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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갤에서 퍼온 [테르미도르] 감상문.
 만화사랑  | 2007·05·11 03:45 | HIT : 2,116 | VOTE : 275 |
아래부터는 퍼온 내용입니다. 조금 따끔합니다.
특유의 반말체는 그쪽 게시판에서 형성된 감상문화임을 양해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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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린作 [테르미도르]를 보면서 느낀 몇가지 소소한 아쉬움.

만갤짤방인 르네상스에 연재했던, 프랑스혁명을 다룬 1986년작 테르미도르야.
범작 이하라곤 않겠어. 하지만 김혜린 초기작중 나름 좋은 평이라고는 하지만 지금 관점에선 다소 조악함이 느껴져. 사실 고전 만화들을 지금 시각으로 보는 자체가 불공평하다고 생각할지는 몰라도 굳이 그런걸 챙겨가면서 재미 없는 만화를 고전이라는 이유만으로 추켜세우는것도 아니라고 생각해. 반면에 유리가면이나 베르사이유의 장미는 지금 봐도 여전히 악소리나는 명작이고. (비교대상을 꼭 일본만화에만 국한할 것은 아니지만 비슷한 느낌의 국내만화까지 일일이 열거하기는 벅차니까 넘어가자. 굳이 말하면 시대극 소재인 '아르미안의 네 딸들' 같은 경우는 개인적으로 테르미도르보다 몇 단계는 심후한 내공이 느껴져)


첫번째, 우연성의 남발.
모든 상황 하나하나가 우연성에 기대는 경향이 심해. 등장인물간의 만남(첫만남이든 재회든) 에 있어 별다른 복선제시도, 필연적인 연출도, 별다른 개연성도 없이 확률 1% 미만의 우연이야. 예를 들어 아무리 친하던 동창이라도 소재조차 모를 만큼 멀리 떨어져 사는 와중에 서울에서 어쩌다 만날 확률이 얼마나 된다고 생각해? 이런 극적 우연이 한두번도 아니고 거의 모든 국면전환에 이용되니 솔직히 공감이 잘 안가.
게다가 이런 우연 가운데 하나라도 안 맞으면 결말이 완전히 틀려버리는 전개가 되버리니까.


두번째, 당위성 부여의 허점.
김혜린 만화의 특징이라고 할 수도 있는데, 사랑이라는 과정을 너무 "묻지마"식으로 일관해.
충동적인 사랑도 있겠지만 나름 개연성을 부여하면서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인간적인 매력을 공들여 묘사하는것도 만화가의 재능이야. 독자 입장에서야 후자쪽이 더 공감하기 쉽거든. 그런데 김혜린 만화는 주연급 커플에 대해 일찌감치 사랑해버렸다는 식으로 대강 넘기고 그 사랑을 사수하는 과정만 줄기차게 묘사하는데, 선뜻 공감이 가지 않는게 사실이야.
'테르미도르'는 정도가 지나치다 싶을 정도인데, 주인공 여자가 얼굴이 예쁘고 성격이 고고하다는 이유로 숱한 남자들이 꼬이거든.
(솔직히 그 그림체의 얼굴이 그닥 놀라운 매력이라고 생각될 만큼 몰입되는것도 아니나 작가가 그렇다고 하니까 절세미녀라 치고 넘어가기로 하지만, 그 인품묘사를 따로 놓고 뭇 남자들이 그토록 사랑에 빠진다든가 동화된다거나 하는 개연성을 찾기는 힘들어. 요즘 가치관에 비추면 오히려 까칠하다고 보는편이 좋을 정도야)
이런 면은 사실 독자의 대리만족에 기여하기 위한 포석이 아닐까 싶기도 해. 실제로 여주인공의 설레발은 큰 줄거리 진행과는 겉도는 느낌이 들거든. 또 근대사의 큰 줄기를 이룬 프랑스혁명이라는 소재를, 그것도 비중이 높은 실존인물들을 대거 등장시켜놓은 상태에서 작가가 만든 캐릭터를 이용해 너무 작위적으로 끌고 나간 듯한 인상이야.


세번째, 어디서 본 듯한.
솔직히 테르미도르만 떼놓고 보면 베르사이유의 장미를 너무 짙게 의식한 흔적이 역력해. 3각구도라든가, 혁명파에 대한 냉소적 시선이라든가, 시기적으로 정확히 베르사이유의 장미 바로 다음 시기(바스티유 함락 이후~로베스피에르 처형)를 다루는 것이라든가. 구도나 그림체까지도 일부 베르사이유의 인상이 풍겨. 다만 로맨스 부분은 베르사이유에 갖다대기엔 지나치게 조악하고, 혁명이라는 소재 자체에 더 무게를 실어둔 느낌이긴 한데 "유혈혁명이란 결국 순수한 주동자들을 희생시키고 엉뚱한 3자가 어부지리를 얻는다"는 작가의 사상이 짙게 배였어. 아쉬운 점은 그런 정도의 가치관은 요즘의 20대 초반이면 누구나 가질 수 있는 진부한 것이라는 점이지. 만약 좀 색다른 관점에서, 예컨데 왕당파라는 이유만으로 정말 억울하게 희생되는 사람들을 조명했다든가 했으면 점수를 높이 쳤을텐데 베르사이유의 장미(특히 오스칼)와 너무 관점이 비슷해서 그닥 참신한 느낌이 없어.
솔직히 베르사이유와 차이가 있다면 시기적으로 그 다음을 다루었다는 것과 로맨스보다는 역경에 주안점을 두었다는 정도? 전자는 오히려 베르사이유를 의식했다는 느낌을 주고 후자도 로맨스 자체가 거론하기 창피할 만큼 조악하니까 장점이라고 할 수는 없다고 봐.

얼마나 심한지 예를 들자면, 주인공 여자(알뤼느, 미소녀임)와 사랑에 빠지는 미청년(유제니)은 주인공 여자의 일가(부모 포함)를 별 잘못도 없는데 귀족이라는 이유만으로 폭도를 몰고 와서 싸그리 죽였지만 정작 여자는 개인적으로 어렸을 때 짝사랑이라는(?) 이유로 살려줘. 여자는 잠깐 복수심에 불타는 듯도 하다가 남자의 순수한(?) 혁명정신에 매료되어 서서히 사랑에 빠져. 이후 억울하게 죽었던 여자측 부모에 대한 논의는 버로우야. 대충 이런 중구난방식 전개가 많아.

여기서 잠깐, 베르사이유의 장미 봤던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 극적 결말에 전율을 느껴 "내가 저 다음 줄거리를 이어서 늘려보고 싶다"는 충동 한두번쯤 들지 않았을까? 해리 포터의 완결편을 썼다는 어떤 중국인처럼, 김혜린이 그 생각을 망상을 넘어 실천에 옮긴 한명의 군상이라면 너무 지나친 비약인가?


네번째. 작가적 자존심?
솔직히 이건 건드리기 민감해서 다루지 않을까 싶기도 했는데, 간혹 몇몇 만화를 보면 내용이 형이상학적으로 나가려다 되려 초반의 분위기까지 어설프게 만드는 경우가 있어. 작가가 뭔가 참신하고 멋스러운 관점을 제시하고 싶기는 한데 묘사력이나 배경지식이 딸리면 본의 아니게 억지를 쓰게되는 경우가 있지. (판타지 소설같은것도 마찬가지야)
뭔가 의미심장한 대사나 문구 몇줄 돋보이게 써넣고 "이 설정 어때! 멋지지? 끝내주지?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면 앞으로의 감상은 계속 어색한 느낌만 들거야! " 같은. 바꿔 말해 한물 간 사조를 인용하면서 무척 유식한 척하는 느낌.
하지만 독자의 수준이 더 높은 경우 그런 의중마저 꿰뚫리면서 전개가 심심해지는 경우가 많아. 그래서 진짜 내공있는 작가들의 경우는 아무리 뭔가 내세우고 싶어도 그런것을 직접 표출하지 않고 우회적으로 돌리거나 여운을 남기는 방식으로 생각할 여지를 화두처럼 던지는데, 초기의 김혜린은 아직 그런 경지까지는 아니었던 것 같아. 내용 전체가 여봐란듯 작가의 사상을 고스란히, 그리고 완벽하다는 식으로 드러내고 있거든.
이런 설정에서는 공감이 가면 좋겠지만 공감이 안가면 납득을 못하게 되니 어쩔 수 없이 선역이라고 나서는 캐릭터도 별로 지지되지 않고, 전형적인 악역이라는 캐릭터도 별로 나빠보이지 않아.
앞서 예를 든 베르사이유의 경우는 반대로 캐릭터를 단순히 선/악으로 가름하기 힘들 만큼 각자의 처지가 그 자체로 공감 100%여서 그 마리 앙투아네트조차도 연민 가득한 비련의 캐릭터였잖아? 테르미도르의 경우 각 캐릭터들은 극적 전개를 위한 어떤 장치로서만 노는 느낌이야. 심지어 주인공이 죽어도 그냥 그런가보다 할 정도로 감정이입이 힘들어.


사족 하나 더하자면, 김혜린 만화 대부분에서 주인공 커플은 엄청난 고난과 비련을 겪는 듯이 묘사되지만 결코 평민레벨은 아니야. 혈통이 있든가 재산이 된다거나 신분이 높다거나 권력층과 연줄이 닿는다든가 결정적으로 미모가 끝내준다든가(-_-) 하는 식으로 우연에 기댄 행운을 잔뜩 누리는 범상치 않은 주인공들인데 자기들은 온갖 고뇌 시련 절망 다 겪는 것마냥 용트림을 해대지.
초기작일수록 이런 느낌이 짙으나, 어차피 그 해결 과정은 바로 위에 언급된 행운과 결부된 요소로 알아서 진행되니 이것도 과히 긍정적인 것은 아니야. 솔직히 김혜린식 만화에서 돋보이는 점이라면 그 황당할 정도의 극적 전개라든가 종종 튀어나오는 고상한 문투, 그리고 좋고 나쁨을 떠나 개성적이고 꼼꼼한 펜터치 정도라고 보는데 캐릭터라든가 줄거리의 개연성 측면으로는 그다지….


부정적인 면을 열거한 것 같아도 사실 당시 기준이라고 하면 역시 범작 이상이고 다른 작가들과 비교하면 높은 내공이라는 점 인정해. 그러나 후대의 김혜린이 좀 더 갈고 닦은 내공으로 보여준 작품이라든가(다 보진 못했어도), 대하역사물의 관점으로 보자면 점수를 후하게 넣기 어려운건 사실이야. 그렇다고 개그라든가 상황 묘사가 위트넘치던 것도 아니었고, 역시 특유의 김혜린스럽다고 평할 수밖에 없는 작품인데 최소한 여주인공의 미모를 그렇게까지 부각시키지만 않았어도 낫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들어. (미모면 모든게 용서된다는 개념은 구시대적이고, 그 그림체 역시도 개인차가 크니까. 한마 바키를 갖다놓고 뻑하면 여자가 꼬이는 초절정 미소년 귀공자라고 작가가 우기면 독자 입장에서야 할 말은 없지만 내심 꼬이긴 하잖아?)

입소문 탓에 보게 된 작품이라 그런지 아쉬움이 더하다는 느낌이 들어. 만약 베르사이유를 보지 않고 봤다면 꽤 색다르다고 생각했을지도 몰라. 이상은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의견인 만큼 찬/반론 모두 환영하지만 반드시 작품을 먼저 보고 나서 평해주길 바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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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잖이 공감되기도 하고 따끔하기도 하지만, 비교적 순수(순진?)했던 시절의 혜린님을 회상하는 아련함도 드네요. ^^




상트페테르 만갤에서 엄청난 호응을 얻고 있는 감상평이군요. 혜린님 작품의 공식을 열거한듯한...;
대사가 멋지기는 한데 연관성이 없어 읽고나면 남는게 없다는 평도 떠오릅니다.

07·05·11 15:39 삭제

Elain 순정만화 주인공이 이쁘고 집안이 좋거나 능력이 뛰어난 것이 왜 잘못인지 솔직히 잘 모르겠군요. 그렇다면 모든 순정만화는 '슈퍼 리얼리즘'적인 만화여야 한다는 소리인지.. 그렇다면 모든 주인공이 평범하고 얼굴도 그저그렇고 머리도 중간정도? 여야 한다는 건지. 김혜린 선생님의 주인공이 다 이쁘고 잘생긴 것은 어차피 순정만화의 존재이유 중 하나가 아니었던지.. 저분은 순정만화가 무엇인지 잘 모르는 분?
또한 전반적으로 조목조목 비판은 잘 했지만, 굳이 '테르미도르'에 대한 애정은 있을 필요야 없다고 하더라도, 만화를 좋아하시는 분인지 의구심이 드네요. 모든 장르 중에 독자의 재미를 위해 개연성을 많이 넣는 장르 중 만화가 최고 중 하나가 아닐까.. 생각되는데, 그렇다면 만화가 재미있을 수 있는 다른 대안을 하나라도 제시하시던가.. 아니, 먼저 '테르미도르'를 비판하기 전에 모든 무협지부터 다 비판하시던가..
오히려 김혜린 선생님의 작품을 제외한 다른 99%의 순정만화가 다작에 거의 내용이 미남/미녀의 사랑이야기로만 일색인데, 왜 김혜린 선생님이 타겟이 되는지.. 참... 비판을 위한 비판은 왜 하시는 건지.

07·06·17 00:24 삭제

Elain 모든 비판 중 가장 허무한 비판이 바로, 애정이 없는 비판, 대안이 없는 비판이라고 생각됩니다.

07·06·17 00:26 삭제

alwen Elain/글쎄요, 그렇다고 전형성을 고수하는 매너리즘을 옹호할 수도 없다고 생각이 듭니다? 김혜린님에 대한 애정이 있기 때문에 저런 비판을 해주셨다고 생각이 듭니다.
독자의 재미만을 위해서라면 만화 말고도 얼마든지 매체가 있는데다, 재미만을 위해서 다른 요건을 무시해도 좋다는 식이면 좀 곤란하다고 봅니다. 뭐 그런 거지요.
또 대안이 없는 비판도 문제점을 공론화한다는 면에서 순기능을 간과할 수 없지 않을까요? 치료할 수 없는 암도 진단을 해보는 것처럼요.
대안이 없다고 빤히 보이는 문제점을 구경만 하는건 오히려 더욱 방관자적이라고 생각되네요.

07·07·13 12:24 삭제

리타라 음..오랜만에 와서 오래묵은 글을 봤네요.
저로선 그저 퐁 빠져 읽은 혜린님 만화라..한번도 비판없이 봤기에 저런 관점은 신선하네요. 사실 전 저걸 보면서도 음 그런 시각으로 볼 수도 있구나..싶긴 하지만 여전히 그랬던가..싶거든요.
물론 테르미도르와 북해의 별을 보고 나서 다시 베르사이유의 장미를 봤을때, 역시 베르사유의 장미가 명작은 명작이야..(그림은 옛날식이지만 예쁘기도 하고 ㅋㅋ) 혜린님 초기에 이거 되게 의식하셨구나..라는 생각을 했었죠. 자꾸 보면서 함께 떠오르는 부분이 있는건, 단순히 배경이 같아서나 시각이 비슷해서만은 아닌 게 있었거든요. 시간이 좀 지난 지금은 정확히 생각은 안나지만 몇몇 씬에서 그런게 있었던 것 같아요. 우리야 혜린님의 팬이니 덜하지만, 혜린님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 그 초기작을 봤다면 그저 베르사유의 장미 아류작을 나름 괜찮게 그린 작가였어! 라고 말할수도 있다는 거죠. 뭐..그런 사람에게 저는 불의 검과 비천무를 들이대겠지만요^^

08·03·19 01:25 삭제

쿠사레게도 솔직히 혜린님의 계보에서는 언급하기 창피한 작품이죠.
베르사유의 장미 아류작을 나름 괜찮게 그린 작가였어...라고 하기에도 모자랍니다. 일본만화가 완전 개방된 지금 관점에서는 그 수준이 '괜찮다'는 표현도 감사할 지경이거든요.

08·04·12 02:51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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