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일시: 2001/01/23 오후 10:30
게시자: 여야장
제목: 조선일보 혜린님의 글(2001.01.19)
[일사일언] 돈을 주웠다면… .....김혜린
어릴 때 배운다. ‘남의 것을 훔치면 안된다’ ‘길에서 물건이나 돈을 주우면 순경 아저씨께 신고해라’. 조금 더 자라면 궁금해진다. 100원도 신고해야 하나? 아니면 1000원부터? 이러면서 아이는 나름의 도덕률을 배우고 판단력을 익힌다. 그리고 좀 더 자라면, 이제 드디어 카오스의 세계로 접어들게 된다.
만화속에서 악당이나 음모가란, 때로 음흉하게 웃는 모습이기도 하고, 차가운 포커페이스이기도 하며, 양심은 찔리지만 어쩔 수 없이 휘말려가는 꼴 등 여러 유형으로 나타나는데, 실제론 어떤 것일까?
어느 시인의 말씀처럼, 내 주위엔 다 착한 사람들인데 악당은 TV 나 신문 안에 다 있나 보다. 오늘도 누가 어색한 포즈를 잡고 있다. 나는 직업병이 도져서, 찍는 사람도 찍히는 사람도 유심히 관찰한다. 무슨 옷 선전도 아닌데, 10년 전에도 본 듯하고 5년 전에도 들은 듯한 너절한 ‘강도 열전’을 감상하고 있노라면, 작가정신이 이러쿵 저러쿵, 대중문화의 현주소가 어쩌구 따위의 소리들은 차라리 순진하고 눈물겹다. 옛 시절, 돈을 젓가락으로 집었다는 양반님네의 낯뜨거운 내숭에 비하면 돈에 관한 담론이 넘쳐나는 이 시대는 나름대로 진보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다시 원칙으로 돌아가보자. 남의 것을 훔치면 안된다. 사과해야 할 것은 사과하고, 용서할 수 있는 것은 용서하자. 나는 그저, 그런 원칙이 지켜지는 곳에서 살고 싶다. 원칙 부재와 부조리에 면역인자가 생길까봐 무감각해지지 않으려 애쓰다 보니, 죽을 때까지 이럴까봐, 이럴것 같아서, 하늘 보며 웃게 되는 요즈음이다.
( 만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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