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살롱 : 문학




한 마리의 새가 우리에게 무엇인지 아직도 생각해야 하나
ㅡ 李祭夏의 「새」중에서

   눈(目) 좀 쉬라는 애정어린 충고를 자주 듣는다. 하루 왼종일 원고를 끌어안고 시계랑 다투면서도 새 책만 보면 안절부절…… 군침을 삼키는 내 꼴이 딴은 우습기도 하다. 그러나 나는 가능한한 많은 것을 보고 또 느끼고 싶다. 행동은 느린 주제에……. 이런 관점에서 보면 난 욕심장이고 또 진짜 게으름뱅이이다. 게다가 만화만큼이나 무시무시한 문학이란 타이틀 앞에 내몰려진 지금은 갈데없는 엉터리 독서가다. 별 수 없이ㅡ나를 울리고 아프게 한 몇몇 작품 얘기를 하면서 살짝 얼굴을 가릴 수 밖에.

   위에 인용한 詩句는 이제하의 시집 「저 어둠속 燈빛들을 느끼듯이」중에서 빌어 온 것이다. 저 자조적인 질문에 대한 답을 작가는 몇행 아래에 「난(飛)다」라고 적고 있다. 그리고 …… 이어 말한다.

                도도해서 차라리 활짝 핀 꽃같은
                저 비상을 보고 있으면

                이것 없이도 우리가 사랑할 수 있다고
                차마 거짓을 말할 수가 없다
                그리운 사람이여

   「저 어둠속……」안에는 많은 아름다운 시들이 들어 있다. 내가 유독 「새」를 여기 적은 이유는ㅡ 애매하지만 멋진 단어 <자유> 때문일까? 이미 떠나고 없는 김종삼의 시도 좋다. 그리고 황동규의 시도 좋다. 엉뚱할지 모르지만 학창시절에 배운 신라의 향가도 좋다. 「찬기파랑가」나 「제망매가」, 「모죽지랑가」…… 그 노래들은 푸른 달빛에 젖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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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곤혹스러운대로 소설 읽은 얘기도 조금 해보자. 이외수의 「사부님 사부님」을 기억하는 사람을 여럿 보았다. 그림과 함께 우화형식을 띤 이 독특한 책은, 문학적인 어떤 평가를 떠벌리기 이전에 우선 새롭고 재미있다. 반쯤은 詩같은 그 글줄 뒤편에서 문득 눈물젖은 칼날을 보게 되는 건 또 왜일까.

   유형은 다르지만 이제하의 소설집 <밤의 수첩>에 실린 「한양고무공업사」와 「유자약전」도 독특하다. 이 작가가 화가라는 걸 모른다고 하더라도, 위 작품들 속에서는 未完의 환상주의 회화를 느낄 수 있다. 밤(夜)속의 황금빛, 혹은 블루 혹은 검붉은 세피아…… 그 광기섞인 이미지의 여운. 1985년 李箱문학상 수상작인 「나그네는 길에서도 쉬지 않는다」속에도 이 느낌은 배어 있다. 그 양식과 색채감이 또 좀 다른 모습으로… 이 소설은 영화화 된다고 하는데 원작의 축축한 분위기가 영상으로는 어떻게 표현되어 나타날까?

   이와는 다른 각도로 내 뒷머리를 때린 소설들 중에 李文烈의 세계가 있다. 다소는 작가의 예술가적 방만함과 고통이 깃든, 그래서 더욱 마력적인 중편 「금시조」, 이상하게도 다 읽고난 뒤 한참 후에야 뮨둑 가슴 어딘가를 미어지게 하던 「황제를 위하여」와 「영웅시대」. 그 외에도 수많은 그의 작품들…… 이문열은 뼈가 굵은 작가같다.

   중견작가 李淸俊의 기인 문학여정도 좋다. 인간의 소외와 생명, 잃어버린 말을 찾아 헤매이다 요즈음은 고향으로 회귀하는 듯한ㅡ 그의 세계를 엿보는 행복.

   徐永恩도 좋다. 이 작가의 창작집 「황금깃털」속엔 여성작가로선 보기 드물만큼 당당한 자의식이 숨어 있다. 씁쓸하고 녹슨, 그래서 더욱 떠날 수 없는 이 시대와 더불어….

   패배감 한가운데서 기묘하게 삶의 원동력을 길어내는 서정인도 있다. 무언지 일으킬 것만 같은 박기동도 있고 고함치지 않는 굵은 대(竹)를 느끼게 하는 오탁번도 있다. 그의 「저녁연기」는 마음이 지쳐있을때 더욱 좋다.

   눈을 時空도 없이 띄워보면ㅡ 지구상 모든 곳에서 작가들이 램프아래 홀로 쓰고 있다. 수많은 古典들, 여전히 인기좋은 H. 헷세, 「마의산」하나 보고 덜컥 끌린 T. 만…… G. 바슐라르의 몽상의 미학…… 셱스피어는 또 어쩌리! 작가의 이름도 모른채 얻어 읽은 「장거리 경주자의 고독」을 생각해 본다. 아프리카 시인들의 강렬하고 슬픈 詩도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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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술가의 혼>이 무엇인가를 나로서야 물론 죽을 때까지 모를 터이지만, 세상의 밑바닥에 가라앉아 있는 혹은 떠돌아다니는 혹은 외치고 있는 저 모든 인간의 창작물에 대해 나는 감사한다. 그와 더불어, 국내 작가들에게 편애섞인 관심이 깊어가는 것도 어쩔수 없다. 우리 시대의 문인들이 얼마만한 하중을 지닌채 붓대를 세웠다 꺾었다 하는지야 나로서는 대중할 수 없는 노릇ㅡ 그러나 우리의 정서, 우리의 恨, 우리의 길고 긴 침묵을 그 붓끝에서 본다는 것은 혹은 기대한다는 것은 그런대로 살아 볼만한 세상이지 않은가.

   인용으로 시작한 졸문ㅡ 인용으로 끝마쳐야겠다. 아래의 문구는 나자신도 잊어먹지 않도록 눈을 크게 떠야하는 말인듯도 하기에…….

작가는 가장 아프게, 가장 나중까지 우는 者입니다.
ㅡ 서영은 / '83 이상문학상 수상 연설문에서

글 / 김혜린 (『아홉번째 신화』 제 2 호, 1986년 12월 )

나인 앙케이트

1. 이름 : 김혜린
2. 생년월일, 혈액형 : 1962년 음력 9월 4일 A형
3. 당신이 가보고 싶은 시대와 장소 (지구에 한함) : 지구 탄생기, 인류 출현시기(?) 단군왕검 할아버지 시대, 인류역사상 기억될 만한 전쟁이 있었던 시대들, 독일, 시베리아, 휴전선 너머, 백두산과 만주, 지구상 어디든지 광활한 초원과 바다가 있는 곳
4. 본격적으로 만화를 시작한 시기는? : 1982년
5. 만약 만화를 선택하지 않았다면? : 교장실에 자주 불려다니는 교사가 됐든지…… 소설을 쓰겠다고 맨날 종이만 씹고 있든지……
6. 만약 우리민족의 역사를 배경으로 만화를 그린다면 가장 해보고 싶은 시대는? : 고조선~삼국시대 / 후삼국시대 / 고려무신정권과 삼별초 / 구한말과 일제시대 / 6.25~?!
7. 소재는 어디서 어떻게 찾는가? : 내가 보고 듣고 느끼는 세상사와 역사속에서……. 가끔은 꿈속에서 줏기도 함. 대개 오래 생각하는 편이라 몇 년씩 묵혀온 잡동사니 소재들이 머리를 아프게, 신나게 한다.
8. K라는 남자가 있다. 사랑하는 여자 J가 K의 아버지와 결혼을 했다. 당신이라면 이 소재를 어떻게 다루겠는가? : 별로 마음끌리는 소재는 아니지만 굳이 다룬다면ㅡ K는 한 인간으로서의 성숙에 J는 한 여인으로서의 일생에 K의 아버지는 기성세대(기존세계)로서의 황혼에 주된 관심을 두겠다. (위와 큰 관련은 없지만 심심풀이로 하나쯤…… 때는 선사시대. K는 소년 전사며 K아버지는 족장. 성인식을 앞둔 K는 이웃 부락을 쳐 승리. J는 그 부락의 무녀(巫女). 그리하여…… / 뒤가 궁금하신 분 별도로 연락하시압?!)
9. 앞으로의 계획은? : 흰 눈같은 사랑 이야기를 중편 정도로 다뤄보고 20세기 중반 독일을 무대로 한 장편극화에 도전해 볼 예정. 그리고…… 고구려 멸망기를 배경으로 우리 고대사에 관한 만화를 그리고 싶다. 살아야지ㅡ 공부해야지……!

 
만화동호회 나인의 『아홉번째 신화』 제2호(1986년 12월)에 실린 글입니다.
이 글은 무스탕님이 보내주신 책에서 발췌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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