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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오싱(紹興)
 Yellowbook  | 2004·06·10 01:38 | HIT : 959 | VOTE : 74 |
2003년 3월 26일 수요일.
일치감치 일어나 호텔에서 아침을 해결하고 샤오싱(紹興)행 버스에 올랐다. 샤오싱이라는 도시가 국내에 얼마나 알려져 있는 지 모르겠으나 적어도 내게는 꽤 의미있고 친숙한 도시이다. 널리 알려진대로 루쉰의 고향이자 왕희지에 얽힌 이야기가 전해오는 곳이기도 하지만 나에게는 그 무엇보다 '비천무'의 무대로 기억에 남아 있다. 이 만화를 보는 동안 나는 진하의 외로움과 사랑, 배신감으로 삐뚤어진 그의 영혼에 슬퍼했고 설리의 강하며 무식하기까지 한 정신력과 사랑에 놀랐으며, 아신의 올곧고 자유로운, 그리고 무엇에도 굴하지 않는 그 영혼에 감탄하였다.
이 작품에서 설리가 시집와 아이를 낳고 반평생을 보낸, 그래 진하에게는 싫어도 떠날 수 없는 곳이 바로 이 샤오싱이었다. 나는 진하가 설리를 만나러 처음 샤오싱에 왔을 때 샤오싱의 장터에서 사 마신 "천하명주 소흥주"를 잊을 수 없었고, 설리가 늘 진하를 기다렸던 우화정이라는 정자가 (비록 만화의 설정이기는 하지만) 어디쯤 있었을까 상상해보기도 했다. 이런 내가 샤오싱에 도착해, 설리가 진하를 만나 함께 달아나 숨었던 회계산이 실제로 있는 지명임을 확인했을 때는 너무도 흥분해 가슴이 떨리기까지 했다.
샤오싱은 수로가 발달하고 경치가 아름다워 "동양의 베니스"라고 불리기까지 했다 한다. 내가 본 샤오싱도 아담하고 아름다운 곳이다. 흰 벽에 검은 기와를 얹은 샤오싱의 전통 가옥과, 이런 전통 가옥의 양식을 빌은 현대적인 건물을 볼 때마다 그 소박하고 깨끗한 미의식에 감탄하게 된다.
버스로도 사십 분 정도를 달려 란팅에 도착했다. 란팅에 왕희지에 얽힌 이야기가 전해와서인지, 입구에 왕희지의 글을 파는 상인들이 많다. 소흥주도 많이 판다. 란팅(난정)은 원래 난이 많아 붙여진 이름이다. 월나라 왕 구천이 이곳에 난초를 심었다던가. 하지만 이곳이 유명해진 것은 왕희지의 난정집서 때문이다. 유상곡수라 하여 내에 술잔을 띄우고 술잔이 멈춘 곳에 있는 사람이 시를 짓거나 벌주를 마시는 놀이인데, 이 때 지은 시들을 모아 책을 내고 왕희지가 서문을 썼는데 이 서문이 바로 난정집서라 한다. 연못 옆의 대나무숲에 앉아 있자니 샤라락거리며 바람에 대나무 흔들리는 소리, 새 우는 소리가 들려온다. 글과 벗하던 삶이었으니 왕희지와 그 벗 되는 이들이라면 이 자리에 앉아 어찌 시 한 수 짓지 못했을까. 벤치에 누워 하늘을 본다. 나무 사이로 날아드는 햇빛에 잠이 쏟아지려고 한다.
란팅을 둘러보며 여기 어드메쯤에서 설리가 진하를 기다리지 않았을까 상상해 본다. 남쪽을 바라보며 저 아래 회계산으로 달아났겠지 생각해 본다. 그리고 아신도 이곳을 오가며 진하를 만났겠지 하는 상상을 하며 즐거워한다. 이렇게 찬찬히 둘러보고 잠깐잠깐 졸기도 하고 상상의 나래도 펼쳐보다 샤오싱 시내로 돌아가기 위해 나왔다.
시내로 돌아와 셴헝다주디앤(咸亨大酒店)이라는 호텔에 갔다. 점심 먹으러. 그곳에서 점심을 먹고 호텔 안의 쇼핑몰에 들러 샤오싱주 두 가지를 샀다.
역사가 4000년이나 되었다는 샤오싱주는 마오타이주, 펀주(분주), 쭈예칭주(죽엽청주) 등과 더불어 중국 8대 명주 중 하나로 황주에 속한다. 황주는 우리 나라로 치면 막걸리 같은 탁주 종류인데, 막걸리와 같은 우윷빛이 아니라 황갈색을 띄고 있다. 왕희지가 란팅에서 유상곡수할 때 마신 술도 샤오싱주라 하며, 삼국지 등에 등장하는 과거 중국의 영웅호걸들이 말술로 마셨다는 술 역시 샤오싱주다.
샤오싱주는 찹쌀, 보리누룩, 수수 등이 주원료라고 하는데, 보통의 샤오싱주보다 쌀의 비율이 높은 가판주(加飯酒)가 특히 유명하다 하고, 화조주(花雕酒)라는 것도 있다. 화조주는 샤오싱 사람들이 딸을 낳으면 술을 빚어 꽃이 새겨진 항아리에 담아 묵혀 두었다가 시집갈 때 꺼내 썼다는 술이다다. 내가 산 두병 중 하나가 화조주이고 다른 하나는 10년 된 가판주이다. 샤오싱주는 오래 묵힐 수록 맛이 좋다고 하니 가판주의 맛이 기대된다.
호텔을 나와 이번에는 셴헝주디앤(咸亨酒店)에 갔다. 호텔인 셴헝다주디앤과는 다른 곳이다. 루쉰의 <공을기>를 읽었다면 그 소설에 나오는 함형 주점을 기억할 것인데, 바로 이곳이다. 검은 탁자들이 놓인 중국적인 술집인데, 소설의 함형주점을 재현한 곳이라 하며, 술집 앞에 공을기의 동상도 있다. 샤오싱의 관광지이자 추천 음식점 중 하나이다. 이곳에서 샤오싱주를 동이로 빚어 놓고 한사발씩 떠서 판다기에 갔더니 정말 그리 팔고 있다. 그래 나는 샤오싱주 한 사발과 안주로 튀긴 두부를 시켰다. (두부 별로 안 좋아하는데 늘어놓은 것 중 내가 알아볼 수 있는 게 이것뿐이어서 시켰다)
술을 마실 때는 우선 그 빛을 보고 다음으로 향을 음미하고, 입술에 술이 닿을 때의 촉감을 느낀 후 혀끝에 닿는 맛을 느끼고 목으로 넘어가는 느낌을 감상하라 했다. 샤오싱주는 얼핏 보면 한약같다. 아주 맑은 한약. 그래서인지 감초 냄새가 나는 듯한 착각이 인다. 향을 음미해볼까 하는데, 온 술집 안에 간장 냄새가 가득하다. 무슨 안주가 이 모양이고 하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샤오싱주 냄새였다) 술의 향기는 아주 좋았다. 간장 냄새가 좋다니? 하겠지만, 이것이 바로 샤오싱주의 특징이 아닐까 싶다.
첫 냄새는 코를 찌르는데 마시는 동안은 마냥 향긋하니 향으로도 명주(名酒)다. 그래 향을 좀 더 음미해야겠건만 나는 충동을 이기지 못하고 얼른 사발을 들어 입술을 축여 본다. 강한 향과 함께 찬 술이 입술을 적실 때의 느낌이란! 나는 흥분을 이기지 못하고 얼른 한모금을 넘긴다. 달디단 술이 혀끝을 돌아 목으로 넘어간다. 보통 탁주 하면 다소 텁텁한 뒷맛이 있기 마련인데, 샤오싱주는 마냥 달짝지근하고 넘길 때의 느낌이 청주처럼 깔끔하다.
감탄하며 그 짜릿함을 즐기는 새에 한 사발을 다 마셔버렸다. 그래 나는 두부를 몇 조각 집어 먹고 한 사발을 더 시킨다. 그러자 술집에 난리가 났다. 외국인이 샤오싱주 두 잔을 시켰다며 점원이 다들 몰려온다. 에이, 15도짜리 술인데 왜들 저리 호들갑인가 나는 코웃음을 친다. 당신들이 한국인의 술 실력을 모르시는구랴 하고 속으로 웃으며 보무도 당당하게 한사발을 더 받아 온다. 옆자리에 혼자 마시는 아저씨가 코가 빨개져서 알딸딸한 얼굴로 쳐다본다. (중국에서 술취한 사람 처음 봤다) 거만한 표정으로 한모금을 마시는데 한순간 알딸딸해진다. 하긴, 첫 잔을 거의 원샷하다시피 했으니 그럴 수도 있겠다 싶다. 점원들은 몰려들어 구경하는데 여기서 너무 취하면 안되지 싶어 아무렇지 않은 듯 미소를 지으며 사진 좀 찍어도 되겠냐고 허락을 받은 후 구석구석 돌아보았다.
이놈의 술은 깨지 않고 기분은 점점 좋아지네. (비틀거렸을 지도 모른다) 결국 나는 모여든 점원들 중 가장 나이 많은 아줌마와 둘이 앉아서 주절주절 떠들기 시작했다. Qu Xian heng zhu dian, hen gao xing! (함형주점 와서 무지 좋아요!)에서 시작해 여행중이고 어딜 다녀왔고 어쩌고 저쩌고~ 그러다 그 아줌마가 일본말로 인사하기에 Wo bu shi re ben ren, wo shi han guo ren! 라고 단호하게 알려주었다. (안 그러는 게 나을 뻔 했나)

그렇게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술을 두 병 산 후, 술집에서 시시덕거리는 바람에 가보려던 루쉰 기념관은 못 가고 술집 앞에 서있는 삼륜차를 잡아 버스 터미널에 갔다. 갈 곳 못 갔으면 어떠랴, 샤오싱에 와 소흥주를 마시며 비천무의 향기를 느꼈는데.


** 운영자님, 이 글이 팬레터인가 싶으실 수도 있겠지만, 김혜린씨에게 꼭 보내고 싶었던 글이랍니다. 메일 주소를 몰라서 여기다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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