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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디스켓을 포맷했습니다.

그러니까, 원래는 제 3.5 인치짜리 플로피 디스크에 수많은 <한글 2002> 문서가 들어있었는데, 그것들을 20분 전에 - 포맷해서 - 다 없애 버렸단 말이예요(흑흑흑, 엉엉.....).

그저께 그 디스켓을 우리집 컴퓨터에 집어넣고 열어보았더니, 아무리 기다려도 안 열리고, 이상해서 '등록 정보'를 확인해봤더니 '쓸 수 있는 용량 0%'라는 결과가 나오고, 매정한 컴퓨터는 제 디스켓을 읽고 또 읽다가 '포맷하십시오. 포맷한 디스크의 정보는 사라집니다. 하시겠습니까?'라는 메세지를 보냈거든요.

'아냐! 그럴 리가 없어!'라고 생각했죠. 비록 제가 많은 문서를 집어넣은 건 사실이지만, 그래도 그 디스켓은 별 탈 없이 잘 돌아갔으니까요. 전 '혹시 다른 디스켓도 그럴까?'라는 의문이 들어서 즉시 제가 <한글 2002> 문서를 담은 모든 디스켓들을 하나씩 하나씩 컴퓨터에 집어넣고 열어보았어요.

.... 그것들은 0.5초도 안 되어서 열리고 모든 문서를 다 살펴볼 수 있더군요. 그러니까 우리 집 컴퓨터의 조사결과에 따르면 맨 처음 열어보았던 디스켓만 문제가 있고 나머지는 다 문제가 없다는 얘기였죠.

전 이 '조사결과'를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습니다. '이건 우리 집 컴퓨터에 문제가 있어서 일어난 일인지도 몰라. pc 방에 가서 다시 열어봐야겠어. 그래도 안 열리면 그때 가서 포맷하자.'라고 생각했죠. 그래서 '포맷하시겠습니까?'라는 창을 닫아버리고 디스켓을 꺼냈어요. 그때까지만 해도 'pc방에 가서 열면 잘 열리겠지'라는 희망을 버리지 않았죠. pc방에 가서 직접 열어보기 전ㅇ는 섣불리 포맷하자는 결정을 내리지 말자고 다짐했더랍니다.

그런데, 그런데...그 마지막 기대가 깨져버렸어요. 오늘 저녁 심부름을 마치고 둔촌 사거리의 pc방으로 가서 제 디스켓을 열었을 때, 컴퓨터는 한참 동안 버벅거리더니 '포맷하시겠습니까?'라는 메세지를 보냈거든요.

전 이미 '만약 포맷해야 한다면 디스켓을 비워버리자. 그리고 모든 것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거야.'라고 다짐했는지라 '네.'라고 쓰여진 칸을 누른 뒤 눈을 질끈 감아버렸습니다. 컴퓨터가 포맷을 다 마쳤을 때, 저는 '그래도 혹시 문서가 남아있지 않을까?'라고 기대하고 디스켓을 다시 열어보았으나, - 이제는 잘 열리는 - 디스켓은 텅 빈 채 새 문서가 들어오기를 기다리더라고요. 전 할 말을 잃어버렸습니다. 눈물이 나오려고 하는 걸 참아야 했어요.

내가 3~4년 동안 쓴 원고인데! 그것도 한 편이 아니고 수십 편이나 되는데! 이 디스켓에 담긴 글을 쓰느라 먹을 걸 사 먹을 돈도 아끼고, TV 쇼를 볼 시간도 아끼고, 하고 싶은 공부도 안 하고, 운동하는 시간도 갖다바치고, 때로는 집안 식구들한테서 '쓸데없는 짓 한다'는 비난도 참았는데! 내가 써놓고도 내용이나 문법/어법이 마음에 안 들어서 처음부터 다시 고쳐 쓰느라고 완성하는 데 보름이 걸린 글도 있는데! 이제 조금만 더 다듬으면 다음 해에는 책으로 낼 수도 있었는데!

....그렇게 생각하니까 울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4년 동안 노력한 게 모두 날아가 버렸으니까요. 포맷을 결정했을 때, 마치 제 자식을 내다 버리는 듯한 기분이 들어서 울지 않을 수가 없었어요. 이젠 모든 게 다 끝났다는 생각이 들었죠.

이렇게 하기 전에 '설령 포맷해야 하더라도 어쩔 수 없는거야. 책은 2~3년 후에 내도 돼. 어차피 그 글들은 도서관에 있는 자료를 뒤지고 내가 가지고 있던 책들을 읽어서 쓴 거잖아? 그러니 한 번만 더 그렇게 하자.'라고 다짐했었는데, 일이 막상 이렇게 되니까 무력감밖에 안 듭니다.

그냥, 답답해서 넋두리를 늘어놓았어요. 회원 여러분은 이 글에 너무 깊은 관심을 기울이지는 마시고, '글을 자식처럼 여기는 글쟁이의 푸념'이라고만 생각하세요.

아마빌레

[2004/11/01]

먼저 사라진 글들에 애도를 표합니다. -.- 그 기분.. 저도 글좀 끄적거리기에 알지요.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은 허탈함... ㅠ_ㅠ 플로피 디스켓은 어느순간 그렇게 갑자기 배신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