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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새해에도 책을 손에서 놓지 못하고 있습니다. 사흘 전에는 유까딴의 카스타 전쟁을 다룬 책『마야 원주민의 전쟁과 평화』를 다 읽었지요. 216쪽 밖에 안 되는 ‘얇은 책’인데도, 다 읽는 데 3주일이 걸렸습니다(아니, 한 달이 걸렸나? 아무튼 오랫동안 손에서 놓지 못한 건 사실입니다). 사실은 “내가 사고 나서 미처 읽지 못하고 책장에 꽂아둔 내 책들이여, 내가 올 한 해를 ‘버티고 버틸 수 있게’ 도와줘요! 날 도와줄 ‘사람’이 없으니 댁들(책들)이라도 날 도와달라고!”라고 말하고 싶은 심정입니다. 이게 다 나중에는 저에게 피가 되고 살이 되어서 그러는 거냐고요? 아닙니다. 그냥 책 읽는 게 좋아서 그런 겁니다.
2. 캐슈넛이라는 견과류를 사서 먹기 시작했습니다. 이게 아주 고소하고, 담백하고, 밥통(위장)에 부담이 안 가고, 씹어 먹기에도 좋아서 사길 잘 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동네에서 파는 캐슈넛은 바라트(인도의 정식 국호) 산이더군요. 당분간은 이걸 아껴 먹으면서 건강을 챙길 겁니다.
3. 올림픽 공원 안에 있는 한성백제박물관에 가서 특별 전시회인 ‘러시아 연해주 문물전 - 프리모리예’를 보았습니다. 그 전시회에서 우연히 초기 철기시대의 연해주 유물(제 기억이 맞다면 읍루挹婁족의 유물입니다)을 보았는데, 쇠도끼가 떡하니 나오더라고요. 그걸 본 순간, 저는 저절로(!)『불의 검』에 나오는 무타가 떠올랐습니다. 만화를 보면 무타도 도끼를 한 자루 가지고 다니니까요. 예상치 못한 유물을 보고, 예상치 못한 생각을 해서, 전시회를 보는 일이 즐거웠습니다.
4. 923권 : 지금 제가 가지고 있는 책의 수입니다. 11년 전에는 500권 이상을 가지고 있었다고 기억하는데, 지금은 그보다는 423권 더 많네요. 앞으로 작가로 일하려면 더 많은 책과 자료에 파묻혀서 살아야 할 텐데, 책을 놔 둘 공간이 남아있을지 걱정입니다. 하지만, 책을 사러 서점에 가면 온갖 잡다한 일이나 걱정, 근심, 답답함, 우울함, 슬픔, 짜증, 분노를 잊을 수 있으니, 제가 어떻게 이 일(책 사는 일)을 그만둘 수 있겠어요? 아직까지는 책을 살 수 있고, 아직까지는 집에 책을 놔둘 공간이 남아있어서 ‘행복합니다.’ 그리고 자투리 시간을 활용하면 어쨌든 책을 읽을 시간은 ‘있어서’ 행복합니다.
5. 우리 동네의 중심 상가에 단골로 가는 분식집이 있는데, 그곳에서 파는 떡볶이랑 찹쌀순대가 너무 맛있어서 만족하고 있었죠(값도 쌌어요. 떡볶이는 한 접시에 2500원이었고, 순대는 한 접시에 3000원이었으니까요). 그런데 얼마 전에 갔더니 떡볶이는 3000원, 순대는 3500원으로 값이 올랐더라고요. 물론 내용물은 바꾸었고 더 집어넣은 것도 있었습니다만, 그동안 즐기던 맛이 아니라서 기분이 안 좋았죠. '이런데도 내가 계속 이 가게에 와야 할까?'라는 의문도 들었고요. 제 생활비 빼고는 다 오르는 현실을 보며 다시 한 번 절망했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값만 오르고 내용물이 나빠진 것보다는 낫지.’라고 생각했고, 그래서 그 가게에 계속 가기로 했습니다.
6. 요즘 살이 빠지고 예전보다 날씬해졌다는 것이 드러나서, ‘그래도 이건 잘 된 일이네.’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2~3년 전에 산 양복을 입었더니 양복 바지가 주먹 한 개가 들어갈 수 있을 만큼 헐렁하더라고요. 속으로 만세를 외쳤죠. 살이 빠진 김에 몇 킬로그램이 더 빠지고, 나아가 근육도 키웠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엉망인 제 삶에 얼마 안 되는 즐거움들 가운데 하나죠.
7. 병원의 신경정신과에서 저를 치료/상담/충고/조언하시는 강사님(40대인 여성분)께서, 내게 "솔직담백하게 굴도록 노력해라."/"당신은 지레짐작을 너무 자주 한다. 사람들과 관계를 맺을 때 그렇게 굴면 안 된다. 고치도록 해 보아라. 남들에게 자주 묻고, 먼저 묻고, 그들에게 '나한테 바라는 게 뭔데?'라고 말하는 버릇을 들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첫째 조카(형의 딸)에게 생일선물을 사줄 때도, 제수씨에게 책을 빌려줄 때도 지레짐작으로 일을 처리하고 결정하고 행동했는지라 그 조언이 너무나 아프게 다가옵니다. '솔직담백하게 감정을 드러내되 분노를 마구 터뜨리지 않는 법'이나 '지레짐작하지 않되 예의를 지키는 법'은 어디서 배워야 할까요? 그저 답답할 뿐입니다. ‘길’이 안 보이고, 길을 가르쳐 주는 ‘표지판’도 안 보이네요(한숨).
8. 나이를 먹고 나서 새삼스럽게 깨달은 것은 다음과 같습니다 : 언론 보도가 100% 정확한 게 아니고, 정부의 발표가 다 옳은 건 아니며, 교과서에서 하는 말을 다 믿을 수도 없고, 어른들의 말씀이라도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 있으며, 학자의 책이라고 해서 곧장 권장할 수 있는 것은 아니고, 설령 내가 믿는 종교에 봉사하는 성직자의 말이라고 해도 귀담아 들을 가치가 없을 수도 있다. -> 그러므로, 저는 사람들에게 “의심하라. 의심하고 따지는 일이 당신을 자유롭게 하리라!”라고 말합니다. 물론 저부터 그 말을 실천해야죠.
9. 아시아(남아시아/중앙아시아/서西아시아)식 빵인 '난(nan)'과, 진하고 걸쭉한 요구르트(마시는 거 말고 떠먹는 거요. 물론 설탕이 안 들어가서 신 맛이 나는 양젖 요구르트여야 하고), 슈퍼에서 파는 '데워 먹는 카레'가 아니라 진짜 네팔이나 바라트에서 온 주방장이 만들어주는 맵고 맛있는 카레(맛살라라고도 하지요), 강황 가루를 뿌려서 무친 쌀밥의 유혹을 떨치지 못하고 있습니다. 누가 보면 '카레와 난 중독자'라고 생각할 정도로 푹 빠졌지요. 먹을거리의 유혹은 가장 떨치기 어려운 유혹 가운데 하나랍니다. 아참. 탄투리 치킨이나 케밥이나 홈무스(콩죽)나 파라펠을 뺄 뻔했군요.
10. 피스타치오를 샀습니다. 라픽 샤미 선생의 소설이 다룬 견과류라서, 도대체 어떤 맛인지 알고 싶었거든요. 먹어 봤더니 짭짤하더군요. 앞으로도 기회 있을 때마다 사 먹을 겁니다. 견과류는 뭐든지 환영합니다.
11. 올해 1월에 케냐 작가의 책인『총과 펜, 그리고 꿈들』을 다 읽었고 … 재미있게도 그 뒤에 산 책인『홍차 너무나 영국적인』은 단 하루만에(!) 다 읽었습니다. 요즘은 아무리 얇은 책이라도 다 읽을 때까지 닷새 정도는 걸리던데 어떻게 이렇게 빨리 읽을 수 있는지 모르겠네요. 제가 느리고 굼뜬 건지, 아니면 책을 읽는 일이 원래 이렇게 어려운 건지 모르겠어요.
12. 치매를 예방하는 효과가 있다고 해서 우엉차를 마시기 시작했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맛은 없습니다. 순전히 건강 때문에 마시는 거죠. 부디 이 요법이 효과가 있기를 바랍니다.
13. 14년 전 TV에 방영된 다큐멘터리인 <몽골리안 루트>를 다시 찾아서 보기 시작했습니다(네이버 블로그에 동영상 파일이 남아있더군요). 왜 보냐고요? 내용이 아니라 음악과 노래가 너무 좋아서요. 그것들을 듣다 보면 마음이 편해지고 괴로움을 잊을 수 있습니다. 아마 나이를 더 먹고 난 다음에도 그것들을 버리지는 못할 겁니다.
14. 1월 초에『그때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들』(정여울 지음)을 읽었는데, 읽고 나니 온 몸에서 힘이 다 빠질 때까지 뛰고 또 뛰는 마라톤을 두 번 하고 지쳐서 나가떨어진 기분이에요. 책을 읽은 만큼 제게 남는 게 있어야 할 텐데, 그렇게 될지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읽은 것이 안 읽은 것보다는 낫다고 생각합니다.
15. 해X에서 만든 허X버X칩을 사지 못했습니다. 어떤 맛인지 알고 싶었는데 , 저에게는 기회가 안 오더군요. 대신 그 과자와 '비슷한' 과자인 농X의 '수X칩 허니 머XXX'는 사서 먹어봤습니다. 꿩 대신 닭이라고, 후자라도 먹어봐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솔직히 말하라면, 전자를 구하지 못하고 살다 보니 후자를 먹는 편이 낫다고 생각해서 이젠 “좀 더 만들 것이지!”라는 독촉도 안 하고 삽니다.
16. 새해가 되어도 여전히(!) 귀찮은 일이 뭐냐고 물으신다면, 주저하지 않고 뺨에 난 수염을 뽑는 일이라고 대답하겠습니다. 수염이 나려면 코 밑이나 턱에 날 것이지, 왜 하필이면 뺨에 나냐고요? 정말이지 흰 머리카락이나 뺨에 난 수염을 뽑게 집게(핀셋)라도 사고 싶은 심정입니다.
17. ‘국영방송’이 된 지 오래인 ‘공영방송’의 뉴스와, 종편의 뉴스는 안 보고 산 지 오랩니다. 대신 위성방송에서 틀어주는 독립언론의 뉴스만 보고 삽니다. 후자는 전자처럼 시끄럽게 떠들거나, 선정적이거나, 증오를 부추기지 않고, 그러면서도 현실을 꿰뚫어 볼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주고 진실을 알려주니까요. 구체적으로 언제까지 이럴지는 알 수 없습니다만, ‘지금 이 나라가 돌아가는 걸 보면 아마 오랫동안 이래야 하지 않을까?’ 라고 추측할 순 있습니다. 더러운 물을 마시고 백성들과 함께 미쳐 버리는 쪽을 고른 임금(칼릴 지브란 선생의 우화에 나오는 이야기죠)이 되느니, 끝까지 독립언론의 뉴스라는 깨끗한 물만 골라서 마시고 미쳐 버린 백성들에게 욕을 먹는 편이 낫다고 되뇌어 봅니다. ‘언젠가는 미쳐 버린 백성들도 진실을 깨달을 거야. 그때까지만 참자.’라고 되뇐단 말이죠.
18. 얼마 전, 갑자기 ‘난 이대로 혼자 살다가, 연애도 결혼도 못 하다가 죽는 걸까? 나 혼자 죽으면 누가 내 시신을 치워 줄까?’라는 생각이 들어 숨이 턱 막혔습니다. 가슴이 답답하고 잠도 안 오더라고요. 10년 동안 혼자 지내다 보니 이제는 익숙해진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더군요. 술을 마시고 잠들까 생각하다가, 몸과 마음을 망칠 게 뻔해 겨우겨우 자신을 달래고 억지로 잤습니다만, 잔다고 현실이 달라지는 건 아니라 우울합니다. 이렇게 생각하는 저는 ‘이기적인 남자’일까요? ‘답 없는 질문’을 던지는 자신이 한심해 보입니다.
쓰다 보니 글이 길어졌네요. 오늘은 이만 할게요. 다른 소식은 다음에 따로 전해드리겠습니다.
- 우울함을 떨쳐 버리려는 모든 시도가 실패로 끝나 상심하고 있는 돌베개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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