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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 전이던가요. 우리 집이 새 단장을 하느라고 식구들이 이사할 준비를 하고 있을 때였죠. 그 때 어머니는 집안에 있는 모든 물건을 끄집어내고 있었는데, 마침 - 일이 그렇게 되려고 그랬는지 - 두 번 접은 편지를 한 장 발견하셨어요. 어머니는 편지를 읽은 뒤 저를 부르셨죠.
전 '안 그래도 끄집어낸 온갖 세간 때문에 마음이 어지러운데 왜...'라고 생각하면서 달려왔고 어머니는 제게 문제의 편지를 보여 주셨어요. 전 충격을 받았죠. 이제 더 이상은 존재하지 않을 거라고 믿은 과거를 담고 있는 편지였기 때문 이었습니다.
그 편지는 16년 전(서기 1992년 6월 10일)에 쓰여진 것이었고 그 때 전 열 네 살이었거든요. 그러니까 중학교 1학년 때 받았던 편지를 저도 모르는 사이에 지금까지(!) 간직하고 있었던 거죠.
전 흥분해서 편지를 읽었는데, 아주 오래 전에 받은 편지임에도 불구하고 꼭 새 편지를 받은 기분이었어요.
편지에 담긴 내용은 정말 단순했죠. "고민이 많이 담긴 글 - 잘 받아보았다."는 구절로 시작해서, "후에 한번 만나 진지한 대화를 해 보자꾸나. 이만 줄인다."로 끝나는 길지도 짧지도 않은 편지였어요.
그런데도 전 그 편지를 단지 '과거의 한 조각' 정도로 여기고 내다 버릴 수가 없었는데, 그 이유는 그 편지에 담긴 글이 지금의 제 모습과 너무 똑같은(!) 과거의 제 모습을 보여주었기 때문이었죠.
가령 제가 "고민이 많이 담긴 글"을 선생님에게 보냈다는 건(참고로 이 편지는 당시 제 담임선생님을 맡으셨던 분이 보내 주신 겁니다) '아, 나는 그 때에도 고민이 많은 아이였구나.'라는 걸 새삼 깨닫게 해 주었고, 제 글에 "미운 친구들에 대한 문제"를 털어놓은 건 - 부끄러운 일이지만 - '그 때나 지금이나 나는 사람을 미워한다'는 사실을 되새기게 해 주었으니까요.
그렇지만 무엇보다도 기뻤던 건 그 때에는 - 지금과는 달리 - 제 마음 속의 상태를 있는 그대로 인정받을 수 있었고 격려(!)까지 받았다는 거였어요. 선생님은 제게 지적과 충고를 한 뒤 "그래도 이 세상은 할 일이 많고 살아 볼 가치가 있고 00이를 필요로 하는 데가 많이 있다는 것을 아니? 앞으로 네가 무엇이 되든지, 무슨 일을 하든지, '이 사회에 필요한 존재가 되기 위해 지금 열심히 살아야 하지 않을까'라고 생각해봐. 결국 지금의 어려움은 너를 성장시켜주며 어려움을 풀어나가게 하는 연습문제(?)라고 생각하며 심사숙고하며 헤쳐 나갈 수 있기를 담임은 희망한다."고 말씀하셨거든요.
그 뒤 끝에는 "이제 너는 어린이가 아닌 학생으로서의 당당함과 의젓함과 스스로 할 수 있는 능력을 빨리 갖추어야 할 것 같아. 물론 지금도 잘하려고 하지만 말이야."라는 말을 덧붙이셨는데, 저는 그 구절을 읽으면서 '이 말씀은 그 때의 나보다, 오히려 지금의 나에게 딱 맞는 말씀이야. 이제 난 학생이 아닌 사회인으로서의 당당함을 뽐내야 하고 스스로 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어야 하니까!' 라고 생각했죠.
그래서 저는 그 편지를 버리지 않고 제 책상과 유리 사이에 끼워 넣어 보관하기로 했습니다. 나태해질 때마다, 그리고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을 때마다 그 편지를 읽으면서 마음을 다잡으려고요. 그리고 '나는 예전에도 이렇게 고민이 많았다.'는 걸 잊지 않으려는 뜻도 있고, '하지만 그때마다 나를 위로하고 다잡아 준 사람이 있었다'는 것도 기억하기 위해서랍니다.
여러분도 한번 오래된 창고나 책상을 뒤져보세요. 어쩌면 여러분이 잊고 있었던 가장 중요한 보물 - 제가 방금 전에 언급한 편지처럼 추억을 간직하고 있는 물건 - 을 찾으실 지 모르니까요.
- 목감기가 '거의' 다 나은 돌베개
*추신 : 어제도 "네 나이가 어느덧 스물아홉이다, 스물아홉! 대학원을 마치고(그 때 전 서른 살이 됩니다) 취직하고 나면 빨리 장가를 가야지!"라는 부모님의 '협박'을 들었습니다(네, 전 그 말씀을 '협박'으로 알아듣습니다! -_-). 전 취직은 하고 싶어도(그리고 독립하려는 마음은 차고 넘쳐도) 아직까지 마음에 드는 사람이 나타나지 않아서 결혼은 하고 싶지 않은데 집에서는 자꾸 결혼하라고 강요해요. 제가 무슨 종마(種馬)도 아닌데 무엇 때문에 억지로 결혼해야 하는 건지 모르겠다는 생각도 들고.....어른들이 선 보라고 강요하는 날이 오기 전에 하루빨리 제 운명의 상대(내지는 '짝')을 찾아야겠다고 다짐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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