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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이네요.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지 정확히 2주 하고도 사흘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아주 오래 전부터 이런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다고 느끼는 불량 회원 돌베개가 인사 올립니다.
제가 두 달 전에 올린 글에서 "어쩌면 롯데월드 민속박물관에서 아르바이트를 할지도 모르겠다."고 말씀드렸던 거 기억하세요? 그런데 그 '꿈'이 정말로 이루어졌어요. 1주일 내내(쉬지도 못하고) 아르바이트를 하게 된 거죠(롯데월드 백화점은 월요일에는 쉬는데, 저는 그 때도 쉬지 못하고 나와서 박물관을 위해 일해야 한답니다).
좀 자세히 설명해드리자면 이래요.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는 포도대장 옷을 입고 오후 5시까지 박물관 안을 돌아다니면서 손님들과 함께 사진을 찍어야 하고, 토요일과 일요일(그러니까 주말이죠)은 평상복 차림으로 이름표를 목에 걸고 손님들에게 목(木)공예품을 만드는 걸 가르쳐 주거나 단체 관람을 온 손님들을 이끌고 박물관 전시실을 안내하는 일을 하죠.(최근에는 목요일에 사람이 많이 몰리는데다가 박물관에서 '특별 체험 행사'를 하기 때문에 목요일에는 평소보다 훨씬 일찍 출근해야 합니다)
이 아르바이트는 ..... 예, 처음엔 좋았죠. 전시실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면서 전시실의 유물을 훔쳐볼 수 있어서 좋았고, 손님들과 함께 사진을 찍으면서 주목받는 것도 좋았어요.
그런데 아무리 좋은 것도 하루 이틀이지 1주일이 지나니까 그 모든 것에 질릴 수밖에 없더군요. 바뀌지도 않고 똑같이 전시되고 있는 유물을 보면 짜증이 나고, 유치하기 그지없는 박물관의 설명을 정확하게 외워서 녹음기처럼 되풀이해야 하고(그나마 그것도 40분이라는 제한시간이 있는데, 충실하게 설명하려다 보면 어쩔 수 없이 그 시간을 넘겨야 하더군요. 정말이지 답답해서 못 견딜 지경입니다),
손님들 가운데 7~8세쯤 되는 어린아이들은 포도대장 옷을 입고 칼(모조품이예요)을 찬 저를 보면서 "무섭다"느니 "이상하게 생겼다"고 말하면서 피하고(어떤 아기는 저를 보고 울면서 제 아빠한테 매달립디다. 그 순간, 화가 치밀어 올랐죠),
시간을 쪼개서 '부드러운 목소리'로 설명하면 (대부분이 초등학생인) 손님들은 지루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다리를 비비 꼬거나 얼굴을 찌푸리고, 그럴 때마다 '내가 도대체 여기서 뭐하고 있는 거야? 설명해 줘 봤자 알아듣지도 못하고 재미없어하는 아이들을 상대로 마치 세뇌하듯이 재미없는 사실을 머릿속에 집어넣어줘야 하는 이유가 뭐냐고?'라는 생각이 들어 회의가 든 답니다.
차라리 10대라면 - 전시한 내용을 어느 정도 이해할 테니까 - 보다 재미있게 설명해 줄 수 있을 텐데, 이곳에 오는 손님은 대부분 초등학생이나 유치원생을 동반한 부모이다 보니 설명을 할 때마다 '최대한 쉽게, 최대한 재미있게, 최대한 부드럽게'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려요. 물론 애들이 시간을 투자한 만큼 이해하는 것 같지도 않고요. 그런데도 이런 일을 계속해야 한다는 게 얼마나 (정신적으로) 피곤한 일인지, 안 겪어 본 사람은 모를 겁니다.
포도대장 옷을 입고 다니는 것도 정말 귀찮기 짝이 없어요. 오늘은 애들이 절 보고 "와, 아저씨 머리 정말 크다(솔직히 얼굴이 둥글넓적하고 살이 좀 쪘음. 뺨이 탱탱하고 눈, 코, 입이 한 데 모여 있습니다. 이마도 넓고요)."며 깔깔거렸고(기분이 정말 안 좋더군요), (이건 아르바이트를 시작할 때부터 그랬지만) 저보다는 제가 가지고 다니는 칼에 더 관심이 많은지 툭하면 "그 칼 진짜예요, 가짜예요?"라고 캐물어서 저를 곤란하게 만들었으니까요(물론 그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너 좋을 대로 생각해라."라던가, "나도 몰라."라던가, "진짜야", "가짜야."라고 대답하긴 하는데, 가짜라고 대답하면 애들이 노골적으로 비웃고 "에이, 저건 가짜야. 무서워할 거 없어."라고 말해 정말 기분이 안 좋습니다. 가짜 칼이면 그렇게 비웃어도 되는 걸까요?).
거기다 요즘은 - 체력이 약해져서 그런지 - 툭하면 졸음이 오고 피곤한데(잠을 자고 또 자도 피곤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4시간 동안 꾸준히, 같은 전시실을 여러 번 돌아야 하니, 지겹지 않을 수가 없어요(그나마 창고에서 남들 눈에 띄지 않게 쉴 수 있길래 망정이지, 안 그랬다면 전 숨막혀 죽었을 겁니다).
물 먹은 솜처럼 무거운 몸을 이끌고 돌아오면 '자고 싶다'는 생각만 들고, 1~2시간 동안 잠을 자다 보면 의욕이고 뭐고 다 사라져서 모든 게 귀찮다는 생각이 들죠. 그래서 하는 일이라고는 컴퓨터를 켜고 인터넷에 접속해서 쓸데없는 정보나 뒤지는 거랍니다. 그러다 보면 시간이 흘러서 어느덧 잘 시간이 되어버리고....저 요즘 이렇게 살고 있어요. 당연히 생산적인 일이나, 운동은 꿈도 못 꾸죠(네, 저도 이게 핑계인 거 압니다. 하지만 몸과 마음이 따로 노는 건 어쩔 수 없다고요).
그래서 요즘은 하루빨리 이놈의 여름방학이 끝나기만 바라고 있답니다. 어차피 여름방학 동안만 하기로 약속한 아르바이트라서, 방학이 끝나면 더 이상은 볼 일이 없거든요. 설령 아르바이트를 계속한다 해도 토요일과 일요일에만 시간을 낼 수 있을 것이기 때문에, 그 때가 되면 숨 좀 돌릴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는 거죠(웃음). 말하자면 박물관 아르바이트 자체는 개학하고 나서도 계속하겠지만, 지금처럼 1주일 내내(!) 하는 건 사양하겠다는 이야기입니다(아이고 끔찍해라....쉬는 날도 없이 계속하라고?). 뭐 그런 이야기를 하려고 자판을 두드린 거죠(쓰다 보니 불평 내지는 성토가 되어버렸지만, 원래는 그런 뜻으로 쓴 이야기가 아니었습니다. 양해를....). 부디 여러분이 이 이야기를 읽고 불쾌해 하지 않으시기를 '간절히, 간절히' 빕니다.
- 몸과 마음이 둘로 나뉘어진 기분이 드는.....돌베개
*추신 1 : 그래도 그 박물관에서 일하는 것이 꼭 기분 나쁜 것만은 아니더라고요. 외국인 손님들과 함께 사진을 찍을 수 있었거든요. 제가 만난 사람들의 국적을 따져보면 필리핀인(농담 아님. 필리핀에서 온 여성과 함께 - 물론 포도대장 옷을 입고 - 사진도 찍었음), 인도인(젊은 여성 관광객들이었음. 당연히 함께 사진을 찍었습니다), 프랑스 백인 두 사람(이 사람들에게 - 프랑스어인 - "아듀"를 썼다가 "영원히 오지 말라는 뜻이냐?"라는 말을 들어 곤욕을 치렀음. 그래서 사과했습니다), 앵글로 색슨족인 백인들(국적은 안 물어봐서 모르겠음), 오스트레일리아(호주)에서 온 백인 소녀 두 명(MBC에서 온 기자랑, 같은 또래의 한국인 통역과 함께 박물관을 관람했는데, 그들을 안내해 주고 사진도 함께 찍었음. 단, 그들이 "이 박물관을 둘러보니 한국 문화가 어때 보이냐?"는 질문을 받았을 때 "독창적이고 훌륭한 것 같아요."라고 대답한 건 마음에 안 들었습니다. 솔직히 말하라면, 그들의 눈에는 한국 문화가 중국의 '아류'로 보일 텐데, 그런 사실은 생각하지 않은 채 한국인 민족주의자들의 입맛에 맞는 의례적인(!) 대답을 강요하는 것 같아서요) 중국인 (한족) 관광객들, 일본인 관광객 등....정말 '다양' 합니다. 특히 아시아에서 온 피부가 검거나 갈색인 손님들을 보면 반가운 마음에 진심으로 웃으면서 사진을 찍었지요(아프리카인 손님은 딱 두 번 봤음).
*추신 2 : 박물관에는 - 발해 지도는 걸려있으면서도 - 발해 역사를 다룬 전시실이 없더군요. 초기 철기시대(지금으로부터 2100년 전)의 유물도 전시되지 않았고요. 게다가 일제시대를 다룬 전시관은 다른 전시관에서 멀찍이 떨어진 곳에 있어 찾기가 쉽지 않았습니다(15년 전에 와 본 적이 있는 저도 그 전시관을 못 찾아서 헤매고 있다면 말 다했죠). 게다가 후삼국 시대라던지, 고려 말기라던지, 서기 1945년 이후의 역사(현대사) 같은 중요한 시기의 역사도 다루었어야 할 텐데, 이상하게도 그런 것을 전혀 찾을 수가 없었어요. 이 박물관은 순전히 '어린이용 박물관'이던가, 그렇지 않으면 '뺄 건 다 뺀 이상한 박물관'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런 박물관을 보니, 우습게도 '나도 이것보다 좋은 박물관을 만들 수 있겠네 뭐.'라는 말도 안되는(!) 만용을 부리고 싶었어요. 오만하다고 꾸짖으실 지 모르겠지만, 그게 제 진심입니다.
*추신 3 : 어떤 일본인 아주머니는 포도대장 옷을 입고 돌아다니는 저를 가리키면서 “사무라이”라고 불렀습니다. 물론 저한테 직접 그렇게 말씀하신 건 아니고 자기 아들한테 그러시긴 했지만, 기분이 참 묘하더군요. 아무리 생각해도 사무라이가 입은 옷과 제가 입은 옷이 같을 리는 없는데 왜 그런 ‘설명’을 하셨는지.....
*추신 4 : 이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가장 참기 힘들었던 게 또 있습니다. 다름이 아니라 제 또래의 커플들이 박물관에 들어와서 꼭 껴안고 (또는 자기 팔을 상대의 허리에 두르고) 애정을 과시하는 것이었죠. 그들이 킥킥거리면서 유물을 보고 ‘재미’도 보는 모습을 보니, 질투가 나고 화가 치밀어 올라서 정말 온갖 가지 종류의 안 좋은 말이 다 생각나대요(한숨).
‘어떤 놈은 애인이랑 저렇게 즐기면서 행복하게 사는데, 난 이게 뭐야? 주말이랑 휴일도 다 반납하고 일해야 하고!’라는 생각이 들어 화를 참기가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방학도 다 끝나 가고 방학이 끝나면 일하는 시간은 토요일이랑 일요일로 줄어들 테니까....그 때가 되면 더 이상은 그런 모습을 안 봐도 될 거라고 생각하고 견디고 있죠(그리고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이젠 지쳐서 더 이상은 화낼 기운이 없네요). 뭐 살다 보면 제게도 쨍 하고 해뜰날이 오지 않겠어요? 그렇게 믿고 살아야죠.
*추신 5 : 중국인(한족) - 아니면 대만인이나 홍콩인, 마카오인, 싱가포르인, 해외 화교 가운데 하나겠죠 - 관광객들을 볼 때마다 (내색은 안하지만) 착잡한 생각이 든답니다. 중국정부가 밀고 나가는 역사 왜곡작업(예컨대 동북공정이나 서남공정, 서북공정)이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것으로 아는데, (그리고 그들은 한국의 문화와 역사를 자신들의 ‘아류’로 여긴다는데) 그런 그들이 고구려가 한국 역사라고 소개하는 이 박물관에 들어와서 전시된 유물을 보고 무슨 생각을 할까요?
아마 자기들끼리 “흥. 쬐끄만 나라가 거짓말을 하고 있네.”라고 떠들거나, 박물관에서는 아무 말도 안 하다가 집으로 돌아가서는 블로그에 “한국 놈들이 무슨 거짓말을 하는지 봐. 고구려 역사가 자기네 역사래. 발해 역사도 자기 거래.”라고 떠드는 글을 올리는 건 아닐지....그걸 생각하면 역사학도로서 영 기분이 좋지 않아요(그리고 그들이 유물을 보면서 “이것도 우리 중국 거 베낀 거고, 저것도 베낀 거야.”라고 떠들 거라고 생각하면 더욱 더 그렇고요).
물론 그들은 제게 중국어로 말을 걸지 않고 서투른 영어로 말을 걸고, 저도 그들이 사진을 찍겠다고 하면 (적어도 겉으로는) 웃으면서 사진을 함께 찍지만, 이런 인식의 차이 때문에 그들과의 사이에 ‘보이지 않는 강’을 사이에 두고 멀리 떨어져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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