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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서울 아산병원에 다녀왔습니다. 2년째 계속되고 있는 치료(댄스 교실. 강사와 상담하고, 음악에 맞춰 춤을 춤으로써 마음의 병을 고친다)를 받기 위해서였죠(숨겨서 무엇하겠습니까? 그렇습니다. 저는 정신병 환자입니다. ‘불행 중 다행’으로 저는 제가 환자라는 사실을 알고 있고 정신과 의사와 댄스 교실의 강사에게 치료도 받고 있습니다).
지난 주에 강사(40대인 여성분)님이 제게 “당신이 그려서 내게 준 만화들이 병원이 마련한 전시회 - 그러니까 병원에서 치료받는 정신병 환자들이 그린 그림을 모아서 연 전시회 - 에 걸리니까, 생각 있으면 와서 봐라. 그림들은 이번 주 금요일까지 전시된다(그 분은 얼마 전부터 제게 ‘남의 영향을 받지 않은 창작물’이자 ‘역사적인 일을 소재로 삼지 않은 작품’/‘자신의 이야기를 다룬 만화’를 그리라고 하셨고, 그래서 저는 1 주일에 한 번씩 ‘만화’를 그려 그분에게 드리고 있습니다. 그 분이 병원 관계자들에게 제 ‘만화’들 가운데 몇 편을 보여드렸고, 관계자들은 제 ‘만화’를 전시하기로 결정하신 거죠).”고 말씀하셨어요. 저는 만화를 그릴 때 제 ‘만화’가 전시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에, 기쁘면서도 부끄러웠습니다.
저는 제 그림이 전시된다는 사실을 제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싶었기 때문에, 강사님과의 약속시간보다 30분 일찍 병원으로 가서 강사님이 가르쳐준 곳을 찾았는데. 그곳에는 많은 그림이 걸려 있더군요. 그림들은 모두 색칠한 것들이었고, 그 밑에는 그림을 설명하는 글이 달려 있었습니다. 피터 팬을 그린 그림도 있었고(이건 환자 다섯 명이 함께 그린 것이더군요), 슬픈 표정을 지은 개를 그린 그림도 있었어요. 환자가 자신과 식구들을 물 속의 물고기로 그린 그림도 있었고, 겉으로 드러난 그림을 들추면 그 안에서 ‘진짜 얼굴’을 그린 그림이 드러나는 그림도 있었죠. 그 모든 것이 정신병을 앓는 사람들이 남긴 그림이라고 생각하니, 저절로 숙연해졌습니다.
문제의 만화 - 그러니까 제가 그린 ‘만화’ - 는 피터 팬 그림의 바로 옆에 걸려 있었는데, 50대 중반으로 보이는 여자분이 그 ‘만화’들을 주의깊게 보고 계셨어요(제 만화의 그림체가 아름다운 것도 아니고 다른 그림들처럼 다채로운 빛깔을 칠하지도 않았는데 그 분이 왜 그러셨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제 ‘만화’ 세 편 (하나는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를 놓고 말다툼을 하다가 나중에는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의 뺨을 때린다는 내용이었고, 두 번째 ‘만화’는 늘 딸기만 생각하는 남자가 결국 퇴근길에 딸기를 한 봉지 사서 집으로 돌아간다는 내용이었으며, 세 번째 만화는 TV를 켜고 프로그램을 보던 사람이 염증을 느껴 자꾸 채널을 바꾸다가, 음악을 다루는 채널을 보고서야 마음을 놓는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아래쪽에는 제가 강사의 권유로 직접 쓴 설명문이 거의 그대로(!) 달려 있더군요.
그 설명문을 본 순간 제 부끄러움은 극에 달했습니다. 다른 환자들의 아름다운 그림에 견주어볼 때, 제 ‘만화’는 만화라고도 부를 수 없는 수준이었기 때문이죠. 병원의 의사 선생님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 ‘만화’를 전시해주셨고, 다른 환자들의 그림과는 달리 제 ‘만화’ 밑에는 제가 직접 쓴 설명문을 달아주셨어요. 그리고 그분들은 제 성(姓)만 공개하고 이름은 ‘○○’으로 처리해 - 익명 처리 - 제 비밀과 사생활을 지켜주셨죠. 이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 좋을지 모르겠습니다.
아, 그리고 이건 ‘덤’인데요, 저는 제 병이 우울증인 줄 알았는데 아니더군요. 의사 선생님들이 제 만화를 설명하는 글에 덧붙인 글에 따르면 제 병은 ‘조현병(調絃病)’이랍니다(요즘은 ‘정신분열병’을 조현병이라고 불러요). 제가 어떤 병을 앓는지를 구체적으로 - 그리고 정확하게 - 알게 되어 몹시 기쁩니다. 언젠가는(그리고 반드시) 이 병이 나을 겁니다. 병에서 벗어나야죠.
(이 전시회를 보고 처음 안 사실인데,『피터 팬』을 쓴 사람도 정신병을 앓았답니다. 전시회에 걸린 설명문에 그렇게 적혀 있었어요. 그 분이 정신병을 앓으면서도 삶을 포기하지 않고 작품을 남기셨다면, 저도 그렇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덧붙이는 글 : 이번 주에도 강사님께 제 ‘만화’를 드렸습니다. 옛 이야기를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를 비꼬는 내용이었죠. 요약하자면 ‘『심청전』을 읽었다고 바닷물 속으로 뛰어들지 말며,『전우치전』을 읽었다고 족자 속으로 뛰어들지 말고,「햇님 달님」을 읽었다고 동물원의 범(호랑이)에게 떡을 던지지 말며,「자린고비 이야기」를 읽었다고 밥상에 반찬 대신 반찬을 찍은 사진들만 주루룩 늘어놓지 말고,『흥부전』을 읽었다고 박을 톱으로 자르면서 금은보화를 찾지 말라. 요컨대 옛 이야기는 이야기일 뿐이니, 따라하지 말자!’는 내용이었습니다. 강사님께 그 작품을 보여드렸더니 막 웃으시더군요. 정말 재미있다고 하셨어요. 제가 인정받은 것 같아서 기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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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현병 :
“자신을 돌보는 능력을 잃”는 병. 이 병에 걸리면 “피해망상이 심해질 수도 있다.” “생각이나 감정, 행동이 모래성처럼 허술하게 무너져가면서 결국 자신을 스스로 돌보지 못하게 되는 병(함병주 교수)”이고 “환각과 망상”에 시달리거나 말을 할 때 “하나의 주제에서 연관성이 없는 주제로 바로 이행(함병주 교수)”하며 “감정 표현이 줄어들어 표정이 없어지고 말수가 적어지며 사회 활동에 자발적으로 참여하려고 하지 않(함병주 교수)”는다. 그러나 이 병을 포함한 “정신질환이 다른 질병과 다를 바 없는 신체적 증상”이라는 걸 생각하면 이 병에 대한 선입견은 옳지 않다. 의사가 처방하는 “약물을 복용하면 정신분열병 환자의 환각 증세는 명백히 경감”되고(참고로 본인은 정신과 의사가 처방하는 신경안정제를 하루에 한 알씩 먹고 있음), 많은 사람들의 생각과는 달리 “성격의 문제나 인품의 문제”가 아니다.
전문가의 말에 따르면 “정신분열 증상이 나타나기 전에 폭력 성향이 없었고, 알코올 중독자나 마약 중독자가 아니었다면 … 발병 후에 범죄를 저지를 확률은 매우 낮다. 정신분열병 환자들은 가해자가 되기보다는 오히려 피해자가 되는 경우가 흔하다(정신과 병동의 간호조무사로 오랜 기간 일했던 ‘대릴 커닝엄’씨의 말).”
사람들은 이 병에 걸린 사람이 “여러 개의 인격을 가진 사람”이라고 오해하고, “폭력적이고 범죄 성향이 있다.”고 생각하나, 그것은 사실과 다르다. 최근에 학계에서 이 병의 이름을 ‘조현병’으로 바꾼 까닭도 이런 오해(‘정신분열병’이라는 이름을 쓰면 환자의 정신이 여러 조각으로 나뉘어서 각각 다른 특성을 띤다고 생각하기 쉽다)를 막기 위해서다.
(‘조현’이란 현악기, 그러니까 줄 달린 악기의 줄을 고른다[조절한다]는 뜻이다. 약물이나 면담[상담]을 통해 뇌의 신경전달물질을 조절하면서 병을 고칠 수 있다는 긍정적인 뜻이다)
- 참고 자료 :『정신병동 이야기』(대릴 커닝엄 지음, 권예리 옮김, 함병주 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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