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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글에 미처 적지 못한 것들을 적습니다.
1. 지금 제가 누릴 수 있는 최고의 사치는 … 소파에 앉아 TV를 켜고 ‘오디오 채널(화면은 안 나오고 음악과 노래’만‘ 나오는 채널들)’을 고른 뒤, 거기서 다시 재즈나 서양 고전음악이 나오는 채널을 고르고, 음악이나 노래를 들으면서 홍차(저는 우유와 설탕을 넣지 않은 홍차를 좋아합니다. 홍차 특유의 맛과 향기와 빛깔이 사라지는 것을 싫어하는데다가, 아무것도 넣지 않고 마시면 홍차의 열량이 0이라는 기사를 읽었거든요)를 마시고, 잘게 썬 치즈(네모난 종이 같은 치즈 말고요, 둥그런 흰 덩어리인 치즈 말입니다)를 먹는 것입니다.
그때만큼은 세상에서 부러운 게 하나도 없고, 긴장이 풀려서(특히 재즈를 들을 때 그렇습니다) 몸이 축 늘어져요. 욕을 얻어먹었거나, 일이 안 풀리거나,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아서 스트레스를 받았을 때 이렇게 하면 효과 만점이더군요. 부디 이 ‘사치’를 앞으로도 계속 누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2. 머리를 감을 때나 별 생각 없이 머리카락을 손으로 쓱 훑으면 머리카락이 쑥쑥 빠져서 신경이 쓰였습니다. ‘혹시 탈모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고, 집안 어른들도 우리 외할아버지(지금은 돌아가셨죠)가 대머리였다고 말씀하셔서 언제 한 번 병원에 가서 진찰을 받아보자고 마음먹었어요.
그래서 한 달 전, 피부과에 갔을 때(제 얼굴에 박힌 점을 수술로 빼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를 알려고 찾아갔던 겁니다) 의사선생님한테 제 증상을 설명하고 탈모가 맞는지 여쭤보았는데, 선생님이 “그렇다면 탈모가 맞지 뭐!”라고 대답하시더군요.
순간, ‘확인사살’을 당한 기분이었습니다. ‘그렇다면 내가 대머리가 되는 건 피할 수 없는 일이구나. 난 망했다, 망했어!’라고 생각하면서도, 아무 말도 못 하고 병원을 나와야 했어요.
모발 이식 수술이라도 해야 할 텐데, 그러려면 비용을 모으고 수술을 할 수 있는 병원을 찾아봐야 하겠죠. 집안 어른들은 제게 “정 안 되면 가발이라도 쓰고 다녀! 좋은 가발도 많아!”라고 하시지만, 저는 가발에 기대고 싶지 않습니다. 차라리 대머리를 드러내고 다니던가, 아니면 모발이식수술로 머리카락이 다 빠지는 걸 막든가 둘 가운데 하나를 고를 거예요.
제 머리가 대머리가 되는 걸 내버려 두지는 않을 겁니다(참고로 아직은 머리카락이 많이 남아있지만,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알 수 없어요).
3. 어제 영화 <사도>를 보고 왔습니다(혼자서 보고 왔습니다. 이젠 혼자서 영화를 보는 일에 익숙해졌습니다). 영화가 다큐멘터리나 논문이 아니라는 건 이미 알고 있었기에, ‘이것이 역사적인 사실인가, 아닌가?’를 따지는 대신 ‘이 영화가 강조하고자 하는 점이 무엇인가?’를 바탕으로 영화를 봤죠.
영화를 보는 내내 소리죽여 울었습니다. 아버지와 아들의 대립이 눈에 확 들어왔고, ‘부모자식 사이의 관계란 무엇인가?’라는 생각과 ‘윗사람과 아랫사람의 관계라는 것은 이런 식으로 파탄이 날 수밖에 없는 것일까?’라는 생각 때문에 마음이 편치 않았어요. 이 영화는 비극으로 끝났지만, ‘뛰어난 비극, 설득력 있는 비극’이었습니다.
‘아직’은 아버지가 아닌 저는 당연히 아들인 사도세자의 입장에서 영화에 몰입했고, 그와 제가 별로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더랍니다.
영화를 보면서 울었던 건 정말 오랜만이었어요. 이 영화를 본 것을 후회하지 않습니다. 이런 영화를 볼 수 있다니, 저는 행복한 사람입니다.
(개인적으로, 이 영화는 세계에 내놓아도 될 만큼 잘 만들었다고 생각합니다)
4. 독일에서 글을 쓰시는 수리야(‘시리아’의 정식 국호) 작가 ‘라픽 샤미’ 선생이 자신의 소설(『1001 개의 거짓말』)에 “진실만으로는 단 하루도 버티기 어렵다.”는 글을 쓰셨는데, 요즘 그 말이 옳다는 생각이 강하게 듭니다.
솔직히 말하라면, 만약 인간이 요즘처럼 미쳐 돌아가는 세상에서 “진실”과 사실과 현실“만” 접하고 살아야 한다면, “단 하루”가 아니라 ‘5분’도 버티지 못할 게 뻔해요. 그 때문에 ‘거짓말’과 ‘허구’와 ‘상상’이 사라지지 않는 겁니다.
어릴 적에는 100% 솔직담백한 것이 좋고 100% 사실대로인 것이 좋다고 여기고 살았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아서 씁쓸해요. 이젠 ‘나는 솔직담백하게 군다.’는 말을 들으면 ‘그걸 구실삼아 욕을 하거나, 불평을 막 늘어놓거나, 인신공격을 하거나, 편견을 드러내거나, 자기 입장만 고려한 요구를 하거나, 설교를 늘어놓으려고?’라는 생각이 들어 신경이 곤두섭니다.
제가 ‘겁쟁이’나 ‘거짓말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어버린 것 같아서 슬프기 그지없어요. 뭐가 잘못되었기에 이렇게 된 건지. 생각하면 할수록 우울함을 떨칠 길이 없습니다.
5. 어제 밤에 시장에서 작은 사과를 샀습니다. 달걀보다 작은 사과였어요(능금보다도 작았습니다). 이런 사과는 처음 보는지라, 호기심이 생겨서 샀습니다.
집에 가져가서 두 개를 먹어봤더니, 생각보다 맛있더군요. 달고 상큼했어요. 그래서 껍질째 씹어 먹었죠(요즘은 과일을 껍질째 먹고 있습니다. 그렇게 먹어야 영양분을 제대로 섭취할 수 있다고 해서요. 물론 그 전에 과일을 식초를 섞은 물에 담가서 농약을 빼요).
오랜만에 좋은 과일을 손에 넣으니 기분이 좋습니다. 역시 좋은 건 발품을 팔아야 얻을 수 있네요. 여러분도 이와 비슷한 일을 겪으셨는지? 부디 그렇길 바랄게요.
- 이제는 뉴스를 듣거나 신문/잡지의 기사를 읽는 일 자체가 두려운 돌베개
* 덧붙이는 글 : [북해의 별]과 [테르미도르]를 구해서 읽고 싶은데, 어떻게 구해야 좋을지 모르겠습니다. 지금 정치가 돌아가는 꼴이 엉망이라서 그 두 작품이 그립네요. 두 작품을 읽으면서 '길'을 찾고 싶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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