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 게시판

게시일시: 1999/06/26 오후 3:39
게시자: sun
제목: 남궁준광을 추억하며..

오래전에 읽었던 비천무에서 나는 이상하게도 자하랑이나 설리보다
남궁준광에게 마음이 쏠렸다.
다른 만화에 비해서 김혜린님의 작품들에서 조연들의 인생에 많은 공감을
하지만 그래도 나는 주인공들의 삶에 가장 열광하고 동화되지 않았던가
그런 내가 어째서 유독 남궁준광에게 관심을 가지게 되었단 말인가
남궁준광은 어찌보면 이 만화에서 악역에 해당된다.
사랑하는 두 주인공을 억지로 갈라지게 만든 장본인이 바로 그다.
`북해의 별`에서 에드와르드 대공이 그저 수동적인 의미의 방해자라면 그
는 오히려 적극적인 방해자가 아니던가
친구가 될 수 있을것으로 여겼던 자하랑을 죽이는 데 한몫을 했으므로.
어쩌면 그가 직접 죽이지 않고 그저 남이 자하랑을 죽일 수 있도록 방조했
기 때문에 그래도 조금은 양심이 있는척, 착한척하는 더 나쁜 놈일지도 모
른다.
자신이 사랑하는 여자를 쟁취하기 위해서 자하랑과 직접 싸울만한 용기도
없는 비겁한 놈이 바로 그다.
그런데도 왜 그는 자하랑보다 나를 아프게 하는가
한족이면서 오랑캐(?) 원에게 붙어있는 자신의 가문을 수치스럽게 생각하였
으나 가문을 버릴 용기도 없고, 설리를 사랑하였으나 그녀를 사랑하는 남자
에게 보낼 수도 없었던 그.
그는 참 비겁하다.
그런데 그런 비겁한 자신을 알 수 있어서 그는 참 슬프다.
완전한 악인도 그러나 완전한 선인도 될 수 없었던 그.
자신의 아들이 아닐거라는 것을 어렵풋이 알면서도 사랑하던 설리의 아들이
라서 사랑했던 그.
자신을 증오하면서 자신의 딸을 낳지 않기 위해 몸부림치던 설리의 빈 껍데
기라도 옆에 둔 것으로 만족했던 그.
나는 그가 참 불쌍했다.
자하랑과 설리가 행복해져야해 하는 절대적인 지지를 그에게 보낼 수 없기
에 나는 그가 더 불쌍했다.
왜 그는 멋있게 자신이 사랑하지만,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여자를 그 여자
가 사랑하는 남자에게 보낼 수가 없었을까
그는 자신의 인생을 자신의 신념대로, 양심대로 용기있게 살 수 없었던 걸
까
그가 참 비겁하고 약했기 때문에 나는 그가 두 연인에게 한 짓을 보고도 그
를 미워할 수 없었고 오히려 사랑하는 두 연인보다 그에게 더 끌렸던 것일
까
그를 보면서 산다는 것이, 자신의 양심과 신념을 지키면서 사는 것이 얼마
나 많은 용기를 필요로 하는 것인가하는 것을 어렴풋이 깨닫게 된것 같다.
순간의 비겁함으로, 양심을 눈감음으로써 평생 죄책감을 가지고 살았고 또
그래도 행복했다던 그.
자하랑을 구해줌으로써 양심을 되찾은 그가 이제는 편히 쉬었으면 좋겠다.
저세상에서는 자하랑과 설리의 아름다운 사랑을 너그럽게 쳐다볼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어렸을 때 비천무를 보면서 느꼈던 생각인데 잘 표현이 되지않네요
너무 못썼다고 꾸짖지 말고 그냥 읽어주시면 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