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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돌베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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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얻은 것과 잃은 것 - 음반과 안경

꽤 '오래 전'에 겪은 일인데도 아직까지 기억하고 있는 일이 있습니다. 오늘은 가루녹차(말 그대로 녹차를 가루낸 것)를 마시면서 여러분에게 이 이야기를 털어놓고 싶습니다.(사실은, 오래 전부터 이 이야기를 하고 싶었는데 바쁘고, 지치고, 졸립다는 '핑계'로 그러지 못했어요)

'지난해' 3월인가 5월에, 저는 세 해(:3년) 전에 산 책의 부록으로 나온 음반을 잃어버렸습니다. <인도의 밤샘 음악회>라는 음반이었는데요, 말 그대로 인도의 전통 음악인 '라가'를 담은 CD였죠. 처음에는 별 생각없이 그냥 듣다가, 그 부드럽고 차분한 가락에 반해 말 그대로 틈만 나면 틀게 되었습니다.(이제는 아예 음률을 외울 정도임)

그래서 그 음반을 애지중지했고 행여나 잃어버릴까봐 신경을 곤두세웠죠. 그런데 어느날, 제가 집에 돌아온 다음 음반을 찾아봤더니 어디에도 없지 뭐예요? 혹시나 해서 여러 곳을 뒤지고, 착각해서 다른 음반 틀(:CD를 넣는 껍질) 안에 집어넣었나 해서 일일이 음반 틀을 열어봤지만, 그 음반은 사라지고 없었죠.

온몸에서 힘이 다 빠져나가더라고요. 집안 식구들에게 얘기해 봤자 어차피 이해하지도 못할 테고, 그렇다고 엉엉 울 수도 없었으니(우리집이 너무나 완고해서 '사내 XX는 어때야 한다.'는 말을 - 어머니나 할머니까지! - 입에 달고 다닙니다. 왜 못 우는지 짐작하시겠죠?) ... 입을 다물고 억지로 아무 일도 없는 척 하는 게 그렇게 힘들 수가 없었습니다. 모든 게 허무하고 짜증스러웠죠.(쓴웃음)

그런 와중에 엎친 데 덮친 격으로 (6월인가 7월쯤에) 운동하다가 안경을 - 옷 갈아입는 곳의 서랍 안에 - 깜빡 잊어버리고 넣어둔 채(!) 열쇠로 서랍 문을 잠그고 집으로 돌아와서(며칠 후에야 그 사실을 기억했죠.. 아마 그 안경은 다른 사람이 가져갔을 걸요 - 쓴웃음 - ) 더 우울해졌어요. ... 내가 왜 이런 일을 당해야 하나? 라는 생각밖에 못 했어요.(한숨)

... 정말이지 겨우겨우 숨만 붙어서 움직이고 있었습니다.(하긴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그런데 석 달 전, '기적'이 일어났어요. 거의 포기하고 있었던 음반(앞서 말씀드린 <인도의 밤샘 음악회>)을 우연히(!) 찾아낸 거죠. 영화음악을 틀려고 CD를 뒤지고 있었는데, 별 생각없이 연 CD 껍질 안에 잃어버린 줄 알았던 음반이 들어 있지 뭐예요! 너무 기뻐서
주책(?)스럽게도 두 손으로 CD껍질을 부여잡고 쪽쪽 입을 맞췄어요. '으하하하, 낄낄낄낄...'하고 웃으면서요. 마음 속으로는 온갖 노래를 다 부르면서 기뻐했죠.(웃음)

그 다음 제가 어떻게 했겠어요? 곧 음반을 빼내 (아직까지 버리지 않고 있던, 아니 사실상 내버려 두고 있던) 원래 음반이 들어있던 껍질 안에 넣었고, 다시 음악을 들으며 침대에 누웠죠. 잃어버린 음반이 돌아오니까 그동안 (잃어버렸던 음반 때문에) 쌓였던 원망과 실망이 싹 사라지고, 안경을 잃어버린 사실도 담담하게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답니다.

(안경은 영영 못 찾았어요. 섭섭하긴 하지만, 제가 주의깊게 살피지 못해서 일어난 일이니 누굴 탓할 순 없죠. 사실은 제가 안경을 잃어버린 사실을 식구들이 눈치채지 못하게 하느라고 제가 모아둔 돈으로 새 안경을 사서 - 시치미를 뚝 떼고 - 쓰고 다녀야 했거든요. 그래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죠)

....제가 이 일을 겪고나서 무얼 깨달았는지 아세요? 무언가를 잃었다면 그 무언가를 대신할 새로운 것이 채워져야 한다는 거였어요.

저는 음반을 잃어버린 뒤 제 스스로를 억지로라도 달래 보고, 다른 일을 하면서 잊어버리려고 했지만 도저히 잊지 못하고 오히려 더 화를 내며 스스로를 상처입혔죠. 안경을 잃어버리고 나서는 그런 경향이 더 심해졌고요.

그런데, 잃어버린 줄 알았던 음반을 되찾고 나니까, 제가 앓던 우울증이 (비록 지금은 다시 우울하긴 하지만) 싹 사라졌어요. 제 마음 속에 뚫린 구멍에 잃은 것(:안경) 대신 새로운 것(:되찾은 음반)이 채워진 거죠.

어쩌면 사람의 삶도, 사랑도 그런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하면서 글을 마치려고 합니다. .. 별 것 아니라고 여기셔도 이런 일을 누군가에게 이야기하고 싶어서 자판을 두드렸어요. 부디 다음 번에는 좀더 다듬어진 글, 세련된 글을 적을 수 있길 바랍니다.

- 4335년 음력 12월 28일, 이제서야 '지난 해'를 보내는 돌베개가 올림

산마로

[2003/01/30]

돌배개님 오랫만이네요^^ CD 찾으셨다니 축하드려요... 근데, '라가'라고 했나요? 어떤 음악인지... 처음 듣는 듯해서요^^;; 즐건 명절 보내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