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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만의 바위는 어느 잡지에서 연재되었던 작품으로 기억한다. 제법 카리스마를 풍기던 다른 김혜린 작가의 귀족같은 풍모의 화려한 주인공들과는 달리, 산꽃 리리와 대지가 용서한자, 라이는 상대적으로 평범한 태생배경을 가지고 있는 소박한 외모의 소유자들이다. 아니 최후의 보루선이라 믿고 의지해야할 가족이 오히려 그들에게 비수를 쏘아대는 그들은 철저한 아웃사이더요, 오히려 평범함 자체가 부러울 처지에 놓여있는 사회의 어두운 구석지대에 놓여있는 사람들이다.
어머니와 가족을 두들겨패는 아버지를 말리다 뜻하지 않게 아버지를 자기 손으로 죽여버리고 평생을 정착하지 못한채 떠돌아다니는 라이.
아비의 손에 남편에게 팔려가면서도 그저 여자의 팔자려니 했었지만 끝내는 남편의 손에 아이를 잃고 매일같이 고된 노동과 남편의 매질속에 살아야만 했던 리리.
그들은 같은 상처를 공유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라이는 정처없이 떠돌다가 리리가 있는 마을로 들어서게 된다. 첫날, 뗏목을 타고 마을에 도착한 라이는 바위위에 앉은 한 여인과 마주친다. 나중에서야 샤만의 바위가 의미하는 바를 알게된 라이는 왠지 모르게 리리에게 신경이 쓰이고, 새로이 사귄 친구의 주선으로 얻은 집에서 옆집에 살고 있는 리리가 남편에게 성적 학대를 당하는 모습을 보게된다.
리리에 대해 묻는 라이에게 친구는 불쌍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라며 신경 쓰지 말라고 한다.
어찌 그럴수가!!!
분개할 수도 있지만, 그것이 냉혹한 현실이다. 남의 말 하길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불쌍하다 불쌍하다 해도 남의 가정사에 끼어들기란 쉽지가 않다. 특히 여자와 북어는 사흘에 한번씩 패야한다라는 속담아닌 속담마저 존재하는 우리나라에서 타인의 가정에 간섭하는 것은 특별한 관심과 용기가 있어야 가능하다. 심지어 가정 폭력을 신고받은 경찰들마저 웬만하면 집에서 조용히 해결하시죠...라고 말한다고 한다. 그런 무관심속에서 우리 주위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가정 폭력으로 희생당하고 있는 것이다. 배운대로 한다고, 어린 시절 어머니가 맞는 걸 지켜본 아들이 나는 결코 그러지 말아야지하면서도 결국 결혼하면 폭력 남편에 아버지가 될 확률이 많다고 하지 않던가.
물론 샤만의 바위는 우리나라가 배경이 아니라 샤만이란 신의 대리자가 다스리는 판타지속이 세계이다. 하지만 현실에 있지 않는 공간을 설정했으면서도 작가는 그 이공간에서 우리가 불편해할 가정폭력에 희생된 사람들의 상처를 아름답고 처절한 두 남녀의 사랑으로 간접적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라이는 리리에게 동질감을 느끼며 그녀에게 산꽃리리라 부르고, 리리는 결혼한 이후 처음으로 처녀적 이름을 듣고 눈물을 흘린다. 결국 서로의 아픔을 읽고 사랑하게 되어버린 두 사람.
끝내 리리는 아이를 갖게 되고 그것을 알아챈 남편으로부터 살해당할 위기에 처한다. 그 광경을 목격한 라이는 결국 리리를 지키려다 남편을 살해하게 되고 그들은 샤만의 법정에 서게된다.
여기서 남편이 가학적이 된 이유로 남성성의 상실이 나온다. 마을에서 가장 힘센 남성이었던 남편은 사고로 더이상 남자 구실을 할 수 없게 되자 자신의 정체성이 송두리째 흔들리는 위협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그에 대한 상실감과 두려움을 아내에게 퍼붓게 된 것이다.
남자는 눈물을 흘려선 안된다는 등의 지나친 남성성의 강조는 결국 여자에 비해 상대적으로 기득권이라는 취급을 받는 남성마저 불행하게 만드는 것이란걸 보여주는게 아닐까.
자신의 고통을 다른 이에 대한 폭력으로 해소하는 리리의 남편이 너무나 혐오스러우면서도, 잘못된 가치관의 희생자란 점에서는 그에게도 약간의 동정심을 가져본다.
샤만앞으로 불려간 리리와 라이는 서로 자신이 남편을 죽였다고 말하고,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중 일부는 리리와 라이의 간통에 대해서 그 표면만 보고 낄낄거린다. 그동안 리리가 남편에게 당해왔던 모든 일들은 사라지고, 간통이라는 그 지저분한 사실만이 남아 리리와 라이를 비난하는 것이다. 남편의 폭력앞에서는 그토록 불편한 침묵을 유지했던 그들이.
이런걸 볼때면 결국 인간이란 얼마나 약한 존재인가를 깨닫게 된다.
그러나 김혜린 작가는 언제나 현실의 직시와 함께 약자들의 연대를 통한 희망의 제시라는 두 가지 상반된 시각을 함께 보여주지 않던가.
리리와 라이는 결국 그들의 감정이 진정한 사랑이었는 가에 대한 샤만의 시험을 훌륭히 수행해낸다. 그것이 시험인지 조차 깨닫지 못한채 말이다.
그들의 진정한 사랑의 힘으로 리리와 라이는 뗏목을 타고 먼 미래에 대한 희망을 품은채 마을을 빠져나간다.
좋은 아버지가 되겠다 쑥쓰럽게 말하는 라이에게 환하게 웃어주는 리리.
라이에게도 리리에게도 좋은 아버지라는 단어가 주는 의미는 남달랐을 것이다.
꼭 행복하길.
이번에야말로 그들이 소망하던 최고의 행복한 가정을 꾸미길...
짧은 단편이지만(중편?, 2부작이었던 것 같다...) 흙내 물씬 나는 그들의 상처입은 외모와 그러면서도 누구보다 따뜻하고 밝은 심성을 잃지 않았던 리리와 라이의 캐릭터로서의 매력은 김혜린 작가의 그 어느 장편들에 뒤지지 않는다.
곱디 고운 영혼을 가진 아름다운 주인공들이 결코 우호적이지 않은 세상풍파에 부딪히고도 여전히 영롱하게 빛날 수 있는 것이 바로 김혜린 작가의 세계요, 장점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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