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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시대의 만화가8     김혜린

우리것에 눈돌린 3세대 순정만화가

김혜린(31)씨는 흔히 "제3세대 순정만화가"라고 불린다.  사전적으로 설명한다면, 사심이 없는 순수한 사랑을 그린 만화가 되겠지만, '순정만화'는 요즘 만화계에서 가늘고 섬세한 선, 종이인형처럼 예쁘장한 인물, 장식적인 세부묘사 등을 주로 하는 만화의 양식을 가리키는 말로 쓰이고 있다.  조원가, 엄희자씨 등 60년대부터 이런 만화들을 그리던 이들이 활동을 중단한 뒤 한동안 우리 만화계에는 '순정만화의 맥이 끊겨 있었다.  그것을 부활시킨 것이 70년대말에 분 일본만화 <캔디> 바람이었다.
  그 만화시장에 국내작사 황미나,이진주,김동화씨 등이 뛰어들었고, 김혜린씨는 그들의 뒤를 바로 이었다.  83년 경상남도 진주의 경상대학 국어교육과 2학년에 다니던 그가 들고 나온 만화가 <북해의 별>이다.  북구 어디쯤이라고 짐작되는 가상국가에서 펼쳐지는 혁명과 사랑을 다룬 만화는 출간된 지 얼마 안돼 그즈음 대학가에서 선풍적 인기를 얻었다.  책음 모두 16권으로 나왔다.

"읽을 책들이 없었나요?  내 만화를 읽다니."

만화가가 된 뒤 부산으로 거처를 옮겨 10년 가까이 살고 있는 김혜린씨는 그렇게 웃었다.  시민혁명인지 사회주의혁명인지 성격이 불분명한 혁명을 낭만적으로 그려낸 <북해의 별>은 당시 만화치고 독특한 것이었고, 변혁운동에 '입문'하는 새내기 대학생들 사이에서 돌림으로 읽히기도 했다.  그는 민주화가 절대명제였던 당시 사회, 특히 대학 전반의 분위기가 만화와 무관하지 않았으리라며 곧 웃음을 거뒀는데, <북해의 별>은 아무튼 만화가 역사와 현실에 대한 논의를 촉발시키는 데도 쓸모있는 매체라는 인식을 확신시키는 데 일조한 셈이다.
일본만화 모사 시비는 전후 한국만화사와 역사를 함께하다시피 해왔다.  <북해의 별> 역시 그 혐의에서 자유롭지 않았다.
김혜린씨는 "그러나 그것은 내 창작"이었다고 강조한다.
"일본만화가 근본적으로 일본만화인 줄도 모르고 읽고 자란 우리 세대의 감성에 영향을 끼쳤으리란 점은 잔혹하지만 인정한다"는 단서를 붙였다.

흔희 신데렐라 콤플렉스와 사춘기적 연애신비주의가 순정만화의 배양지라고 지적한다.  금발과 서양식 이름, 머리장식과 리번과 레어스가 치렁치렁한 옷차림이 여자아이들의 미의식을 규정하는 과정에 대한 배판 역시 심심찮게 나온다.

"만화만의 문제가 아니지요. 대중문화 전체에 퍼져있는 현상인데 유독 만화를 표적으로 삼는 것은 반대입니다."

물론 자신도 극복해야 할 문제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거는 '뭔가 우리 것을 그리고 싶다'는 숙제를 요즘 잡지에 연재중인 <불의 검>에서 풀 요량을 하기도 한다.
원삼국시대 이전 흑룡강 주변을 무대로 설정한 가상 부족국가 이야기인데, 이를 위해 숙신, 읍노, 부여관련 자료를 뒤지고는 한다.  또 다른 연재물 <아라크노아>는 공상과학만화다.
그리고 또 말을 보탠다.

"순정만화다 소녀만화다 하며 장르구분을 하는 데 원칙적으로 반대합니다.  사랑과 활극, 생활과 열사가 그렇게 칼로 긋듯 갈라질 수 없지 않습니까?"

-------------------------안정숙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