...저어어기...혹시...에... 설마...???
그 냥반 : (피식 피식 웃으며) 삼촌이, xx씨 얘기 하시면서 만나보라고 하시기에 나온겁니다.
me : (망.연.자.실...)
그 담에는,
무슨 말 했는지, 아무 기억 안납니다.
기억하는건 딱 두가지!
최대한 예의지키며 말 받아주되, 체할만큼 신속히 먹었다는 것,
또 하나는, 동대문 프레야 mmc에 영화보러가자는 그 냥반 얘기에 '아이고. 별 말씀을. 집도 머신데. 차도 끊길지도 모르는데.'하면서 얼른 보내놓고 후다닥 집으로 돌아왔다는 것...이지요. --;;;
눈앞에 닥칠 때까지도 그 상황을 저어어언혀 눈치채지못한 제 자신의 아둔함과
아무리 외양이 중요치 않다 해도, 최소한의 예의도 못갖추고 나간 제 자신의 철딱서니없음이 어찌나 창피하던지...ㅠ.ㅠ
너무 너무 창피해서,
집에 돌아와서, 이불 푹~~~ 뒤집어쓰고......잤습니다.
다음다음날인 월요일...
아니나다를까...
이사님 전화가 땡그르르 오시더라구요.
울 조카 어떻냐, 어디 가서 못생겼단 말은 안듣고 오는 애다, 걔가 너보다 한 살 어려도 지적 수준은 얼추 맞을꺼다, 걔 직장도 탄탄하고 인정도 받고 있다, 영화 꼭 같이 보고싶었다는데 왜 거절했냐, 담주에 함 꼭 같이 더 봐라 등등등...
한참을 가만히 듣고 있다가...
조용히... 아주 조용히 밖으로 나가,
전화기를 부여잡고,
어어어어어허헝 하며 통곡을 했습니다.
이사님 놀라시더군요.
무슨 일이냐고. 그 놈이 뭐 잘못했냐고. 실수했냐고.
'이사님...이게 뭐냐고요
얘기를 해주셨어야죠 얘기를...ㅠ.ㅠ
선 보는 자린 줄 알았으면,
조카분 나오는자린 줄 알았으면,
머리를 빨래 비누에라도 빨고 나가던지,
가다가 중간에 목욕탕에 들러서 샤워라도 하던지,
옷이라도 사서 바꿔입고 나갔을꺼 아닙니까 ㅠ.ㅠ
어떻게 사람을 글케 x팔리게 만드시냐고요 엉엉엉 ㅠ.ㅠ '
******
그 이후,
그 분이 예의상 한 두어번 전화주셨는데, 이 핑계 저 핑계 대면서 안나갔습니다.
도저히... 나갈 자신이 없더라는... 것이었지요 --;;;
흑... ㅠ.ㅠ
그 일이 있고나서,
이사님께선 제게 누구 다른 사람을 보여주거나 소개를 시켜주고싶다, 하시면 미리 미리 꼭꼭 연락을 주셨답니다.
덕택에 저도 미리, 선보는 자로서 갖춰야 하는 최소한의 예의(머리빗기, 세수하기, 단정하게 옷입고 가기 등등)는 갖추고 나갔구요. ^^
덕택에,
이사님의 다른 조카(외조칸지 친조칸지...)되시는 분과도 봤고,
며느리되시는 분의 동생이라는 분과도 보고...
아무튼 그 분 주변 분들만 직간접적으로 한 너댓분 본거 같습니다.
(어쩌면 그 분들... 서로들 다 아실테니, 함께 모여 계를 하실지도... --;;; )
다른 분들로부터도 비슷한 경험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밥먹으러 나가보니,
옆에 아들 있고 조카 있고 형님 있고 아우 있는... ㅋㅋㅋ
물론, 저 역시 상태가 좀 나앗던 적도 있지만, 역시나 비슷하게 잠 못자고 밤샘하고 옷 못갈아입고...그러고 나간 적도 종종 있습니다.
그래도, 한 번 경험해봤다고,
두번째의 봤던 선에서 느꼈던 그 황당함을 어느 정도 가뿐하게 넘기게 되더라구요 ㅎㅎㅎ
마지막에 봤던 선에서는, 거의,
'배째라! 내가 낸데!'하면서 나가기도 했지요 ㅋㅋㅋ
그 배째라 모드가 먹힌 건지는 몰라도,
2003년 이후 선을 본 적은 없습니다 ㅎㅎㅎ
선을 보다 느낀건데요...
아쉬운 것은...
선...이라는 그 컨셉때문인지,
참 좋은 친구가 될 수 있는 분들인데도 불구하고,
제가 별로 결혼생각같은 게 없고, 마냥 일만 좋다... 뭐 이런 얘길 하고 나면,
이후에 그쪽도, 저도... 서로 다시 연락하기가 상당히 모호하고 이상한...
그런 상태가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차라리 그냥 다른 곳에서 만났으면 친구가 될 수도 있는 사람들인데...
선이라는 그 컨셉때문인지,
친구처럼, 동료처럼, 형제처럼 지낼 수 있는 많은 사람들을 잃은 것이 아닐까 하는 맘에...
그저 많이 아쉽고... 아쉬울 따름입니다.
******
며칠 독감을 좀 앓았는데,
영국에 다녀온 동생을 만나러 혜화동에 나갔다가 약속장소로 향하면서,
바로 그, 문제의 장소인 로마의 휴일 근처를 지나게 되었지요.
연달아 두 번을 선을 본 바로 그 장소...ㅋㅋㅋ
그 두번째 선 이후에 거기 지나칠 때마다 많이 웃었는데,
이번에도 혼자 많이 웃었습니다. ^^
오늘은, 노동부 제출할 서류떼러 이리 저리 돌아다니는데,
예전 직장 동료였던, 지금은 형제처럼 지내는 분이 연락오셨더라구요.
선볼 생각 없냐고요.
잠시 뜨악해하다가 대답해줬습니다.
'형.
그 냥반, 혹시, 기무라 다쿠야 닮고,
임재범이랑 목소리 비슷하고,
에드 해리스와 숀 코너리 닮고,
김혜린 샘 만화작품 속 주인공들이랑 발가락이라도 하나 닮았으면 선보러 나갑니다!'
잠시 침묵과 함께 그 형 왈,
'무슨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 하는게요? 버럭!'
그리고 바로 전화가 툭 끊기더군요. -ㅜ
******
이야기가 많이 길어졌네요. ^^;;;;
즐거운 밤 되셔요 ^^/*
p.s.
비요른님...오메가님...
선보러 갈때엔... 나름대로의 심신적 안정과 철저한 준비는 물론...
서로 쌔하고 뻘쭘한 분위기를 연출하지 않기 위한...
철저한 만반의 준비가 필요합니다...
북별파이시니... 저보다 그런거 더 잘 아시리라,
그리고, 또한, 더 화려한 테크닉의 연출 또한 가능하리라 사료되는 바...
이 몸은, 그냥 구석에서 응원을 열심히 하겠으니...
힘내십시오!
단!
제 이상형 인물 나오면...아시죠?
제게 전화주셔요오오오오오~~~~
그 곳이 어디라도... 달려나가겠습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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