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장님 이야기
나는 예전에 제법 큰 규모의 대상을 이끌었습니다. 마흔 마리의 낙타를 소유하고 있었지요. 낙타와 함께 여러 나라를 떠돌아다니며 여행객이나 물품을 운반하는 일을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밤, 누군가가 나의 방문을 두드렸습니다. 문을 열어 보니, 수염이 새하얗게 샌 노인이 한 명 서 있었습니다.
“무슨 일이신지요, 어르신?”
“자네가 이 대상의 행수인가?”
“네, 그렇습니다. 혹시 무슨 일이라도?”
“자네가 이끄는 대상의 도움이 필요하다네.”
“이동해야 할 것이 무엇입니까? 사람인가요, 물품인가요?”
그는 흰 수염을 쓸어내리며 설핏 웃음을 띠었습니다.
“물품을 운반할 것이네. 하지만 지금 자네의 머릿속에 떠올리는 그런 물품은 아니라네. 이번 일은 아주 특별한 거지. 그 물품을 운반하는 사람을 부자로 만들어 주거든.”
“그게 어떤 물품인데요?”
나는 그 물품에 관심이 생겼습니다.
“이 일을 하고 싶다면 아무리 궁금한 것이 있어도 질문을 하지 말게. 오직 나를 믿고 내가 말하는 대로 따라 주기만 하면 된다네.”
나는 그 노인의 모습을 자세히 관찰해 보았습니다. 표정이 환하고 얼굴빛이 아주 맑아 보였습니다. 옷을 차려입은 품새도 고급스러워 보였고요. 사기꾼 같은 냄새는 조금도 나지 않았지요.
“알겠습니다. 제 동료들과 함께 그 일을 맡도록 하겠습니다.”
“아니야, 자네 동료들의 도움은 필요하지 않네. 자네와 낙타들만 있으면 되니까.”
순간 의심스런 생각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혹시 날 속이려는 게 아닐까?’
노인은 나의 이런 마음을 금세 눈치 채어 버렸습니다.
“두려워할 것 없네. 자네에게 피해를 주는 일은 없을 걸세. 하지만 이 일을 수락해 준다면, 머지않아 자네는 이백 마리 이상의 낙타를 살 수 있을 걸세.”
낙타 이백 마리! 그건 정말 커다란 수입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구미가 당기는 건 사실이었지만, 아직은 불안감이 말끔히 가신 것도 아니었습니다.
‘혹시 내 재산을 빼앗아 가면 어쩌지?’
노인은 내 어깨에 손을 얹었습니다.
“내가 장담하지. 자넨 아무 일 없이 집으로 돌아올 걸세. 어마어마한 재산을 가지고 …….”
아버지는 내게 늘 그러셨습니다. 사업에서 성패를 결정하는 가장 큰 요인은 ‘용기’라고요. 위험을 감수하지 않고는 돈을 벌 수 없다는 뜻이지요. 노인은 지금 내가 평생 동안 뼈빠지게 일을 해도 만질 수 없는 거액의 재산을 언급하고 있었습니다.
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러지요, 그 조건을 수락하겠습니다. 그런데 언제 길을 나서야 하지요?”
“내일 아침 해가 뜨는 대로 출발하도록 하지.”
사실 나는 모레 정도에 길을 나섰으면 했습니다. 준비를 해야 하니까요. 하지만 노인이 너무나 단호한 어투로 말했기 때문에 거기에 토를 달 용기가 나지 않았습니다. 일단 일을 하기로 결정한 이상, 뒤늦게 불평을 늘어놓는 것은 무의미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고요.
“그럼 이걸로 협상이 이루어진 것이라 믿겠네. 내일 대상행렬 옆에서 만나세.”
노인은 이렇게 말하고는 가 버렸습니다. 나는 옷을 챙겨 입고 동료들의 곁으로 갔습니다. 동료들에게 조금 전의 일을 말하자, 그들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의견은 서로 엇갈렸습니다. 누군가는 혼자 가지 말라고 했고, 또 누군가는 이런 기회를 절대로 놓쳐선 안 된다고 했습니다.
나는 이미 결정을 내린 일이었기 때문에, 이제는 운명에 맡기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떠날 채비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준비할 것이 얼마나 많던지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한 채 짐을 꾸려야 했습니다.
동이 트기 시작하자 그 노인이 나타났습니다. 대상 행렬이 있는 곳으로 다가오더니, 떠날 채비가 다 되어 있는 것을 보고 만족스런 미소를 지었습니다.
“자네를 선택하길 잘 했군.”
나는 동료들과 작별 인사를 나눈 뒤, 그 노인과 함께 길을 나섰습니다. 수많은 산을 넘고 좁은 골짜기를 지났지요. 밤에는 추위에 떨었고, 낮에는 땡볕 아래서 땀을 뻘뻘 흘렸습니다.
정확히 이레 밤낮을 걸었습니다. 여드레째 되는 날, 붉은 바위로 뒤덮여 있는 산자락에 도착했습니다. 우리는 걸음을 멈췄습니다. 노인은 낙타를 내 쪽으로 끌고 오더니, 미소를 지어 보이며 말했습니다.
“다 왔네.”
“다 왔다고요?”
나는 놀라서 되물었지요. 아무리 둘러봐도 그 주위에는 싣고 갈 짐이 보이지 않았거든요.
“저길세.”
노인은 손가락으로 산을 가리키며 말했습니다.
“산을 옮길 겁니까?”
나는 조롱하는 말투로 이렇게 물었지요.
“아닐세, 산 속에 있는 걸 옮길 걸세.”
“산 속에 있는 거라고요?”
“그렇다네. 이 산의 문이 곧 열릴 걸세. 그 안에 보물이 들어 있지.”
나는 깜짝 놀라서 노인의 얼굴을 뚫어지게 바라보았습니다.
‘이 사람 미친 거 아니야?’
만약 이 미친 사람에게 속아서 여기까지 온 거라면, 나 자신도 용서할 수 없을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노인은 확신에 찬 얼굴로 낙타의 무릎을 꿇게 한 뒤 땅으로 내려섰습니다.
그리고는 산을 향해 걸어가더니 무슨 말인가를 중얼거렸습니다. 이어 붉은 바위를 세 번 만지고 땅에 입을 세 번 맞추었습니다. 그 순간 천지가 진동하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아이고, 지진이 일어나는구나.”
나도 모르게 혼잣말이 튀어나왔습니다. 낙타들도 이 진동을 느꼈는지 겁을 내며 뒷걸음질을 쳤습니다. 그 바람에 나는 타고 있던 낙타에서 떨어질 뻔했지요. 애써 균형을 잡고 다시 노인의 얼굴을 바라보았을 때는 입이 쩍 벌어지고 말았습니다.
노인이 조금 전에 어루만지던 곳에 통로가 나타났던 것입니다. 이 노인이 마법사라도 된단 말인가? 그 순간, 내 마음을 또다시 눈치 챈 노인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렇게 놀란 눈으로 쳐다보고 있지만 말고, 낙타에서 내려 이쪽으로 오게나.”
나는 그의 말을 따랐습니다. 노인은 내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자네는 이제 곧 큰 재물을 얻게 될 걸세. 이제부턴 자네가 알아서 하게.”
나는 그가 하는 말이 무슨 뜻인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건지?”
“나는 자네를 이 곳까지 데리고 왔네. 산 속으로 들어가는 비밀 통로가 열려 있지? 그런데 난 그 안으로 들어갈 수가 없어. 산이 내게 금지 명령을 내린 것이지. 나 이외의 다른 사람만이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단 얘기야. 그 사람이 바로 자넬세.”
나는 겁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그 안에 무엇이 있는데요?”
“엄청나게 많은 양의 보물이 있지. 하지만 …….”
노인은 이 말을 하고는 입을 다물었습니다. 그리고 내 얼굴을 뚫어지게 바라보았습니다.
“하지만?”
나는 그의 말을 반복했습니다.
“보물이 있는 장소에 도달하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닐세. 산은 용감한 사람을 좋아하지. 그 때문에 안으로 들어간 사람을 여러 가지 방법으로 시험한다네. 이 시험을 통과하면 보물을 가져갈 수 있지.”
“그게 어떤 시험인가요?”
“담력 시험이지.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어두운 통로가 나올 걸세. 그 통로에서 갖가지 괴물들이 자네에게 겁을 줄 거야. 자네를 되돌아가게 하기 위해서 …….
하지만 그 괴물들은 조금도 두려워할 것 없네. 그 어떤 것도 자네를 해칠 수 없으니까. 괴상한 모습과 기괴한 목소리로 자넬 겁줘서 동굴 밖으로 쫓아내려는 것뿐이야.
다시 말하지만 그 괴물들에게는 신경쓰지 말게. 죽음이나 두려움 같은 말 따윈 머리와 가슴에서 깨끗이 몰아내 버리고 계속해서 걷기만 하게. 눈을 감고 귀를 막는 한이 있더라도 앞으로만 전진하게.
오백 미터 가량 앞으로 걸어 들어가면, 통로가 끝이 날 걸세. 거기에 공터가 하나 나올 거야. 공터 한가운데에 하얀 수의를 입고 누워 있는 주검이 있다네.
그 주검 쪽으로 다가가게. 주검의 머리맡과 발치에 촛불이 일곱 개씩 켜져 있을 거야. 머리맡에 있는 일곱 개의 촛불을 발치로 옮기고, 발치에 있는 일곱 개의 촛불을 머리맡으로 옮겨 놓게나.
그런 후 손을 수의 안에 넣고 배 쪽을 더듬어 보게. 작은 상자가 하나 있을 걸세. 그 상자를 재빨리 꺼내게. 그러면 주위가 환해지면서 괴물들이 모두 사라질 거야. 동시에 산의 보물이 나타나게 되지.”
나는 평소에 겁쟁이 쪽에 속하는 편은 아니었지만, 노인이 한 말에는 소름이 쭉 끼쳤습니다.
“다른 방법으로 보물을 손에 넣을 수는 없습니까?”
나는 두려움에 떨면서 물었습니다.
“아니, 그것이 보물을 얻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네.”
“둘이 함께 들어가면 안 되나요?”
노인은 근엄하게 말했습니다.
“자네는 내 말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했나 보군. 나는 단지 산의 문을 열 수 있을 뿐이네. 저 안에는 나 이외의 다른 사람이 들어가야 해. 내가 들어가면 산은 보물을 주지 않아.”
“아, 어떡하면 좋지요? 이런 일은 한 번도 경험해 본 적이 없어서 …….”
나는 어찌할 바를 몰라 이렇게 말했습니다. 노인의 표정이 약간 부드러워졌습니다.
“여보게, 날 믿게나. 나쁜 일은 일어나지 않을 걸세. 잠시 후면 엄청난 재물을 얻게 돼. 그것만 생각하게.”
재물을 얻기 위해서 이 위험을 감수할 가치가 있을까? 만약에 내가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통로가 닫히고, 이 노인이 내 낙타들을 가지고 도망가면 어쩌지? 하긴 낙타들을 가지고 갈 의도였다면 여기까지 올 이유가 없을 테지. 도시를 벗어나자마자 일당들을 시켜 길을 가로막아 버리면 간단하니까.
나는 노인을 믿고 싶었습니다. 그가 한 말이 사실이라면 길에서 인생의 모든 걸 보내야 하는 이 생활에서 벗어날 수 있을 테니까요. 길에서 발생할 수 있는 갖가지 위험들을 더 이상 겪지 않아도 되고요. 길을 가로막는 산적들과 싸울 필요도 없고 …….
대상을 공격하는 산적들은 단지 물건만을 뺏는 것이 아니랍니다. 사람을 칼로 찔러 죽이기까지 하지요. 나는 수십 번이나 그러한 위험을 모면해 왔습니다. 동굴로 들어가 재물을 얻을 수 있다면 그런 위험에서 벗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알겠습니다. 안으로 들어가지요.”
“자네는 옳은 일을 하는 거네. 후회하지 않을 거야. 하지만 내가 한 말들을 잊지 말게. 무슨 일이 있더라도 도중에 포기해선 안 되네. 이 일을 완수할 때까지 되돌아오지 말게.”
노인의 말은 내게 조금 더 용기를 주었습니다.
나는 통로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발을 들여놓자마자 사방이 칠흑같이 어두워졌습니다. 마치 허공에 발을 내딛는 듯했지요. 나는 더듬거리며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그때 먼 곳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소리가 메아리치며 들려왔습니다. 눈이 점차 어둠에 익숙해졌습니다. 흐릿하긴 하지만 통로 안의 모습을 볼 수가 있었습니다.
약간 앞쪽에서 통로가 구부러지고 있었습니다. 발걸음을 서둘렀습니다. 가능하면 이 일을 빨리 끝내고, 여기에서 나가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모퉁이를 막 돌았을 때 눈을 찌를 듯이 강한 빛이 나타났습니다. 빛 속에 무엇인가가 있었습니다.
그 모습이 무엇인지 확인하고 나자 피가 얼어붙는 것 같더군요. 그것은 낙타 크기만 한 유령이었습니다. 그 유령은 칼을 손에 든 채 빠른 속도로 내게 다가왔습니다. 무서워서 다리가 덜덜 떨리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노인의 말을 떠올리고는 즉시 눈을 감았지요. 유령의 모습을 한 번만 더 본다면 공포에 휩싸여 도망쳐 버릴 것 같았거든요. 눈을 감아 버리자, 유령의 모습은 이내 사라졌습니다.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그리고 눈을 감은 채로 앞을 더듬거리며 걸어 나갔습니다. 이대로 계속 가면 노인이 말했던 공터에 곧 도착할 수 있을 거라고 믿으면서요.
얼마나 걸었을까? 도움을 청하는 여자의 가냘픈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나는 호기심이 일어서 눈을 살짝 떠 보았습니다. 저만치 앞에 발이 쇠사슬로 묶인 할머니가 서 있었습니다. 그 할머니는 내게 손을 내밀며 애원했습니다.
“제발, 나를 여기서 구해 줘.”
나는 할머니에게로 가까이 다가갔습니다. 너무나 불쌍한 모습이어서 한 순간 어찌해야 할지 망설여졌습니다. 노인은 나에게 이 할머니에 대해서는 언급한 적이 없었습니다.
‘이 할머니를 밖으로 데리고 나간 후 다시 돌아와서 가던 길을 계속 간다면 ……. 아니야, 아니야. 그러면 안 되지. 먼저 주검의 배에 있는 상자를 꺼내야만 해. 그런 후 이 할머니를 구해야지.’
나는 할머니에게 다가가 말했습니다.
“할머니, 여기서 잠깐만 기다리세요. 잠시 후에 와서 구해 드릴게요.”
할머니는 애원하는 듯한 눈길로 나를 계속해서 바라보았습니다.
“나는 더 이상 견딜 힘이 없네. 어서 나를 구해 주게나. 나중에 오면 늦을 수도 있잖나?”
“죄송해요. 하지만 지금은 구해 드릴 수가 없어요. 조금만 참고 기다리세요. 곧 돌아오겠습니다.”
“아니야, 지금 당장 나를 구해 줘.”
할머니의 목소리는 갈수록 작아졌습니다. 할머니가 나에게 화를 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죄송합니다. 그래도 지금은 구해 드릴 수가 없어요.”
할머니는 갑자기 그 자리에서 펄쩍 뛰어오르더니 내게 손을 내밀었습니다. 그러자 할머니의 손톱이 빠르게 자라나는 것이 보였습니다. 그러니까 이것도 나를 저지하기 위한 속임수에 불과했던 것입니다.
나는 다시 눈을 감았습니다. 하지만 할머니의 끔찍한 비명소리는 여전히 귓가에서 메아리쳤습니다. 나는 검지손가락으로 귀를 막았습니다. 주위가 다시 고요해졌습니다.
눈을 감고 귀를 막은 상태로 계속해서 앞으로 걸어갔습니다. 걸음걸이의 속도는 약간 느려졌지만 최소한 유령들과는 만나지 않게 되었습니다. 백 미터 가량 앞으로 갔을 때, 발에 무엇인가가 걸렸습니다. 나도 모르게 뒤로 물러나려 했지만 마음대로 움직여지지가 않았습니다. 눈을 뜰 수밖에 없었지요.
그런데 세상에, 커다란 뱀이 내 발을 감고 있는 게 아니겠습니까? 발을 빼려고 했지만 소용없는 짓이었습니다. 그 뱀의 힘이 어찌나 세던지 꼼짝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제 눈을 감거나 귀를 막는 걸로는 해결이 나지 않을 듯했습니다.
나는 공포에 휩싸여 고함을 치기 시작했습니다. 내 목소리를 들은 유령과 마녀, 그리고 괴물들이 모두 한꺼번에 나타났습니다. 그들은 끔찍한 비명 소리를 지르며 내 주위를 에워쌌습니다.
그런데 그 순간 나는 알게 되었답니다. 이 괴물들이 내게 전혀 해를 줄 수 없다는 것을 ……. 단지 내 주위를 끊임없이 돌아다니기만 할 뿐이었습니다. 하지만 뱀은 여전히 내가 걷는 것을 방해하고 있었습니다.
나는 유령들한테는 신경을 쓰지 않기로 했습니다. 무엇보다 지금은 뱀한테서 벗어나는 일이 중요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그 때 불현듯 이것들 모두가 환영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다면 지울 수가 있으니까요.
나는 정신을 모으고 뱀의 존재를 부인하려고 애썼습니다. 하지만 주위에서 돌아다니고 있는 유령들과 그들의 비명 소리 때문에 생각만큼 집중이 되지 않았습니다. 결국 나는 다시 눈을 감고 귀를 막았습니다. 그리고는 이렇게 외쳤습니다.
“이 뱀은 환영이야.”
잠시 후, 발이 자유로워졌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정말로 그 뱀이 사라져 버린 것입니다. 그러고 나자 자신감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귀를 막고 있던 손을 내리고 눈을 떴습니다.
이제 유령의 존재가 하나도 겁나지 않았습니다. 몸통이 없는 빨래처럼 공중에 떠다니는 것이 되레 우습기까지 했습니다.
나는 발걸음을 재촉했습니다. 유령들도 나를 따라 속도를 냈습니다. 그들은 다양한 모습으로 변장을 하고, 다양한 소리를 내지르면서 내가 가는 길을 막으려고 갖은 애를 썼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노력은 헛된 것이었습니다. 나는 더 이상 그들이 무섭지 않았으니까요.
결국 통로가 끝나고 공터가 나타났습니다. 노인이 말한 대로, 열네 개의 촛불에 둘러싸인 주검이 공터 한가운데에 놓여 있었습니다. 나는 그 곁으로 다가갔습니다. 주검은 하얀 수의로 감싸여 있었습니다.
머리맡에 있는 일곱 개의 촛불과 발치에 있는 일곱 개의 촛불의 위치를 바꾸어 놓았습니다. 오른손을 수의에 넣고 주검의 배 부분을 더듬었습니다. 주검의 피부가 얼음처럼 차갑게 와 닿았습니다. 소름이 쭉 끼치더군요.
하지만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성공이 눈앞에 있었으니까요. 손을 조금 더 뻗치자 상자가 만져졌습니다. 상자를 손에 잡자 그 끔찍한 괴물들이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습니다. 그리고 동굴 안이 해가 뜨기라도 한 것처럼 환히 밝아졌습니다.
“이 빛이 어디서 나는 거지?”
나는 주위를 휘둘러보았습니다. 그리고 곧 황금과 에메랄드 같은 보석들로 이루어진 작은 언덕을 발견했습니다. 그 현란한 광경 앞에서 나는 숨이 멎는 듯했습니다.
그래서 한동안 망연히 서 있었습니다. 노인이 한 말이 모두 사실이었던 것입니다. 나는 정신을 차리고 동굴 밖으로 나갔습니다. 노인은 통로 입구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성공했어요! 상자를 가지고 왔어요!”
그를 보자마자 나는 기쁨에 넘쳐 이렇게 소리쳤습니다. 노인은 침착하게 행동했습니다.
“잘 했네. 성공할 줄 알았어. 손에 들고 있는 상자를 내게 주게나. 그리고 동굴 안에 있는 보물들을 날라다 낙타의 등에 싣게.”
나는 상자를 그에게 내밀었습니다. 그리고 낙타의 등에 있던 자루들을 챙겨서 다시 동굴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보물들을 낙타 등으로 옮겨 싣는 데만도 몇 시간이나 걸렸습니다. 사십 마리의 낙타에다 보물을 잔뜩 실었지만 아직도 많은 보물이 동굴 안에 그대로 남아 있었습니다. 그렇다고 모두 싣고 갈 순 없었지요.
노인은 만족스런 미소를 지으며 내 곁으로 왔습니다.
“이 정도면 충분하네. 자, 낙타들을 모으고 되돌아가세.”
내가 낙타 등에 실린 보물들을 정돈하고 있을 때, 노인은 붉은 바위 앞으로 다가가서 무슨 말인가를 중얼거렸습니다. 그리고 바위를 세 번 만지더니 땅에 세 번 입을 맞추었습니다. 천지를 뒤흔드는 소리와 함께 동굴 문은 다시 닫혀 버렸습니다.
우리는 낙타를 타고 길을 나섰습니다. 나는 끈으로 연결한 낙타들을 뒤따라 가면서 통제했습니다. 우리는 곧 붉은 바위산에서 멀어졌습니다. 노인은 맨 앞에서 낙타를 타고 가고 있었고요.
나는 내가 타고 있는 낙타를 그의 곁으로 몰았습니다. 일을 끝냈지만 내 몫이 어느 정도인지 몰랐기 때문이었습니다. 사실 어느 정도의 보물을 요구해야 하는지도 알 수 없었고요.
낙타 한 마리의 등에 실린 보물을 모두 원한다면 너무 많은 것일까? 욕심 부리지 말고 낙타 한 마리가 지고 가는 보물의 절반을 받는 것으로 만족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낙타 한 마리의 등에 실린 보물의 절반이라고 우습게보지 마십시오. 그 보물의 양은 자손 대대로 편히 먹고 살 수 있을 만큼 엄청났으니까요.
나는 머릿속으로 이러한 계산을 하면서 노인의 곁으로 다가갔습니다. 노인은 늘 그래 왔듯, 내 얼굴을 보자마자 내 마음을 알아챘습니다. 그의 눈에서는 영리한 사람들에게서 흔히 볼 수 있는 거만함 같은 것이 번뜩였습니다.
“자네 몫을 원하는구먼, 그렇지?”
“네, 전 어르신께서 시키신 일을 모두 해냈습니다. 저한테 얼마나 주실 건가요?”
“당연히 자네 몫을 가져야지. 그래, 얼마나 원하는지 말해 보게나.”
노인이 이렇게 말하자 차라리 마음이 편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얼마만큼을 원해야 할지 결정할 수가 없었습니다. 내가 주저하고 있는 것을 눈치 챈 노인이 먼저 말했습니다.
“낙타 한 마리의 등에 있는 보물이면 충분한가?”
정말이지 나는 절반을 준다고 해도 만족했을 것입니다.
“물론 충분합니다. 신(神)의 축복을 받으시길 …….”
“좋아, 자네가 원하는 낙타를 고르게나. 그 낙타가 싣고 있는 보물은 이제 자네 것이네.”
나는 기뻐서 미칠 것만 같았습니다. 그런데 막상 낙타 한 마리를 고르라고 하자, 교활한 생각이 슬쩍 머리를 쳐들더군요. 나는 몸집이 가장 큰 낙타를 손으로 가리켰습니다.
“그래, 알겠네. 그 낙타를 자네가 갖도록 하게나. 보물을 부디 유용하게 쓰길 바라네.”
나는 이제 부자가 되었습니다. 고향으로 돌아가는 대로 그동안 소유하고 있던 낙타를 모두 팔고 커다란 저택을 지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랫동안 바라 왔던 부유한 삶이 드디어 내 앞에 펼쳐지게 된다고 생각하니 신이 나서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습니다.
첫 번째 쉴 곳에 도착할 때까지, 나는 흔들리는 낙타의 등 위에서 즐거운 환상에 빠져 행복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우리는 커다란 무화과나무가 그늘을 드리우고 있는 작은 샘 옆에서 휴식을 취했습니다. 낙타 등에서 내리면서 나는 내 몫의 보물을 슬쩍 훔쳐보았습니다. 정말이지 너무나 많은 양의 재물이었습니다.
“저게 다 내 거야.”
나도 모르게 혼자서 이렇게 중얼거렸습니다. 노인은 그런 나를 보고 미소를 지어 보였습니다. 노인의 그 미소를 보는 순간, 자존심이 팍 상해 버리더군요. 마치 나를 우습게 보는 것 같았거든요.
어쩌면 그가 비웃는 것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지만요. 고작 낙타 한 마리가 싣고 있는 보물 때문에 이렇게 기뻐하고 있으니, 서른아홉 마리의 낙타가 싣고 있는 보물을 몽땅 가진 노인으로서야 얼마나 가소롭게 여겨지겠습니까?
노인은 줄곧 냉정한 태도를 유지해 오고 있었습니다. 나는 노인을 혐오스럽게 바라보았습니다. 그가 등을 돌리고 있었기 때문에 그는 나의 시선을 알아채지 못하는 듯했습니다.
어쨌든 우리는 시원한 샘가에 앉아서 휴식을 취했습니다. 배낭을 열고 음식을 꺼내 먹기도 하면서요. 음식을 거의 다 먹었을 때, 노인은 피곤한지 계속해서 하품을 해댔습니다.
“잠시 눈 좀 붙이겠네. 나중에 길을 떠나세.”
“그러지요.”
비록 이렇게 대답을 하긴 했지만 속으로 은근히 부아가 치밀었습니다. 마치 나를 노예 부리듯이 하고 있었으니까요. 그가 잠에 빠져 들자, 졸지에 나는 주인이 잠에서 깨어나기를 기다리는 노예와 같은 처지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 자리에 계속 앉아 있다간 더 기분이 상할 것 같아서, 자리에서 일어나 낙타들에게 먹이를 주고 물통에 물을 새로 갈아 넣어 주었습니다. 그러다가 내가 고른 낙타의 등에 실린 보물을 보았습니다. 나머지 서른아홉 마리의 낙타에 실린 보물들에 비해 그 양이 너무나 적어 보였습니다.
위험 속으로 뛰어들어서 보물을 구해 온 건 정작 나였는데도 말입니다. 노인은 단지 산에 있는 동굴의 통로를 열었을 뿐이지 않습니까?
‘왜 낙타 한 마리가 싣고 있는 만큼의 보물을 원했을까? 내가 미쳤지, 미쳤어.’
나는 나 자신에게 화가 나기 시작했습니다. 내 몫은 더 많아야 했습니다. 낙타들에게 물과 먹이를 준 뒤, 노인의 곁으로 왔습니다. 그는 아이처럼 태평한 얼굴로 쿨쿨 자고 있었습니다.
나는 그의 머리맡에 책상다리를 하고 앉았습니다. 그리고 그가 잠에서 깨어나기를 기다렸습니다. 한참 후, 노인이 일어났습니다. 내가 그의 머리맡에 앉아 기다리고 있는 것을 보자 미안한 듯 어색하게 미소를 지어 보였습니다.
“내가 너무 많이 잤나?”
“아니오, 그리 오래 주무시지 않았습니다.”
그는 몸을 일으켰습니다. 나의 태도가 좀전과 다르다는 것을 눈치 챈 듯했습니다.
“뭔가 변한 것 같군. 그 사이 무슨 일이 있었나?”
“뭐긴 뭐겠어요? 어르신이 저를 속였잖아요.”
“내가 자넬 속였다고?”
그는 깜짝 놀라서 이렇게 되물었습니다.
“그럼 속이고말고요. 마흔 마리의 낙타가 싣고 있는 보물 중에서 내게는 단지 한 마리가 싣고 있는 만큼의 보물밖에 안 주셨잖아요.”
노인은 이해한다는 듯 다시 미소를 지었습니다.
“아이고, 자네가 생각한 게 기껏 그런 거였나? 좋네, 얼만큼을 더 원하나?”
그는 마치 개구쟁이 짓을 하는 어린아이처럼 말했습니다. 사실 나는 내가 얼마만큼의 보물을 원하는지도 몰랐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입에서 이런 대답이 저절로 나왔습니다.
“낙타 열 마리가 싣고 있는 만큼의 보물을 원해요.”
“알겠네, 그걸 갖게나. 자네가 원하는 낙타를 고르게.”
나는 몸집이 가장 큰 낙타의 순서대로 열 마리를 골랐습니다. 분노가 약간 가라앉자 노인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제 제가 정당한 몫을 가지게 된 것 같습니다.”
우리는 다시 길을 나섰습니다. 밤에 휴식을 취하고 있을 때, 또다시 내 머릿속에 어떤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노인은 왜 나와 흥정을 하지 않지? 내가 원하는 것을 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고스란히 내주는 걸까?’
이러한 물음의 답을 찾는 것은 아주 쉬웠습니다. 왜냐 하면 그것은 내가 아직 정당한 몫을 가진 게 아니기 때문일 테니까요. 그러고 나자, 노인이 내게 부당한 몫을 주었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뱅뱅 돌기 시작했습니다.
사흘째 되던 날, 휴식 장소에 도착했을 때 나는 결국 이런 생각을 참지 못하고 다시 노인의 곁으로 다가갔습니다.
“할 말이 있는데요.”
노인은 뒤를 돌아보았습니다. 그의 얼굴에는 우리가 처음 길을 나섰을 때부터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던 슬픔의 빛이 어려 있었습니다.
“말하게나.”
“열 마리의 낙타가 싣고 있는 보물로는 제 몫이 부족해요.”
노인은 이번에는 미소짓지 않았습니다. 단지 고개를 저었을 뿐입니다.
“얼마를 원하나?”
“절반을 원합니다.”
“알겠네, 절반을 자네가 갖게나.”
그가 이렇게 쉽사리 내놓지만 않았더라면 내 마음속에 있던 탐욕은 진작에 사라져 버렸을 수도 있었을 겁니다. 그런데 노인이 보물을 너무도 쉽게 포기해 버리자, 마치 내가 정당하다는 것을 입증해 주기라도 하는 듯했습니다.
나는 곧 내가 받은 열 마리의 낙타에다가 열 마리를 더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만족스럽지는 않았습니다. 여행을 떠난 지 닷새째 되던 날, 다시 노인의 곁으로 낙타를 몰고 갔습니다. 이번에도 역시 노인은 내가 다가온 의도를 금세 알아챘습니다.
“아직도 충분하지 않나?”
“충분하냐 안 하냐, 그런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어르신은 스무 마리의 낙타가 싣고 있는 보물을 가진 데다 상자까지 가지셨습니다. 그 상자에 얼마나 많은 보물이 들어 있는지 모르겠지만, 여태껏 어르신은 조금도 주저하지 않은 채 제가 원하는 만큼의 보물을 다 주셨습니다.”
“지금은 뭘 원하는가?”
“마흔 마리 전부를 원합니다. 상자는 어르신이 가져도 좋습니다. 제가 그 보물을 찾기 위해 괴물들하고 목숨을 걸고 싸우지 않았습니까? 그 덕분에 주검의 배에서 상자를 꺼내 올 수 있었던 거고요. 그러니까 마흔 마리의 낙타를 제가 갖는 게 마땅하지요.”
“마흔 마리의 낙타를 다 갖게나. 그런데 자네의 탐욕은 끝이 없군. 웬만하면 이쯤에서 정신을 차리는 것이 좋을 걸세.”
노인은 경고하듯이 말했습니다. 그러자 이제는 그가 나를 두려워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점점 자신감이 생겨나더군요. 마음 한편에서는 노인이 한 말이 맞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면서 말이지요.
엿새째 되던 날, 나는 또다시 내가 부당한 일을 당했다고 느꼈습니다. 노인이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내게 마흔 마리의 낙타를 다 내준 것으로 봐서는, 그 상자 안에 엄청난 보물이 숨겨져 있는 것이 틀림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날 밤, 나는 상자 안에 들어 있는 보물이 궁금해서 밤새 한잠도 자지 못하고 뒤척였습니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노인의 멱살을 움켜잡았습니다.
“빨리 말해! 저 상자 안에 뭐가 들어 있는 거지?”
“자네의 욕심은 정말이지 끝이 없군. 자네가 받은 보물은 자네를 이 세상에서 제일가는 부자로 만들고도 남네. 무엇을 더 원하는 건가?”
노인이 대답했습니다. 하지만 왠지 그에게 지고 싶지가 않았습니다.
“그 따위 충고는 바보들한테나 해 보시지 그래? 저 상자 안에 뭐가 들어 있는지 어서 말하란 말이야.”
노인은 나의 상태가 몹시 심각하다는 것을 알아차린 듯했습니다. 이대로 가다간 목을 졸라 버릴지도 모른다고 판단했겠지요. 그는 이내 체념을 하고 신음하듯이 말했습니다.
“내 목을 놓아 주게나. 상자 안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알려 주겠네.”
나는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그의 목을 놓아 주었습니다. 노인은 깊은 숨을 몰아쉬고는 경멸에 찬 눈빛으로 나를 한참 동안 바라보았습니다. 그리고는 상자의 뚜껑을 열었습니다. 상자 안에는 초록색 가루 외에는 아무것도 들어 있지 않았습니다. 나는 실망스런 마음을 감출 수 없었습니다.
노인은 검지손가락에 그 초록색 가루를 묻힌 뒤 나에게로 다가왔습니다.
“이 가루를 왼쪽 눈에 바르면 땅 속을 고스란히 들여다볼 수 있다네. 이것만 있으면 아무리 깊은 땅 속에 묻혀 있는 보석이라도 다 찾아낼 수 있게 되지.”
“말하자면 상자의 비밀이 이것이로군.”
나는 기뻐서 소리쳤습니다. 노인은 그 초록색 가루를 내 왼쪽 눈에 발라 주었습니다. 순간 눈에서 무언가 정체 모를 빛이 발산되는 듯했습니다. 그리고 점차 세상을 이루고 있는 갖가지 빛깔들이 서로 뒤엉키기 시작하더군요.
잠시 후 빛깔들은 제자리로 돌아갔습니다. 그러고 나자 정말로 땅 속이 샅샅이 보였습니다.
“당신 말이 맞군. 내 눈앞에 있던 모든 걸림돌이 이제 사라져 버렸어. 무엇이든 다 볼 수 있게 되었으니까.”
“다행이군. 이제 그만 가도록 하세. 하루만 가면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네.”
“아니, 이젠 더 이상 갈 필요가 없어. 그 상자를 이리 줘.”
순간 노인이 상자를 들고 저만치로 달아나 버렸습니다. 하지만 나의 튼튼한 발이 그를 가만히 놔둘 리 있겠습니까? 재빨리 따라가 붙잡았지요. 나는 그의 손에서 상자를 빼앗았습니다. 그 바람에 그가 바닥으로 넘어졌습니다.
하지만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상자의 뚜껑을 열었습니다. 왼쪽 눈에다 초록색 가루를 바르자, 다시금 땅 속이 훤히 들여다보였습니다.
“오른쪽 눈에 바르면 더 엄청난 것들을 볼 수 있겠지.”
나는 검지손가락에 초록색 가루를 묻혔습니다.
“자넨 지금 엄청난 실수를 저지르고 있네.”
노인은 쓰러진 채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그의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나를 속이려 하는 말일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이윽고 나는 초록색 가루를 묻힌 손가락을 오른쪽 눈에 갖다 댔습니다. 갑자기 주위가 어두컴컴해졌습니다.
‘잠시 후면 이 어둠이 모두 사라지고 모든 것을 볼 수 있는 힘을 갖게 될 거야.’
나는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아무리 흘러가도 내 눈을 가린 검은 커튼은 걷히지 않았습니다.
“제발 도와주세요.”
나는 애원을 하면서 보이지 않는 눈으로 노인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노인은 내게로 다가와서 손을 잡았습니다.
“이제는 너무 늦었네. 자네의 눈은 앞으로 영원히 보이지 않을 걸세.”
“제발 저를 도와주세요. 보물을 실은 낙타를 전부 드리겠어요.”
“그 누구도 자네를 도와 줄 수 없어. 자네가 비록 내게 몹쓸 짓을 했지만, 나는 진심으로 자네를 도와주고 싶네. 자네 눈을 뜨게 할 수만 있다면 ……. 하지만 자네를 집으로 데려다 주는 것 외에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다네.”
나는 땅바닥에 엎드려 피를 토하듯 통곡했습니다. 노인은 나를 진정시키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러다 뜻대로 되지 않자, 낙타에다 나를 태워 집으로 데려다 주었습니다.
“마흔 마리의 낙타에 실린 보물은 모두 자네에게 주겠네.”
노인은 이렇게 말한 뒤 상자를 가지고 떠났습니다. 나는 결국 마흔 마리의 낙타가 싣고 있는 보물과 어둠의 세계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날 이후로, 나는 매일 아침 광장으로 나가서 내 목덜미를 내려치는 사람들에게 황금 주머니를 나누어 주고 있지요. “아, 이제야 정의가 실현되는구나!”라고 외치면서 말입니다.
장님이 말을 마치자 파디샤가 말했다.
“하지만 당신은 지금 마음속 깊이 후회하고 있지 않소? 이제 그 고문을 끝낼 때가 되지 않았나요?”
“맞습니다. 하지만 장님이 된 순간에서야 내가 저지른 잘못을 알게 되었소. 이젠 돌이킬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지요. 그렇지만 탐욕이 나의 정신을 혼미하게 했던 일만은 지금도 용서할 수가 없소.”
-『파디샤의 여섯 번째 선물』(아흐멧 위밋 지음, 이난아 옮김, 도서출판 푸른숲 펴냄, 서기 2005년)에 실린 이야기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