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게시일시: 1999/09/06 오후 2:57
게시자: 김문희
제목: 역사로망의 허와 실
나는 역사소설을 좋아한다. 역사만화는 더 좋아 한다. 김혜린의 <비천
무>와 <불의 검>에서 보이는 슬프고도 아름다운 역사로망은 가슴을 흔들어
놓기 충분하다. 왜 우리는 여기에 빠져들게 되는 것일까?
우선 격동기라는 시대적 배경이다.
원말 명초, 상고시대의 고대국가 형성기와 같은 격동기는 소위 역사에서 규
정하는 긍정적 영웅과 부정적 영웅이 공존하며 등장하는 시기이며, 눈코뜰
새 없이 휘몰아치는 변화는 사람으로 하여금 스릴을 만끽하게 한다. (여러
분 6.10 민주화운동을 생각해 보시라! 나는 그때 데모에 참가했었는데 무
지 재미있었다.) 안정기와는 달리 아드레날린이 마구 용솟는 시기임에 틀림
이 없다.
다음으로 그 시대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특수성이다. 설리와 진하, 아라
와 가라한 아사와 같이 실제 인물이 아니더라도 역사와 맥을 같이 하고 실
제로 있었을 것 같은 개연성이 등장하면서 독자들의 호기심과 지적 탐구 욕
구를 증진시킨다. 더우기 요즘 남자들, 여성해방을 틈타서 명예나 존중심,
카리스마를 포기하고 있지 않은가!(여피들을 보라. 그들은 철저히 give
and take를 바라고, 영원한 사랑의 맹세는 물건너가고는 섹스 중독증에나
걸렸다) 현대와는 다른 시대에 사는 사람들의 특수성, 그들이 만일 범상치
않은 인물이라면 독자들의 흥미는 배가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역사로망의 매력이다. 이국적인 배경, 이국적인 시대는 로맨
티시즘의 대표되는 특성으로서 거기서 비롯되는 로맨스는 이국적인 흥미를
만족시켜주면서 시작한다. 김혜린의 작품이 단순히 로맨스가 아니라고 단언
하는 이도 있을 것이다. 유장한 역사성, 고초속에서 꽃피는 여성의 강인
함, 그렇다 나도 인정을 한다. 그러나 로맨스가 양념이 되지 않았다면 독
자들이 그렇게 열광했을까?
김혜린의 역사물은 언제나 감동적이다. 재미있다. 그리고 정신없이 빠져
들게 한다. 단, 여러분들이 주의를 해주었으면 하는 부분이 있다.
역사로망은 단지 역사로망이라는 점이다. 다시말해 허구라는 거다.
<비천무>에서 보이는 남궁세가와 같은 한인세족들이 원대에 실제로 존재
했는지, 무협적인 요소가 실제로 가능한 것인지?( 내가 보기에는 한인세족
들이 존재하긴 했어도 그것은 요와 금 치하에 있었던 화북지역의 한인 이었
고, 그들 역시 서리급정도의 실무관료 이상은 되지 못한 것으로 알고 있
다. 남궁세가는 소주지역 출신인데 그것이 가능한지....? 만일 관료집안
이 아니라 표국이나 운송업을 전문으로 하는 가문이었다면 어느정도의 부
를 획득한 것이 가능했을 것으로 보이나, 이것 역시 남인이란 한계를 벗어
나지 못했을 것으로 보인다.)
<불의 검>속에서 보이는 부족 국가에서 고대국가로의 성장문제도 마찬가
지다. 아무르 부족은 카르마키와 중국의 한족의 위협속에서 철기 기술을 익
히면서 성장한다. 그러나 잘해봐야 반농반목의 경제적 상황이었던 아무르
족이 그렇게 근사한 왕궁을 짓고 살 수 있었는지, 왕권이 그렇게 강할 수
있는지 궁금하다. 또 그 시대가 중국의 은주시대와 맥을 같이 한다면 뭐하
러 국경과 상관도 없는 먼 북쪽땅에 까지 중국사신이 가서 동맹을 맺었는
지 이해할 수 없다.(은주시대의 국경은 요동지역을 넘지 못핶다. 게다가
은중 역시 성읍국가의 성격에서 벗어나지 못했으므로 주변의 한족 동맹국
을 아우르기에도 바빴을 것으로 보인다.)
진하가 암만 멋있어도 현대에는 그런 남성이 존재하지 않는다. 가라한 아
사의 절대적인 충성은 절대왕정시대에나 보이는 것이다. 그때는 힘있는 부
족에서 왕이 선출 될 수도 있었다. 여러분은 그것을 인식하고 역사물을 읽
으시기 바란다.
<영원한 제국> (정조시대를 다룬 이인화의 역사소설 아시죠?) 에서 실제
있었던 사실을 약간씩 바꿔서 소설의 흥미를 진작 시켰던 것과 같이 김혜
린의 역사물도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 하시길 바란다. 아울러 실제 역사사실
도 공부 하시면 더욱 재미있을 것이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