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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티라이프 > 김혜린의 ‘불의 검’
 ♡♥♡♥  | 2004·01·12 16:19 | HIT : 891 | VOTE : 53 |
[Comics] 김혜린의 ‘불의 검’
[속보, 연예, 주간지] 2002년 06월 30일 (일) 23:07

생사를 헤매던 소년과 그를 구한 소녀가 서로에게 ‘산마로’와 ‘아 라’란 이름을 지어줬던 것은 1992년이었다. 그로부터 10년 후. 우리 는 21세기를 맞이했지만 산마로와 아라는 여전히 전쟁의 한복판에 서 있다. 꼭 가야할 곳이라면 함께 간다던 그들의 약속은 그래서 지금도 추억이 되지 못한다. 김혜린의 ‘불의 검’(대원씨아이/전11권, 3,50 0원)이다.

‘불의 검’이 1년 3개월 만에 11번째 단행본을 펴냈다. 운명이란 게 산마로와 아라에게만 얄궂은 게 아니어서 ‘불의 검’도 여러 번 짐 을 쌌다 풀었다 해야했다. 1992년 만화잡지 ‘댕기’에 연재를 시작, 9권까지 단행본을 출간한 후 잡지 폐간으로 잠시 휴식기간을 가졌다. 이후 만화잡지 ‘화이트’에서 연재를 다시 시작했지만, 역시 잡지 폐간으로 오래가지 못했다. 이맘때쯤 많은 독자들이 더 이상 ‘불의 검’을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고 내심 불안했을 것이다.

하지만 ‘불의 검’은 천천히 꼬박꼬박 독자 곁을 찾아왔다. 김혜린 작가는 잡지 연재 없이 10권의 일부를 그렸고, 이번에 나온 11권은 온전히 연재 없이 단행본으로만 나온 분량이다. 편집을 맡은 대원씨 아이의 손현주씨는 “중·고등학생부터 작품 초기의 독자들까지 두루 ‘불의 검’을 찾는다. 10권은 2만부 가량 판매됐다. 11권을 내기 전 다음 권이 언제 발행되느냐는 문의전화도 쇄도했다”고 말해 10년 동 안 한결같은 ‘불의 검’의 인기를 입증했다. 소년만화에 비해 적게 팔리는 순정만화 시장에서 1만부 이상 판매고는 ‘대박’이다. 빠르 면 8월, 12권이 선보일 예정이다.

‘불의 검’은 만주 벌판 아무르강 유역을 중심으로 청동기에서 철기 로 넘어가던 때를 배경으로 한다. 종족간의 영토 싸움이 절정에 달해 있는 이 때, 아무르족과 카르마키족의 대립이 이 만화의 축이다. 아 무르족의 여인 아라와 전사 아사(산마로)의 사랑과 엇갈린 운명이 그 대립축을 넘나들며 펼쳐진다. 카르마키족의 폭군 수하이 바토르, 마 녀 카라, 아무르의 왕 마리한, 신녀 소서노 등도 ‘불의 검’의 주요 인물들이다.

이 만화는 온종일 인간 운명에 대한 연민에 빠지게 한다. 왜냐하면, 어느 누구도 ‘절대악’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무르족과 대립하는 카 르마키족과 악녀 카라에게조차 ‘그럴 수밖에 없음’이란 안타까움을 느끼게 된다. 혼혈아 수하이 바토르의 정체성 갈등과 아라에 대한 일 방적 사랑은 그를 단순한 ‘폭군’으로 만들지 않는다.

다시 만난 아라와 그녀가 낳은 수하이 바토르의 아들을 함께 보듬는 아사. 그리고 마침내 연적 아라에게 혼례선물을 내리는 신녀 소서노. 모두가 상처투성이지만, 모두가 상대의 아픔을 배려한다. 때로는 상 대의 욕망 때문에 고통에 빠지지만, 상대를 증오하진 않는다. 그래서 ‘불의 검’이 전하는 가장 큰 미덕은 인간과 생에 대한 연민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혹시 ‘불의 검’의 기억이 가물가물한 독자가 있다면, 1권부터 다시 한 번 읽어보기를 바란다. 긴 시간동안 우리는 때때로 사람을 절망하 며 살아왔지만, 아라와 아사들은 여전히 그 모습 그대로이기 때문이 다.

자신의 상처에 오만하지 않으며 거친 인생에 오히려 고마움을 느끼는 것. 그것이 팍팍한 인생에 건강한 기운을 불어 넣어줄 것이다.


<강지남 기자 layra@m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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