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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을 뿌려주고 싶은 사랑 '비천무' (by 이주향)
 뭉실이  | 2002·01·30 14:14 | HIT : 1,051 | VOTE : 51 |

[행복한 만화가게] 꽃을 뿌려주고 싶은 사랑 '비천무'


※ 철학자 이주향 교수와 '건축하는 시인' 함성호 씨가 만화를 통해 삶을 읽고, 칸 속의 여백을 통해 세상에 대한 꿈을 꾸는 '행복한 만화가게'를 오늘부터 매주 번갈아 연재합니다. (편집자)

사랑의 느낌은 따뜻하고 절실하고 간곡합니다. 보고 있어도 보고 싶은 사랑, 그래서 사랑은 위험합니다. 쉽게 목숨도 걸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사랑엔 금기가 많습니다. 이건 안 된다, 저건 안 된다…. 그 금기는 위험한 사랑으로부터 사람을 보호하지만, 대신 사람에게서 향기와 매력을 앗아갑니다. 역시 눈부신 매력은 목숨까지 걸리는 절박한 사랑에 있습니다.

영화로까지 만들어졌던 김혜린의 '비천무'를 보셨습니까? 설리와 진하의 사랑의 금기는 '신분'입니다. 시대적 배경이 중국 원나라 말기니 그 장벽은 얼마나 높은 거였을까요? 세도가에서 설리에게 청혼이 들어오자 아버지는 설리의 깊은 사랑을 한 칼에 무시하고 그 청혼을 받아들입니다. 설리는 부들부들 떨지만 아버지는 단호합니다. "아비를 미워하는 건 좋다. 그러려면 먼저 장사가 되어라. 약하고 없는 자의 중얼거림은 허무한 말장난일 뿐이야."

그렇게 자신만만하게 말하는 아버지가 믿었던 건 뭐였을까요? 세상은 만만하지 않아서 강하지 않으면 사랑도 지킬 수 없다는 거였을까요? 그렇지만 설리가 믿은 것은 부와 권력이 아니라 넓디넓은 하늘이고, 따사로운 햇살이었습니다. 말리꽃 섞인 봄바람이고, 에루수 맑은 물이며, 그리고 가난한 연인 진하의 피리소리였습니다.

힘으로 강한 아버지와 아버지가 정해준 괜찮은 남자 남궁준광, 그들의 괜찮은 힘 앞에서 설리는 꺾이지 않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설리는 힘을 구걸하지 않으니까요. 설리가 보고 믿은 것은 권력의 힘, 부의 힘도 아니고, 성격 좋은 남자의 인격의 힘도 아니고, 아련하고 아득하게 서로에게 깊이 박혀버린 외로운 사람끼리의 사랑의 힘이었으니까요.

"언제나 그래…, 진하. 세상 모든 은원도, 두려움도, 허영에 잘도 들뜨는 나의 부끄러움도, 그저 말없이 날 안아주는 너의 마음속에서 조용히 녹아버려. 그리고는… 오직 한가지만 남아. 언제나 그래!"

물론 설리는 세상을 만만하게 생각하지도 않지만 쓸데없이 세상을 두려워하지도 않습니다. 허영에 들뜨는 성격도 분명히 아닙니다. 그렇다면 비천무의 주제일지도 모르는 설리의 이런 독백은 무슨 의미일까요? 멀고 험한 길을 찾아온 외길의 사랑이 안쓰럽고 반갑고 고마워서, 사선을 넘어온 진하를 위해 해준 거라곤 기다리는 일밖에 없어 그래서 갖게 되는 역설적인 마음인 거겠지요. 그러니 이 독백은 절박하고도 아늑한 사랑을 가슴깊이 새겨두는 묵직한 기도인 셈입니다. 끝까지 이들의 사랑은 신분의 차이만큼이나 험난합니다. 끝내는 세상 모든 은원이나 두려움뿐만 아니라 그들 자신과도 싸워야 하는 사랑입니다.

어쩌면 허영심은 마음이 허한 결과일지도 모릅니다. 세상 모든 두려움은 믿을 것이 없는 데서 오는 결과일지도 모릅니다. 허영기를 잠재우고 두려움을 이기게 만드는 사랑, 당신의 그 사랑은 지금 어디서 헤매고 있습니까?

▲이주향 약력: 1963년생. 이화여대 법학과 졸업. 동대학원 철학과 석·박사. 현 수원대 인문대 철학교수. 저서로 '나는 길들여지지 않는다' '나는 만화에서 철학을 본다' 등이 있음. KBS 1라디오 '이주향의 책마을 산책'을 진행하고 있으며, EBS '철학에세이' 강의도 맡고 있다.


<조선일보 2002년 1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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