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초 혜린님께 쓴 편지를 부치지 못해서요. 김혜린님이 읽어주시길 간절히 바랍니다.
그럼 부치지 못한 편지 전문을 올려놓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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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린 선생님께
안녕하신지요. 이로써 선생님께 세번째 편지를 쓰게 됩니다. 맨처음 편지는 89년도에, 두번째 편지는 95년에, 그리고 벌써 2002년이 되었습니다. 처음 북해의 별을 만났던 나이의 두 배가 되어 다시금 편지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이 짧은 글이 무사히 선생님 손에 들어가길 고대합니다.
올림픽이 있던 해 가을, 학교에서 여자하키 결승전 단체관람을 갔습니다. 88년 9월 30일이었죠. 그리고 10월 1, 2, 3일은 연휴였고, 중간고사가 시작되기 직전이었습니다. 장래 희망조차 수시로 바뀌던 철부지 중학생이던 제게 북해의 별은 쇼크였습니다. 사흘연휴 동안 열여섯 권(이전 대본소판)을 세 번은 본 것 같습니다. 영문모르는 가족들은 제가 시험공부하는 줄 알고 흐뭇해했지만 시험문제를 풀면서도 머릿속에선 유리핀이 왔다갔다 했더랬습니다.
대학입학은 93년에 했고, 지금은 대학원에서 한국현대사를 전공합니다. 실지의 역사는 매우 준열하고 엄정하여 매혹적인 영웅이 등장하기란 대단히 힘듭니다. 그야말로 공과가 뒤웅박처럼 얽혀있으니까요. 선생님께 감탄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가 거기 있는 것 같습니다. 건조한 재료(역사적 배경)에서 단번에 꽃을 피워내는 것 같다는 인상을 받곤 했습니다. 수많은 캐릭터속에 숨쉬는 독특함까지.
마치 열병을 앓는 사람처럼 선생님 작품에 탐닉하는 저를 두고서 동생은 제게 정신연령 열일곱이라는 농담을 하곤 했습니다. 그래도 여전히 선생님 작품을 읽고 있노라면 다른 일을 하지 못합니다. 열병은 유리핀 주변의 사람들만 앓는 것이 아니라 선생님의 독자들도 함께 앓게 되나 봅니다.
선생님의 화두는 아마도 사람과 삶인 것 같습니다. 예전에도 그리 느꼈고, 지금도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이 살아는 모습, 한 남자와 여자가 만나 사랑하고 살아가는 모습엔 이러저런 양태와 情理가 있다는 걸 작품속에서 보여주고 계시니까요.
얼마전 <북해의 별>을 소장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얼마나 기뻤는지...비천무, 테르미도르, 불의 검에 이어 <북해의 별>을 아무때라도 볼 수 있다는 사실에 마냥 행복해 했습니다. 내년이면 저는 우리 나이로 서른이 된답니다. 이제 새로이 만나는 북해의 별을 새롭게 느끼게 됩니다. 대본소 판이었던 16권의 북해의 별, 그리고 선생님의 수정복원판인 11권의 북해의 별...예전의 표지 일러스트들도 아직 눈에 선합니다.
세월은 흘러가고 사람도 나이를 먹어가지요. 그렇지만 세월이 가도 잊지 못할 일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어떤 때는 선생님 내면의 숨겨진 세계가 무척이나 궁금하기도 했었습니다. 가슴속깊이 남으며 심장을 울릴 이야기들을, 그 각각의 인간성의 편린들을 어쩌면 그리도 절묘하게 찾아내시는지.
사설이 길었습니다. 선생님의 건승과 원숙한 창작활동을 진심으로 기원드립니다.
<불의 검>도 마음먹으신 대로 잘 진행되면 좋겠습니다. 長江은 뒷물이 앞물을 밀고 바다로 나아간다고 합니다. 선생님께 올해가 장강에서 대하로 나아가시는 한 해가 되시길...
2002. 1. 26
선생님의 열렬한 독자 이선아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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