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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용자(돌베개)의 말 : 저는 “때로는 상대방 앞에서 ‘그만하라/듣기 싫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나아가 나쁜 정보는 적당히 걸러내야 해요. 만약 그러지 못한다면, 여러분은 아주 비참한 삶을 사시게 될 겁니다.”라고 말씀드리기 위해 이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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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저녁 난 마침내 사촌형 샤릴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
“신사 숙녀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옛날 아주 먼 옛날에 이름이 ‘귀코’라는 동물이 살고 있었답니다. 동화 속에나 나올 법한 그 동물은 코끼리처럼 영리하고 양처럼 양순했답니다. 그런데 그만 오해가 생기는 바람에 예민했던 그 동물이 지상에서 사라지게 되었죠.
귀코는 외모가 아주 특이했습니다. 작은 네 발을 제외하면 몸 전체가 커다란 깔때기 모양의 코처럼 생겼거든요. 귀코는 눈이 없었습니다. 입은 깔때기 맨 아래쪽에 있었지요. 깔때기가 귀도 되고 코도 되었으니까요. 그런데 바로 그게 문제였습니다.
귀코는 깔때기 안에 떨어지는 나뭇잎과 과일들을 먹으며 살았습니다. 나무에 부딪칠 때마다 깔때기 안으로 뭔가 먹을 것이 떨어진 거죠. 숲속에서 살았기 때문에 배는 곯지 않았습니다.
귀코는 어떻게 보면 모든 억울한 사연을 들어주는 요술 귀처럼 보였습니다. 억울한 사연이 있는 동물들이 깔때기 모양의 가장자리를 움켜잡고, 깔때기 안에 눈물과 분노와 침을 뱉지만 않았어도 좀 괜찮았을 겁니다.
하지만 귀코는 숨이 막혀 죽을 것 같았습니다. 더 괴로웠던 건 힘센 동물이 다른 동물들을 다 내쫓고 자기 머리를 깔때기 속에 깊숙이 박아넣을 때였습니다. 다른 동물들이 못 듣도록 말이죠. 귀코는 버둥대며 소리쳤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
가장 견디기 힘든 건 동물들의 탄식과 근심을 들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귀코를 찾는 동물들이 많아질수록 귀코의 숫자는 점점 줄어들었습니다. 동물들은 귀코를 찾으려고 안달이었습니다.
샤릴 형은 4개 국어를 말할 수 있었지만 ‘No’라고 말하는 법은 배우지 못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다른 사람을 잘 도와주고, 참을성도 많았기 때문에 사람들은 부서진 라디오나 다리미 혹은 세탁기를 들고 그를 찾아왔습니다. 샤릴은 다 망가진 기계들을 붙들고 몇 시간이고 끈질기게 씨름하며 기계에 다시 생명을 불어넣어주었습니다. 라디오에서는 소리가 더 잘 나왔고, 세탁기는 더 깨끗하게 빨래했고, 다리미는 더 이상 합선되지 않았습니다.
전선에서 전기를 끌어오려다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는 것을 보고 샤릴 형은 무척 안타깝게 생각했습니다. 전깃줄을 제대로 연결해야 한다고 아무리 호소해도 소용없었습니다. 정부는 오랫동안 우리 마을을 거들떠보지도 않았습니다. 인구가 25만 명이나 되는 이곳이 관청에 있는 자료에는 전기도 수도시설도 필요 없는 농토로 표시되어 있었거든요. 어쩔 도리가 없었습니다. 가난한 시골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계속 그렇게 살아가야 했지요.
전기를 끌어오기 위해 전선을 고압선에 연결했다가 많은 사람들이 감전되어 죽었습니다. 샤릴 형은 반나절 정도 그곳(전선이 있는 곳? - 인용자)을 살펴보더니 (사람들이 전기료를 안 내고 전기를 몰래 빼돌려서 쓰는지를 확인하는 - 인용자) 단속반이 나오면 언제라도 간단히 빼낼 수 있는 전기 연결고리를 만들어냈습니다.
하지만 수많은 사람들을 돕고 기구들을 고칠 수 있었던 형은 정작 자기 자신은 구하지 못했습니다. 그는 결국 다른 사람들의 걱정 때문에 죽었습니다. 형은 손재주 좋은 수리공이었을 뿐만 아니라 남의 말을 잘 들어주는 사람이었거든요. 걱정을 다른 사람에게 말하면 반으로 줄어들고, 세 번쯤 말하고 나면 근심은 거의 없어지는 법이지요.
그런데 묘하게도 사람들은 자기 물건을 고쳐달라고 맡겨놓은 동안 속내를 털어놓았습니다. 아무 때나 그를 찾아왔지요. 아침식사중이든 책을 읽는 중이든 상관없이 그들은 자기 이야기를 했고, 형은 차마 그만 하라고 말하지 못했습니다. 그 말이 무슨 큰 잘못이라도 되는 것처럼 말이죠. 형은 이야기를 귀담아듣다가 그들과 같이 울었죠. 돈을 받고 이 집 저 집 초상집을 찾아가 구슬픈 가락으로 곡을 하며 뚝뚝 눈물을 떨구는 그런 전문 곡쟁이와는 달랐습니다.
형은 정말 마음 깊이 슬퍼하며 울었습니다. 사람들은 그를 찾아와 그렇게 아픈 마음을 달래고 후련해하면서도 정작 결혼식이나 잔치같이 경사스러운 일이 있을 때는 그를 초대하지 않았습니다. 형의 이웃에 살던 어떤 사람은 허구한 날 찾아와 아내와의 불화에 대해 불평을 늘어놓았습니다. 그럴 때마다 형은 현명한 조언을 해주었고, 남자는 집으로 돌아가 아내와 화해하고 신나게 여행도 하면서 잘 지내다가 또다시 부부싸움을 했지요. 그러면 또 형을 찾아와 눈물을 뚝뚝 떨구며 비통해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시도 때도 없이 달려오던 그 남자는 자기가 처한 상황이 좋을 때는 단 한 번도 형을 찾지 않았습니다.
어린 영양같이 유쾌하던 형의 걸음걸이는 차츰 변해갔습니다. 점점 침울해진 형은 힘없이 거리를 배회하는가 하면, 끊임없이 담배를 피우고 술을 마셨지요. 인간들이 저지르는 온갖 나쁜 짓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에 형은 점점 의심이 많아졌습니다.
(중략)
세월이 지나면서 샤릴 형은 세상에는 악한 인간과, 자기를 찾아와 걱정을 털어놓는 사람들만 살고 있다고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마지막으로 형을 보았을 때의 모습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서른일곱 살도 안 된 형은 여든 살 노인처럼 보이더군요. 결국 서른여덟 살에 죽고 말았죠. 형의 시신을 부검한 의사는 형의 심장에서 마흔 개의 흉터를 발견했습니다. 심장에 상처가 하나만 있어도 의학적으로는 경미한 심장마비를 겪은 것이라고 하더군요.”
(이하 생략)
- 출처 :『1001개의 거짓말』(라픽 샤미 지음, 유혜자 옮김, 문학동네 펴냄, 서기 200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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