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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일시: 1999/12/02 오후 9:16
게시자: 슈
제목: 씨네21-`카라` 캐릭터분석기사

만화 / 카라 ㅆㅣㄴㅔ 2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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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를 삼킬 증오
20세기 캐릭터 열전 6 - 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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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카라
나이: 짐작하기 어려움
인상착의: 길게 출렁이는 검은 머리, 강한 느낌의 미모
기호식품(?): 대마초와 각종 마약류
직업: 주술가, 강력한 신력을 발휘한다
바라는 것: 남성타도, 천하지배
즐기는 것: 성(性)에 탐닉

만화든 영화든 어떤 장르에서건 간에 인물의 스테레오타입화를 피하는 것
은 작가에게 힘든 숙제다. 한 인물의 다면적인 모습을 보여주려 하다가는
자칫 공감 안 가고 말도 안 되는 캐릭터가 나오기 십상이며 그렇다고 일관
된 모습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데 초점을 맞추다가는 필시 어디선가 흔히
본 캐릭터 타입이 또 하나 등장하는 결과를 빚게 되기 때문이다.

카라, 공식을 벗어나는 다면성

즉 정형화된 캐릭터는 시시해보이고 다면적인 캐릭터는 몰입을 방해한다는
단점이 있는데, 안전한 쪽은 아무래도 전자다. 순정만화에서 이것은 착하
고 평범한 주인공 여성과 못되기만 한 조연 여성들로 대변된다. 독자들의
감정이입과 편가르기는 흑백으로 단순해지며 공식을 따라 주인공을 응원하
면 된다.

이런 공식을 벗어나는 순정만화 주인공들은 정말 손에 꼽을 만하다. 일단
그런 시도 자체가 드물기 때문이고, 설령 시도했다 해도 그것이 제대로 형
상화하기란 아주 어렵기 때문인데, <불의 검>의 카라는 이것이 아주 근사하
게 수행된 케이스다.

김혜린의 <불의 검>은 내년 완간을 계획하고 있는 대작으로 고대 청동기시
대에서 철기시대로 넘어가는 격변기 아시아를 배경으로 역사의 부침과 민중
의 생명력, 그리고 이름없는 여성들의 강인한 힘과 사랑이야기를 그리고 있
다. 카라는 주인공인 아라의 땅 아무르를 비롯해 천하를 치려고 하는 카라
마키 부족의 신녀(神女)다. 기본적으로 주인공들과 적대관계에 있는 인물
인 것이다.

카라는 아주 어려서부터 나이차가 많이 나는 난폭한 오빠 온구트의 노리개
처럼 자랐다. 야심가 온구트는 다른 형제들과 심지어는 아버지의 침실에까
지 여동생 카라를 밀어넣으며 각종 간계에 이용해 그들을 제거하는 데 혈안
이 돼 있었으며 결국 왕위를 찬탈한 뒤에는 나긋한 노리개이자 색다른 성
의 제공자로 카라에게 탐닉한다. 주술에도 능한 온구트는 카라의 염력을 키
워주고 부족의 신녀로서 부추기는 한편 힘이 너무 세지거나 반란을 꾀하지
못하게끔 감시하는 것도 게을리하지 않는다.

치유되지 않는 상처, 남성에 대한 분노

한편 카라는 자신을 불모의 몸으로 만든 오빠에 대한 증오, 자신을 짓밟은
모든 남자들에 대한 복수심 등 커다란 분노가 내면화해 있는 인물이다. 그
는 각종 야생마 같은 남자들을 침실로 끌어들여 마약과 섹스의 질탕한 향연
을 벌이는 데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지만 그런 탐닉의 시간은 맘속에서 끓어
오르는 분을 잊기 위한 미봉책에 불과하며 실은 세상 모든 남자들에 대한
적개심과 파괴욕으로 가득하다. 제대로 된 페미니스트라고도 할 수 없다.
그가 바라는 것은 여성들간의 연대가 아니다. 그의 꿈은 남성을 비롯해 자
기 아닌 모든 인간을 지배하는 것이다. 그는 잔인하고 흉포하며 냉정하다.

카라는 미워하기에는 과거가 너무 가엾고, 동정하기에는 너무 악하다. 연민
을 받을 만큼 연약한 존재도 아니다. 그는 강하고 무서운 주술사이며 천하
를 삼킬 야심과 능력을 가지고 있는 정치가다.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가장
가까운 혈육에 의해 거세당한 불모의 몸이며 짓밟는 방식말고는 다른 이이
게 접근할 길을 알지 못하는 외로운 존재이기도 하다.

카라는 강하고 똑똑해서 매력적이지만 독자가 접근하도록 호락호락 내버려
두는 인물도 아니다. 하지만 또 맘편하게 미워해버리기에는 너무 많은 상처
와 사연을 가지고 있는 인물이기도 하다. 매력적이지만 사랑할 수 없는 인
물. 그런 멋지고 독특한 인물이 이토록 생생하게까지 그려져 있다니 김혜린
의 <불의 검>은 카라 때문에 더욱 빛난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오은하/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