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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린 작가, 황미나 작가, 권교정 작가의 작품 성향을 견준 짧은 글
 돌베개    | 2020·10·03 15:31 | HIT : 52 | VOTE : 0 |
두세 해 전부터 생각하던 것을 간단하게 정리해서 올린다. 나는 남성 독자로서 김혜린 작가, 황미나 작가, 권교정 작가의 순정만화들을 읽었고(다른 여성 작가들의 순정만화도 읽었으나, 여기서는 따로 이야기하지 않으려고 한다), 그 작가들의 영향을 받았으며, 지금도 그 작가들의 작품 내용을 기억한다(당연한 이야기지만, 잡지나 단행본을 사서 읽었다!).

나는 그 작가들의 만화 내용을 곱씹었는데, 그러던 어느 날, 문득, 그 작가들의 작품 성향이 일정한 특색을 띠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한 번 글로 정리해 봐야지!’하고 다짐했으나, 그 다짐을 실천하지 못하다가, 오늘 연휴를 틈타 키보드의 글쇠(‘자판[字板]’을 일컫는 순수한 한국어)를 두드린다.

이 글은 한낱 평범한 (그리고 남성으로 태어나서 남성으로 자랐기 때문에, 여성을 잘 알지 못하는) 독자의 느낌을 쓴 것이기 때문에, 정확하지 않을 수도 있고, 여성 독자 여러분은 이 글을 불쾌하게 여기실 수도 있다. 하지만 그래도 느낀 점(감상)은 느낀 점인지라, 말을 안 할 수는 없으니, 부디 이 글을 읽으신 김혜린 작가의 여성 독자들은 이런 나를 이해해 주시기를 바란다.

칼릴 지브란 선생의 잠언집 『아홉 가지 슬픔에 관한 명상』 에 나오는 지브란 선생의 잠언(箴言)을 흉내내서 글을 쓰자면,

김혜린 작가의 작품에는  ‘민중’ 과 쇠뿔( ‘영웅’ 을 일컫는, 순수한 한국어)이 있다. 그리고 그들이 잘못된 현실이나 타도해야 마땅한 대상(전제군주[ 『북해의 별』 ], 이민족의 왕조와 동족의 군벌[ 『비천무』 ], 제국주의를 내세운 침략자[ 『광야』 ], 썩고 타락한 동족의 나라[ 『인월』 ], 해적[ 『인월』 )과 목숨 걸고 맞서 싸우면서 빚어내는 처절함이나, 치열함이나, 슬픔이나, 분노가 있다. 또한  ‘더 나은 세상’ 을 향한 간절한 바람이 있고,  '아래로부터의 변혁‘ 이 있으며,  ‘이대로 쓰러져서 잘못된 현실에 무릎을 꿇을 순 없다.’ 는 오기( [Eternal] )가 있다.

그리고 황미나 작가의 작품에는  ‘용서’ 와  ‘화해’ 가 있다. 이는 양아버지와 양아들의 이야기( 『파라다이스』 )에서도, 자신의 왕국과 왕자라는 지위를 빼앗고 자진의 부모를 죽인 자를 용서하고 자신은 의적(義賊)으로서 숲에서 사는 것을 고른 소년의 이야기( 『녹색의 기사』 )에서도, 자신의 아내를 죽인 남자의 아들을 거두어들여 친아들처럼 키우는 중년 남성의 이야기(단편 「서울의 푸른 하늘」 )에서도, 지구가 아닌, 머나먼 우주의 한 별에서 폭정과, 전제군주의 폭력과 맞서 싸우면서도 인간의 마음을 잃지 않고, 혁명이자 전쟁이 끝난 뒤 원수의 아이를 입양하고 그 아이와 함께 살아가는 쪽을 고른 사람의 이야기( 『레드문』 )에서도 드러나는 사실이다. 그 용서와 화해는, 치열한 갈등과 다툼과 싸움과 맞부딪침을 거친 뒤에야 이루어지는 것이라서, 결코  ‘싸구려 용서’ 가 아니다.

끝으로 권교정 작가의 작품에는 (연애나 애정이 아니라)  ‘우정’ 이 있다. 내 생각이지만, 권 작가는 애정보다는 우정을 더 잘 그려내고, 더 자연스럽게 그려내며, 그것들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게 분명하다.

권 작가의 진짜 동무인  ‘오토리버스(본명 정○○)’ 와의 우정을 담은 이야기가 나오는 『Gyo의 Real Talk』 에서도, 세계정복을 꿈꾸다가 포기한 적월과 그의 동무가 나오는 단편 「적월전기」 에서도, 한 때 동무였고 같은 스승 아래서 병법을 배웠으나, 결국 원수로 돌아서고 만 손빈과 방연의 이야기를 재해석한 단편 「붕우(朋友)」 에서도, 적이 아니라 충고하고 조언하는 동무에 가까운 후크 선장이 나오는, 역시 『피터팬』 을 재해석한 단편 「피터팬」 에서도, 부(副)역장인 남자[남자 주인공]와 의사인 남자가 동무로 나와 웃음을 선사한 과학 만화(이자 장편)인 『제멋대로 함선 디오티마』 에서도, 이 우정은 잘 드러난다.

솔직하게 말하라면, 나는 『헬무트』 는 안 좋아하지만(왜 그런지 이야기하자면, 이 글의 주제를 벗어나며, 글이 너무 길어지니, 생략한다. 언젠가는 따로 글을 올려서 말할 기회가 오리라), 권 작가의 다른 작품들은 좋아하며, 특히 이렇게 우정을 다룬 단편들은 별 넷 반(100점 만점에 90점)을 주고 싶다. 나는 권 작가의 순정만화들을 읽기 전에는, (연애감정과 섞이지 않은) 우정이 순정만화의 소재나 주제가 될 수 있다는 걸 생각하지 못했다. 그런 내 선입견을 깨 준 권 작가에게 감사하고 싶다.  

이 세 작가 가운데 어느 작가가 더 훌륭한지 묻는 것은 의미가 없는 일이며, 쓸데없는 일이기도 하다. 세 작가 모두 훌륭하고, 한국 순정만화의 갈마( ‘역사’ )에 큰 발자욱을 남긴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세 작가는 각각  ‘다른 장점’ 을 지닌 분들이지, 어느 한 사람은 수준이 높고 다른 사람들은 수준이 낮은 것이 아니다. 그것만은 분명히 말하고 싶다.

- 단기 4353년 음력 8월 17일에, 김혜린 선생님의 독자이자 ‘제자’인 돌베개가 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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