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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키님이 이곳에 후기를 올리면서 “너무 늦었다”고 하셨지만, 그래도 저보다는 일찍 올리셨으니 체면이 설 겁니다.
그럼 여드레 전의 기억을 펼쳐드립죠(험). 재미있는 일들은 이미 다른 분들이 다 말씀하신지라, 여러분이 말씀하지 않으신 것만 골라서 적을까 합니다.
3월 5일 오후 6시 20분, 저는 옷을 갈아입고, 장갑을 끼고, 목도리를 두른 뒤 (홍차 티백과, 선생님께 드릴 선물 두 개와, 스크랩북 한 개가 든) 검은 가방을 오른쪽 어깨에 매었습니다. 식구들한테는 미리 “서울에 있는 대학 동기들과 술 마시고 오겠다.”고 둘러댔죠(최근에는 동기들과 만나서 취업 이야기를 하는 일이 아니면 못마땅해하면서 반대하거든요).
3월 4일에 안 좋은 일을 겪고 몸과 마음이 엉망진창이 된 지라, 이런 모음에 가서 실컷 놀고, 먹고, 마시면서 우울함을 날려버리자고 다짐했어요(김혜린 선생님이 오신다는 소식은 이런 생각을 더 단단하게 다져주었답니다).
문제는 일이 시작할 때부터 엉뚱하게 꼬였다는 거였습니다. 우리 동네 앞에 있는 역으로 들어가 개찰구로 걸어가고 있는데, 갑자기 휴대폰이 울렸거든요. ‘아니, 바쁜데 누가 전활 걸었어?’라고 생각하면서 전화기를 집어드니까, 어머니 전화더라고요. 저한테 뭘 입었느냐고 묻기에 사실대로 대답했더니, “그런 옷은 입고 가는 게 아니다. 당장 돌아와라!”라고 하시는 거였습니다. 화가 나는 걸 참고 아파트로 돌아가서, 가방은 수위 아저씨한테 맡기고 ‘우리 집’이 있는 층으로 올라갔죠(나갈 때는 어머니가 주무셨고 할머니는 방 안에 계셔서, 제가 맨 가방을 보면 뒤져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어요).
집에서 새 옷(그러니까 선생님과 회원 여러분이 보신 그 옷 말입니다)으로 갈아입고 내려와서 다시 역으로 뛰었는데, 두 시계바늘은 6시 45분을 가리키고 있었고 갈 곳은 까마득히(?) 멀어서 절망스러웠사옵니다(아, 물론 가방은 되돌려받은 다음에 역으로 갔죠). 5호선을 타고 천호역까지 가는데 왜 그렇게 초조하던지! 전 그런 자신을 달래려고 ‘괜찮아, 안 늦을 거야. 20분 밖에 안 걸릴텐데 뭐!’라고 생각했죠.
.... 예상은 확실하게 빗나갔습니다. 목적지인 ‘미금’ 역은 20분은커녕 30분이 넘어도 나타나지 않았고, 그 때문에 ‘늦었다’는 죄책감이 들어 발을 동동 굴렀어요. 결국 바지 주머니에서 쪽지를 꺼내 ‘메디나’ 님의 전화번호를 읽고 휴대폰을 열어야 했습니다. ‘번호가 틀렸다면 어쩌나’라고 생각하면서 발신음을 듣고 있는데, 메디나님이 전화를 받으시더라고요. 제 사정을 설명해 드리니까, 이미 모일 사람은 다 모였다며 저더러 역 입구에 도착하면 전화를 하고 기다리라고 하셨죠. 그러겠다고 대답하고 전화를 끊었습니다.
7시 30분이 넘어서야 미금역에 도착했는데, 출구로 나오니까 아무도 안 계셨어요. 부끄러움과 절망스러운 기분을 애써 무시하고 다시 메디나 님께 전화를 걸었답니다. 그러니까 메디나 님이 “역에서 나와서 위로 걸어가면 하얀 산타 모자가 보이는 곳이 있어. 거기로 와요.”라고 말씀하셨어요. 전 그러겠다고 대답했죠.
문제는 제가 역 입구에서 나와 위로 걸어가는 동안 아무것도(!) 찾아내지 못했다는 거였습니다. 아무리 두 눈을 부릅뜬 채 좌우를 둘러봐도 “흰 산타 모자”는커녕 ‘빨간 산타 모자’도 못 봤으니까요. ‘아니, 이게 어떻게 된 거야? 내가 잘못 찾아왔나?’라고 투덜거리며 건널목에 섰을 즈음, 이번엔 메디나 님이 제게 전화를 거셨어요. 도대체 어디 있느냐고 하시는 거였습니다. 제가 “던킨도너츠 앞에 있어요.”라고 말씀드리니까 “거기로 갈 테니, 기다려요.”라고 하면서 전화를 끊으셨어요.
얼마 후 제 뒤에서 어떤 차가 빵빵거리는 소리를 내길래 돌아봤더니, 메디나님과 다른 회원 여러분이 차에 타고 계시는 거였습니다. 고맙기도 하고 죄스럽기도 해서 긴 말 않고 얼른 탔죠.
제가 갔을 때, 자하랑님 댁에는 이미 많은 분들이 진을 치셨더군요(끙....). 면목이 없어서 두 손을 모은 채 고개 숙여 인사를 드렸사옵니다(바라트[:영어 이름 ‘인디아’]인과 인도네시아 발리 섬 사람들의 인사법을 흉내냄). 물론 그 전에, 제가 번개에 오실 분들의 머릿수를 세서 그 수에 딱 맞게(?) 가져온 홍차 티백 서른 네 개를 내놓는 일을 잊지 않았죠(상자채 내놓은 홍차가 맛있었는지는 모르겠네요).
곧 메니다 님께서 남자들은 소파가 있는 구석으로 가라고 하셔서 그 분 말씀을 공손히 따랐는데, 남자 독자 가운데 한 분이 ‘알뤼느’라는 이름표를 달고 계셔서 깜짝 놀랐어요(이름 때문에 여자 독자인 줄 알았음). 그것 때문에 제 선입견을 다시 한번 살펴보게 됐죠.
다행히(!) 소파와 그 주변에 앉아있는 회원들하고는 곧 친해질 수 있었는데,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늘어놓기도 전에 무화과 잼을 바른 샌드위치와 복분자주, 포도주, 맥주가 나와 그것들을 먹고 마시면서 속마음을 쉽게 털어놓을 수 있었사옵니다.
(복분자 술을 처음 맛보았을 때, 너무 달아서 “아니, 이게 술이야, 아니면 포도 쥬스야? 너무 다네!”라고 말했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또 지난해 여름인가 가을에 종로 3가의 인사동에서 전라도산 무화과를 껍질채 씹어먹었는데, 샌드위치를 보니까 그 때의 기억이 떠올라서 즐거웠어요. 그래서 그 ‘추억’을 곁에 계신 분들한테 털어놨죠. 샌드위치는 식빵과 식빵 사이에 무화과 잼만 있었기 때문에 맛있게 먹을 수 있었어요)
술을 마시고 수하이님에게 ‘노골적으로 반대하는 사람보다, 겉으로는 방긋방긋 웃으면서 등 뒤에서 칼 빼드는 사람이 더 무섭다. 전자는 경계할 수 있지만, 후자는 그럴 수 없기 때문이다. 후자의 대표적인 예는 사마의다.’라고 말씀드렸고, 그러니까 수하이님이 장난스러운 목소리로 남궁준광 님을 가리키면서 “얘가 대표적이잖아, 안 그래요?”라고 말씀하시대요. 전 웃으면서 남궁준광 님에게 “님한테 말씀드린 건 아니예요.”라고 대답했죠. 제가 여포(呂布) 이야기를 꺼내니까, 수하이님이 “그는 줄을 잘못 선 불쌍한 사람”이라고 말씀하신 것도 기억나요. 아참, 제가 “수하이바토르는 비록 거칠지만 솔직했다. 그러나 제백은 겉으로는 정중했지만 속은 음흉했다.”고 논평한 것도 생각나네요.
번개 분위기는 남궁준광/하창룡 부부가 들어오면서 한층 더 뜨겁게 달아올랐는데, 이는 순전히 두 사람이 철썩 들러붙어서 떨어질 줄 몰랐다는 것 때문이었습니다. 홀로 남은 저는 그들을 질투해야 할 텐데, 이상하게도 전혀 화가 나지 않더군요.
오히려 신랑에게는 복분자주를 권했고, 술을 마시면서 “결혼을 축하한다”고 말했어요. 나아가 아직 세상을 구경하지 못한 두 분의 아기에게 ‘너를 축복해주고 싶다’고 까지 했습니다. 제가 이상하게 굴었나요? 하긴 그렇게 생각하면 처음 뵌 준광님께 “만약 제가 역사책을 다 쓰면, 두 분의 아이가 꼭 그 책으로 배울 수 있게 할게요.”라고 말씀드린 것도 ‘불가사의한 일’이네요. 정말 사람의 마음은 ‘알 ~ 수가 없습니다’요.
그런데 이런 흥겨운 잔치는 위태로운 짓을 태연하게 저지르는 돌멩이(돌베개)라는 악당(?) 때문에 위태로와졌으니, 그건 순전히
쌀밥과, 쌈장과, 두부김치와, 상추를 ‘열심히, 부지런히’먹었고, 김혜린 선생님께 졸업논문의 복사본이랑 준비하고 있는 책의 일부분을 선물해 드렸고, 그분 옆에서 오른쪽 무릎을 꿇고 왼쪽 무릎은 든 채 앉아서 “진시황릉의 병마용 같지 않아요? 예전에 도록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 책에서도 이런 자세로 앉은 토용(:흙인형)이 있더라고요.”라고 말씀드리고, ‘진시황릉에서 청동 무기랑 돌 갑옷이 있다는 걸 보고 깜짝 놀랐다.’고 했다가 선생님께 “철기시대라고 해서 모두가 다 철기를 쓴 건 아니거든요.”라는 지적을 받았고, 제 스스로를 ‘보잘것없는 독자’라고 소개했다가 선생님이 “앞의 ‘보잘것없는’이라는 말은 좀 뺍시다.”라고 말씀하셔서 ‘주문’대로 다시 인사드렸고, 제자리로 돌아와 주위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선생님이 머리칼을 틀어올리신 모습을 보고는 “선생님, 꼭 귀부인 같아요. 벽화에 그려진 귀부인 말이예요.”라고 솔직하게[!] 말씀드렸더니 다른 회원으로부터 “아첨꾼”이라는 소리를 들었고, 김혜린 선생님이 그 말을 듣고 “『불의 검』에 나오는 머리는 얼마든지 가능해요. 왜냐? 내가 직접 그 모양을 해 보고 나서 그리거든.”이라고 말씀하셔서 감동했던
...제가 벌떡 일어나서 반찬그릇과 밥그릇 사이를 지나 큰 병을 들고 다른사람들이 마실 포도주를 따르는 ‘위험한(?) 짓’을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다음날 아침에 얘기를 들으니 제가 술에 취한 채 휘청거리면서 돌아다녔고, 그 모습이 - 키가 큰 나머지 - 위태로왔다네요. 또 제가 포도주를 ‘직접 따르겠다’고 고집했기 때문에 더 불안했대요. 그래서 제가 일찍 잠들어 버리자 모두가 안도했답니다. 부끄러워서 말이 안 나오네요. 다음부턴 안 그럴게요)
11시인가 12시에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침대가 있는 방의 방바닥에 드러누워 잠들어 버렸는데, 깨어 보니 다른 방이라서 잠시 어리둥절했어요. 그래도 늦게 먹는 아침밥은 맛있었고, 청소기로 바닥을 밀고, 다른 회원들과 함께 소파를 옮기고(이 때 팔 힘을 키워야 한다는 걸 새삼 깨달음), 자질구레한 쓰레기를 봉지에 넣은 다음 아침에 떠나지 않은 회원들과 함께 홍차를 마셨죠(몇 명은 커피를, 몇 명은 홍차를 마셨어요. 홍차의 향기가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답니다). 떠나고 싶지가 않았지만 그래도 어차피 머무를 수 있는 시간은 정해져 있으니까, 아쉬움을 뒤로 한 채 일어서야 했습니다.
(‘바리’님과 함께 고양이 얘기(얘기를 들어보니, 바리님은 암고양이 한 마리와 함께 사시더군요)랑, 일본어 학원을 고르는 기준, 일본어를 배우는 방법을 이야기한 것도 기억나요. 그 분이 “나중에 게시판[린월드 게시판]에 올려줄게요.”라고 말씀하셔서, 그 때까지 기다리기로 했습니다)
모든 회원들이 벌떡 일어나더니 “이제 갑시다.”라고 했어요. 그래서 ‘난 나중에 가도 되겠지’라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지하철을 타고 가시는 분들이라면 다 가야 하더군요. 부끄러움을 감추면서 곧 그 분들을 따라갔습니다. 그리하야, 늦지 않게 역까지 간 뒤 집으로 돌아갔죠. 덕분에 이틀을 즐겁게 보냈습니다. 절 불러주셔서 정말 고마워요.
- ‘패자부활전’을 꿈꾸는 .... 작가 지망생 돌베개
*덧붙임 1 : 자하랑님 댁의 책장에서『로보트 킹』시리즈와,『마당을 나온 암탉』의 표지를 봤습니다. 제가 읽은 적이 있는 명작(!)을 다른 곳에서 또 볼 수 있었다는 게 얼마나 기쁜 일인지!
*덧붙임 2 : 번개 내내 설거지를 하고 싶었습니다. 앞으로는 제게 설거지나 청소를 맡겨주세요. 열심히 하겠습니다.
*덧붙임 3 : 선생님, 제게 “착한 이” 가운데 하나라고 말씀하셨는데, 그건 과찬이라고 생각해요. 아직도 고쳐야 할 게 많고 머릿속에서 ‘독’을 뽑아내야 하는데, 그렇게 말씀해주시면 부끄러워서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덧붙임 4 : 사실, 그 땐 선생님께 평가를 받고 ‘만화가가 될 수 있는지, 없는지’를 알고 싶어서 제 ‘낙서’들을 모은 스크랩북도 갖고 갔었는데....보여드리질 못했어요. 나중에 선생님께 보여드릴게요. 꼭 평가해 주세요(제가 선물해 드린 건 마음에 드셨는지....다른 분들의 정성스러운 선물을 보니, 제 것이 너무 초라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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