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그저께, 롯데월드에 있는 극장에서 영화 <300>을 봤습니다. 영화를 보고 난 뒤 느낀 것을 단 한마디로 줄여서 말하자면, ‘괜히 봤다’는 것이었습니다.
‘이성’이나 ‘자유’와는 거리가 먼 군국주의 국가였던 스파르타를 ‘온 엘라스(영어 이름 그리스. 그리스인들은 자신들의 나라를 “엘라스”나 “헬라스”라고 부름)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싸운 나라’로 추켜세운 것은 둘째치더라도, 당시 엘라스보다 더 화려한 문화를 꽃피운 이란(영화에서는 ‘페르시아’라고 나오나, 이란인들은 ‘야만인’이라는 뜻이 있는 ‘페르시아’라는 이름을 싫어하므로 이렇게 부르고자 합니다) 아케메네스 왕조의 사람들을 ‘야만인’이라고 부르는 점, 샤한샤(이란어로 ‘왕중왕王中王’/‘황제’라는 뜻) 크세르크세스 1세를 ‘머리와 수염을 싹싹 깎고, 팬티만 걸친 채 귀걸이와 요란한 장식들을 단 성격이상자’로 그린 점, 전쟁을 반대하는 스파르타 사람을 ‘이란의 금에 매수된 반역자’로 그리는 점, 크세르크세스 1세를 ‘자유를 억압하는 폭군’이라고 부른 점이 마음에 안 들더라고요.
좀 자세히 말씀드리자면 이래요. 영화 첫머리에는 이야기의 ‘주인공’인 레오니다스 왕이 전사가 되는 과정이 나오는데, 그 때 그가 ‘살아남으려고’ (먹을 것을)훔치고, 싸우고, 죽였다는 말이 나와요. 그게 얼마나 끔찍했는지 봅시다.
- 스파르타의 군사교육을 받는 젊은이들은 무리를 지어 예속 농민(노예) 가운데 나중에 반란자가 될 수 있는 강건해 보이는 사람들을 쥐도 새도 모르게 죽여버렸습니다(노예 살육 행위를 제도화함).
- 스파르타의 혼인은 여자 납치를 흉내내는 식으로 이루어지는 약탈혼이었습니다.
- 스파르타 사람들의 학교는 아이에게 음식을 거의 안 주면서 대신 ‘용감해지라고’ 먹을 것을 훔치라고 가르쳤습니다.
- 어떤 스파르타 소년은 여우 한 마리를 훔쳤는데, 사람들이 그를 둘러싸고 ‘네가 여우를 훔친 게 아니냐?’는 추궁을 받자 (옷 속에 숨긴 여우가 제 살을 파먹는데도 불구하고) 끝까지 아니라고 주장하다가 결국 죽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영화는 그런 점은 안 보여주고 대신 ‘스파르타식 훈련’을 ‘강해지기 위한 훈련’이라고 미화하더군요. 그게 마음에 안 들었습니다.
그리고 영화에는 이란(아케메네스 왕조)의 사신이 스파르타에 왔을 때 아케메네스 왕조가 정복한 나라들의 왕들의 해골을 보란 듯이 꺼내는 장면이 나오지만, 실제로는 아케메네스 왕조가 그 창업자인 퀴로스(키루스) 2세 황제 이래 정복당한 사람들에게 관용을 베풀어 그들의 풍습과 종교, 재산, 제도를 보호했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싶습니다. 퀴로스 2세는 심지어 자신에게 싸움을 걸었다가 진 나라의 황제도 보호했지요.
한 예로 서기전 546년, 오늘날의 터키에 있던 ‘뤼디아’ 제국의 황제였던 ‘크로이소스’는 퀴로스 2세가 이끄는 이란이 큰 나라로 자라나자 불안해서 이웃 엘라스(그리스) 식민지의 신전에 신탁을 청했는데, 그 때 “이란을 치면 대 제국을 멸망시키리라!”는 말을 듣고 이란을 먼저 칩니다. 그러나 막상 전쟁이 시작되자 이란군은 싸울 때마다 이겼고, 크로이소스는 도리어 이란의 포로가 되고 말죠. 엘라스인 헤로도토스가 쓴 책인『역사』에는 크로이소스가 이란군에게 붙잡힌 뒤, 퀴로스 2세와 크로이소스가 나눈 이야기가 실려 있습니다.
*퀴로스 2세 : “크로이소스여! 그대를 부추겨 우리나라에 군대를 진격시켜, 나의 친구는커녕 적이 되게 한 자는 대체 누구요?”
*크로이소스 : “실상은 저 엘라스의 신이 제게 출병하도록 부추겼기 때문입니다. 평화보다 전쟁을 택하는 무분별한 인간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평화시에는 자식이 부모를 장사지내지만, 전쟁시에는 부모가 자식을 장사지내지 않으면 안 되지요.”
“퀴로스는 (이 말을 듣자) 그의 포박을 풀어 자기 가까이에 앉히고 매우 정중하게 대했으며...주위의 모든 사람이 감탄의 눈으로 크로이소스를 바라보았다. 이후 크로이소스는 퀴로스의 절친한 친구가 되었다(헤로도토스).”
또한 아케메네스 왕조는 다른 정복지에도 관용을 베풀어, 왕조의 권력에 도전하지 않는 이상 수준 높은 자치를 인정하기까지 했죠. 이런 정책 때문에 이란은 출발할 때부터 다민족, 다종교가 다채롭게 어우러진 사회가 되었습니다.
“퀴로스 2세와 다레이오스(이란 이름 다리야바우시 - 옮긴이) 1세는 예속 종족에게 그들의 종교와 관습, 상업 활동 등은 물론 심지어 그들의 고유한 자치 정부까지 어느 정도 허용하는 획기적 정책을 펼치기도 했다.” - 김정위
“페르시아(이란 - 옮긴이)는 자신들의 언어인 고(古)페르시아어(語)의 사용을 페르시아족 이외의 다른 민족들에게 강요하지 않았다. … 페르시아에 정복당한 민족들은 자신들의 말과 글을 그대로 사용했다. 이집트(미스르 - 옮긴이)인은 이집트어로 말했고, 서기들은 여전히 파피루스 위에 상형문자로 기록을 남겼다. 한편, 바빌로니아에서는 설형문자가 변함없이 사용되었다. 심지어 페르시아 권력의 심장부인 페르세폴리스에서 발견된, 점토판 위에 새겨진 왕실의 여러 가지 기록조차 페르시아어가 아닌 엘람어로 작성되어 있을 정도이다. 지금까지 살펴본 것은 주요 언어에 불과하며 소수민족이 사용한 언어까지 살펴보면 독자적인 언어 사용은 더욱 두드러진다. 예를 들어 소아시아(오늘날의 터키 - 옮긴이)에서만도 약 10여 개의 언어와 방언이 동시에 사용되었다는 건 놀랄 만한 일이다. 또한 널리 사용되는 매개언어(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끼리 상호간의 의사전달에 사용하는 언어 : 역주)이자 외교어가 된 아람어의 사용이 페르시아 지배기에 유례없이 증가했다. 이러한 언어 사용 실태는 각 지역의 문화와 전통이 그대로 보존되었음을 잘 보여 준다. … 페르시아인은 대체로 피정복민들이 그들 고유의 종교를 믿는 것을 허용했다. 가끔 지역 성소에 특혜를 내리는 사례도 있었다. B.C. 538년 키루스(퀴로스 - 옮긴이) 대왕이 바빌로니아로 추방된 유대인에게 조상의 땅을 되찾고 거기에 야훼신의 신전을 다시 짓도록 허락한 것도 바로 이러한 정책이었다. 이집트를 정복한 다음 캄비세스왕과 다리우스(다리야바우시 - 옮긴이) 대왕이 이집트의 파라오가 되어 이집트의 신들을 숭상하는 제의를 물의 없이 치렀던 것처럼 키루스 대왕도 바빌로니아를 정복한 후 그 지역의 종교전통에 기꺼이 따랐다.” - 피에르 브리앙
따라서, 영화에 나오는 이란 사신이 보인 행동은 역사적인 사실과는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으로써, 작품의 재미를 위해 끼워 넣은 것이라고 봐야 할 것입니다.
(구미의 역사학자들은 만약 아테네와 스파르타가 이란에 순순히 항복했다면 민주주의도 사라졌을 것이고, 엘라스의 빛나는 문명도 유럽에 전해지지 못했을 것이라고 주장하는데, 이는 엄살에 가까운 소리라는 지적이 있습니다. 항복한 사람들에게 관용을 베푸는 이란 아케메네스 왕조의 정책을 염두에 둔다면 엘라스의 문화와 종교, 상업 활동, 그리고 정치 제도는 그대로 온존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말이지요. 비록 민주주의를 다른 곳으로 퍼뜨리지는 못했을지라도 최소한 엘라스 안에서는 그대로 유지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얘깁니다)
영화에서 레오니다스 왕이 이란의 사자를 우물에 처넣은 장면도 역사적 사실과는 다릅니다. 역사 기록에 따르면 스파르타의 왕이 이란의 사자를 우물 속에 처넣은 것은 사실이지만, 그 왕은 레오니다스가 아니라 그의 선왕(先王)이었으니까요. 이건 워너브라더스 사가 레오니다스를 영웅화하기 위해 일부러 왜곡한 거라고 생각합니다.
기왕 영화의 ‘결점 - 내지는 역사적인 사실과 다른 점들 - ’을 캐기 시작한 김에 몇 가지만 더 살펴보죠. 영화에서는 레오니다스 왕이 전쟁을 시작해도 된다는 신탁을 받으러 신전에 가서 ‘에포르’라는 사제 계급에게 “(신이 아니라) 이성을 믿어야죠.”라고 말하는 장면이 나오지만, 스파르타는 아테네와는 달리 이성이 아닌 종교적인 열정을 받들었습니다. (전쟁터에서 느끼는 긴장이라던지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종교에 몰두함으로써 잊으려고 한 거죠) 또 스파르타는 아테네의 민주정치를 ‘우둔한 짓’이라고 비웃으며 멸망할 때까지 왕정(王政)을 유지한 나라였고, 다수의 노예(선주민)를 힘으로 억누르기 위해 군국주의를 추구했는데 그런 나라의 왕이 - 영화에서처럼 - “전 그리스의 자유를 위해” 싸웠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영화에서는 레오니다스 왕이 그의 장병들에게 - 크세르크세스와 싸우기 전에 - “새로운 시대가 다가온다...자유를 위해 싸우자!”고 말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건 어디까지나 영화 제작자와 원작자인 ‘프랭크 밀러’가 만들어낸 허구일 뿐, 사실은 아니라는 얘기죠).
또 역사 기록에 따르면 레오니다스는 이 때 “스파르타가 멸망하던지, 아니면 헤라클레스의 피를 이어받은 왕(스파르타의 왕)이 죽어 온 스파르타가 애도하게 되리라.”는 신탁을 받고 싸우러 나갔다고 되어 있는데, 영화에는 그런 신탁은 전혀 다루어지지 않고 신녀(神女)의 몸을 탐하는 ‘에포르’라는 신관(神官)의 추한 모습만이 나오고 있습니다(참고로 에포르들은 아주 못생긴 얼굴로 나옴). 이 또한 스파르타가 못생기거나 장애가 있는 아기는 애초에 내다 버려 죽게 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전혀 현실성이 없는 묘사예요. 그런 점을 지적할 수 있겠습니다.
(그리고 영화에는 크세르크세스 1세의 사신이 보낸 금화에 매수된 에포르들이 레오니다스의 전쟁을 반대하는 것으로 나오는데, 이는 역사 기록에 나오지 않는 것으로서 사실무근이라는 점을 밝힙니다. 개인적으로는 이 부분이 ‘매수라는 더러운 방법을 써서라도 이기려고 하는 치사한 아시아’라는 인상을 심어주기 위해 만들어진 부분이라는 생각을 떨칠 수 없더군요)
(이미 다른 분들도 지적하신 문제지만) 아케메네스 군(軍)이 ‘괴물들이 모인 조직’으로 그려지는 것도 문제입니다. 상어처럼 뾰족한 이빨을 지닌 키 큰 대머리 거인이라던지, 추하게 일그러진 얼굴을 은(銀) 가면을 쓰고 숨긴 (그리고 닌자처럼 검은 옷을 입고 일본도를 쓰듯이 칼 두 자루를 쓰는!) ‘불사신’ 부대라던지, 뚱뚱하고 입에 침을 질질 흘리는 (그리고 양쪽 손목에 손 대신 쭈글쭈글한 칼이 붙어있는) 망나니라던지, 코뿔소를 탄 난쟁이라던지(그러나 역사 기록에는 이란군이 코뿔소를 동원했다는 말이 안 나옴), 나무 방패와 몽둥이만 들고 반(半) 벌거숭이로 덤벼드는 바라트(인도)인 병사가 이란 군의 ‘전사’들이거든요. 그에 반해 아케메네스 군에 맞서 싸우는 스파르타 군은 모두 ‘보통 사람’으로 나옵니다. 같이 싸우러 나선 아들의 죽음에 눈물을 흘리고, 왕이 직접 “나는 나와 함께 싸우는 사람들을 위해 죽을 수 있다.”고 말하고, 진한 동료애를 과시하기까지 하죠. 당연히 이란인들이 화를 낼 수밖에 없습니다(반대로, 아케메네스 군은 스파르타군에게 겁을 먹어 뒤로 물러서기 바쁜 사람들로, 하나하나가 개성이 없는 ‘허수아비’로 그려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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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 개봉한 '300' 페르시아 문명 모독"
[중앙일보 2007-03-15]
[중앙일보 서정민] 핵 개발을 둘러싼 미국과 이란의 갈등이 영화로까지 번지고 있다. 이란 정부와 언론은 이 달 초 미국 등 서방에서 개봉한 잭 스나이더 감독의 역사 영화 '300'(사진)을 강력히 비난했다. 할리우드가 미 정부에 앞서 이란을 공격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란 대통령실 문화수석 자바드 삼카드리는 13일 "이 영화는 심리전을 위해 제작됐다"며 "이란 역사를 강탈하고 페르시아 문명을 모욕하고 있다"고 악평했다. 골람 호세인 이란 정부 대변인도 "문화적 침입은 이방인들이 항상 쓰는 전술"이라며 "이 같은 문화 왜곡도 적대적 행위에 해당한다"고 항의했다.
7000만 달러(약 660억원)를 들여 제작한 '300'은 기원전 480년 제3차 페르시아 전쟁 당시 그리스 테살리아 지방에서 벌어진 테르모필레 전투를 소재로 한다. 스파르타 정예군 300명이 페르시아의 100만 대군을 맞아 싸웠지만 내부자의 배신으로 전원이 장렬하게 전사하는 내용이다. 역사와 액션을 가미한 이 영화는 미국에서 개봉한 3월 첫 주말에만 제작비보다 많은 7089만 달러의 수입을 기록해 박스오피스 1위에 올랐다.
이란 언론은 이 영화가 자신의 조상을 야만인에 가깝게 표현했다며 격분했다. '300'은 기존의 할리우드 영화와 마찬가지로 서방의 스파르타군을 영웅으로 묘사한 반면 페르시아의 크세르크세스 왕은 극악무도한 군주로 표현했다는 것이다.
이란 개혁파 일간 아얀데-노는 13일 "현재도 우리를 '악의 축'으로 지목하는 서구가 우리의 조상까지도 잔혹한 살인자로 몰아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카이로=서정민 특파원
amirse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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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영화 <300>에 분노
[필름 2.0 2007-03-14]
영화로 인한 국가 갈등이 또 한번 불거졌다. 지난해 <보랏-카자흐스탄 킹카의 미국문화 빨아들이기>가 카자흐스탄 정부와 촬영지였던 루마니아 국민들로부터 비난을 얻은데 이어, 지난 9일 미국에서 개봉한 할리우드 영화 <300>이 이란의 분노를 산 것.
<300>은 기원전 480년 제3차 페르시아 전쟁을 배경으로 그리스의 스파르탄 정예부대 300명이 페르시아 백만대군에 맞서 싸운 테르모필레 전투를 그리고 있다. 지난주 미국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하며 관객들의 열렬한 반응을 이끌어내고 있는 <300>은 이란에서 불법 DVD로 유통되고 있으며, 영화를 본 국민들이 분노하고 있다고 13일 버라이어티 인터넷판이 전했다.
문제가 된 부분은 300명의 스파르타 군인이 페르시아 백만대군과 맞선다는 영화의 설정을 극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페르시아인들을 야만적이고 폭력적으로 묘사한 점. 또한 일부 페르시아의 전사들이 괴물처럼 그려졌으며 반면 스파르타인들은 자유와 정의를 수호하기 위해 페르시아와 맞서고 있다는 영웅적인 면모를 과시하고 있어 이란 관객들의 분노를 샀다.
이란의 핵무기 개발과 관련해 국제 정세가 첨예한 갈등을 겪고 있는 상황이라 <300>에 대한 이란의 비난 여론은 더욱 거세지고 있는 상황. 이란의 일간신문인 '아얀데노'는 "할리우드가 이란에 대해 전쟁을 선포했다"는 기사를 통해 페르시아에 대한 영화의 태도를 지적하고 나섰으며 이란의 문화평론가인 자바드 샹가리 역시 "<300>은 미국이 이란 문화를 겨냥해 펼치는 심리전"이라고 비난했다고. 더불어 "<300>은 비윤리적이고 비과학적인 역사관을 드러내고 있다"며 "이러한 영화의 오류에 대해 책임있는 사람들의 공식 사과를 요구한다"는 내용의 온라인 탄원서에는 35,000명이 참여, 워너 브라더스에 전달되기도 했다.
이에 대해 잭 스나이더 감독과 제작진들은 "이 영화는 단지 프랭크 밀러의 원작을 스크린에 옮긴 것일 뿐이며 역사적 고증에 충실한 영화가 아니"라고 해명했다. 워너 브라더스 역시 "<300>은 오락 영화의 논리에 충실하게 만들어졌을 뿐이며 특정 민족과 문화를 깔보려는 의도는 전혀 없다"고 대변인을 통해 입장을 전했다.
- 송순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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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 나오는 크세르크세스 1세의 모습에도 문제가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습니다. 역사 속의 크세르크세스 1세는 머리칼과 수염을 길게 기르고 모자를 썼으며 온 몸을 가리는 소매가 긴 비단옷을 입은 군주였는데, 영화 속의 크세르크세스는 머리를 박박 깎고 수염도 말끔하게 깎았으며 팬티 한 장만 걸친 채 온갖 장신구를 주렁주렁 매달고 있는 괴상한 모습으로 나오죠(아마 이런 점도 스스로를 퀴로스 2세의 후손으로 여기고 자신들을 아케메네스 왕조의 후손으로 여기고 있는 이란 사람들의 자존심을 자극한 것이 아니었을까 하고 생각해 봅니다). 이 또한 적(아시아)의 군주를 ‘우리(구미歐美)가 이해할 수 없는 괴상한 존재’로 깎아내리려는 의도가 있었던 게 아니냐는 의심이 드는군요.
영화 속의 크세르크세스와 레오니다스의 대화도 역사 기록에는 나오지 않는 사실입니다. 영화에는 두 사람이 싸우기 전에 단 둘이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고, 크세르크세스가 ‘유럽을 다스리게 해 줄테니 짐에게 항복하라’고 회유하는 장면이 나오지만, 유감스럽게도(?) 이는 역사 기록에는 전혀 없는 가공의 대화이며 사실과는 거리가 멀다는 말이지요. (레오니다스는 이 때에도 “역사는 우리(스파르타)가 폭군(크세르크세스 1세)에게 맞서 싸웠다는 것을 전해 줄 것”이라고 말하는가 하면, “당신(크세르크세스 1세)의 군대에는 자유민이 없고 전부 노예뿐(이것도 사실과는 다릅니다 - 옮긴이)”이라고 말해 아시아를 멸시하는 사상을 거리낌없이 드러냅니다)
크세르크세스는 레오니다스가 자신의 제의를 거절했다는 것을 알자 화를 내며 “짐이 스파르타를 정복하면 스파르타의 모든 역사 기록을 불태우고, 사관들을 처형하고, 짐 앞에서 스파르타라는 말만 꺼내도 사형에 처할 것이야! (스파르타는) 역사 속에서 완전히 사라지는 거지.”라고 말하면서 자신이 얼마나 ‘잔혹한(?)’ 전제군주인지를 드러내는데, 이는 상대방의 문화를 모욕하거나 부정한 적이 없었던 아케메네스 조의 관례와는 어긋나는 것이라 신뢰하기 어렵다는 점도 덧붙입니다(어차피 두 군주의 만남 자체가 허구니까요).
(역사 기록에 따르면 크세르크세스는 영화의 무대가 되는 테르모필라이(테르모필레) 전투는 말할 것도 없고, 다른 전투에서도 산 정상에 올라가 황금 옥좌에 앉아 싸움을 지켜보았지, 직접 내려와서 적을 만나는 위험천만한 짓은 하지 않았다는 사실도 이 장면을 신뢰할 수 없게 하는 이유입니다)
스파르타 군이 방어구로 헬멧과 방패만 착용한 채 반(半) 벌거숭이로 적과 싸웠다는 묘사도 잘못되었기는 마찬가지입니다. ‘히스토리 채널’과 ‘디스커버리 채널’의 다큐멘터리에 따르면 스파르타 군은(이건 아테네 군도 마찬가지였지만) 가슴과 배를 가리는 흉갑(한 개의 금속판으로 이루어진 판갑이기도 했음)을 입고 싸웠기 때문이죠. 이는 영화가 육체미를 드러내 ‘눈요깃감’을 제공하려고 한 게 아니냐는 의혹을 불러일으킵니다.
에피알테스라는 배신자가 ‘못생기고 전사로서는 적합하지 않는 허약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스파르타인들에게 버림받고 이란의 편을 든다는 설정도 사실과는 다릅니다. 역사 속에 에피알테스라는 사람이 나오는 것은 사실이고, 그가 엘라스 출신으로서 크세르크세스 1세의 편을 든 것도 사실이긴 하지만, 역사 기록에 따르면 그는 포상금을 노리고 접근한 것이었고 스파르타인도 아니었기 때문이죠(물론 역사서에는 그가 못생긴 사람이었다는 말도 나오지 않습니다).
영화가 보다 본질적인 문제인 ‘전쟁의 원인과 결과’를 어떻게 다루고 있는지도 살펴봅시다. 영화에 보면 스파르타의 왕비인 ‘고르고’는 - 레오니다스의 아내이기도 하죠 - 연설할 때 “이 전쟁은 레오니다스가 먼저 시작한 거요.”라는 말을 듣자, 즉각 “아니오. (크세르크세스의 아버지인) 다리우스가 먼저 시작했죠.”라고 말하지요. 그런데 이건 역사적 사실과는 다릅니다. 먼저 공격하기 시작한 쪽이 아테네이기 때문입니다.
좀 자세히 살펴봅시다. 서기전(기원전) 512년 이란의 황제인 다리야바우시(엘라스식 발음은 ‘다레이오스’. 영어 이름 ‘다리우스’)는 오늘날의 불가리아인 ‘트라키아’지방에 침입합니다. 이 때부터 이란과 엘라스 사이에 긴장이 커지죠. 게다가 이란은 자신에게 복속한 페니키아(오늘날의 레바논에 있던 왕국. 장사를 잘 하는 해양민족이 사는 나라였다)의 통상활동을 보호함으로써 소아시아(오늘날의 터키) 지방의 엘라스 식민지에 큰 타격을 주었습니다.
여기에 덧붙여 아테네의 민주화가 꽃 피던 무렵, 엘라스에서 쫓겨난 독재자가 이란을 망명지로 고름으로써, 아테네에는 반(反) 이란 감정이 퍼지게 되죠. 결국 서기전 499년, 아테네 시민들은 이란이 점령한 지역의 엘라스인들이 벌이는 독립전쟁에 개입하기로 결정하고, 이란의 도시 ‘사르디스’를 기습 침공했는데, 이때 그들은 “배 20척분의 군단”을 원군으로 보내 내륙 깊숙이 쳐들어가 사르디스시를 점령하고 이 도시를 철저히 불태워 버렸습니다. 이로써 한때 크로이소스 황제의 도읍이었던 사르디스는 잿더미가 되어버렸고, 이 참사에 경악한 다리야바우시 황제는 전면전을 선포합니다. 이른바 ‘페르샤 전쟁’이 시작된 것이지요.
(훗날, 헤로도토스는 아테네 군의 사르디스 침공을 “그리스와 페르샤 사이에 벌어진 불행한 사건의 발단”이었다고 평가했습니다)
그러니까 전쟁이 일어난 까닭은 경제적인 갈등(이란이 비호하는 페니키아와의 갈등)과 정치적인 이유(독재자의 이란 망명) 때문이었는데, 영화는 그런 사실에는 입을 다문 채 다리야바우시 황제의 군사행동에만 책임을 묻고 있다는 점이 문제란 말입니다(전형적인 역사 왜곡이죠). 저는 이 때문에 영화의 ‘설명’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가 없다고 생각해요. 그 점을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이 영화가 스파르타의 ‘반전주의자’이자 ‘현실주의자’인 사람들을 어떻게 다루는지도 짚고 넘어가야 합니다. 영화는 어찌된 일인지는 몰라도 이란과의 전쟁을 반대하는 의원을 이란의 금화에 매수된 (그리고 왕비의 몸을 탐내는) 파렴치한 인간으로 그리고 있습니다(물론 그는 왕비의 칼에 목숨을 잃죠). 아마 영화를 만든 사람들은 반전주의자를 이렇게 묘사함으로써 “봐라! 너희들이 외치는 ‘전쟁 반대’는 구실일 뿐이고 너희는 ‘적’에게 매수된 인간 말종들이다.”라고 주장하려고 했겠지요. 이는 현재 세계 각지에서 벌어지고 있는 반전 시위를 깎아내리는 듯한 묘사여서 개인적으로 불쾌하게 생각하는 대목 중 하나입니다.
그러니까 이 영화는 오리엔탈리즘을 숨기고, 역사적인 사실을 왜곡(삭제)한 오락영화로써, 결코 역사를 배우는 교재가 될 수 없다는 것이 저의 결론입니다. 영화에 나오는 특수효과나 배우들의 육체미, 액션 장면에만 신경을 쓰지 마시고, 이런 점을 생각하면서 비판적으로 대하셨으면 좋겠습니다.
- 머리에 케피예를 뒤집어쓰고 글을 쓰는 .... 돌베개
*추신 : 이란 국민들에게 제안 하나 하겠습니다. 영화 <300>이 ‘아시아의 유럽 침략’이라는 소재로 이란을 ‘모욕’했으니, 이번에는 여러분이 ‘유럽의 아시아 침략’이라는 소재로 영화를 찍어 맞대응을 하시는 게 어떻겠느냐는 것입니다. 제가 제안하는 소재는 역사에서 실제로 일어났던 일이니, 고증만 잘 하시면 <300>보다도 훨씬 뛰어난 영화가 될 것임을 확신합니다.
소재는 다름아닌 ‘카레 전투’ 인데요. 서기전 53년 ‘크라수스’가 이끄는 로마 군 5만 명이 파르티아(이란) 땅에 쳐들어가 파르티아 군과 싸우다가 파르티아의 기병대에게 당해 2만 명이 전사하고 1만 명이 포로가 되었으며 극소수만이 탈출에 성공한 사건이죠. 이 때 로마군의 사령관이자 로마 최고의 거부(巨富)였던 크라수스도 전사합니다(파르티아군을 이끌던 장군의 이름은 ‘수레누스’였죠). 이 때 로마군이 졌던 까닭은 그들이 전투보다는 약탈과 재산 획득에만 관심을 쏟았기 때문이었습니다. 로마에서 군사적 명망과 대중의 인기를 얻기 위해 시작했던 전쟁은 (그리고 알렉산드로스[영어 이름 알렉산더]처럼 이란을 넘어 바라트[인도]와 중국까지 도달하려고 했던 크라수스의 야심은) 이렇게 비참하게 끝을 맺었죠. 여담이지만 이 때 입었던 피해가 얼마나 컸는지 로마는 복수를 하려고 들지 않았고 이 때 크라수스와 함께 참전했다가 겨우 목숨만 건져서 돌아왔던 ‘카시우스’라는 귀족은 서기전 44년에 이란 침략을 계획하고 있던 카이사르(영어 이름 시저)를 - 다른 암살자들과 함께 - 죽입니다(아마 다시는 이란 땅에 가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겠죠).
이란은 파르티아의 후예이기도 하니 이는 조상을 빛내는 길이 될 것이요, 이란이 로마군을 막아낸 덕분에 결과적으로는 남아시아(:바라트)와 중앙아시아, 동아시아(:중국)이 피해를 입지 않을 수 있었으니 이는 ‘유럽의 침략을 막아낸 자랑스러운 방어전’을 영상으로 옮기는 의미 있는 일이 될 거예요. 영화에는 영화로 맞대응을 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방법이니만큼, 저의 이 제안을 흘려넘기지 마시고 한번 진지하게 검토해 보시기 바랍니다(만약 영화를 찍는다면, - 이란에는 압바스 키아로스타미나 모흐센 마흐발바흐 같은 훌륭한 감독님이 계시니까 - 정말 훌륭한 작품이 나오리라고 생각합니다!).
*추신 2 : 이 영화가 하필이면 ‘지금 이때’ 나온 것도 심상치 않습니다. “미국이 4월에 이란을 침략한다”는 소문이 나돌고 있는 이 때에, 이란의 조상인 아케메네스 왕조와 (구미를 상징하는) 스파르타의 싸움을 그린 영화를 내놓은 저의가 의심스럽다는 얘기죠. 어쩌면 이란인들의 말대로 이것은 전쟁을 정당화하기 위해 내놓은 ‘선전물’일지도 모른다는 의심이 듭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