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회상 - 김혜린 [비천무]


    이미 내 마음속의 도서관에 깊숙이 꽂아둔 책을 다시 꺼내 `자아비판(?)하시오` 하는 건 상당히 쑥스러운 일이다. 아...... 잔인한 편집실.

   "비천무"는 단행본으로서는 "북해의 별"에 이은  나의 두 번째 장편이다. 앞에 5년, 뒤에 5년...... 무정한  세월이 갔다! 근 5년을 유럽  문화사니 혁명사니 복식사에서 허우적대던 나는 무언가 갈증이 커져갔고 그래서  이 궁리 저 궁리 해보다 덜컥 덤벼든 게 `비천무`였다.

    물론, 그 즈음 즐겁게 보았던 한 중국무협 비디오와 평소의 취향, 그리고 한참 탐하고 있던 국악 선율, 탱화집 등도 내 선택에 한몫 거들었다. 서구형을 못 벗어난 인물, 배경의 부족함 등등 부딪힐 문제가 한 두 가지 아님을 알면서도 '내가 표현하고자 하는 것은 더 안쪽이다. 해가면서 자란다.'는 뻣뻣한 고집으로 마구 밀어붙였던 것이다. 그러나 처음엔 얼마나  비참하고 서글프던지......!

   옷 모양을 찾으려니 서점에 차고 넘치는 게 서양복식이요, 얻어 걸리는 건 무협 비디오, 동양화집, 중국사를 뒤지니 전문서는 온통 일본인 저 번역판, 뒤죽박죽인 야사집들......

   지금은 소위 민주화 덕택에 개선되는 부분들도 있지만- 서글픈 자격지심까지 더해져 - 그 땐 꽤 화가 났고, 덕택에 승부심리는 돈독해졌다. 그렇게 그렇게 어설프게 시작하여 거창해질 듯 하다가 쓸쓸히 날리는 말리꽃잎으로 끝난 나의 "비천무".

   보시는 분의 연령이나 취향에 따라 그것은 애정사극 또는 기정무협극(?!) 혹은 대하 로망스(난 국적불명의 이 말이 좋진 않다.) 등등으로 치부돼 버릴 수도 있겠지만, 내가 "비천무"에서 그려내고 싶었던 것은 '세월'과 '정한' 그리고 그저 '사람들'이다. 그러므로 부족함까지 포함해서 사랑하고 있다.

   "북해의 별"과의 구도상의 유사점이라든지 기법상의 미숙함 등으로 여러 지적도 받았지만, 내 마음을 알고 등장인물들의 마음을 알아 그 긴 시간을 함께 호흡하며 끝까지 보아주신 독자 여러분께 정말 감사한다.

   몇몇 독자들은 가끔 애정 어린 충고와 핀잔을 던진다. '이제 그만 우리 땅으로 한 번 내려와 보시오'라고. 헌데 난 지금 시공 3000년의 차이를 두고 멀고 먼 북만주와 더욱 멀고 먼 화성 땅을 열심히 헤매고 있다. 스스로 생각해 보면, 아직도 내 속에서 위축되지 않는 우리의 정서와 사관(史觀)이 정돈되지 못한 게 가장 큰 원인인 것도 같다. 계속 공부해가야 한다는 건 만화가가 된 이래 느낀 또 하나의 기쁨--.

   "비천무"를 이해하고 기억해 주신 분들께 감사하면서, 그때 내가 보듬고 앓던 그 갈증과 애정을 잊지 않아야겠다. 열심히 노력해 가다보면! 언젠가 나도 수제천처럼 유장한 음악 속에서 하늘을 오르는 춤을 출 수 있을지 뉘가 알리......!

《르네상스》 92년 10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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