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 게시판

게시일시: 1999/08/26 오후 12:44
게시자: 뭉실이
제목: [옮김] 김혜린님 만화 표절사건을 생각하며 (from HiTEL)

* 앞서 김혜린님과 기하라 도시에에 관한 글을 두 개 올렸는데요,
컴퓨터에 갈무리 해 놓은 글들을 뒤져 보니 비슷한 주제의 글이
또 있더군요. 아마 HiTEL SG25에서 퍼온 글인 것 같은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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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홍세라 (Hsera94 )
김혜린씨만화 - 표절사건을 생각하며 08/10 13:56 90 line

===========김혜린 작품과 일본작가와의 유사점과 차이점===========

제목을 잡아놓고서 많은 고심을 할 수밖에 없었다. 기본적으로 개인적으로
가장 존경하는 작가 분이며 결코 진정한 의미의 "표절"의 유사점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글을 쓰게 된 동기는 언젠가 하이텔에 소위 "김
혜린씨 표절소동"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당시 일본의 모작가와 똑같다라는
누군가의 글에 많은 사람들이 그렇지 않음을 조목조목 반박하였고 문제의
글은 누구의 무슨 작품과 비슷한지 조차 말하지 않는 유언비어성 글이 되
었다. 무책임했던 글이었지만 거기에 반박하기 위해서라도 "과연 누구의
작품을 보고 그런 말을 한 것인가?"하고 찾을 필요를 느꼈다. 그러다가 아
는 분께서 키하라 토시에(木原敏江)라는 작가 때문에 그런 오해를 산 것은
아닐까 하는 말씀을 개인적으로 해 주셨다. 그 이후 키하라 토시에 작품을
어느 정도 보고 나서 표면적으로 봤을 때 그런 오해를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키하라 토시에의 작품중 우리 나라에서 가장 잘 알려진 것 중의 하나가
[안젤리크]라고 생각된다. 얼마 전에 `내사랑 라벨르`라는 제목으로 나오
기도 했고 `안젤리크`로 해적판도 나왔다. 이 책은 80년대에 이미 우리 나
라에 번역본이 나왔었다. 전형적인 원단 순정만화인 이 책의 배경은 태양
왕시절의 프랑스이다. 두 남자주인공 중 하나는 죠프레 드 페이락 백작으
로 검은머리에 얼굴의 칼자국과 카리스마를 가진 귀족으로 나중엔 프랑스
국왕과 반목해 해적이 된다. 중간에 죽을 뻔 하기도 했는데 자기를 사랑하
는 여주인공이 아닌 여자가 구해준다. 또 하나인 필립 후작은 희고 긴머리
를 가지고 있는데 날카로운 성격이지만 아름다운 얼굴에 보포르 공작과 계
약적인 남색관계를 가지고 있다. 여주인공은 물론 금발의 미인이다. 남자
둘의 겉모습만 바꾸면 [북해의 별]의 유리핀 멤피스와 비요른 누벨과 거의
흡사한 특징을 가진 `캐릭터`가 된다. 또 중간에 잠깐이나마 여주인공이
소매치기 집단이 있는 하층사회로 들어가는 장면도 있다. `캐릭터`와 기본
설정에 있어서는 상당히 비슷한 면이 있다고 볼 수 있다. {주: [안젤리크]
는 원래 프랑스 소설로 일본에서 인기를 끈 후에 키하라 토시에가 각색을
했다. 그러나 원작 소설에서 여주인공이 여러번 결혼하고 많은 아이를 낳
고 많은 남자와 관계를 맺는 것이 소녀의 정서에 맞지 않았던 듯 각색을
상당히 많이 했다. 이런 현상은 우리나라의 차성진씨가 바트리스 스몰 소
설 원작인 [비운의 공녀 아도라]에서 여주인공이 남주인공의 아버지의 술
탄과 결혼해서 아이까지 낳았던 것을 아이를 낳은 적이 없었던 스토리로
바꾼것과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전체적인 내용은 상당히 다르다. [북해의별]이 서사구조로 혁명의 과
정을 그려나갔고 인물들 하나하나에 상당한 관심을 둔 반면 [안젤리크]는
주인공들의 사랑에 철저히 그 관심을 두고 있고 따라서 그 사랑을 이끌어
가는 주요 캐릭터들만 주로 부각시키고 있다. {서사구조와 캐릭터부각이라
는 문제는 당시 한국에서는 대본소 체제로 단행본이 나왔고 일본에서는 잡
지연재체제였다는 점에서 기인할 수도 있다.} 사실 [안젤리크]는 황미나씨
의 작품에도 상당한 영향을 주었다고도 볼 수 있다. 일본에서 70년에서 80
년대에 베르사이유의 장미를 비롯한 서양시대극이 유행했기 때문에 우리네
순정도 일본의 고전에 영향을 받는 것은 어느정도는 예측할 수 있다고 보
기 때문이다. 여기서 주의할 것은 "어떤 작품을 표절"한 것은 없었다는 것
이다. "만화계의 조류"에 편승했다고 보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승화시켜서 불새의 늪이나 북해의 별 같은 수준높은 시대물이 나오지 않았
는가.

[북해의별]을 하는 도중에 김혜린씨는 만화광장에 [겨울새 깃털하나]를 연
재하였다. 그 당시엔 그리 좋은 평을 받지 못한 작품이었다고 기억한다.
아마도 첫작품 서양시대물을 하는 중간에 현대사회물을 한다는 것은 성숙
도가 떨어지게 여겨질 수도 있을 것이고, 당시 남성만화가들의 남성취향의
사회물들이 실린 만화광장에서는 시인과 여기자인 주인공들이 현실에 보다
치열하게 살려 하는 모습보다 사랑이 좀더 전면에 나왔던 것이 껄끄럽게
여겨졌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 다음작품이 88년부터 내기 시작한 [비천
무]이다. 혹시라도 의심을 산 작품이라면 키하라 토시에가 84년부터 낸
[꿈의 비(夢の碑)]때문이 아닐까 싶다.{이 작품의 번외편적인 고대 일본
배경의 작품들은 78년부터 나왔다} 황미나씨나 김혜린씨 모두 첫작품들은
서양이 배경이었다가 점차로 동양과 한국으로 옮겨 왔는데 키하라 토시에
도 역시 그런 경우로 보인다.{영향을 미치는 시간적 순서로 본다면 일본에
서 먼저 일어난 조류라고 할 수 있다} [안젤리크]가 서양배경이었다가 [마
리와 싱고]라는 작품이 일제시대를 그리고 [꿈의비]는 일본의 고전 설화를
나름대로 각색하였다. 이 작가의 그림체가 가부끼적인 가면같은 얼굴들이
었기 때문에 배경을 고대일본으로 옮기기 시작한 것이 잘 어울린다. 동양
으로 배경들이 옮겨오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상당한 의미를 지녔다고 보인
다. 당시로는 흔치 않은 동양배경과 옷과 칼이 우리나라 작품을 처음보는
일본인의 눈에는 비천무 배경인 중국 원나라말 시대의 옷과 칼이 같아 보
였을지도 모를 일이다. 물론! 제대로 봤다면 그럴 리는 없겠지만 흘낏 본
다면 그런 오해를 살 수도 있다고 본다. (이건 처음에 하이텔에서 물의를
빚은 글에서 "아는 일본인이 봤는데 일본작품과 똑같았다"라는 어구가 있
어서 쓴 부분이다. 그 당시 물의를 일으킨 글을 갖고 있지 않아서 아쉽다)
그러나 역시 김혜린씨의 작품에 담긴 정서와 키하라 토시에 작품에 담긴
정서는 한국과 일본이라는 그 자체가 다르다. 진하고 끈끈한 한과 정이 흐
르는 정서와 순간의 아름다움과 화려함과 죽음의 미학이 담긴 정서는 분명
히 다르고 그림체도 또한 다르다. 물론 내용상의 유사점도 전혀 없다.

[비천무]로 동양배경에로의 이동과 정착에 성공한 김혜린씨는 [불의검]을
댕기에 연재하였다. [비천무]에서부터 고려도공을 등장시키다가 [불의검]
에서부터는 우리네 한국적인 정서에 보다 가까운 인물들과 북만주를 배경
으로 하기 시작하였다. 개인적으론 상당히 기쁘고 반가운 일이었다. 그전
에도 김숙씨의 [홍루의 뜨락]이나 저자는 기억나지 않지만 [장희빈]등이
있었지만 부족한 느낌을 받았었기 때문이다. 혹시나 이 부족한 글로 인해
김혜린씨에게 폐를 끼치는 일이 절대적으로 없었으면 하고, 본인이 가진
정보도 매우 협소한 상태라 글이 편파적이고 틀린 추측 부분이 있을 수도
있다. 잘못된 부분을 지적해 주시는 분이 계시면 기꺼이 잘못을 인정하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