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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게시판에「▷◁서기 2014년 상반기 결산 - 본인이 지난 다섯 달을 어떻게 보냈는가에 대하여」를 쓰고 난 뒤 다섯 달 동안 시간을 낭비했습니다. 이제 어렵게 마련한 글 쓸 수 있는 시간을 맞이해 제 속에 있는 것들을 끄집어내겠습니다.
1. 먼저 11년 전 한 한국 만화가가 자기 단행본에 실은 말로 인사를 대신합니다. 이 말이 지금의 제 심정(특히 지금 다니고 있는 만화학원에 대한 심정)을 너무나 정확하게 대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제가 이 말을 인용할 수 있는 까닭은 학원 휴게실에 이 말이 실린 만화책이 꽂혀 있고, 제가 그것을 읽었기 때문입니다). 그 말은 이렇습니다 :
“요즘의 나는 공중부양 중인 듯하다. 어디에 속한 사람인지도 모르겠고, 무슨 일이 내 주업(主業)인지도 모르겠다. 미안해야 할 사람들에게 미안해 하는 법도 잊었고, 창피해야 할 일에 창피해 하는 법도 잊었다. 아 … 바람아 멈추어다오.”
2. 바둑을 두고 싶어서, 체스를 익히고 싶어서 발만 동동 구르고 있습니다. 바둑을 두면 뭔가 멋있어 보이고, 바둑이 머리를 쓰는 데 도움이 되어서 두뇌를 개발하는 수단이 될 수 있다는 말을 들었고, 체스도 그 점은 마찬가지라고 알고 있기 때문에 이러는 겁니다. 듣고 웃으실지 모르지만 저는『불의 검』에 나오는 무타와 천궁(天弓 : 마리한)이 포타 하슬라에서 만나서 궁궐 안에서 바둑을 두고 차(茶)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거라고 상상한 적도 있습니다(둘이 의외로 죽이 잘 맞을지도 모르죠. 가끔 가다 산마로 형 - 가라한 아사 - ‘험담’도 하고). 그래서 위성방송에서 바둑을 다루는 채널을 틀어보기도 하는데 이건 뭐, ‘들어도 들어도 무슨 소린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바둑을 다룬 책을 사서 읽어야 하는 건지.
3. 세계 각국의 무술을 배우고 싶다는 ‘(지금으로서는) 불가능한 욕망’에 사로잡혔습니다. 일단 생각나는 것만 늘어놓아도 한국의 태껸(태권도 말고요!)과 ‘수박(먹는 과일 말고요. 개성[開城] 상인 - 송도 상인이라고도 하지요 - 들이 단련하던 무술의 이름입니다)’, 말레이시아의 ‘실랏’, 필리핀의 ‘아르니스(칼리라고도 하지요)’, 캄보디아의 ‘보카토르’, 브라질의 ‘카포에이라’, 하와이 원주민의 ‘루아’, 이란의 전통 무술이 있네요. 이 가운데 하나만이라도 배우고 싶어 애태우는 가슴을 안고 산답니다. 하지만 현실은 만만치 않죠. 무술은 커녕 기본적인 운동(걷기와 근력운동)만 하면서 버텨야 하니까요. 그래도 포기하지는 않을 겁니다. 제가 웹툰 작가가 되고 만화계에 뿌리를 내리는 데 성공하면 꼭 무술에 도전할 거예요. 일단은 꿈이라도 버리지 않고 붙든 채 버티려고 합니다.
4. 누리그물(인터넷을 일컫는 순우리말. 누리[순우리말로 ‘세계世界’]를 그물[넷net]처럼 엮은 통신망이라는 뜻)의 게시판에서 욕을 먹거나 비난을 받거나 인신공격을 당할 때(그 가운데는 차마 이곳에 소개할 수 없을 정도로 끔찍한 글도 있습니다), 전에는 미친 듯이 화를 내며 복수하려고 했지만, 이제는 더 이상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만약 누가 저에게 돌을 던지면(그러니까 욕하거나 비난하면), 저도 게시판에 들어가서 저를 비난한 사람과 똑같은 말을 하는 사람에게 ‘똑같이’ 돌을 던지고, 게시판 밖으로 나와서 그 사실을 깨끗하게 ‘잊어버립니다.’ 그리고 ‘난 애초에 논쟁하려고 들어간 게 아니야. 내가 하고 싶은 말만 하고 나오자. 잊어버리고, 신경 쓰지 말고, 모른 척 하자. 내가 해야 할 중요한 일은 이게 아니야. 정말로 중요한 일에만 집중하자.’라고 다짐하죠. 제가 저를 아끼려면 이런 식으로 행동해야 합니다.
5. 신해철 형님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도 (그 죽음을) 실감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17년 전 <영혼기병 라젠카>의 주제곡을 듣고 그 분의 팬이 되었고, 그 뒤로도 그 분의 음악을 자주 접하면서 살았는데, 이렇게 떠나시다니 …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그 분을 기리려고 제가 회원으로 등록한 다음넷 카페에 그 분의 노래가 담긴 동영상도 올렸습니다만) 저는 아직도 그 분이 사라지신 게 아니라 ‘아주 잠시 동안 외출했을 뿐’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 분은 이 세상에서 노래와 음악으로 영원히 남아 있으실 겁니다. 신해철 형님, 부디 저 세상에서는 편히 쉬소서.
6. 요즘 한국 만화영화와 한국 웹툰에 푹 빠졌습니다. <아이엠 몽니>나 <내 친구 해치>나 <뉴 아기공룡 둘리>의 주제가가 담긴 동영상이 제 마음을 빼앗았고요,『동양의 환상』이나『아론의 무적함대』나『오렌지 마말레이드』나『무림수사대』나『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고 사랑해』나『용이 산다』나「송곳」이나「이스크라」나「지킬 박사는 하이드씨」같은 한국 웹툰이 저를 유혹하기 시작했죠. 아마 당분간은 웹툰의 바다에서 빠져나오지 못할 것 같습니다. 마음 같아서는『미생(未生)』도 사서 읽어보고 싶은데(웹툰이었다가 단행본으로 나온 만화들은 웬만하면 사서 읽거든요), 생활비가 모자라서 그게 마음대로 안 되네요(몇 달 전부터 ‘노후자금을 마련해야 한다.’는 명목으로, 생활비로 받는 돈의 75%를 보험사에 강제로 뜯깁니다. 나머지 돈 가지고 허리띠를 졸라매며 살아야 해서 요즘은 정말 ‘가난하게’ 산답니다. 흑흑흑! 보험사에 낸 돈을 나중에 돌려받을 수는 있는 건지 모르겠어요). 읽을 수 있는 웹툰은 다 읽어볼 생각입니다. 그래야 제가 앞으로 실을(연재할) 웹툰을 어떻게 그려야 하는지 알죠.
7. 얼마 전, 길거리에서 설문조사에 응하고 문서에 서명을 하는데, 저를 지켜보고 있던 자선단체(그러니까 제게 설문조사를 하고 문서에 서명을 해 달라고 부탁한 단체 말입니다)의 회원이 “(실제 나이보다) 어려 보이시네요!”라고 말했습니다. 깜짝 놀라서(전혀 예상하지 못했거든요), “정말요?”라고 물어보았더니 그 사람이 “네, 정말 그래요. 겉보기에는 취직을 준비하는 대학생처럼 보이는데(20대), 1979년생인 줄은 몰랐어요!”라고 하더라고요(제가 그 문서에 생년월일도 적었습니다). 순간, 너무 기분이 좋아서 크게 웃을 뻔했지만, 애써 자제하고 “고맙습니다.”라고 말한 뒤 문서에 서명하는 일을 마저 끝냈죠. 그 말을 들었을 때, ‘내가 식이요법을 쓴 효과가 나타나는구나! 몸이 늙는 걸 늦춰 준다는 것 - 예컨대 참기름이나 루이보스 차[茶] - 을 꾸준히 섭취하기를 백 번 잘했어!’라고 생각했어요. 그나마 실제 나이보다는 어려 보인다니 그건 다행입니다. 앞으로도 계속해서 몸을 가꾸고 다듬어야지요.
8. 돈이 없어서 비참하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냐고요? 네, 있습니다. 서점에서 책(역사책이나 사회과학 서적이나 시집이나 소설책)을 사려고 하는데 돈이 없어서 그러지 못할 때, 음악(영화음악이건 국악이건)이 담긴 CD를 사려고 하는데 돈이 없을 때, 만화책을 사고 싶은데 돈이 없을 때, 이 세 가지 상황은 참고 싶어도 못 참겠더라고요. ‘내가 이래서 돈을 벌어야 하는구나.’라는 것을 절실하게 깨닫습니다.
9. 요즘 위성방송에서 ‘선댄스 채널(Sundance Channel)’이라는, 영화만 전문적으로 틀어주는 채널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별로 관심을 안 기울이고 그냥 지나쳤는데, 무심코 이 채널이 틀어주는 영화들을 보니 <웰컴 투 파인 힐>이나 <스킨>처럼 작품성이 뛰어난 영화들이더라고요. 게다가 세네갈이나 말리의 영화처럼 좀처럼 접할 기회가 없는 영화들까지 틀어주고요. 그래서 요즘은 이 채널을 좋아하고 툭하면 이 채널에 들어온답니다. 영화나 연속극을 다루는 다른 채널들은 이제 시시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어쩌면 채널들이 쏟아 붓는 자극적인 프로그램에 지쳐서 이러는 것인지도 모르죠. 당분간은 자신을 추스르고, 지나친 자극은 안 받기 위해 노력할 생각입니다. 여러분도 한번 들어가서 보세요. 후회는 안 하실 거예요. 혼자 보기는 아까워서 추천합니다.
10. 우리밀을 살리자는 운동에 소극적으로 동참하고 있습니다. 요즘 제가 먹는 밀가루로 만든 먹을거리는 거의 다 우리밀로 만든 거니까요(약과, 라면, 빵).『밀가루 똥배』라는 책을 읽은 뒤부터 캐나다나 미국이나 오스트레일리아(호주) 밀이라면 진저리를 치게 되었고, ‘대신할 만한 게 없을까?’라고 고민하다가 우리밀로 만든 제품을 파는 매장(예컨대 농협 매장)에 주목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발품을 팔면서 우리밀로 만든 제품들을 찾기 시작했죠. 지금은 ‘진작 이렇게 할 걸!’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익숙해졌답니다. 물론 아직도 수입 밀을 다 뿌리치지는 못했지만, 못해도 그것에 기대는 비율은 많이 줄였습니다. ‘식생활에서 수입 밀이 차지하는 비중은 0%, 우리밀이 차지하는 비중은 10~20%로 정하자.’는 목표를 정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계속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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