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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제가 - 우울증 때문에 - 정신과에 다니면서 상담을 받고 약을 먹는다는 걸 말씀드렸나요? 그런 지가 꽤 되었는데 아직 아무에게도 그걸 털어놓지 않았어요. (비록 가벼운 수준이지만) ‘정신병’을 앓는다는 게 부끄러웠거든요. 평소에는 고민이 있어도 그걸 사람들에게(심지어 가족에게도) 털어놓지 못하다가, 정신과 의사에게 갈 때에만 정직하게 마음에 있는 것을 털어놔요.
그런데 지난 번(그러니까 3주 전)에 진료받을 때에는 의사가 - 제 넋두리에 짜증이 났는지 - 제게 “제발 그만하라. 자꾸 (부정적인) 생각만 하지 말고 ‘생산적인 행동’을 해라. 그러고 나서 내게 그 행동을 하고 난 뒤의 결과를 보고해라.”라고 못을 박더군요. 야속했지만 뭐라고 따질 수도 없는 처지였기 때문에 그러겠다고 대답하고 물러났죠.
집에 돌아온 뒤 ‘이제 더 이상은 내 넋두리를 받아주지 않겠다고 선언한 거야. 좋아. “정직하게” 불만을 토로해봤자 소용없으니, 이제는 “듣기 좋은 거짓말”만 하자. 다음에 그 의사에게 갈 때는 아주 좋아졌다고. 사는 게 즐겁다고 거짓말을 해야지.’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이틀 전 다시 병원에 갔을 때에는 미리 준비해 둔 대로 의사에게 “전 기분이 아주 좋습니다. 몸 상태도 최상이고요, 하는 일 마다 다 잘 되고 있어요.”라는 거짓말(네, 그렇습니다. 이건 순전히 거짓말입니다)을 했어요. 그랬더니 의사는 만족했는지 더 이상은 묻지 않고 약을 처방해주기만 한 뒤 절 내보내더군요.
(저를 이해해주지 않는) 주변 사람들에게 담담한 척 연극을 해야 하는 것도 모자라서 이제는 저를 이해하고 도와주어야 할 의사한테까지 거짓말을 해야 하느냐는 생각이 들어 ‘조금’ 비참했더랍니다(쓴웃음).
이 이야기의 ‘교훈’은...제 문제는 제가 풀어야 한다는 거죠(한숨). 다른 사람에게 호소함으로써 문제를 풀 수 있고 마음의 짐이 조금이라도 가벼워질 수 있으리라고 믿은 제가 어리석었어요. 어느 책에서 읽은 구절 - 누구나 자기만의 ‘짐’을 짊어지고 있고, 그 짐을 다른 사람들에게 떠넘기려고 하면 짐이 아니라 사람이 떠나간다는 구절 - 이 이렇게 가슴에 와 닿을 수가 없습니다.
2. 5월 15일 - 그러니까 거의 한달 전의 일이죠 - 에 저를 가르치시는 교수님이 제게 “연구보조원이 될 생각이 없느냐?”고 물어보셨답니다. 무슨 소린고 하니 제게 문화 컨텐츠 사업에 참여하라는 말씀이었죠. 좀 자세히 설명하면 이래요.
만약 어떤 사람이 가야의 역사를 다룬 영화나 사극(또는 만화영화나 컴퓨터 게임)을 만들려고 하면 당연히 그와 관련 있는 자료를 찾아야 하죠. 그런데 그 자료가 이곳 저곳에 흩어져 있지 않고 한 누리집(홈페이지)에 모여있으면 그만큼 일이 수월해지겠죠? 교수님은 제게 그런 누리집을 만드는 일을 도우라고 하신 거예요.
교수님은 제게 자료를 찾아 가야의 토기(土器), 농기구, 마구(馬具), 무기에 대해서 정리하고, 모델이 되는 유물을 뽑아 그 사진 밑에 설명을 다는 일도 맡기겠다고 하셨는데, 만약 그 일을 할 수 있게 되면 60만원 정도를 벌 수도 있다고 하시더군요.
평소 고대사, 특히 고대인의 생활사(生活史) - 그러니까 고대인이 뭘 먹었고, 뭘 입었고, 어떤 그릇을 썼고, 어떤 병을 앓았고, 무슨 일을 하며 살았는가를 다루는 역사학 - 에 관심이 많았던지라 기어이 “그러겠습니다.”고 대답했고, 교수님은 제게 “아직 확정된 것은 아니고 구상하는 단계다. 이 일을 맡긴 단체에서 우리에게 ‘이 일을 맡아 달라’는 연락이 와야 한다. 그때까지는 기다려라.”고 하셨어요. 저는 ‘이건 내 실력을 증명할 수 있는 좋은 기회야’라고 생각하고 기쁨을 억누르면서 기다렸죠.
물론 교수님은 “우리 말고도 이 일을 맡겠다는 사람들이 많다. 경쟁률이 7대 1이나 된다. 우리가 이 일을 맡을 수도 있고 못 맡을 수도 있다. 만약 경쟁을 통과하면 자네에게 연락할 테니 그때까지는 기다려라.”고 하셨어요. 전 불안해 하면서도 ‘우리가 경쟁에서 질 리가 없어. 이 일은 꼭 맡아야 해.’라고 생각하고 기다렸죠.
그런데...역시 세상 일은 제 맘대로 안 되더군요(한숨). 어제 교수님이 제게 전자우편(이 메일)으로 편지를 보내셨는데, 그걸 읽어보니 우리(저를 포함한, 교수님이 지목하신 사람들)가 경쟁에서 탈락했다는 내용이었어요. 그러니 제 꿈은 물거품이 된 거죠 뭐. ..... 그 교수님 밑에서 배운 과목의 성적이 별로 안 좋아서 차라리 이 일을 맡은 뒤 제 실력을 발휘해 잘못을 만회하려고 했는데.... 이미 일이 이렇게 됐으니 어쩌겠어요? 현실을 받아들여야죠. 하하하.
일이 이렇게 된 이상 미련을 깨끗이 버리고, 대신 예전부터 해 오던 일(백제사/신라사를 다룬 책)이나 열심히 하려고 해요. 주저앉아 한숨 쉴 시간이 없으니 서둘러 일해야죠.
3. 제 스스로를 추스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다시 돈을 모으기 시작했고, 다시 운동하기 시작했고, (거의 팽개쳐두었던) 외국어를 다시 공부하기 시작했어요. 운다고, 화를 낸다고 잃어버린 것들(20대, 개인 재산, 건강, 날씬했던 몸, 옛 사랑)이 되돌아오지는 않는다는 걸 알고 있으니까, 앞으로 다가올 것들이나 잘 챙겨야죠.
최근에는 팬 픽션(만화영화나 영화의 팬이 원작의 내용을 바탕으로 직접 이야기를 쓰는 소설)을 쓰기 시작했는데, 적어도 글을 쓰는 동안에는 (그리고 글을 쓰려고 자료를 모으는 동안에는) 현실을 잊을 수 있어서 좋아요. (혹시 아시려나 모르겠지만) ‘틴타이탄’과 ‘아메리칸 드래곤 제이크 롱’이라는 미국 만화영화의 팬 픽션을 쓰고 있는데, 그걸 꾸준히 보아 주고 있는 팬이 있어서 외롭지가 않답니다(웃음).
제가 쓰다가 내버려 둔『불의 검』관련 소설도 따지고 보면 팬 소설인 셈이죠. 그건 가까운 시일 안에 다시 쓸 테니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 “넘어지면 일어나라! 또 넘어지면 또 일어나라!”는 말을 금과옥조로 삼고 아픈 목을 움켜쥔 뒤 글을 쓰고 있는....돌베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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