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정된 팬만을 위해 제작하는 특별한 만화책이 만들어진다. 순정만화가 김혜린(41)이 지난 88년부터 90년까지 만화잡지 ‘르네상스’를 통해 발표했던 역사 순정물 ‘테르미도르’가 그것.
원래 단순히 복간계획만 갖고 있었던 ‘테르미도르’ 출간이 그 범위를 확장한 것은 작가의 팬클럽 ‘린월드’(kimhyerin.com)의 제안과 욕심 덕분이다. 도서출판 길찾기에서 이 책을 재출간한다는 계획을 알게 된 ‘린월드’ 측이 “팬을 위한 특별한 책을 만들어 줄 수 없느냐”고 부탁했고, 출판사측은 이 제안에 대해 ‘서점용’과 ‘팬클럽 용 한정판’을 별도 제작하기로 결정한 것.
전 3권으로 꾸며질 책의 내용이야 ‘서점용’과 서로 다를 리 없지만, ‘팬클럽 용 테르미도르’는 몇 가지 형식에서 조금 특별하게 꾸며진다. 우선 3권 모두 고급 양장본으로 제작되며, 이 한정판만을 위한 일러스트 표지를 별도로 만들 예정이다. 또 작가의 친필사인과 캐리커쳐가 담긴 스페셜 북 등도 ‘부록’으로 안겨 줄 예정이다. 당연히 일반 서점에서는 판매하지 않으며 팬클럽 홈페이지를 통해서만 주문할 수 있다. 출판사 측은 “인쇄가 가능한 최소 물량이 500부인데 현재 300부 가량 주문이 들어온 상태”라면서 “3월 말에 제작에 들어갈 수 있도록 추진 중이다”라고 했다.
1983년 ‘북해의 별’(전 16권)로 데뷔한 이 작가는 그동안 ‘비천무’(전13권), ‘불의 검’(전 12권) 등 순정만화의 영토를 확장했다고 평가받는 장편 대작들로 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아왔다. 데뷔작 ‘북해의 별’이 가상의 시민혁명과 그 주류세력들을 위주로 작품을 전개한 데 반해, 프랑스혁명이라는 실제 사건을 소재로 했던 ‘테르미도르’는 혁명의 전면에 나서지 못했던 인물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 갈등하는 개인들의 내면을 섬세하게 그려냈다. 이번에 복간할 책에서는 ‘서점용’과 ‘팬클럽용’ 모두 잡지 ‘르네상스’에 연재되었을 당시의 컬러 그림을 복원하고, 프랑스 혁명 당시의 연표와 관련 지도, 또 작가론을 책 말미에 넣을 예정이다. ‘테르미도르’라는 용어는 프랑스 혁명력(歷)중 11번째 달을 지칭하는 말로서, 1793년 7월19일부터 8월17일까지를 일컫는다.
작가의 팬클럽 ‘린월드’의 제안으로 시작된 이 흥미로운 프로젝트는 만화계는 물론 출판계에서도 그 유례를 찾기 힘들 뿐만 아니라, 독자들이 자신이 좋아하는 작가와 그의 작품에 대해 능동적으로 ‘결합’을 요구하는 사례로 기록될 것 같다.
조선일보 어수웅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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