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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흘 전, 제 구두를 잃어버리고 엉뚱한 사람의 구두를 신고 온 적이 있습니다. 고대사 학술회의에 참석한 뒤 열린 술자리에서 술을 마시고 집으로 돌아가려는데, 사방이 온통 검은 구두뿐이라 어느 게 제 건지 알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제 것이라고 짐작한 구두를 신고 밖으로 나갔죠.
그런데 계속 걷다 보니 발 뒤꿈치가 아프더라고요(지금은 두 뒤꿈치가 모두 까였음). 그제서야 제가 제 것이 아닌 다른 사람의 것을 신었다는 걸 알게 되었고 어쩔 줄 몰라서 집안 식구들에게는 아무 말도 안 했죠. 물론 부모님께 제가 신고 온 것이 제 구두가 아니라는 것을 들켜서 꾸지람을 들은 뒤 식당에 가서 제 연락처를 적은 쪽지와 함께 구두를 '돌려주고' 오라는 명을 받았고, 저는 힘없이 터덜터덜 걸어가면서 구두를 잃어버린 제 자신을 비난했습니다.
그런데 하느님이 보우하사, 기억을 더듬어서 그 식당(구두를 잃어버린 곳)에 가 보았더니 종업원 아주머니가 제게 "어제 구두를 잊고 가지 않았느냐?"고 물어보셨고, 귀가 번쩍 뜨인 저는 그렇다고 했죠. 아주머니는 제게 신발장에 모셔둔 구두를 꺼내 보여주셨고 저는 기뻐하며 아주머니한테 제가 신고 온 다른 사람의 구두를 맡겼답니다(나중에야 안 사실이지만, 어제 한 손님이 자기 구두가 없어졌다면서 슬리퍼를 신고 갔다네요. 너무 미안해서 말이 안 나왔죠).
이런 일이 일어나는 걸 보면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다' 는 말이 사실인가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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