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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해의 별> 팬북 질문 & 답변 게시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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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돌베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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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겨진 종이컵, 꺼진 촛불(:실화) - 미군이 무죄라굽쇼?

… 이 글을 쓰는 동안에도 슬퍼서, 그리고 그동안 쌓인 졸음과 피곤이 저를 뒤흔들어서 견디기가 힘들어요. … 오늘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세요? 돌베개가 '말'을 행동으로 옮기려고 다짐했다가, 두 가지 일 가운데 하나는 이루고, 다른 하나는 이루지 못한 채 울음을 삼키면서 돌아온 '일'이죠.

무슨 말인지 잘 모르시겠죠? 작고 둥그런 은테 안경을 낀(3주일 전에 안경을 바꿨습니다.
5년 동안 써오던 안경이 더이상 쓰지 못할 정도로 금이 가서요) '비겁한(!)' 자의 소리를 듣다 보면 아시게 될 거예요. 한번 들어보세요.

닷새 전, 미군 장갑차에 한국 중학생 두 명이 죽임을 당한[!]일)를 기억하시죠? 전 '다음'넷에도 회원으로 들어와 있어서 그곳의 '나도 한마디'라는 토론장에 자주 들어가는데요, '나도 한마디'가 '네이버'의 토론장처럼 그 문제로 들끓고 있었어요.

며칠 전부터 -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하면 가해자들이 '무죄'판결을 받고 풀려난 뒤부터! - 엉터리 판결을 내린 미군과 미국 정부를 비난하고 성토하는 말이 쏟아져 나왔죠. 시위를 벌이자는 의견도 있었고, 미국 정부를 욕하는 내용도 있었고, (심지어는) '판결을 존중하자.'는 말도 안되는(!) 의견까지 나오더라구요.

그런데 사흘 전, 누군가가 그 게시판에 "당신들이 이곳에서 떠들기만 한다고 나아질 게 뭐냐? 우리는 '행동'해야 한다. 인터넷 안에서 백날 떠들어봤자 아무런 소용이 없다. 나가라. 행동해라. 시위를 하고 불매운동을 해라!"라고 꾸짖는(!) 글을 올렸어요.

뒤통수를 망치로 얻어맞은 기분이었고, 명색이 '사학도'이면서, 그 문제로 화가 났으면서, 정작 현실에서는 '행동'하지 못한 제 스스로에게 화가 났죠.(부끄러웠고요)

그래서 '그 사람의 말이 옳아. 나도 행동해야 해. 그런데 어떻게 행동해야 할까?'라고 고민했어요. 그러다가 '나도 한마디' 게시판에서 "광화문"에 모여서 "종이컵"에 담긴 "촛불"을 들고, "검은 옷"을 입은 채 추모행사를 하자는 글을 읽었고, 때마침 행동하지 못한 제 스스로가 부끄러웠던지라 '그래, 가야겠다. 가자!'라고 마음먹었습니다.

시간도 오후 여섯 시라 제가 퇴근한 뒤 한 시간 뒤에 시작되기 때문에 (이론상으로는) 아무 문제가 없었어요.

또 '나도 한마디'와『내일신문』11월 29일자(음력 10월 26일자)에서 "여중생 대책위(antimigun.org)"의 "관계자"가 "매일 저녁 6시 서울 종로에서 벌이는 서명과 모금운동에 시민들의 참여가 이어지고 있다."고 말하는 기사를 읽은 뒤

'이곳에도 가자. 가서 서명하고 그들을 돕는 성금을 내자. 그렇게라도 '행동'하자.'라고
생각했고요.(두 시간이 겹친다는 사실은 심각하게 여기지 않았습니다)

스스로에게 '이 두 모임에는 꼭 가야 해. 알았지? 안 가면 넌 존재가치가 없는 거야. 행동하지 못한 비겁자라구.'라고 경고(!)하면서 느슨해지려는 마음을 꽉 다잡았습니다.

드디어 '운명의 날'인 오늘. 전 집에 돌아왔죠. 문제는 일터에서 온갖 스트레스를 받으며 너무 지쳐 있었기에, 그걸 푸느라고 무려 50분(!)을 푹 늘어져 버렸다는 거였어요.(눈꺼풀은 눈꺼풀대로 무거워서, 몸은 몸대로 힘이 빠져서 그냥 주저앉아 자고 싶더래요. 그래도 제 스스로와 약속한 일이었고, 자기 생각을 '행동'으로 보여 달라고 한 그 네티즌의 말이 떠올라서 용기를 냈죠)

뒤늦게야 허둥지둥 검은 바지, 검은 스웨터, 검은 외투, 검은 허리띠를 걸치고 외투의 왼쪽 가슴에는 동그란 견장(:뱃지) - 태극기처럼 윗부분은 빨갛고 아랫부분은 파란 빛이며 한가운데에는 '대 ∼ 한민국'이라는 흰 글씨가 쓰여져 있는, 그리고 노란 테두리의 윗부분에는 "덕수궁터 미대사관·아파트신축 반대"라는 검은 글씨가 적혀 있는 - 을 단 뒤, 운동화를 신은 채 집을 나섰지만

(집에는 '운동하러 간다.'고 둘러대고 나왔죠. 이런 문제는 말하기 싫어하거든요. 툭하면 시위대에게 "X갱이"나 "미XX 들"[특히 노동자들의 시위에 이런 말을 즐겨[!] 쓴답니다 -_-;::: 식구라는 사실이 창피할 정도예요]라는 '딱지'를 붙이는 집안 분위기 때문에, '추모행사에 간다.'고 솔직하게 털어놓지 못했습니다) 이미 때는 너무 늦었죠.

염치불구하고 '그래도 기다려 줄 거야. 내가 늦긴 했지만 기다려주겠지.'라고 생각하면서, 실날 같은 희망을 걸고 지하철을 탔어요. 손에는 종이컵에 담긴 양초와 운동할 츄리닝을 담은 가방을 들고요.(양초는 지하철 안에서 단단한 책갈피로 잘랐답니다. - 종이컵 높이에 맞춰야 했거든요 - ) 애태우면서 '종로 3가'(신문기사에는 "종로"라고만 했지, 종로의 어느 곳인지를 구체적으로 말해주지 않았고, '나도 한마디'에 실린 글은
"종로"의 "YMCA"건물 앞에서 서명을 받는다고 가르쳐줘서요)역까지 갔고, 거기에 내려서 '약속 장소'를 향해 헐레벌떡 뛰어갔습니다.

역을 나오고 나서 양초에 불을 붙였고, 촛불이 꺼지지 않게 종이컵 주위를 손으로 가린 뒤 고개를 똑바로 들고 앞만 보고 걸었죠.(제 숨에 촛불이 꺼질까봐 겁이 났거든요) - 두 중학생과 (그동안 '동맹군'이라는 미군에게 억울하게 죽어간) 우리나라 사람들을 추모하고, 그들의 슬픔을 제 슬픔으로 받아들이겠다는 - 제 '뜻'을 나타내고 싶어서, 광화문이 아닌데도 촛불이 든 종이컵을 쥔 채 묵묵히 걸어갔어요.

(물론 사람들에게는 "종로에서 두 중학생을 죽인 미군을 다시 재판하라는 서명운동이 일어난다고 들었는데요, 그 운동을 어디서 하는지 아세요?"라고는 묻지 않았죠. 그랬다가는 경찰관들에게 "날 잡아가세요."라고 말하는 거와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해서요. 그리고 자칫 잘못해서 지금 기자들에게 걸리면 끝장이라고 생각했죠. 어떤 사람에게 물었는데 그 사람이 경찰관이나 기자라면 어떡합니까? 제가 - 복무하고 있는지라 - 아직은 자유롭지 못하거든요)

"종로"라는 말 한마디만 믿고, '아마 탑골공원 정문에서 서명하겠지.'라고 생각하고 (서울에서 오랫동안 살았는데도) 길치이자 방향치라는 사실도 잊고, 기억을 더듬어서 탑골 공원(파고다 공원의 새 이름)까지 갔죠.

그런데 시간이 너무 늦어서(?) 그런지(자그마치 한 시간이나 늦었음) 아무도 없더라구요. 근처에는 경찰관도 없으니까 감시해서 못 모인 것도 아닌데 말이죠.

너무 놀라서 '내가 늦게 온 죄값을 치르나?'라고 생각하고 잠시나마 '포기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다가 갑자기(!) 이런 생각이 떠올랐어요.

'잠깐, "종로"에 있는 "YMCA" 건물 앞에서 서명받는다고 했지? 그럼 YMCA 건물만 찾으면 되겠네?'

... 저는 새 희망을 품고 주변의 지도에서 열심히 YMCA건물을 찾았죠. 그리고 지도에 나온 대로 탑골공원 문 앞에서 '위'로, '위'로 쭉 올라갔습니다. 한참 올라가고 나서 YMCA 건물 앞까지 오니까... 어떻게 된 지 아세요?

YMCA 건물 앞에... 이미 다 치워진 좌판과, 뒤집어진 책상과, 남은 '잔해'를 정리하는 한두 사람만 있더라구요. 제가 너무(!) 늦게 간 거죠.(쓴웃음) 그래도 희망을 버리지 않고 그 사람들에게 다가가 "여기가 서명받는 곳 맞나요? 신문(『내일신문』)기사를 읽고 찾아왔는데요."라고 말을 걸었어요. 그리고 가방에서 신문을 꺼내 - 아까 말씀드린 - 『내일신문』의 기사를 보여줬죠.

그 사람들이 깜짝 놀라면서도 반가워하더라구요. "너무 늦게 왔어요. 이제 막 치우려던 참인데."라고 해서 제 가슴에 못(!)을 박긴 했지만요.(그래도 늦게 온 자가 잘못이지, 다른 사람이 잘못이겠습니까... 할 말이 없었죠) 전 급한 김에 "날마다 이곳에 오세요? 오후 여섯 시면 오시냐고요? 다음 주에 와도 되나요?"라고 물었고, 그들은 "그럼요. 늘 여섯 시에는 열리는걸요. 그때 오세요."라고 말했어요.

...전 그때 '이번이 아니면 기회가 없고, 오늘 하기로 한 일은 늦게라도 해야 해.'라고 생각해서 염치불구하고 "그럼 서명판이라도 꺼내서 보여 주세요. 서명만 하고 갈게요."라고 부탁드렸죠. 그들은 그 부탁을 들어주었습니다.(그분들에게, 이 자리를 빌어 고맙다는 인사를 드립니다) 전 재빨리 펜을 꺼내 서명한 뒤 성금을 내고 자리를 떠났죠. '그래, 난 행동했어. 늦게 왔으니까 기자들에게 걸릴 염려도 없고 얼마나 좋으냐?'라고 스스로를 위로하면서요.

문제는 그 다음이죠. '이젠 광화문에 가야 할까, 아니면 그냥 돌아갈까?'하고 고민하다가 '에라, 어차피 온 김에 이 일도 마무리짓고 가야지. 하기로 마음먹고 안 하면 약속을 어기는 거야!'라고 생각해서 지하철을 타고 광화문으로 간 거예요.

지하철 입구에서 (누군가가 저를 알아보거나 사진을 찍을까봐 겁이 나서) 안경을 벗고 고뿔(:감기)환자가 쓰는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뒤 시치미를 뚝 떼고 밖으로 나왔죠. ...광장이라고 짐작되는 곳으로 나오긴 했는데, 아무도 없더라구요.(광화문에서, '비각'이 있는 출구로 나왔음) 사방을 둘러봐도 아무도 안 보이길래 잠시 주춤했는데, 걸어가다가 몽둥이를 든 경찰들이 네 사람 모여있는 걸 보고 겁이 나기 시작했죠.

'아. 이러다가 [X갱이]로 몰리면 어쩌지? 난 단지 추모하려고 했을 뿐이고 시위에 끼이려고 했을 뿐인데! 내가 처벌받는 건 겁나지 않지만 식구들은? 친척들은? 그리고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은? 아직 난 복무기간도 많이 남았잖아? 만약 어느 재벌신문이나 "할 말은 하는" 언론권력이 나를 왜곡보도하면?'

… 이런 생각이 들면서 갑자기 마음 속이 얼어붙기 시작했어요. 촛불이 든 종이컵을 든 채, 경찰과 밤 거리를 번갈아 보면서 머뭇거렸죠.

바로 그 때 검은 잠바를 입은 중년 아저씨(저는 형사라고 생각합니다)가 저한테 다가오시더니, 뜨악한 눈초리로 저를 보시고 이렇게 물으시더라구요 :

"이봐, 학생! 뭐하고 있는 거요?"

변명할 여지가 없었죠. 검은 옷을 입은 데다가 하필이면 광화문에서 촛불이 담긴 종이컵을 들고 서성거렸으니까요. 전 마음을 비우고 '담담하게' (마스크는 쓴 채로) 대답했습니다 :

"아, 네. 만날 사람이 있었는데요. 엇갈렸나 봐요."

그 아저씨가 다시 물어보셨죠 :

"그럼 그 촛불은 뭐예요?"

우습게도(!) 아무런 동요 없이 이런 거짓말이 술술 나오지 뭡니까 :

"네. 친구한테 전해 주려고 했는데요. (친구를) 못 만나서요."

그 아저씨는 저랑 촛불을 잠시 번갈아 보시더니 이러셨어요 :

"여기가 어딘데.. 촛불 끄고 돌아가요."

저는 찍소리 못하고 "네.." 라고 대답한 뒤 뒤도 돌아보지 않고 지하철 역으로 내려가기 시작했습니다. 후퇴한 거죠.

내려오면서, 저는 촛불을 불어 끄고 양초가 든 종이컵을 구겨 내버렸어요. 제 스스로를 구기듯이 컵을 구겨버렸죠. 그리고 소리죽여 울었어요.(너무 분해서 눈물이 안 났고 우는 소리만 났죠.) 얼굴을 일그러뜨리면서, 비겁하게 물러섰고, 약속시간에 늦었고, '행동'하지 못한 스스로를 비난했어요. 제가 얼마나 겁쟁이인지, 가치 없는 놈인지를 깨달았죠. 오른손으로 얼굴을 감싸쥐고 울었어요. 죽은 이들에게 죄스러워서, 그리고 가해자에게 맞서거나 따지지 못한 제가 싫어서요.... (광화문 역까지 내려온 다음에야 마스크를 벗고 안경을 다시 썼죠) 그래도 제 마음은 저를 이렇게 위로하대요 :

마음 : "이봐, 그래도 잘했어."

나 : "뭐가요? 뭘 잘했단 말이예요?"

마음 : "예전엔 '말'로 떠들기만 했는데 이젠 '행동'했잖아."

나 : ...?

마음 : "넌 두 가지 행동을 하기로 약속했지. 하나는 종로에 가서 서명하고 성금을 내겠다는 거였고, 다른 하나는 촛불 시위에 끼이기로 한 거였어. 넌 최소한 한가지는 '실행'했잖느냐? 이제부턴 나머지 하나도 잘 하면 되는거야. 너무 실망하지 마. 그래도 넌 나아졌어."

나 : ....

덕분에 조금은 마음이 가라앉았죠.(쓴웃음) 그래도 제가 비겁했고, 약속시간을 지키지 못했던 건 숨길 수 없는 사실이예요. 그래서 아직까지 기분이 '덜' 좋네요. 지하철을 타고 돌아오는 길에 이렇게 다짐했죠 :

'그래, 얘들아. 이 수모를, 이 부끄러움을 결코 잊지 않으마. 어떤 이들은 이걸로 모든 게 끝났다고 여기겠지. "두고 봐라, 절대 그렇게는 안 될 거다." 이 억울함은 어떻게든 갚아 줄게. 반드시!'

그 마음은 지하철에서 웃고 떠드는 7~8살짜리 아이들을 보면서 더욱 굳어졌어요.

'난 저 아이들이 자라서 장갑차에 죽임을 당하는 세상은 만들지 않아. 저 아이들이 굽신거리는 세상도 만들지 않겠어. 저 아이들이 남의 나라 군대에 억울하게 두들겨맞고, 죽임을 당하는 세상은 결코 만들지 않겠어, 절대로!'

(그 애들과 효순이, 미선이가 겹쳐졌어요. 그리고 - 외람된 말씀이오나 - 단목다루, 아직 세상을 구경하지 못한 아라와 산마로의 아이, - 앞으로 태어날 - 해조공녀와 에벤키 족장의 아이도 떠올랐고요... 괜히 슬퍼지고 화가 치밀어 올랐죠. 제 머릿속에서는 미군이 [불의 검]에 나오는 화족華族 - 자칭 "중원"인 - 군대와 겹쳐졌어요)

...이 마음을 잊지 않으려고 둔촌동에 있는 PC 방에서 긴 글을 쓰고 있답니다... 이것이 오늘 떠들고 싶었던 사연이예요. 언젠가는 이 일로 잃어버린 제 명예를 되찾을 때가 오겠죠. 그 날이 오지 않는다면 스스로 '만들어' 나갈 겁니다. 여러분, 이 못난이를 꾸짖어 주세요.저는 많은 분의 꾸지람(이나 격려)을 먹고 자라 꼭 꿈*을 이루고 말 테니까요. 지켜봐 주세요. 꿈*은 이루어집니다.

- 자기가 '겁쟁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그러나 포기하지 않고 다음 기회를 노리는 돌베개가 2002년 11월 29일(4335년 음력 10월 25일)에 씀.

* 덧붙임 : 화족의 군대가 "도와줬답시고" 미군처럼 굴지도 모르겠네요. 어차피 예상할 수 있는 일이긴 하지만요.

메디나

[2002/11/30]

이 글을 올리신 그 순간부터 돌배게님은 '겁쟁이'의 대열에서 벗어나셨습니다...아이 엄마라는 이유만으로 아무 행동도 안하고 있는 저에 비하면 그래도 얼마나 용기있는 행동이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